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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44화 (44/409)

00044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3) >

유재하는 기절할 뻔했다.

주헌은 요놈 보라면서 유재하를 괘씸하게 보고 있었다. 덕분에 유재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자식!’

도대체 어느 사이에!

하지만 유재하가 놀라거나 말거나 주헌은 능청스럽게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회장님이 복원하려고 전화하셨나?”

그는 이미 유재하의 전화상대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유재하가 복원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회장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권 회장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뻔뻔한 주헌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권회장은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목소리는 분명.’

무엇보다 그 낮은 목소리가 낯익다는 걸 알았을 때, 권 회장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자식이 왜 거기에 있는 거지.’

하지만 권 회장이 말문이 막히거나 말거나, 주헌은 악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껏 전화까지 주셨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유재하는 이미 내 전속 복원가가 되셨는데.”

[?!]

놀란건 둘 다였지만, 입에 거품을 문 것은 바로 옆에 있던 유재하였다.

“누가 니 전속 복원가가 됐…으읍!”

주헌은 그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못을 박았다.

“유재하의 말을 전해주지. 그 쪽 복원가는 알아서 찾으랜다, 이 등신아.”

뚝.

그렇게 사정없이 전화가 끊기자 유재하는 울상을 지으면서 주헌의 멱살을 잡으려했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지금부터 할 예정이잖아.”

“뭐라고?! 아이씨!”

유재하는 서둘러 권 회장에게 다시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주헌은 한 술 더 떠서 권 회장의 번호까지 완전히 삭제를 했다.

그러더니 울 것같은 유재하를 보면서 주헌이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붙잡아야 할 줄을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걸.”

“뭐야?”

“말해두지만 권 회장은 썩은 동아줄이다. 네가 잡아야 할 동아줄은 나야.”

그 말에 유재하는 황당했다.

아니 이 놈은 뭘 보고 권 회장이 썩은 동아줄이래?

하지만 주헌은 진심이었다.

앞으로 권 회장을 썩은 동아줄로 만들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카드가 바로 너다. 유재하.’

그리고 이 놈을 위한 굴지의 당근을 준비한 주헌은 큭큭 웃어댔다.

* * *

한편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건 유재하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어이없게 복원가를 가로채인 권 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뚜- 뚜- 뚜.

권 회장은 황당하게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유재하를 데려갔다고?’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권 회장은 뒷골이 다 땡겼다.

‘지금 당장 유물을 복원 해야 하건만!’

무엇보다 에드워드로부터 중국 쪽에 쓸만한 무덤이 나타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권 회장이었다. 그리고 유물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낸 중국이 막대한 상금을 걸고, 발굴단을 모집한다고 공표를 했었다.

‘금액이 금액인 만큼, 에드워드가 주의하라고 한 유물 사용자 5명도 움직일 거다.’

그러니 당장 정복의 유물을 복원해서 무덤 안에 들어가도 모자른 마당에!

그런데 서주헌 이자식이 그걸 방해하려고 들다니!

‘이 빌어먹을 꽁치 가시 같은 놈!’

어쨌든 다른 복원가를 찾기에는 시간도 없고, 이대로 유재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록 방금 전엔 주헌 때문에 방해를 받기는 했지만.

'어차피 아무 빽도 없는 예술가 하나 영입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주헌이 뭘 제시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이 아무리 잘나봐야 대기업 회장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까.

때문에 권 회장은 유재하에게 메시지를 보내라, 비서에게 말했다.

"유재하를 위해 최대한의 예산을 잡아두도록. 지원을 아끼지마."

그는 웃었다. 어자피 세상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법이었다.

* * *

'지가 무슨 대단한 금수저라도 되나.'

그리고 권회장의 예상대로 유재하는 삐죽 거리면서 주헌을 보았다.

‘네 까짓 놈이 뭘 제시해봐야 권회장이 답이다.’

어차피 자신은 이제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이미 카피캣의 누명을 쓰고 매장 당해버렸으니까. 그에게 남은 건 위조그림과, 앞으로 돈이 될지 어떨지 모를 복원일 뿐.

그리고 권 회장 밑이라면 그림을 그리지 못해도 어느정도 지위와 큰돈도 만져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일단 그의 말도 들어보고자 한 유재하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네 밑에서는 뭘하면 되는데?”

“일단 위조그림부터 때려치고, 내 밑에서 복원 일부터해라.”

하지만 그 말에 울컥한 유재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게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게 듣자 듣자하니까 개소리하고 있네. 복원 일이 싫은 건 아닌데, 누구 맘대로 그림까지 그리지 말라는 거냐?”

“그딴 위조 그림도 그림인가?”

그 말에 순간 발끈한 유재하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야. 말 조심해! 그딴 위조 그림 따위라니? 위조작도 작품은 작품이야. 똑같은 노력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주헌은 가짢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남의 그림이나 베껴서 사기를 치는 주제에 작가 부심은 있나 보군.”

“뭐야?!”

“뭐, 네놈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위조작은 때려치고 네 그림이나 그리지?”

저자식이.

유재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맞받아치던 유재하는 아무말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

그걸 본 주헌은 픽 웃었다.

‘역시나.’

그리고 뭘 생각했는지, 주헌은 손바닥만 한 미니 스케치북 하나를 툭 던졌다.

‘!’

그걸 보고 유재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남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자신의 드로잉 노트였기 때문이다.

“너 누구 멋대로!”

“미안하지만 봤다. 뭐, 어째 화풍이 요즘 제일 잘 팔리는 장 리차드와 똑같긴 한 것 같긴 하지만.”

“..........내놔!”

결국 거칠게 스케치북을 빼앗아간 유재하는 스케치북을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더니 주헌에게 욕을 읊조렸다.

“너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꺼져!”

하지만 주헌은 무성의하게 지껄였다.

“너, 혹시 장 리차드의 대리작가라도 하고 싶은 거냐? 정말 부질 없군.”

이에 발끈한 유재하는 이를 갈았다.

“대리작가? 누가 누구의 그림을 훔쳐갔는데!”

그 말에 주헌은 걸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유재하.

옛날 권 회장에 밑에 있을 땐 깊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주헌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이놈이 믿던 교수에게 발등을 찍힌 것도, 미술계에서 매장 당한 것도, 그리고 이놈이 얼마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지도.

‘하지만 망가지면서 신념까지 버린 일개 사기꾼으로 전락 했었지.’

그랬기에 이놈이 진짜 바라는게 뭔지 주헌은 안다.

그 때문일까. 일부러 도발했던 주헌은 느긋하게 물었다.

“훔쳐가다니?”

동시에 유재하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주헌은 사악하게 웃었다.

“설마 장 리처드가 네 그림을 훔쳐갔다고?”

“…….”

유재하는 피가 나올 만큼 입술을 콱 깨물었다.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일을 공론화 시키면 부모님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리어 명예훼손죄로 미술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고 퇴출당했다.

하지만 주헌은 픽 비웃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림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베껴갈 수 있는 거였군. 그럼 네 그림도 별 거 아니었나 보네.”

주헌의 고의적인 도발에 유재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무리 온순하고 이성적인 사람에게도 역린이라는 부위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주헌은 이놈의 역린을 잘 알고 있는 것 뿐.

아니나 다를까.

“야!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지마! 이 문외한아! 그림은 테크닉 뿐만 아니라 작가만의 가치관이랑 원리가 담긴 거라고!”

“오, 그래?”

유재하는 씩씩 거리면서 예전 일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엔 베낀 그림으로 얼마 못 갈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왜인지 그 자식은 내가 생각만 했던 것까지 그려내고 있었지. 마치 내 속을 읽은 것처럼……”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유재하는 실소를 흘렸다.

“시팔, 그래도 그게 가능 할 리가 없지.”

“아니, 가능해.”

“뭐?”

웃고 있는 주헌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 뿐인가. 주헌은 마치 그가 분노를 표출하길 기다렸다는 듯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네 그림을 훔쳐간 교수, 장 리처드는 유물 사용자다.”

그 말에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뭐, 뭐라고?”

“원하는 상대로 완벽하게 변할 수 있는 거다. 원하는 인물의 지식과 능력을 완벽하게 카피하지.”

“?!”

장 리처드. 사실 주헌도 모를 리가 없는 인물이었다.

왜?

<비독의 거울가면>이라고, 루팡의 모티브가 된 프랑스의 실존인물, 비독의 유물을 가진 놈이었다.

주헌의 도굴단 덕분에 유물전쟁에서 승리한건 권회장이었지만, 권 회장을 비롯한 골치아픈 유물사용자들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장 리처드.

<변신꾼>이라 불리는 놈이다. 특색있는 유물을 쓰며 왕의 후보들을 꾼이라 불렀다.

‘어쨌든 유물로 유재하를 완전히 카피했겠지. 유재하는 능력은 있는데 이름 없는 신인이니까.’

논문이든, 예술이든, 진실이 어떻든 대부분은 유명한 놈이 이기고, 힘 없는 놈은 매장 당하는게 업계의 관행이었으니까.

곧 주헌이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 "

그말에 유재하는 움찔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주헌은 웃었다. 이정도 했으니 아무리 이놈이라도 슬슬 끓어올랐을 터.

그랬기에 주헌이 목이 말라있는 예술가에게 희망을 보여주었다.

"장 리처드한테 빼앗긴 네 그림을 되찾아 주지.”

툭떨어지는 말에 유재하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지만, 유재하는 그 말에 알겠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순진한 아이도 아니었다.

“그게 가능할 거 같아?”

유재하는 믿지 않는 다는 듯 실소를 흘렸지만 주헌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눈빛을. 그리고 부정하려고 해도 마음이 쏠리고 있는 표정을.

‘역시 이거군.’

그렇다. 주헌은 유재하의 충성을 바랐다. 저놈의 사기 능력은 자신을 위해서 쓰여야 했다. 하지만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간도 쓸개도 없는 사기꾼은 필요 없었다. 이미 배신의 쓴 맛을 본 적이 있는 주헌이었기에 더더욱.

‘힘에 의한 굴복은 반드시 악재와 배신을 부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

귀찮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반하게 해서라도 끌고 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물사용자를 부품으로 생각하는 권회장이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랬기에 주헌은 단호한 눈빛으로 유재하에게 못을 박아넣었다.

“날 따르면 넌 네 그림을 돌려받을 수 있어.”

유재하란 사기꾼은 돈에 매몰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천상 예술가였다.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위조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유재하를 설득할 수 있는 수.

아니나 다를까, 유재하는 주헌의 미끼에 슬쩍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짜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네가?”

“그래.”

“애초에 너. 내가 화풍을 빼앗겼다는 걸 믿는 거냐?”

“믿는다.”

그러자 유재하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진실을 이야기 해봐야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고, 범죄자로 취급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녀석은 왜.

'믿는 척 하는 건가?'

하지만 주헌의 눈빛은 단호했고, 정말로 유재하를 믿는 눈빛이었다. 그랬기에 유재하가 말했다.

“네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일반인이야. 사실 네가 그렇게 탐낼 정도의 인재도 아니라고.”

“그건 걱정 마. 지금의 네가 아니라 미래의 널 사려는 거니까.”

“!”

그리고 그가 말했다.

“장 리처드는 사회 지도층과 연줄이 깊어서 그놈들의 눈치를 보는 권 회장은 무리지. 하지만 나는 가능해.”

'어차피 장 리처드는 처리해둬야 한다.'

사실 이득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헌은 겸사겸사 이번생에선 이놈이 꿈을 이루길 바랐다.

말썽만 피우던 못난 놈이었지만 일단 자신의 부하놈이었기에. 그리고 주헌은 이놈의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믿었다.

동시에 생각도 못했던 부분을 제시하자 유재하는 멍해졌다.

'이 자식은 도대체...!'

그는 주헌의 정체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럴 때, 유재하에게 한통의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날아온 것은 권 회장이었다.

[연락이 안돼서 이리 메시지를 남겨놓네. 자네를 위한 지원금을 두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답장 기다리겠네.]

그리고 그걸 본 유재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메시지를 보았다. 그리고 주헌을 보았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수정

흑흑 어제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예약을 걸어두고 취소안한 시놉시스가 부끄럽게도 올라가버렸네요ㅜ.ㅜ

선추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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