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황금의 손을 지배하는 자 =========================================================================
< 황금의 손을 지배하는 자 (3) >
“뵙고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주헌의 말에 유재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따님을 달라고 하려는 건 아니죠?”
“네?!”
덕분에 깜짝 놀란 건 아이린이었다. 하지만 유재하가 휘파람을 불며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와, 이런 미인이 와이프라면 진짜 부럽네, 아! 1호 사원 특혜로 축의금은 없는 겁니다!”
“아, 아니 저기. 저기!”
아이린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주헌은 심술궂게 말했다.
“뭘 그리 부끄러워합니까. 알몸으로 날 안을 땐 언제고.”
덕분에 무덤의 일이 떠오른 아이린은 정신이 완전히 날아간 듯 했다.
“아, 아니 저 불쾌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해요! 그땐 제가 경황이 없어서 멋대로!”
아니 도대체 불쾌하긴 뭐가?
솔직히 아이린 정도면 제 아무리 유물성애자인 주헌이라도 좀 곤란했다. 38살 때의 병들었던 몸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23살의 매우 건강한 신체라는 것도 문제였던 것이다.
주헌은 결국 픽 웃었다.
“농담입니다. 적당히 좀 속아요. 그런 식이면 나중에 진짜 고생합니다.”
결국 거짓말이라는 말에 아이린은 잠시 멍해졌다.
어딘가 아쉬운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럴 때 주헌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야 이 단호박아! 거기서는 농담이라고 하면 안 돼지! ㅡㅡ]
어찌나 답답했는지 유재하가 분노의 문자를 보내온 것이었다.
하지만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허참, 농담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그럼 일부러 접근 하란 거냐?]
그 답에 유재하는 당황한 듯 했다.
[엥? 아이린한테 관심 없어요?]
[예쁘긴 하지.]
동시에 부하의 차마 할 수 없는 욕설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씨, 이 유물성애자! 아 됐고 마음 없어도 꼬셔요!! 그 얼굴 뒀다 뭐에 써먹게! 홀튼가의 재산이나 낼름 하자고!]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에라이, 이 결혼사기꾼 놈아.
[아서. 내가 그런 짓을 하다가 목숨이 스무 번정도 날아갈 뻔한 적이 있다.]
[what?!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 ㄴ거야!]
뭔 짓을 하고 다니긴.
한 때 사기 좀 치고 다닌 것뿐이다. 유물을 얻기 위해서 여자들에게 일부러 접근 했던 것이다. 그 중엔 교수, 재벌, 헐리웃 배우, 공주도 있었다.
물론 치사한 짓이긴 했으나 뭐 어쨌겠는가?
권 회장의 명령이자 임무였는데.
하지만 치정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더럽다고 했었나. 덕분에 주헌은 험한 꼴, 못 볼꼴을 다 보았었다.
그러니.
‘이제 여자 문제는 안 만든다. 홀튼가하고도 그렇게는 얽히지 말아야지.’
홀튼가면 아주 매력적이었고 조카 좀 만들어달라고 하는 김 형사도 좋아할 테지만, 주헌은 연애나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당장 유물을 끌어 모아서 기반을 탄탄하게 잡아둬도 모자를 마당에 무슨.
‘홀튼가는 비즈니스 관계면 족하다.’
그랬기에 주헌이 아이린에게 말했다.
“알았으면 다음부터는 알몸으로 아무나 막 끌어안지 말아요. 그거 위험한 겁니다.”
그러나 그 말에 아이린이 그 때의 일이 떠오른 듯, 작게 비명을 질렀다.
“죄송해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네?”
아이린은 얼굴을 짚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보수적인 부모님은 혼인신고서부터 가지고 올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아이린은 절망했다.
‘어쩌지, 주헌 씨한테 피해가 갈지도 몰라.’
하지만 아이린이 안절부절 못하거나 말거나, 뉴욕 주로 향하는 비행기는 순항 중이었다.
* * *
“허, 이건 또 무슨 일이랍니까.”
리처드는 영상통화를 하며 기가 막힌 듯이 실소를 흘렸다. 아니 그것도 그럴 법한 게 모니터 화면 너머로 웬 이상한 것이 있었다.
분명 저 화면에는 키이라가 잡혀야 하는데....
분명 그래야만 하는데.
‘왜 갓난아이가 있는 거지?’
리처드는 황당해서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을 보니 분명 키이라가 입고 있던 군복이 맞긴 맞다. 너무 커서 옷이라고 할 만한 게 도저히 못 되었지만.
“저, 키이라 장군이 맞습니까?”
[응애애에.]
“저 장군님.”
[응애에에에?]
……이래서야 대화가 통할 리가 없다.
결국 리처드가 한숨을 쉬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또 키이라의 유물 리스크가 발동한 것 같았다.
‘분명 키이라 장군은 세크메트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이집트의 세크메트는 인류를 벌하기 위해 파견된 학살의 여신이었다. 그리고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가 변신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일까.
‘키이라 장군의 리스크는 변신이라고 했다.’
즉 몸의 형태가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면 그러려니 싶겠지만, 무서운 것은 뭐로 변하게 될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듣자하니 말 못하는 짐승으로 변했다고도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나 가구, 인형, 심지어 팬티나 지렁이로도 변해봤다고 했다.
게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그 때 그 때 다르다. 심하면 몇 개월 동안 그 상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어지간히도 골 때리는 유물이었다.
그런데.
‘미치겠군. 이번엔 갓난아이로 변했나……….’
리처드는 탄식했다.
“알겠습니다. 말도 안 통할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죠.”
그러자 영상 너머에서 갓난아이가 탕탕 책상을 내리치는 것이었다.
[응애애애! 으앵애앵! 응애!! 응애!!]
갓난아이는 상당히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리처드는 난처할 뿐이었다.
아이씨, 화내면 어쩔 건데!
말이 통해야 뭔 대화를 하든가 말든가 하지!
결국 답답해진 키이라는 씩씩 거리면서 핸드폰을 찾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는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간난아이라그 무디하는 건가 지금! 강난아이기만 지그믄 얼마등지 의사소퉁을 하슈 이따!]
리처드는 오타가 난무하는 메시지를 보며 허, 실소를 흘렸다.
이걸 의사소통이라고 하는 건가.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 모습으로 밖에 나가지도 못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 리처드야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해도, 키이라의 진짜 리스크는 극소수의 사람들 외엔 몰랐다.
결국 대부분의 부하들도 접근금지 시킨 키이라는 몸을 부들 부들 떨었다.
‘빌어먹을. 이 리스크는 밖에 새어나가면 안 된다.’
하지만 괜찮을 것이었다. 진짜 리스크를 아는 사람은 믿을만한 자들이었고, 적중에서는 아는 놈이 없을 테니.
[어째등 바겨다 고구마 자스이ㅏㄷ. 분서가 쓰고 다나올거다. 기해대고 죠하.(어쨌든 발견된 고구마는 조사중이다. 분석 계열 유물을 쓰고 있으니 놈에 대한 단서가 나올 거다. 기대해도 좋아.)]
여전히 괴상망측한 알파벳 조합이었지만, 뜻을 알아먹은 리처드는 웃었다.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리고 그에 응하듯 키이라의 직속 비서가 들어왔다.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응애?(뭐냐?)]
[저, 지시를 내리신대로 고구마 유물을 급하게 조사해봤습니다만!]
[응애! 응애애애!(그래. 그래서 결과는!)]
키이라는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부하를 보았다. 그거라면 역추적 유물을 사용해 주헌의 정보를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죄송합니다! 조사단이 모두 원인불명의 살상가스로 혼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조사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응애애애?!]
그 모습을 보며 리처드는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진짜 저 여자랑 같이 일해도 되는 건가?
“그런데 전해주신 자료를 보니, 이번 일에 홀튼가가 연루 되어있는 듯 합니다만?”
그들은 공항 편을 조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홀튼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건 주헌이 예상한 범위였고, 이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알게 될 내용이었다.
단지.
“홀튼가가 서주헌과 결탁하고 있는 것 같군요. 설마 홀튼가가 스폰인 걸까요?”
조사를 해보니 이번 무덤에 있던 것도 서주헌이었고, 심지어 웬 여자와 함께 했을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
‘물론 경매장 때도 그렇고. 예상대로라면 아이린 홀튼이랑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홀튼가가 주헌이랑 있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톨릭 가문인 홀튼가는 유물 자체를 악마로 취급하고 있을 텐데.’
실제로 몇 번이나 찾아가 판도라 가입을 권유했으나, 완전히 문전박대를 당했고 말이다.
이에 키이라가 문자로 답했다.
[스퐁이리는 어다. 하디만 드짜하이 호트에식 주벼엉 안조은 졌다느군.(스폰일 리는 없다. 하지만 듣자하니 홀튼가의 여식의 주변에는 안 좋은 일만 터졌다고 하는 군).]
“설마 유물의 힘일까요?”
[가느서이 그다 하디마 쟝을 뿌니는 유무라면 타나는걸.(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재앙을 뿌리는 유물이라면 꽤 탐나는 걸).]
그녀의 말에 리처드가 킥 웃었다.
“놈들은 제게 맡기라고 했죠? 마침 오늘이 그 날이기도 하고.”
[그너고보니 어제가 d-day엿지. 갠찮겠나? (그러고 보니 어제가 d-day 였지. 괜찮겠나?)]
“네. 지네들이 날고 기어봤자, 권력 앞에선 일개 시민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리처드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주헌의 손 발을 묶을 방법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 * *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 도착한 주헌 일행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검문입니다! 수색이 완료될 때까지 누구도 공항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뉴욕에 있는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홀튼가의 전용기는 소형 비행기가 아니라 여객기 수준의 대형 제트기 였기 때문에 비행기 역시 공항에서 관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였다.
그런데.
“유물 사용자를 발견했습니다!”
“잡아!”
“이거 놔! 새끼야!”
난데없이 공항을 폐쇄하고 탐색 유물을 사용하는 버러지들이 보였다. 유물을 활용해 넓은 범위를 수색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물에 잡힌 유물 소지자들은 일사천리로 끌려갔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TSOF들이었고, 그들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군복을 입은 이들이 공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건 마치 판도라 소속의 병사처럼 보였다.
물론 이 사태에 대해서 뉴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제 파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 회담에서는 <판도라 공동선언>이 있었습니다.]
[유물은 핵무기에 버금가는 사회악이자 세상에 혼란을 가져올 뿐인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이로서 일반인들의 무덤접근과 유물 소지, 판매 행위를 엄격하게 금합니다.]
[이제부터 모든 무덤과 유물은 국제무덤관리기구 <판도라>에서 관리하며, 유물 소지자는 어김없이 체포하여 즉시 회수 조치를...]
[모든 위법 자들은 테러리스트로 규명. 국적에 불문, 사건이 발생한 나라에서 즉시 사법처리가 가능합니다.]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전 세계적으로 유물 소지에 대한 제재와 탄압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유물 소지자들이 발각되고 사정없이 잡혀갔다.
그리고 주헌의 메시지에도 이렇게 떴다.
[광역 탐색의 눈이 당신의 유물을 감지했습니다.]
[유물 사용자들이 몰려옵니다.]
기껏 유물의 기운을 숨기고 있었건만. 아무래도 찾아낸 걸 보면 꽤 높은 등급의 탐색 유물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유재하가 들고 있는 태블릿 PC에서는 계속 뉴스가 흘러나왔다.
[무덤과 유물은 판도라가 자체 조직한 최고의 발굴단이 안전하게 조사를 할 예정이며...]
[유물은 판도라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사용할 예정입니다.]
[판도라 공동선언에 이후, 전 세계적으로 단속기간에 돌입했으니 시민들께서는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결국 공항에서 잡혀가는 무리들의 모습에 유재하가 외쳤다.
“어떡하죠? 이대로면 우리도 유물 다 빼앗기고 테러리스트로 몰릴 판이잖아요!”
그러자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예상보다 이놈들이 빨리 나온 것도 있었지만, 확실히 거슬렸다.
이 뉴스대로라면 판도라가 지정한 인간들이 아니면 유물엔 손도 못 대고, 무덤에도 못 들어가게 되는 거니까.
'옛날엔 판도라 소속인 권회장 밑에 있었으니 상관 없었지만...'
곧 유재하가 주변을 살피며 이를 갈았다.
“젠장, 이를 어쩌죠? 이대로라면....!”
그럴 때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면 할 수 없네.”
“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쪽도 가만히 안 당해줄 순 없지.”
유재하와 아이린은 기겁했다.
“네? 하지만 일개 시민이 어떻게 나라가 연합한 기구에 어떻게 손댈 수 있다고...!”
그러자 주헌은 대답대신 생긋 웃으면서 아이린의 손을 잡았다.
“기껏 귀한 유물도 얻어왔는데 테스트는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겠어?”
이제 주헌의 뜻대로 파산왕의 유물을 시험해볼 때였다.
============================ 작품 후기 ============================
거지될 준비 하시고ㅎㅎㅎ
파산의 손...읍읍 아니 황금의 손은 내꺼다!!
+ 원래 오늘 자정에 올리려고 했는데 스토리가 루즈해서 한번 갈아 엎느라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월요일차 추첨도 완료해서 딱지를 보내놨으니 확인 바랍니다!
(kjk7720,junho613. wndqhrskrk, tnwjd7166, dedjon95님!)
오늘도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