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6 이것이 격의 차이다 =========================================================================
< 이것이 격의 차이다 (3) >
콰앙!
환두대도의 맹렬한 울부짖음과 함께 거대한 활엽수가 두동강이 나버렸다. 나무는 어른 수십 명이 팔을 벌려 안아도 모자를 거대한 크기였다.
그런 나무가 고작 팔뚝 길이의 검날에 베였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지만, A급 유물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
하지만 섬광과 함께 완전히 박살이 난 나무는 비명을 질렀다. 나무의 비명소리는 아니었다. 바로 나무에 숨어 있던 유물의 비명소리였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인간!]
아무래도 누가 종이재질의 유물이 아니랄까봐, 나무와 혼연일체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유물은 몹시 괴로워했다.
[이렇게 과격하게 찾아내는 법이 어디있나!]
그러나 주헌은 삐뚤어지게 웃을 뿐이었다.
“왜. 문제 있나? 어쨌든 널 찾아내기만 하는 되는 무덤이잖아.”
아니 그건 그렇지만!
[오지마라! 인간! 이건 통과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원래 같으면 내 앞에서 신성한 기도를 올려야 하는 법인데, 무자비하게...!]
기도는 개뿔이.
하지만 유물이 씩씩 거리거나 말거나, 주헌은 잠시 보트를 세우라고 하며 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헌이 성큼 성큼 유물에게 다가오자, 유물은 겁에 질린 규슈마냥 외쳤다.
[아이고 아까는 날 능욕하더니, 이제는 강제로 날 겁탈하려고 하는 구나!]
허, 겁탈?
그 말에 주헌은 환두대도를 뻗으며 코웃음을 흘렸다.
“오해할 소리 하지 마라. 유물 취향은 아니다.”
[그럼 좀 살살 대하란 말이다, 이 인간 놈아!]
그러자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것도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살살 대하고 있는 거다. 넌 비즈니스에 사용해야 하는 소중한 몸이라서 말이야.”
그건 사실이었다. 주헌이 본인을 위해서 쓸 유물이었으면 강제 굴복을 시키거나, 아마 이집트 3인방 때처럼 엄청난 교육을 시켜줬을 것이다.
“어쨌든 널 찾아냈으니 조건은 풀었고. 이제 얌전히 내 것이 되시지?”
[젠장, 이 난폭한 인간 놈! 두고보자!]
동시에 흩어져 있던 나무토막들이 번쩍 빛을 냈다. 아무래도 과격하긴 해도 조건도 클리어 했겠다, 주헌에게 순순히 굴복을 하고 유물의 형태로 돌아가는 듯 했다.
덕분에 유재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웃었다.
“그럼 이제 유물의 형태가 되는 거....”
하지만 유물이 나타난 순간, 유재하나 주헌의 얼굴이 표정이 바뀌었다.
왜?
나타난 것은 양피지 재질의 지도, 아니 지도들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 자식이?”
아니 글쎄, 지도가 한 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흩어져 있던 나무토막들이 전부 지도로 변해 있었다. 결국 유재하는 황당해서 헛웃음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저. 유물이 20 쌍둥이....일리는 없겠죠?”
그딴 게 있을 리가.
주헌은 살벌하게 웃었다.
그렇다.
이건 유물의 수작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분신 중에서 진짜 자신을 찾아보라고 주헌을 놀리는 것이었다. 주헌에게 가기 싫어 반항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계획대로라는 듯, 유물은 하하하 웃었다.
[자, 어디 나를 찾아볼 수 있으면 찾아봐라! 찾아내면 널 따르고, 못 찾아내면 네 놈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날 찬양해야 할 것이다.]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파산왕의 건으로 써야 하는 유물이라 기껏 달래가며 부드럽게 대해주려고 했더니.'
시간도 없는데 매를 버는 구만, 매를 벌어.
결국 유재하는 할 수 없다는 듯 보트에서 내리려고 했다.
“일단 종이니까 다 주워 오겠습니다. 대충 20장 정도 되는 거 같은데 다 가지고 나가죠.”
“아니, 전부는 못 들고 나가. 진짜를 찾아서 무덤을 클리어해야 출구 문을 열 수 있으니까.”
“그럼 하나하나 감정해볼까요?”
“아니. 시간 없어.”
“그럼 어떻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네?”
그 순간, 주헌은 상상을 초월할 짓을 해버렸다.
부욱!
“?!”
주헌은 사정없이 떨어져 있는 지도 유물들을 찢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뭐하긴.
“찢는 중.”
그리고 조금 열 받은 주헌은 태연하게, 지도 유물들을 찢고, 또 찢고, 또 찢었다!
부욱, 부욱 부욱!
“으악!”
복원사 앞에서 유물을 파괴하고 앉아 있다니, 이 무슨!
하지만 진짜는 없는 지 가짜들은 찢기자마자 빛이 되어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렇게 찢어대서 진짜를 찾아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다만 그걸 보면서 유재하는 머리를 쥐어 뜯을 뿐이었다.
아니 확실히 저렇게 하면 결국 최후의 한 개만 남긴 하겠지만!
“아이고! 어쩌려고 그래요! 그러다가 유물이 파괴 되면!”
“몰라. 고치는 건 네 일이잖아.”
“뭐라고요?!”
이자식, 복원사가 있다고 지금 유물을 재활용품 다루듯이 취급하는 거란 말인가!
아무리 완전 파괴만 되지 않으면, 어느 정도 복원은 시킬 수 있다곤 하지만!
‘그거 장난 아니게 죽을 맛인데...’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주헌은 나름대로 감을 잡고 있었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유물을 만지다 보니 뭐가 진짜 인지 감이 잡힌 것이다.
그리고 마침 내 지도가 몇 장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주헌은 미소를 지었다.
‘이 놈이로군.’
그랬기에 주헌은 복원사에게 희망을 주었다.
“걱정마라. 아무래도 네가 골골 거릴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 말에 유재하는 얼굴이 밝아졌다.
“어? 그거 입니까? 그게 진짜 유물?”
“그래, 아무리 나라도 아이린의 유물과 관련 되어 있는데 막 다루진 않....”
그러나 이 때였다.
[이 저주 받을 인간 놈! 네 놈은 결국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병에라도 걸려서 뒈져라!]
병이라.
그 말에 주헌은 역린이라도 건드려진 것인지, 살벌하게 웃었다.
막 다루지 않긴 개뿔.
‘역시 유물은 굴려야 한다.’
동시에 부욱! 그 가슴이 찢길 것 같은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
유물은 제 몸이 뜯겨져 나가자 죽으려고 했다. 그리고 유물도 울고, 유재하도 울었다. 결국 유물이 고통을 받자 무덤이 크게 뒤흔들리고, 유재하는 기겁을 하면서 주헌에게 외쳤다.
“난 몰라. 진짜 파괴했어!"
“몰라. 고쳐. 그래도 3분의 2는 무사하다. 지폐도 반이 무사하면 새 걸로 바꿔주잖아?”
그 막무가네에 유재하는 피를 토할 뻔했다.
지폐하고 유물하고 똑같냐!
“이 빌어먹을 단장아! 너 진짜 가만 안둘테다!"
하지만 주헌은 웃었다.
유능한 복원가가 있으니 참 편하다는 생각 따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럴 때였다.
괴로워하던 유물이 번쩍 빛을 내면서 진짜 유물의 형태로 돌아갔다.
[정화의 서양취보선 (서양의 보물을 모으는 배) 항해지도 (A급 - 보물급 / 소모성 유물)]
- 사용가능 횟수 (2/500)
생긴 것은 지도 무늬가 새겨진 카페트였다.
'정화의 지도라.'
무덤에 들어가는 조건을 보고 예상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동양의 콜럼버스라고 불리는 정화의 유물이 맞는 모양이었다. 고작 세척으로 항해를 했던 콜럼버스에 반해 2만명의 선원과 60척의 대함대를 이끌던 중국의 대항해가.
물론 여러 가지의 이유로 바다 탐사를 금지 시킨 당시 중국의 분위기와, 세계의 역사가 서양사 위주로 흘러가면서 유럽의 항해사들에게 묻혀버린 대항해시대의 항해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주헌은 이 지도에 흥미가 생겼다. 중국이 꽁꽁 감추고 있던 유물이라, 주헌 조차도 그 효능과 사용법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걸 가지고 있던 중국이 꽤 부흥했었으니, 보통 유물은 아닐텐데.
‘예전엔 중국이 이걸 가져가서 서양쪽 유물 명당을 파악했던 건가?’
지도 유물이야 종류에 따라서 무덤위치, 유전 위치, 군사 위치, 행운과 불운의 땅, 심지어 미남 미녀 분포도 등 다양한 걸 보여주는 괴짜 놈들이라지만 말이다.
'지도 유물이긴 해도, 대충 써봐야 기능을 자세히 알겠군.'
그런데 이 때, 타이밍 좋게 멀리서 요란한 보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유재하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까 그 양키놈들인가?”
“아니, 대륙의 형님들도 오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CIA 쪽과 중국 군인들이 보트를 타고 주헌이 있는 곳으로 몰려 오고 있었다. 수십 척이나 되는 모터보트들이 물살을 가르며 오는 건 보기에도 장관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유재하는 몸을 떨었다.
“이대로 꼼짝 없이 중국 발굴단한테 유물을 넘겨줘야 할텐데. 어쩌려고요?”
그 말에 주헌은 대답 대신, 유물이 남겨 놓았던 분신 유물들을 흔들어 보이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 * *
“이 멍청이들!”
CIA 에이전트들은 상관의 언성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렇다. 그들은 마카오의 무덤에서 빠져 나와 인근 호텔에서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무덤에서 나오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유물을 누군가가 손에 넣자, 무덤은 클리어 되었고 제일 처음 마카오 섬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사라졌었다. 그리고 곧 외부의 교통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무덤의 지배를 받던 마카오도 평화를 되 찾았았지만 문제는.
'무덤이 사라지고 자시고, 가장 중요한 유물을 얻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껏 너희들을 보냈는데 아무것도 건지고 온 게 없다고?”
“죄, 죄송합니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상관의 목소리에 토마스와 린다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CIA의 간부 모건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짚었다.
“키이라 장군이 너희에게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말이야.”
“면목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유물 사용자가 있어서....”
“그래서 유물도 빼앗겨?! 도대체 그 예상치 못한 유물 사용자가 누군데!”
“큭. 그건!”
“그것도 문제지만, 중국이 지도 유물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두다니 너희들은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죄송합니다.”
바로 그 때였다.
[지도 건이라면 괜찮아. 에드워드가 구해왔다고 하는 군.]
목소리가 들린 쪽은 핸드폰 수화기 쪽이었다. 목소리는 고압적인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미군의 장군이자 이번 유물 발굴부대에 발령된 키이라 클라크, 그러니까 전쟁왕이었다.
물론 목소리가 굉장히 젊긴 하지만, 그게 실제 연령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전화를 듣는 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모건은 뜻 밖의 말에 의아해 했다.
“저, 그런데 에드워드가 지도를 구해왔다고요? 정말 그걸요?”
그러자 토마스와 린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건 이미 중국이 가져갔을텐데요!”
[에드워드 쪽의 사람이 유물을 이미 빼돌렸다고 하는 군. 오늘 거래를 하기로 했어.]
“에드워드 쪽의 사람이라니, 도대체 누가...!”
[너희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일텐데?]
“네?”
[유물을 빼앗아간 장본인일테니.]
그 말에 토마스와 린다는 거품을 물 뻔했다.
설마, 그 동양인?!
그 자식이 에드워드 쪽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잠깐만요. 그 자식은!”
[너희의 유물을 빼앗아갔을 정도면 꽤 실력이 있는 유물 사용자인가 본데. 꽤 흥미가 생겼어.]
그 말에 치를 떨던 토마스와 린다는 입을 떡 벌렸다.
흥미라니!
왜 하필이면!
* * *
하지만 놈들이 치를 떨거나 말거나, 몸을 오들 오들 떨고 있는 한 명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번 범죄에 가담한 복원가, 아니 사기꾼 예술가다.
“단장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응. 뭐가?”
유물이 만들어낸 분신을 중국 쪽에 넘기고, 탐사금까지 챙겨서 나온 주헌 일행이었다. 아니 거기까진 좋았지만, 문제는!
“에드워드한테 진짜 복제품을 주다니. 진짜 제 목숨 괜찮은 거 맞습니까? 꼬리 자르기라든가, 그런거 안 하실거죠?”
그 말에 주헌은 하하 웃었다.
그렇다.
주헌은 유재하를 통해 에드워드에게 정화의 지도를 넘겼다.
물론 완벽한 가짜였다.
바로 유재하가 실력을 발휘해 특별하게 만들어낸 복제품인 것이다. 그랬기에 자신이 복제품을 만들어 주긴 했지만 유재하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마 설마 했지만, 정말 이렇게 일을 벌일 줄이야.
'지금쯤 에드워드와 키이라 장군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 텐데. 무슨 생각 인거지?'
하지만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생각이 있으니까, 넌 닥치고 날 따라와.”
결국 유재하는 될 때로 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런 둘을 걱정해서 마카오까지 날아온 아이린이 걱정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에요?”
하지만 주헌은 킥킥 웃었다.
“걱정말아요. 당신과의 약속은 지킵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주헌은 핸드폰을 보면서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슬슬 올텐데 말이죠. 에드워드한테서.”
그리고 정말로 에드워드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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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 전화를 받앗!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