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황금을 향하여 =========================================================================
< 황금을 향하여 (1) >
“와, 진짜 죽을 뻔했네.”
유재하는 폭발이 일어난 호텔을 바라보면서 숨을 헐떡였다. 그들은 지금 호텔에서 300m 떨어진 곳의 세나도 광장 분수에 빠져 있었다.
바로 <파리 몽마르트 언덕 화가의 잉크>의 힘 덕분에 호텔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 화가의 잉크 (B급 - 희귀급 / 소모성 유물)]
- 사용 가능횟수 : 53/100
예전 권 회장의 전속 변호사, 이진아에게서 빼앗은 그 유물이었다.
기능은 간단했다.
뛰어난 화가의 그림에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뭔가를 그리면 그 그린 물체에 빨려 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린 물체가 있는 곳으로 빠져 나올 수 있다.
쉽게 말해 조건형 워프 기능이었다.
실제로 주헌은 혼란을 틈타 몰래 숨겨두었던 잉크를 꺼냈고, 그 잉크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바로 이 세나도 광장의 랜드마크인 분수대였다. 그리고 둘은 순식간에 그림에 빨려 들었고, 이 분수대로 워프하여 호텔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500m 이내에 있는 실존 물건을 그려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만약 범위 내에 해당 물건이 없을 경우, 워프는 커녕 오히려 그림에 갇혀버린다. 평생 현실 세계에 나올 수 없다는 무서운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변 지리, 지형을 잘 알고, 반드시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유물이었다.
다만.
“와, 단장님 그림 진짜 못 그려.”
“........”
“설마 아까 그거 이 분수대라고 그린 신거에요? 진짜 여기로 나온게 기적적이네.”
유재하가 겁도 없이 까불며 신랄하게 까대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햄버거라도 그리신 줄……아야야야!”
“아주 천재적인 예술가가 납시셨구만, 어?”
주헌이 유재하의 귀를 고문에 가깝게 잡아 뜯기 시작했다.
“불만 있으면 다시 호텔로 돌아가. 키이라한테 머리나 뚫리라고.”
“으아악 내 귀! 아이고 잘못했어요! 농담, 농담이에요!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요!”
“너 지금 소리 질렀냐?”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늘같으신 단장님께 제가 어찌! 존경합니다!”
“암. 그래야지.”
하여간 이놈은 능력은 출중한데 매를 버는 게 문제다.
곧 주헌의 정신교육(?) 후, 유재하가 훌쩍이면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유물을 가지고 계세요? 유물은 다 맡기고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주헌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너 바보냐? 유물 사용자를 만나러 가는데, 진짜 유물을 다 놓고 오면 죽자는 소리지.”
그건 그랬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유물 사용자는 절대로 유물을 놓치면 안되는게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는 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무기를 안드는 셈이었으니 만큼.
하지만 유재하는 당황했다.
“어? 어? 그럼 진짜 유물들 다 들고 오신 거에요? 이상하다, 유물의 기운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거짓말이죠!”
“쯧.”
혀를 차던 주헌은 품속에서 유물들을 꺼내보였다. 그래봐야 안경, 렌즈통, 볼펜 같은 종류다. 하지만 유재하는 그것들을 보면서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미친, 그게 다 유물이라고요? 유물의 기운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
그래서 키이라도 속아 넘어갔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주헌은 낄낄 웃었다.
“<위장>이라는 거다, 이 멍청아.”
유물은 총 3단 변신을 할 수 있었다.
바로 1단계 기본형(골동품상태). 2단계 위장형(강제변장). 3단계 본체형(궁극체) 식이었다.
2,3단계는 강한 지배력이 있어야 가능한 변신.
특히 사용자의 생각대로 모습을 바꾸게 하는 <위장> 상태에서는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기척을 숨기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이 시대의 사용자들에게는 무리겠지만, 주헌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 때 눈치빠른 유재하가 뭔가를 깨달은 듯 주헌에게 물었다.
“그럼 설마 아까 그 미군한테 받았던 빨간색 색연필도!”
그러자 주헌은 대답 대신 품 속에서 빨간색 색연필을 흔들어 보였다. 단 그가 보여준 건 두 개 였다.
하나는 진짜 미군이 건네준 일반 빨간색 색연필.
그리고 또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펜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헌은 둘 중 하나를 원래 모양으로 되돌렸다. 그러자 색연필 중 하나가 유재하가 익숙해하던 만년필 모양으로 변했다.
유재하는 그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유물을 다른 모양으로 위장 시킬 수 있다는 것도 놀랍긴 했지만, 무엇보다.
“와, 이 사기꾼! 그 사이에 그냥 색연필하고 바꿔치기 했었어!”
그러니까 이 인간은 미군에게 색연필을 받았었지만, 실제로는 지도 유물에 셰익스피어의 펜을 썼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유재하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그거, 그 펜 때문에 폭발이 일어나고 미군 놈들이 유물을 찢어내건가요?”
“오, 눈치가 빠르네. 정답.”
“그럼 그거, 뭐라고 쓴 거죠? 일부러 남들이 못 읽는 글씨로 쓴 거 맞죠! 진짜 유물 문자라는 겁니까? 이상한 고대 문자? 아씨 됐고 뭐라고 쓰신 겁니까!”
그러자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기업 비밀이야. 이 바보야.”
그래봐야 별 내용 안 썼다.
[마카오 호텔 직원 제이미 정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테러를 결심했다. 장소는 2002호였다.]
[TSOF의 존 스미스와 제이미 에반스는 지도유물에서 끔찍한 악령을 보고야 말았다.]
[유물을 찢지 않으면 키이라 장군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끔찍한 악령으로 보였다.]
대충 그런 식이었나.
셰익스피어의 펜은 제약이 많긴 하나 기본적으로 현혹과 최면과의 유물. 인간 한정의 유물로, 50m 범위의 지배력 낮은 인간들을 희곡의 등장인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효과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 과거엔 세계 정상들을 암살하는 데 쓰기도 했었으니까.
'그래봐야 얼굴도 알아야 하고, 한 인물에게 중복 사용은 안되지만.'
어쨌든 주헌은 남들이 읽을 수 없게끔 일부러 툼글리프 언어를 사용한 것 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건 주헌 뿐이라 뒷탈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목표는 달성했어. 이제 미다스의 무덤으로 향하면 되는 거야.”
적어도 이걸로 미다스의 무덤에서 아이린이 추적당할 염려는 사라졌다.
콜럼버스의 유물도 꽤 쉽게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90% 파괴 된 것 같으니, 완전 파괴의 범주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니 유재하급이 아니면 아마 복원하기 힘들 거다.’
그럴 때 유재하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에이, 그래도 유물들을 파괴하고 그냥 나온 건 아깝네요. 콜럼버스의 유물은 몰라도, 나머지는 복원을 하면 또 써먹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그 말에 주헌은 기다렸다는 듯 사악하게 웃었다.
“그런 말 할 줄 알고 너한테 선물 가져왔다.”
“예......예? 뭐, 뭐라고요? 선물?”
어째 선물이 아닐 것 같지만, 유재하는 일단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헌은 태연하게 종이 한 장을 살랑 살랑 흔들어 보였다.
그건 찢긴 지도 조각들의 일부였다.
바로 키이라가 가지고 있던 소모성 지도유물들의 잔해였던 것이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한 3분의 2정도는 되리라.
“아까워서 가져오긴 했는데. 혹시 할 수 있으면 이것도 좀 살려놔봐. 뭐,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그걸 보며 이 고용인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저건 또 언제 훔쳐왔대!
“아이고, 나중엔 키이라 팬티까지 벗겨 오겠네!”
* * *
“욕 보셨습니다. 키이라 장군.”
유재하의 그림을 훔쳐간 교수, 리처드는 기분이 저조한 전쟁왕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키이라는 리처드와 권회장이 추진 중인 판도라 계획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미국이라는 대국이 있기에 순조롭게 다른 가입국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고, 권 회장에 이어서 이번엔 키이라 장군인가.’
진짜 이쯤되면 서주헌이란 놈이 자신들과 무슨 악연이 있나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하필이면 중요한 파트너들이 왜 하나둘씩!
곧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리처드가 물었다.
“지도 유물은 아예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습니까?”
“보면 모르나?”
그딴 질문 할 거면 꺼지라는 듯, 키이라는 눈을 번득이며 리처드를 쏘아보았다. 곧 리처드는 주검으로 발견된 유물들을 보면서 말을 말자고 했다.
‘말을 잘못했다간 내가 죽겠군.’
확실히 불에 탄 것으로도 모자라, 사지가 분리된 유물은 척 보기에도 가망성이 없어보였다. 소모성 유물의 경우, 지배력을 아무리 실어도 반응조차 하지 않았고 말이다.
결국 다리를 꼬고 앉은 키이라는 짜증섞인 얼굴로 리처드를 노려보았다.
“내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하나.”
“복원을 하란 거겠죠.”
“그래. 듣자하니 권 회장의 복원사가 되었다고 해서 나도 찾아온 거다. 어디 할 수 있겠나?”
못한다고 하면 총으로 머리가 뚫릴 것 같지만 말이다.
결국 리처드는 키이라의 부탁에 난처한 듯 웃어보였다.
“저, 죄송하지만 3분의 2 이상은 남아있어야 뭘 해보든가 하죠. 나머지는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어디로 가긴, 주헌이 낼름 가져갔지.
하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키이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짓 했다.
“모른다. 내 알바 아니다. 그러니 닥치고 복원 해라. 다른 건 몰라도 콜럼버스의 지도만큼은 사수해야 한다.”
모른다니 이딴 막무가네인 여자가 또 있나.
하지만 그녀가 이러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영국에 주기로 하셨죠? 미국의 중요한 유물을 3개나요. 그 대신 이번 일을 무마해주기로 했다고."
그러자 키이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알면 빨리 복구해라. 유물을 빼앗긴 손해를 채우려면 콜럼버스의 지도로 유물을 더 끌어모아야해.”
키이라는 반으로 찢긴 콜럼버스의 지도를 보며 이를 갈았다.
육신이 찢긴 충격으로 유물의 상태가 완전히 맛이 간 건지, 하늘섬이니 아틀란티스니 그딴 이상한 걸 찾아야 한다고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든 건 분명 그 서주헌의 짓이다.'
으드득. 덕분에 미국이 본 손해가 어느정도인지.
그렇게 그녀가 이를 갈며 말했다.
“어쨌든 서주헌, 그 놈은 위험한 놈이다. 반드시 처리를 하든, 미국 발굴단으로 넣든 해야해. 개인적으로는 내...아니 미국의 노예로 삼고 심지만.”
그 말에 리처드는 픽 웃었다.
“걱정마십시오. 원하는대로 해드리죠. 제까짓게 날뛰어봐야 일반인입니다. 유물을 빼앗기면 아무런 힘도 못 쓰는 애송이죠.”
“뭐? 빼앗아? 그럼 혹시.”
“네. 곧 판도라의 존재가 발표됩니다. 곧 일반인들은 유물을 쓰지도, 소유하지도 못한다는 법령이 전세계에 발포될 겁니다. 서주헌이나 유재하도 강제로 유물을 빼앗기게 되겠죠. 그 과정에서 아무 빽 없는 사내놈 둘 쯤이야, 사형대로 데려가거나 노예로 만드는 거 일도 아니랍니다.”
리처드는 그렇게 웃었다.
‘이 기회에 서주헌은 판도라의 노예로 삼고, 유재하 놈은 처리해야 겠어.’
두고봐라, 이 눈엣가시들.
* * *
하지만 리처드가 무슨 생각을 하든 주헌은 태연하게 말했다.
“아마 리처드 놈이 우리 유물을 빼앗으려고 할 거다. 아마도 법적으로. 알아둬.”
그 태연자약한 말에 유재하는 잘먹던 불고기핫도그를 뿜을 뻔했다.
“뭐라고요? 그 대머리 영감이요?!”
미다스의 무덤으로 향하기 위해 마카오 공항에 도착했던 그들이었다. 유재하는 리처드의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유물을 법적으로 빼앗다니, 그건 무슨 소리죠!”
“음? 판도라에 대해선 이미 말해줬잖아. 이제 일반인은 유물을 소지할 수 없는 법이 생길 테지. 우리는 당연히 본보기 처벌 대상이 될거고.”
그러자 유재하는 입을 떡 벌렸다.
“아, 아니 그럼 그걸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셔도 됩니까? 전 오늘 아침을 뭐 드셨냐고 물은게 아니라고요! 위험한거잖아요!”
곧 주헌은 뭘 그러냐는 듯 픽 웃었다.
“걱정마. 곧 그 놈들이 감히 설치지 못하게 쳐발라주지.”
“어떻게요!”
“쉿. 거부들은 이럴 때 써먹는 거야.”
곧 주헌은 홀튼가의 사람이 다가오자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올렸다. 홀튼가의 집사인지, 60대 쯤 된 인상 좋은 노인이 둘을 공항 한 켠으로 데리고 갔다.
“아가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이 지금부터 타려는 건 보통 여객기가 아니라 홀튼가의 전용기였다.
하지만 전용기에 도착한 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흐억!!! 저, 저거슨!!!!!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