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잘가라, 첫번째 탈락자 =========================================================================
< 잘가라, 첫 번째 탈락자 (3) >
키이라는 미칠 것 같았다.
유물의 리스크로 팔자에도 없는 굼벵이가 된 건 그렇다 쳤다 이거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모습일 때 주헌에게 붙잡혀버리다니!
‘젠장, 큰일 났다.’
이대로라면 정말 약재가 되어버려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주헌은 키이라를 삶아 먹을 것 마냥 악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군님, 이런 모습으로 뵙게 될 줄은 몰랐네?”
주헌의 말에 유재하와 아이린은 놀랐고, 키이라는 다급해졌다. 하필이면 빌어먹을 밧줄때문에!
‘이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키이라를 찾아낸 동아줄이 뭔가를 기대하듯이 기웃 기웃 거렸다.
이제 칭찬해 주는 거야? 칭찬해주는 거야? 하고 주헌의 오른쪽에 갔다가 왼쪽으로 가는 둥,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그리고 주헌이 동아줄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긴 그 순간.
키이라는 필사적으로 힘을 발휘했다.
신급 유물을 폭주 시킨다는 건 목숨을 건 도박에 가깝지만, 이놈에게 잡히는 것 보단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 다들 죽어봐라!’
그렇게 키이라가 호기롭게 유물의 힘을 끌어내보려는 순간!
주헌은 품속에서 뜻 밖의 물건을 꺼냈다.
그건 소주였다.
“!”
그리고 뚜껑을 비틀어 열더니, 단숨에 키이라를 병에 입수 시켰다.
풍덩!
졸지에 소주에 입수하게 된 키이라는 비명을 질렀다.
“#($*#$(!”
그래봐야 벌레의 비명소리라서 무슨 소리가 들릴 리가 만무했지만.
“어푸, 어푸!”
결국 소주에 입수하게 된 키이라는 정신없이 술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유재하와 아이린이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다, 단장님?”
마치 키이라를 상대하기 위해 들고 온 것 같은 물건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의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포악한 전쟁의 여신이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전쟁의 여신의 포악한 힘이 약해집니다.]
그걸 보면서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 모든 유물에는 천적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세크메트의 유물 역시도 그랬다.
세크메트는 최고신 라에게 모반을 꾀하는 인류를 전멸 시키기 위해 파견된 학살신. 그러나 술을 너무 좋아해서 지상의 맥주를 다 마시고 취한 덕분에 인류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서 태어난 유물답게 세크메트의 유물은 술에 약했다. 과거 주헌이 키이라를 죽였을 때도 그 점을 이용했고 말이다.
‘맥주에도 뻗었는데 소주에 버티겠냐.’
술을 사오라니까 오승우일행이 이걸로 사와버렸지만 제법 효과가 좋은듯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소주병 안에 키이라를 넣은 주헌은 사정 없이 병을 흔들었다. 덕분에 안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끄아아앙악!”
이번엔 졸지에 세탁기에 들어간 빨래 기분을 만끽하며 키이라는 수많은 소주를 들이켰다.
“딸꾹! 딸꾹!”
주헌은 소주병 안에서 죽어가는 키이라를 보며 사납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 얌전히 굼벵이주나 되어버려라.”
“딸꾹!”
그렇게 악명 넘치는 전쟁의 여신은 떡이 되어 뻗고 말았다.
* * *
“곧 부모님이 오빠랑 함께 오실 거에요.”
홀튼가 저택.
그곳에서 주헌 일행과 아이린은 홀튼 부부와 조지 홀튼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로초에 의해 살아난 홀튼 부부는 조지 홀튼의 제안하에 대형 병원에 정밀검사를 간 것이었다. 그래봐야 의사들이 기겁하고 있겠지만.
“오빠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구요.”
주헌 덕분에 아이린은 굉장히 기뻐보였다. 이에 주헌도 흡족한 듯 웃었다. 미인이 환하게 웃는 걸 보는 것도 즐겁긴 했지만 이 뒤에 더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내 후엔 달콤한 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번 장기 프로젝트의 결과로 얻게 될 보상이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이걸로 홀튼가를 얻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주헌과 다르게 미치고 환장하겠는 사람이 있었다.
[뉴욕시내를 박살낸 끔찍한 테러리스트 키이라.]
[청문회에 등장하지 않은 키이라.]
[美 키이라 클라크 중장 파면 및 현상수배범으로 체포 결정]
아니 테러리스트라니!
현상수배범이라니!
며칠 동안 홀튼가의 별관에서 주헌에게 농락 당한 키이라는 미칠 것 같았다.
굼벵이들 소굴에 갇혀 농락을 당하거나, 약재로 삼는다고 건조대에 들어가거나, 홀튼가 애완동물의 먹이가 될 뻔한 건 그렇다 쳤다.
'파면에 테러리스트라니!'
대통령의 처사에 키이라는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자신은 지금 벌레였다.
‘젠장! 서주헌!’
키이라는 저주를 부르짖으며 소주병 안에서 절규했다. 그녀는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주병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기는 개뿔.
“끄앙아아악!”
소주병이 또 데굴 데굴 잘도 굴러갔다.
“어푸어푸!”
그리고 그럴 때 비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여자는 또 뭘 하고 있는 거야.”
주헌이 한심스럽다는 말이 떨어졌다. 바로 동아줄 유물이 소주병을 주워서 주헌에게 가져다 준 것이었다.
주헌은 소주병을 다시 제 옆에 올려놓으며 동아줄을 바라보았다.
[#*#(*$(#]
동아줄은 어째서인지 팔찌로 돌아가지도 않고 주헌의 주변을 서성였다. 그것도 오늘만 그런게 아니라 며칠 째 그랬다.
나름 쓸모가 있어서 굳이 팔찌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혼내진 않았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놈이 도대체 왜 이러지?’
그러나 동아줄은 뭔가를 기대하듯이 자꾸만 기웃 기웃 거렸다.
주인님, 칭찬 안해줄거야? 안해줄거야?
그러나 그걸 알 턱이 없는 주헌은 시간을 살피는 듯 했다.
“슬슬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
동아줄은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이 때였다.
“키이라 장군님을 내놔라!”
“유괴범을 체포하겠다!”
홀튼가에 TSOF 무리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정문을 뚫고 들어온 TSOF 는 키이라의 유물을 추적하고 온 것인지 온갖 방을 쑤시고 다녔다.
갑자기 군인들이 닥치자 홀튼가의 시중인들은 당황했지만, 주헌은 두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이놈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여왕개미를 퇴치할 땐 일개미들까지 박멸해야 후환이 없는 법이다.'
주헌은 일처리에 있어선 확실한 걸 좋아했다. 그랬기에 바깥을 살펴보던 주헌이 급하게 외쳤다.
“1호!”
“네! 준비 다 됐습니다!”
그러나 이 때였다.
“놈들은 여기에 있다! 잡아라!”
나름대로 기습에 특화 된 건지 TSOF가 능숙하게 집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되는 군.'
그러나 주헌이 조금 경계하며 화랑의 검을 뽑아 들 때 였다.
“으아악!”
“뭐야 이 놈은!”
동아줄이 몸부림을 쳤다. 주헌의 주변을 기웃거리던 동아줄 유물이 감히 어딜 오냐는 듯 놈들을 묶고 결박하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묘하게 동아줄이 욕구불만인 것 같았다.
[#*$*#$&$#*!]
인간들! 저리가! 나 화났어! 화났어!
쿵!
결국 순식간에 집안에 들어온 무리들을 헤치운 동아줄을 보면서 주헌이 웃음을 흘렸다.
“잘했어. 쓸만하네.”
[!]
그 말에 우뚝 멈춰선 동아줄이 주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보던 동아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칭찬 받았어, 칭찬 받았어!
그리고 그 한마디를 들은 동아줄은 너무 신이 나서 폭주했다.
[#*&@*#&*@!]
더 들을 거야, 더 들을거야!
“으아아악! 살려줘!”
“이 밧줄 새끼! 으아아악! 내 뼈!”
“내 다리이!”
“으악! 내 속옷!”
물론 폭주의 대가는 TSOF 놈들이 다 받아야 했지만.
* * *
“키이라 장군을 내놔라!”
“여기에 있는 걸 다 알고 왔다!”
“감금 구속죄로 홀튼가는 물론, 너희들을 모두 끌고가겠다!”
홀튼가에 총 출동 한 것은 키이라 소속의 부대였다.
그들은 키이라의 유물을 되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긴 했지만 사실 자신의 상관을 되찾으려고 온 것이었다.
‘반드시 구해드리겠습니다. 장군님.’
‘이대로 파면 당하시게 내버려둘 순 없다.’
그들은 비록 중징계를 받게 될지라도 키이라를 구해 누명을 벗겨내려고 했다.
“당장 장군님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나!”
그 말에 2층 계단에서 놈들을 내려다보던 유재하가 주헌에게 속삭였다.
“단장님,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프란츠 카프카의 <벌레>에 대해 아나?”
“!”
주헌은 대답 대신 소주병을 놈들에게 던졌다.
쨍그랑!
그들은 놀랐다.
주헌이 난데없이 소주병이라도 던져서 공격하나 싶었더니, 안에서는 웬 벌레가 낑낑거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술이라도 거하게 취한 듯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낯익은 부하들의 목소리에 감격에 젖어 있었다.
‘부하다. 내 자랑스러운 부하들이 날 구하러 왔다...!’
그녀는 그에 보답하려듯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기어갔다.
그러나.
탕탕!
“!”
사정없이 총알 공격을 맞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총을 쏜 TSOF 는 분노하면서 외쳤다.
“장군님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나!”
“우릴 우롱하는 거냐!”
아니 장군님은 거기 계시잖아.
그렇게 옆에 있던 유재하는 슬퍼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공격을 받은 키이라는 상처투성이가 된 채 쿨럭거렸다.
'저 바보 같은 놈들이!'
물론 최측근이 아닌 이상 리스크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 자충수라고 봐도 좋긴 했다.
‘괜찮아, 한 명이라도 내 유물의 기운을 눈치채기만 하면 된다!’
저들 중에서 리스크에 대해 아는 부하가 한 명이 있었다. 그녀석에게 가면 된다. 그리 생각한 키이라가 부하들에게 기어갔다.
하지만 군인들은 탕탕 벌레에게 총을 쏘았다.
“버러지 같은 걸 내놓지 말아라!”
“빨리 장군님을 내놔!”
'나라고! 이 멍청한 놈들아!'
키이라는 부하들의 손에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제 부하들은 자신을 아직도 못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헌은 그녀의 위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큭 웃었다.
[전쟁의 유물 리스크 발동중]
[변신 지속 시간 1분 48초]
이제 저 여자가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는 약 1분.
주헌은 S급 유물을 집어 들며 웃었다.
'이제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전쟁의 유물 리스크 발동중]
[변신 지속 시간 30초]
“그렇게 애걸복걸하니 너희들의 장군님은 돌려주지. 30초만 참아라.”
“뭐?”
곧 주헌은 악랄하게 웃으면서 숫자를 셌다.
“27..25...20.. ”
“이게 장난치나! 저 놈을 쏴라!”
“3. 2. 1”
곧 눈부신 섬광이 터져나왔다.
============================ 작품 후기 ============================
잘가....!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