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잘가라, 첫번째 탈락자 =========================================================================
< 잘가라, 첫 번째 탈락자 (2) >
동아줄은 엄청난 힘으로 조지 홀튼을 끌고 갔다. 그러나 정작 이 귀족 가문의 장남은 상상도 못한 취급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아니 어디 농락당할 상대가 없어서 밧줄 따위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다니!
“야 이거 놓으라고! 이 이상한 밧줄 놈아!”
조지 홀튼이 힘으로 밧줄을 끊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동아줄은 자극을 받았는지 조지 홀튼을 콱콱 졸라댔다.
[#$*#&*#&*!]
어? 놀아줄거야? 놀아줄거야?
지금까지는 봐줬다는 듯, 정말 콱콱 졸라댔다. 결국 주헌이 그만두라고 해서야 시무룩해져서 조지를 풀어줬지만, 정작 조지 홀튼은 죽을 것 같았다.
“하씨, 유물이란 놈들은 하나같이 이런 놈들 뿐이냐!”
“어쩔 수 없어. 유물의 기본 천성은 인간 괴롭히기라.”
조지는 씩씩 거렸지만 다 좋다 이거였다. 사실 지금 중요한 것은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동생에 관한 것이었다.
“잠깐만. 아이린을 거기 두고 왔잖아! 왜 날 끌고 온거냐!”
“홀튼가 중 한 명은 부모님 치료 과정을 봐야지. 나중에 발뺌하지 말라고.”
그 말에 황당해 하던 조지 홀튼이 말했다.
“그래도 그 장군 봤잖아! 상대는 완전히 정상이 아니라고!”
“뭘 새삼? 댁 동생도 정상은 아니야.”
“뭐라고?!”
동생을 걱정하는 조지 홀튼은 버럭 화를 냈지만 주헌은 악의 없이 웃음을 흘렸다.
아니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지 않나.
전쟁왕을 상대할 수 있는 왕급이 세상에 몇이나 된다고.
“쓸데 없는 걱정마라. 누가 가르쳤는데. 그딴 여자한테 질 만큼 어설프게 가르치진 않았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뉴욕 시내가 크게 뒤흔들렸고, 주헌은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전쟁의 유물이 도시를 습격합니다.]
[파괴의 여신이 인간들을 싸움으로 몰아넣고 건물들을 부식 시키기 시작합니다.]
그건 키이라의 짓이었다. 주헌에게 족집게 교육을 받은 아이린이 기어이 키이라에게서 전쟁의 유물을 뽑게 한 것이리라.
'거참, 리스크 때문에 전쟁의 유물은 사용하기 싫어하더니.'
아이린이 생각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는 건가.
그렇게 주헌과 조지 홀튼은 105층 펜트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안에는 주헌이 말했던 대로 홀튼 부부가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하지만 방안에는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고, 전신이 문드러진 부부는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재빨리 부부의 상태를 확인하던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완전히 한계군.”
“뭐라고? 아, 안돼! 빨리 그 열매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헌은 유리병에서 불로초 열매를 털어냈다. 그러더니 레몬을 쥐어 짜듯, 사정없이 손으로 즙을 냈다.
콰직!
원래는 약으로 조제해야 하나 그럴 시간도 없다. 주헌은 재빨리 부부의 입에 액체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액체를 받아들인 부부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부부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썩은 부위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었다.
마치 병들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 마냥, 원래의 피부로 돌아갔다.
조지 홀튼은 그걸 보면서 입을 떡 벌렸다.
“사, 상처가!”
주헌은 이거라면서 웃음을 흘렸다.
불로초는 기본적으로 신체의 시간을 되돌리는 식의 의료유물. 그런 식으로 병을 치료한다.
'이걸 반복하면 된다.'
주헌은 계속해서 즙을 내어서 부부의 입속에 흘려 넣었다. 그러기를 수십 번! 마침내 몸의 반점이 다 사라지고, 부부가 무거웠던 눈꺼풀을 뗐다.
이것으로 드디어 부부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어... 우리가 어떻게 된거지?”
조지 홀튼은 부모님의 멀쩡한 모습에 감격에 젖었다.
“아버지! 어머니!”
결국 장남 조지 홀튼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엉엉 울었고, 어리둥절한 부부는 그런 아들을 달랬다. 그러나 상황은 가족이 감격하고 있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쿠웅!
또 다시 강한 충돌이 일어나고 주헌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다름 아닌 아이린이었다.
[주헌씨!]
아이린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헌은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부모님은 이제 무사하십니다.”
[!]
곧 전화 너머로 울음 소리가 들려오자 주헌은 딱 잘라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키이라가 남아 있으니 감격은 나중에 해요. 방심할 때 아닙니다.”
[아, 네! 죄송해요!]
그리고 아이린이 다급하게 말해왔다.
[저 그게 장군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도망친걸까요?]
그러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도망친 것은 아닐 터였다. 천하의 전쟁왕이 공격 도중에 갑자기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메시지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파산의 유물과 전쟁의 유물이 주변에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데 키이라가 도망칠만한 이유.
결국 잠시 고민하던 주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만.
동시에 뭔가를 깨달은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리스크가 발생 했구나!’
아이린 때문에 뻥뻥 전쟁의 유물을 쓴다 했더니, 리스크가 지나치게 빨리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상한 뭔가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도망친 것이고,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그걸 파악한 주헌은 사냥꾼 마냥 험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말아요. 곧 가겠습니다.”
곧 주헌은 전화를 끊고 호텔 밖으로 뛰쳐 나갔다.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 * *
‘리스크가 발생했다면 이 쪽의 승리다.’
이렇게 되면 예전처럼 힘든 방법으로 그녀를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주헌은 난장판이 된 뉴욕 시내를 활보했다. 그리고 그가 폐허가 된 시내 한 복판에 도착했을 때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헌씨!”
보아하니 아이린쪽은 아직 리스크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키이라가 다른 곳으로 도망간 게 아니라고요?”
“리스크가 와서 다른 걸로 변한 것 뿐입니다.”
분명 키이라는 이 넓은 도시 어딘가에 있다. 실제로 집중을 하자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아주 희미한 유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 때였다.
[염탐의 숙련도가 맥스치에 도달했습니다.]
[염탐 스킬의 랭크가 B랭크로 올라갔습니다.]
랭크가 올라가면서 더욱 키이라의 기운이 선명해지긴 했지만.
‘어지간히도 꼭꼭 기운을 숨겼군.’
천하의 주헌조차도 아직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조금만 더 하면 체크메이트인데.’
어디지?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최소한 범위만 알아도 수색하기가 편할텐데 말이다.
그렇게 주헌이 이를 갈던 그 때였다.
“단장님!”
고개를 돌리니 해맑게 달려오고 있는 유재하가 있었다. 그런데 유재하에 옆구리에 끼고 있는 물건이 뜻 밖이라 주헌은 헛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야, 그건 키이라의 유물이잖아. 이건 또 언제 가져왔대?”
“TSOF 놈들이 기절해있길래 슬쩍 해왔죠. 명색의 고흐의 그림인데 망가져 있는게 마음이 아파서 복원 중이긴 한데...!”
뭐 아무래야 좋았다.
중요한 건 이놈이 키이라의 물건을 들고 있다는 것이니까.
'이것만 있으면 추적이 가능하다.'
말이 떨어지기가 주헌은 유재하가 까무러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유재하가 복원하고 있던 캔버스의 일부를 사정없이 뜯어버린 것이다.
부욱!
동시에 한참 복원을 하고 있던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고, 유물도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
아이고! 내 몸!
“아이고! 뭐하시는 겁니까! 복원 중이었는데!”
“복원할 곳이 한군데 더 늘어난다고 뭐가 달라지나?”
“뭐라고, 이놈아!”
그러나 유재하가 거품을 물거나 말거나, 주헌은 품속에서 수첩을 꺼냈다.
정화의 지도 유물이었다.
그러더니 주헌은 찢어낸 귀퉁이 일부를 수첩에 흡수 시켰다. 그러자 정화의 유물은 키이라의 흔적을 추적해 지도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수첩에 떠오르는 위치 정보에 주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키이라의 위치가 뜻 밖에도 이 주변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m 이내다.'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그 여자가 있다고? 하지만 주변을 살펴도 사람이 숨어 있을 만한 공간은 없었다. 탁 트인 넓은 사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이 있기는 했지만...
“샅샅이 뒤져. 바로 이 주변에 있다.”
“네? 아직도 이 주변에 있다고요?”
이들은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키이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뭘로 변한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분명 크기가 작거나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는 증거.
그리고 그 무렵.
정작 키이라는 건물의 잔해 사이에 숨어 분노의 이를 갈고 있었다.
빌어먹을 파산왕의 유물 탓에 쓰기 싫었던 유물을 쓴 것 까지는 좋다 이거였다. 그런데 뉴욕 시내가 날아갔을 정도의 힘을 썼기 때문이었을까.
유물의 리스크가 지나치게 빨리 왔다.
그 뿐인가?
‘미치겠군!’
키이라는 지금 앞도 안 보이고, 손 발도 포박 되어 있는 건지 온 몸으로 기어야만 했다. 아니 기기는 커녕 자꾸만 벌러덩 뒤집혀져 짜증나 미칠 것 같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지만.
‘젠장, 왜 하필이면!’
그렇다.
키이라는 지금 하얀 굼벵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주헌이 몇 걸음 걸으면 바로 발각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불행중 다행인 건 짜리몽땅한 굼벵이로 변했어도 유물의 영향인지 소리만큼은 들렸다. 그래서 주헌의 목소리와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몸을 굴리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주변에 있다간 유물의 기운 탓에 자신을 찾아낼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군!’
언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 만큼, 놈들에게 잡히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낑껑거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키이라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주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바로 주헌을 쫄래쫄래 따라왔다가 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던 동아줄 유물이었다.
동아줄은 뒤집혀서 낑낑 거리는 오동통한 굼벵이, 아니 키이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짧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길쭉하고 하얀 것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것일까. 아니 사실 그것이 인간이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니나 다를까.
동아줄 유물은 단숨에 확 키이라를 낚아채며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 #*$#*!]
주인님, 찾았어! 찾았어!
동아줄은 굼벵이를 포박해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마치 여기 좀 봐달라며 동아줄 유물이 씰룩거리자 주헌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쏠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키이라는 죽을 맛이었다.
이 빌어먹을 유물놈이!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여기서 잡히면 끝장이란 말이야!
그리고 졸지에 유물에게 낚인 키이라는 허공에서 빙빙 돌아가는 바람에 구토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동아줄 유물은 신이 나서 주헌을 불렀다.
[$*#*#&$*! $*#&$*!]
주인님, 여기야, 여기야! 빨리 여기 봐줘!
곧 동아줄 유물이 난리 부르스를 추자 주헌이 동아줄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동아줄이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자 주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분명했다. 키이라였다!
인간을 괴롭히는데 특화된 유물놈인 만큼 키이라도 쉽게 찾아낸 것이었다. 막연하게 찾을 땐 몰랐지만, 범위가 고정되자 키이라의 기운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곧 주헌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당황한 키이라는 동아줄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 상태로 주헌에게 잡히면 진짜 끝장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 뛰어봐야 굼벵이였다.
한약재나 식용으로도 사용되는 그 굼벵이!
‘젠장!’
그리고 키이라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동아줄 유물은 ‘인간, 어디가. 어디가.’ 하고 심술궂게 키이라를 붙잡고 있었다.
이쯤 되자 키이라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제발 이거 놓으라고!’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누구셔?”
주헌이 키이라를 집어 들며 큭큭큭 사납게 웃기 시작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왜 하필 걸려도............
+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한동안 더워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게 된 것 같습니다 ㅠ.ㅠ 더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8월 셋째주 딱지 이벤트 당첨자는 mathew220, neoggm, oksususi, tkdlqj1198, gjqhrms 님 입니다!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