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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54화 (54/409)

00054 이것이 격의 차이다  =========================================================================

< 이것이 격의 차이다 (1) >

“그 까마귀의 정체가 뭔지도 말해 보련?”

주헌은 그렇게 말했다.

원래는 유물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던 주헌이다. 유물의 사정에 깊게 관여하다가는 쓸데없이 그들에게 휘말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다른 유물들은 몰라도, 까마귀 만큼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려준 것은 둘 째 치더라도, 이제는 유물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하는 마당 아닌가.

그랬기에 물었다.

“놈은 뭐하는 놈이지?”

그러자 이 무덤의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낄낄 웃어댔다.

[그걸 인간 따위에게 알려줄 것 같나! 아하하! 혼자 열심히 생각해봐라! 인간!]

얼씨구?

하지만 유물은 의기양양해졌다. 이제야 자신을 농락한 인간에게 복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고귀한 유물의 존재에 대해서 인간에게 해줄 말은 없다, 아하하!]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재수가 없었는지, 유재하는 저 놈 보라면서 허공에 대고 욕을 했다.

“와씨, 방금 전까지 술술 불던 바보 놈이 어디서 잘난척 굴어?”

하지만 도발 당한 유재하와는 다르게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애초에 저런 싸구려 도발에 넘어갈 그도 아니었던 것이다.

“어 그래? 그럼 실망이네. 유물은 인간보다 더 똑똑한 줄 알았는데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군.”

[뭐?]

그 말에 유물은 순간 당황했다.

[인간. 지금 뭐라고 했나?]

“왜? 유물은 잘났다며? 그런데도 과거의 일은 기억도 못하는 건가? 유물은 인간이 따를 만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군.”

그 한숨 섞인 말에 유물은 당황했다.

[뭐, 뭐라고? 우리는 분명 인간보다 뛰어 나다!]

“그런데 과거의 일 하나 기억 못하나?”

[기, 기억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기억 못하니까 말 못하는 거 아니야?”

그 도발에 이 무덤의 주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감히 미천한 인간이 유물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었다.

결국 유물은 분개하며 외쳤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증명해주지! 말해두지만 우리들은 너희 인간들보다 우수하다!]

“그래? 그럼 말해줘봐, 그럼 유물이 인간 보다 뛰어나다는 걸 인정할게.”

[정말이지?]

그러자 잠시 유물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어차피 조금 말해줘도 인간 놈들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를 거다.’

[그럼 말해주지. 그 까마귀는 동족을 포식한...]

"그건 안다. 넘어가라."

대뜸 정보를 가려대는 주헌의 태도에 유물은 당황했지만, 곧 그러려니 싶어 다른 말을 골랐다.

[그럼 이건? 그 유물은 포식의 능력을 가진 유물이다. 놈은 신급이란 존경 받는 위치에 있었으나, 인간 놈 하나와 계약을 하더니 갑자기 미쳐서 동족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지.]

‘인간과 계약 했다고?’

"더 말해봐."

[그래. 놈은 인간 따위를 위해서 동족들을 포식했다는 거다!]

"오? 인간을 위해서라고?"

[그래! 동포들에게 불만을 품은 건지, 계약한 인간에게 사랑이라도 빠져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수 많은 동포들이 그 인간의 손에 강제로 들어갔었다. 심지어 신급분들 조차도!]

"그래서?"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동포들이 놈을 깊은 곳에 처 박아 봉인 해뒀지! 놈을 감시하고 물어뜯을 간수 동포들도 함께 넣어서 말이야!]

참 말 많은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주헌은 동시에 자신이 죽었던 무덤이 떠올랐다. 이놈의 말에 따르면 그 무덤이야 말로 그 흉폭한 마물을 봉인한 무덤이었다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보통 무덤이 아니다 싶더라니.’

패턴이 전혀 안 잡힌다 싶더니, 흉폭한 마신과 그 마신을 지키는 간수가 있었다는 건가. 아무래도 자신과 동료들을 먹어 치우던 구렁이는 그 까마귀를 지키던 간수 유물인 듯 했다.

‘이게 다 권 회장 그 놈이 우릴 거기에 처 박아서 생긴 일이지만.’

새삼 떠오르는 기억에 주헌은 잠시 끓어올랐지만, 화를 추스르고 물었다.

이해가 안가는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괴물을 어떻게 무덤에 봉인할 수 있었지? 신급도 잡아먹는 마물이었다며?”

약점이라도 있었나 정보를 캐려 하자, 이 유물은 자랑 하듯 신이 나서 외쳤다.

[어떻게 하긴! 다른 유물들이 까마귀의 계약자를 회유했지!]

"회유했다고?"

[그래! 인간놈이란 단순하지! 더 좋은 떡을 보여주니까 헌신짝 버리듯 까마귀를 버려버렸거든! 결국 까마귀를 봉인 한 뒤에, 그 인간 놈도 죽여버렸지만! 하하하!]

역시 인간들은 하등하다며 유물은 웃어댔다.

[어쨌든 네놈도 그 까마귀가 선택한 놈이라는 거다. 하지만 네 놈이 까마귀와 계약을 해서 또 동포들이 이용당하는 꼴을 볼 것 같으냐? 너도 그 전의 인간처럼 결국 유물들에게 먹힐 것이다. 자 말해줬으니, 이제 유물이 뛰어나다는 걸 인정해!]

어서 약속을 지키라는 듯 유물이 외쳤으나, 주헌은 도리어 웃어댔다.

“하하하! 그래, 그렇다 말이지?”

주헌이 시원하게 웃어 대자 유물은 어지간히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니 도대체 이 인간 놈이 왜 웃는 거지?

[어? 이, 이봐 너 인간놈! 어서 유물이 뛰어나다는 걸 인정해! 무서워 하라고! 너 지금까지 내 말을 듣긴 들은 거냐!]

제대로 들었다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을 터.

하지만 주헌은 사납게 웃었다.

“그래, 이 멍청아. 술술 부는 정보 아주 잘 들으셨다. 그러니까 결국 까마귀놈과 계약을 하면 신급도 두려워할 만한 힘이 생긴다는 거잖아?”

[?!]

아무래도 유물은 다른 쪽으로 주헌에게 깨우침을 주게 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웃었다.

“그리고 내가 까마귀를 배신하지만 않으면, 너희들은 그 유물에게 손 쓸 방법도 없다는 것도 아주 잘 알았다!”

그랬기에 유물은 거품을 물었다.

[아, 아이씨. 그게 아니라!]

이게 아닌데!

유물은 뭔가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주헌은 생각대로라는 듯 웃었다. 애초에 모든 인간들 중 유일하게 유물과 대화가 가능했던 주헌이 아니었나.

때문에 유물들의 타입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지능적인 타입이 아닌 놈들이야 이렇게 쉽게 낚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좋은 정보 고맙다! 이걸로 까마귀와 계약 할 생각이 생겼어.”

유물 따위의 일은 무시하려고 했지만, 주헌은 까마귀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면 유물은 안절부절 못했다. 이거 어째 자신이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해버린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유물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 그렇게 말해봤자 내가 말한 정보로는 그 유물에 대해서 알 수가 없을 거다. 네놈이 아무리 까마귀와 계약하고 싶어 한다고 한 들, 어떤 유물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계약을 하나!]

그 말에 주헌의 웃음이 하늘을 찔렀다.

“아니, 넌 충분히 말해줬다. 정보는 그 정도면 충분해.”

[?!]

뭐? 충분하다고?

그렇다. 정말로 충분했다.

일단 자신은 이미 그 까마귀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까마귀의 정체? 이미 놈이 힌트란 힌트는 다 줬는데 무슨.

‘애초에 신급 중에서 까마귀라고 부를 만한 놈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포식 성향을 봤을 땐.

‘용을 잡아 먹는 검은 새, 삼족오.’

하지만 흉폭성, 다른 능력을 취하는 것 (변신), 인간을 사랑한 까마귀라는 점에서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었다.

‘파괴의 여신 모리간.’

둘 다 주헌이 본 적이 없는 유물이니 신빙성은 컸고 말이다. 어쨌든 이집트 태양신 라의 힘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분명 라를 잡아 먹고 그 능력을 취하게 된 것일 터.

어느 쪽이든지 간에 도둑의 속성을 가진 유물 같으니 자신한테는 꽤 유용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유용한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 입싼 유물 놈아.”

[?!]

유물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건지, 거의 경기를 일으킬 기세로 패닉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런다 한 들 어쩌겠는가. 이미 저지른 실수 인 것을.

그럴 때였다.

[이 괘씸한 놈! 유물들을 대표해서 널 여기서 보내줄 순 없다! 죽어라!]

주헌의 자극이 꽤나 강했는지, 참다못한 유물이 폭주한 것이다.

쿵!

그러자 바다에서 하얀 물뱀들이 튀어 나왔지만,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왜?

아마도 이 무덤은 항해를 하면서 숨어 있는 유물(지도)을 찾는 것이 무덤 클리어 방식일 것이었다. 그런데 저 멍청한 유물이 폭주한 덕분에 제 기운을 풀풀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바보 같은 놈.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다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베테랑인 주헌 정도의 감이라면 충분히 방향까지 느낄 정도로 선명했다.

어디에 있는지 알면, 그 다음은 식은 죽 먹기다.

그랬기에 주헌은 씨익 웃으면서 이집트 장의사의 칼을 뽑아 들었다.

“1호야. 배 뒤에 모터배가 하나 있었다. 그거 시동 걸어놔.”

“네? 아, 알았....어? 잠깐 단장님! 뒤에! 뒤에! 뱀!”

“뭘 신경써. 이깟 뱀들, 유물만 있으면 상관 없....”

하지만 그렇게 주헌이 여유롭게 장의사의 칼을 휘두를 때였다.

콰직!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

분명 돌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었다. 그리고 주헌이 자신 있게 휘두르려고 하던 장의사의 칼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주헌도 유재하도 움찔했다.

유물의 파괴!

어딜 어떻게 봐도 유물이 둘로 쪼개진 것이다!

그 광경에 모터보트를 찾으러 가려던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내가 복원한 유물이!”

어찌나 험하게 썼으면 자신이 복원을 한 지 반 나절 만에 부서졌나 싶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단장님! 옆! 옆!”

결국 주헌은 쯧 혀를 차며 잡동사니 망치 도구로 뱀의 머리를 짓이겼다.

뻐억!

그 솜씨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날렵하고 매끄러웠지만, 확실히 유물과는 위력이 달랐다.

한 방이면 서걱 서걱 잘려 나가던만, 지금은 야자수를 깨트리듯 수백번 찍어 내리는 수준이 되어야 겨우 죽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주헌은 재빨리 장의사의 칼을 유재하에게 던졌다.

“배는 내가 시동을 건다. 혹시 그거 복원할 수 있나 봐!”

“괘, 괜찮겠어요?!”

배 위로 올라오는 뱀들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기절한 사람들은 굳이 건들지 않았지만, 하얀 뱀 괴물들은 명백히 유재하와 주헌을 포위 하고 있었다.

'칫, 유물은 어디에 있는지 알겠는데 상황이 골치아프게 됐군.'

지금 가진 유물들 중에는 엄밀히 말하면 전투용 유물이 없었다. 그나마 잘 써먹던 것이 이집트 장의사의 검이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펜도 인간 한정에 여러 제한이 있었고, 능력을 되돌리는 함무라비 법전도 뱀들이 상대여서는 쓰기가 애매하지 않은가.

곧 주헌의 눈알이 급하게 돌아갔다.

‘누가 쓸만한 전투용 유물을 안 가졌나. 전투용 유물, 전투용 유물!’

결국 주헌이 임기응변으로 뱀들을 찍어 내리고, 이리저리 귀찮게 처리하고 있을 바로 그 때였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다 쓰러져 있어!”

안개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아마 배를 타고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들이리라. 그들은 조우하는 배마다 사람들이 모두 기절해 있어서 당황한 듯 싶었다. 심지어 그들은 범위 내에 없어서 무덤 주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이 상황을 기이하게 여겼다.

하지만 배를 타고 바로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헌과 유재하를 발견했다.

“어? 여긴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천천히 이동 중이라 주헌과 유재하의 얼굴을 발견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 중 세 명이 주헌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저 놈들은?’

그들은 다름 아닌 CIA 와 비비안이었다. 예전에 아베와 함께 있던 린다도 보였고, 결정적으로 타워에서 만났던 비비안이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 저 도둑놈!”

눈이 마주치자 마자 비비안이 주헌 일행을 아는 척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토마스와 린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둑놈?”

동시에 비비안은 아차 싶었는지 제 입을 틀어 막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거짓말은 들통나기 쉬웠고, 눈치 빠르고 호전적인 토마스의 눈을 피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증거로 토마스의 눈이 사납게 휘었다.

“야. 비비안. 설마 그 도둑놈이라는게 네 유물을 가져간 그 도둑놈을 말하는 거냐?”

“아, 아니, 아니? 아닌데?”

그러나 토마스는 배를 붙이라고 하면서 주헌과 유재하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그 둘을 관찰하는 토마스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렇게 허술하지 않은 토마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역시 유물 사용자. 심지어 가진 유물이 여러개다.’

그걸 깨달은 토마스가 확신에 찬 언성을 질렀다.

“비비안! 역시 저 놈들이지! 네 유물을 빼앗겼다는게!”

“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결국 이를 간 토마스가 품 긴 가방에서 무기 하나를 뽑아 들었다. 얼핏 보기엔 파이프로 보이나 그건 엄연히 칼 형태의 전투용 유물이었다.

“딱 걸렸어! 이 도둑놈 새끼들!”

하지만 정작 그를 보는 주헌은 잘 됐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왜?

오로지 그의 시선은 토마스가 뽑아 든 파이프에 향해 있었던 것이다.

전투 유물이 없어서 유물을 구하러 가기 좀 귀찮은 상황. 하지만 저건 딱 봐도 등급이 높아 보이는 전투용 유물.

그랬기에 주헌은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때마침 저기 좋아 보이는 게 보이네?

============================ 작품 후기 ============================

2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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