00085 까마귀의 충고, 그리고 선물 =========================================================================
< 까마귀의 충고, 그리고 선물 >
목소리가 들린 것은 뱃머리 부근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 목소리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저 놈은.’
주헌의 예상대로 뱃머리에는 성인의 머리만한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마치 제 안방이라는 것 마냥 까마귀는 너무나도 천연덕 스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쿵!
“으악!”
까마귀가 풍기는 도도하고 위압적인 오라가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었다.
'급이 다르다.'
왕급의 재능을 가진 유재하나 아이린조차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실제로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주, 주헌씨.”
“단장님!”
“시끄럽다. 유물한테 쫄지 마라. 내가 그렇게 가르쳤나?”
아니 그렇게 말해봐야 무서웠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혼자 태연할 수 있는 주헌이 사실 더 무서웠다!
두려워하는 건 인간들 뿐이 아니었다. 괜히 마신급이 아닌지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유물들도 굉장히 무서워했다. 실제로 주헌 옆을 기웃거리던 동아줄도 낑낑거리며 주헌의 허리에 감겨 들었다.
[#*$*#&*!]
물론 그런 주제에 유물로서의 포악한 본성은 건재한 건지, 아니면 주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건지, 크아앙 크아앙 까마귀에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럴 때였다.
[#*$*!]
저 미친 까마귀 놈을 없애라!
[#$*&*!]
저 역적 놈을 없애라!
참다못한 유물들이 기어이 살의를 드러냈다. 대부분이 유재하와 아이린의 유물들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강한 신급에 가까울수록 경외심이나 강력한 탐욕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실제로 몇몇사람들은 눈이 뒤집혀 까마귀를 노려왔다.
"저건 내거야!"
"비켜!"
"잠깐! 다가가지마!"
그러나 유재하나 아이린의 외침이 무색하게 그들이 달려드는 그 순간!
[내가 볼일이 있는건 저 인간이다. 상관없는 인간은 방해하지마라.]
까마귀가 악마같은 붉은 눈을 번득였다. 단지 그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지고, 배가 크게 기우뚱 거렸다.
“꺄아아악!”
“으아악!”
사람들은 배를 붙잡았고, 유물들은 도리어 몸체가 파괴되어 거품을 물어야 했다. 날 뛰려는 파산의 유물 역시 아이린이 잡아 눌러야 했고 말이다.
흡사 허리케인과 같은 재앙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자, 주헌이 단호하게 나섰다.
“당장 멈춰라. 안 그러면 앞으로 넌 날 못볼 줄 알아.”
그 말에 까마귀가 가볍게 웃는 것 같았다. 그러자 파도가 조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주헌은 웃었다.
“겁들 먹지 마시죠. 저건 그냥 스토커입니다.”
“스, 스토커?”
“잊을 만 하면 나타나는 변태남이죠. 아 변태녀인가?”
그 말에 까마귀는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흘리면서 주헌을 응시했다.
[넌 여전하군.]
* * *
까마귀가 입을 연 것은 주헌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배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까마귀는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압적이었다.
[인간, 네 활약은 잘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넌 도굴꾼이 아니라 강도가 되고 싶은 게로구나.]
동시에 주헌은 까마귀를 경계하면서도 헛웃음을 흘렸다.
이놈 봐라.
“겨우 그딴 말을 지껄이려고 왔나? 그게 다라면 난 가겠다.”
주헌이 미련 없이 돌아서자 까마귀가 그를 붙잡듯이 말했다.
[얼굴도 볼 겸 전할 말이 있어 온거다.]
그 말에 주헌은 표표히 웃었다.
자식.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들어주지. 뭐냐.”
[널 노리게 될 유물들이 있다.]
“유물은 특정 인간을 정해 노리지 않는다. 왜 날?”
[네가 보통 인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얼씨구.”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유물들은 인간을 꾀내려고 한다. 하지만 넌 유물이 뭔가를 제안하려해도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기어오르지 말라며 유물을 파괴하고도 남을 인간이지. 그럴 능력도 있고.]
쉽게 말해 눈엣가시라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인간이 유물을 애지중지할 때, 주헌 만큼은 신나게 유물을 굴려 먹었으니 만큼.
[유물 중엔 우두머리 격들이 있다. 날 가둔 장본인들이기도 하지. 그들은 유물의 권위를 무시하는 널 굉장히 싫어할거다.]
까마귀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조심해라. 최근 유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곧 네 예상을 뛰어넘는 무덤들도 세상에 나타날 거다.]
“무덤?”
[그래. 도굴의 기술을 잘 익혀놓는 게 좋을 테지. 반드시.]
“그래서 계속 메시지 따위로 날 도발하고 있는 거냐.”
그 말에 까마귀는 대답대신 웃었다. 그리고 주헌은 자신을 노리는 유물이 있을 것이란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무덤이고 나발이고 해볼테면 해보라 해. 어디서 도구 따위가 가소롭게.”
곧 까마귀는 흡족스러운 듯 했다. 유물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주헌이 마음에 드는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오는 길에 주운 게 있다. 내겐 필요없으니 네게나 주지.]
“주운 게 있다니, 반짝이는 거라도 물고 왔나?”
[네게 도움이 될 거다.]
주헌은 뭔가를 더 물으려고 했지만, 까마귀는 그 말만 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동시에 웬 거대한 구체가 눈 앞에 뚝 떨어졌다.
[???? 을 부여 받았습니다.]
크기는 개당 100kg은 나갈까, 어린 아이보다도 큰 크기. 다만 그걸 보며 주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박?”
눈 앞에 있는 건 흥부와 놀부에서 나올 것 같은 박들이었기 때문이다.
* * *
하지만 주헌은 거대한 박 덩어리 세 개를 보고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제비대신 까마귀가 물어다 준 흥부와 놀부의 박 (S급 / 소모성 유물)]
- 사용가능 횟수 (1/1)
역시 어딜봐도 흥부 놀부전에서 나오는 그 박이 맞았다. 워낙 귀해서 경매에서도 비싸게 나오던 바로 그 보물박스.
물론 제 기억에 있는 건 B급으로 랭크가 낮았지만, 무려 S급이라니! 얼마나 대단한게 나올지 주헌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는 좀 고민했다.
‘이게 엄청난 대박 유물이긴 해도, 동시에 복불복 랜덤박스인데.’
확률은 50대 50.
흥부의 박이 걸리면 말도 안되게 좋은게 나왔지만, 놀부의 박이 걸릴 경우는 예상하기 힘든 악재가 나왔던 것이다.
그런 만큼 주헌은 기쁘면서도 고민에 빠졌다.
안전하게 팔아도 그만이나 좀 아깝고, 남을 시키자니 내키지도 않았다.
‘어쩌지. 이걸 깨? 말아?’
아이린이 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맡기면 그만일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 때였다.
까마귀의 기운이 사라지자 안에서 나온 유재하와 아이린, 조지홀튼이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저게 뭐죠?”
“뭐긴. 까마귀가 귀한 박을 떨어트리고 갔다.”
“.......제비가 아니고요?”
그 말에 주헌이 웃을 때였다.
박의 크기에 압도된 아이린이 오빠에게 부탁했다.
“오빠, 주헌씨의 펜트 하우스까지 옮겨주세요.”
“뭐? 내가 왜?”
조지는 입을 삐죽였지만, 아이린의 시선에 굴복한 조지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주헌은 쓸모없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네놈의 도움은 필요 없다.”
“뭐, 뭐? 그럼 설마 그 동아줄한테 이동을 맡기려고?”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동아줄은 눈을 반짝이는 듯 했지만, 어째서인지 주헌과 유재하가 동시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딴 일에 굳이 동아줄을 쓸 것도 없지.”
“그럼 어떻게...”
“1호야.”
“옙.”
곧 유재하가 수첩에서 그림 엽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가 가볍게 지배력을 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그건!”
곧 유재하의 앞에 나타난 건 낯익은 그림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미완성 그림 (S급) - 영웅전설급 / 소모성)
-사용 가능 횟수 (475/500)
바로 키이라 일행을 빨아들이고 난로에 불타 사라진 줄 알았던 고흐의 미완성 그림 유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까무러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분명 불에 타서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불에 타 사라졌지. 복제품이.”
그 말에 조지 홀튼은 입을 떡 벌렸다.
“뭐라고? 복제품이었다고?”
그러자 주헌은 밉살 맞게 웃었다.
“놈들을 보내는데 미쳤다고 진품을 쓰나? S급 유물을 막 보내는 짓은 안한다.”
“허....!”
그렇다.
이번에 키이라를 상대로 쓴 것은 유재하가 교묘하게 만들어낸 복제품이었다. 수준도 A급이나 B급으로, 하위호환 버전이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같으면 키이라도 복제품 따위로는 빨아들일 순 없었겠지만.”
키이라는 지배력이 꽤나 높았으니까.
하지만 TSOF 놈들이 키이라를 쏴준 덕분에 지배력이 흔들렸고, 복제품으로도 충분히 키이라를 보낼 수 있었다.
유재하가 소모유물을 다 들고 다니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던 참에 타이밍 좋게 얻었고 말이다.
아무튼 좋은 인벤토리, 아니아니 고흐의 유물로 박을 넣어두자 칭찬 받고 싶었던 동아줄이 S급 그림유물에게 시위를 했다.
[#*$*&!]
왜 내 일을 뺏어가! 왜 내 일을 뺏어가!
분명 자신이 C급 유물이라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이 때였다.
“아참 주헌씨. 이거 저한테도 왔는데 주헌씨도 받으셨죠?"
비키니 차림의 아이린이 내민 건 판도라에서 보내온 파티 초대장이었다.
"읽어보니까 유물 사용자들을 불러놓는 사교의 장이 될 것 같아요.”
"와, 아주 서로 인재 영입하려고 난리도 아니겠네."
아이린과 유재하의 말에 주헌은 생각에 잠겼다.
'판도라 놈들도 때론 도움이 되는 짓을 하는 군.'
아무래도 유물 사용자를 강압적으로 잡아 들이다가 거하게 비난을 받더니, 이런식으로 초대하는 식으로 방향을 튼 모양이었다.
'보나마나 적으로 두기 싫으니 아군이 되라고 사정하는 의미겠지만.'
“단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가실건가요?”
“간다. 당연히.”
이제 슬슬 유물의 랭크들이 정해지고, 무덤이 우르르 출몰하면서 왕급들이 두각을 드러낼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 모임은 왕급들을 확인해볼 좋은 기회다.’
무덤을 발굴할 때 가장 큰 방해꾼들이었으니.
물론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 * *
“키이라, 그 멍청한 여자 같으니.”
오스틴 록펠러.
세계적인 석유재벌의 자손이자 신급 유물을 가진 그는 키이라를 욕했다. 아니 그도 그럴 법한 것이 그 여자에게 고흐의 그림 유물을 빌려준 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홀튼가문을 노린다길래 빌려줬더니, 그 머저리가.”
물론 경쟁자가 사라진 점에서는 몹시 바람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의 유물을 박살 낸 걸로도 모자라서, 홀튼부부도 작살을 못내?”
그의 짜증에 오스틴 록펠러의 비서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기껏 홀튼 부부를 병들게 했는데, 다 헛수고가 되어버렸네요.”
그렇다.
유물을 사용해 홀튼 부부를 병들게 한 것은 바로 오스틴 록펠러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러시아 미녀를 향해 오스틴이 혀를 찼다.
“오히려 고생을 한 건 너지. 기껏 조지 홀튼의 옆에서 홀튼가의 동향을 살펴보게 했는데 말이야.”
“전 괜찮습니다.”
그렇게 답한 러시아 미녀는 뜻 밖에도 주헌 일행이 조우한 적이 있는 여자였다. 바로 조지 홀튼의 시중인이자, 홀튼가의 비행기에서 주헌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던 시중인이었던 것이다.
비서가 난처해하자 오스틴은 쯧 혀를 찼다.
“됐다. 노스트라다무스 놈이 홀튼가를 예의주시하고 있어서 찔러본 거니....잠깐! 너 내가 준 목걸이 유물은?”
그러자 비서는 제 목을 만지며 내심 당황했다.
“그게. 도둑 맞은 건지, 잃어버렸습니다. 홀튼가의 전용기에 탔을 때 사라진 것 같아서...”
“...........”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럴 때였다.
쿵!
"아야!"
"아, 미안합니다."
누군가가 입구에 서 있는 록펠러와 부딪치고 지나간 것이다. 왠 미친 놈인가 싶어서 록펠러가 돌아보자, 수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주헌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파티장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오스틴 록펠러는 기분 나빠했다.
"아오 똑바로 좀 보고 다닐 것이지."
그렇다.
이곳은 판도라가 주최한 파티장이었고, 록펠러는 판도라 측 사람으로서 오늘 열리는 판도라 파티에 참가한 것이었다. 오늘 열리는 파티는 외부의 유물 사용자들을 초대한 자리. 좋은 사교의 장이 되리라.
물론 록펠러는 멀어지는 주헌을 노려보면서 욕을 했지만, 곧 비서가 깜짝 놀라 알은체를 했다.
"잠시만요, 도련님! 그러고보니 저 사람이 바로 서주헌입니다! 도련님이 예의주시하라고 했던!"
"뭐야?! 왜 그걸 이제 말해!"
그는 급하게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우글 거리고 있어 주헌의 모습은 쉽게 찾기 힘들었다.
“칫, 시킨 건 다 준비했지?”
“네.”
비서에게 뭔가를 확인한 록펠러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악랄하게 웃었다.
"서주헌, 찾았다."
곧 미래의 꾼들과 왕들이 모인 광란의 파티가 시작 되었다.
============================ 작품 후기 ============================
(9.14 일 수정)
렛츠 파뤼!
+ 슬슬 왕급들 나오면서 본 궤도로 올라갑니답! ㅠ.ㅠ
날씨가 너무 살인적으로 덥습니다. ㅠㅠㅠ 독자분들도 더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컨디션의 문제인지 글을 자꾸 뒤엎게 되네요. 빨리 페이스를 찾아 보답드리겠습니다.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