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43화 (43/409)

00043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2) >

문이 발차기에 의해 사정없이 부서졌다.

“끄아아악!”

그리고 유재하는 침입자를 보고 식겁했다.

들어온 건 훤칠한 키의 남자였다. 생긴 건 사내답게 잘생겼지만, 착하게 생겼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한 손엔 나이프, 그리고 웃는 표정만 보면 영락없는 연쇄 살인마!

주헌은 반가움과 괘씸함에 실소부터 흘렸다.

‘잡았다, 요놈.’

기억보다 어리긴 하지만, 저건 틀림없는 유재하였다. 주헌은 유재하가 참 반갑긴 반가웠다. 마치 밉지만 애착가는 제자놈, 친구놈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유재하는 죽이 잘 맞던 친구이자 유능한 부하였지만, 자기가 불리하다 싶으면 박쥐처럼 도망가는 간신배놈이라 어지간히도 주헌의 속을 썩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하는 반드시 영입해야 할 참모진 중 하나. 복원가는 독식자의 필수 참모군이자, 유재하는 유일무이한 능력의 복원가였으니까.

하지만 반기는 주헌과는 반대로 유재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저, 저기.”

그리고 그런 사슴을 노리는 재규어처럼 음흉하게 웃었다.

“내 물건들은 어디에 있냐?”

“네?”

“어디에 있냐고.”

주헌이 칼을 치켜 세우자 유재하가 기겁해서 바로 금고 쪽을 가리켰다.

“거, 거기에!”

아무래도 칼날이 무서웠던 탓이리라. 주헌은 유재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주헌의 바로 근처에 쇠금고 하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걸 가지고 차로 도망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암호는?”

그 말에 유재하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7407.”

그러자 주헌은 두 말 하지 않고 금고쪽으로 향했다. 그걸 보면서 유재하는 비웃음을 흘렸다.

‘등신 새끼, 그 암호가 맞을 거 같냐?’

그렇게 기회를 엿보던 유재하가 슬쩍 출구 쪽으로 기어가려 할 때였다.

삐리릭!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재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고! 암호를 풀었다고?’

이게 무슨!

반면 태연하게 금고를 연 주헌은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7407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네 암호는 옛날부터 1028고정이잖아.’

분명 어린 시절에 반한 AV배우의 생일이라고 했었나.

‘멍청한 자식.’

그리고 15년 전, 이때도 이 번호를 쓰고 있었겠지. 애당초 유재하의 말을 믿을 생각도 없던 주헌이었다.

동시에 주헌이 금고를 열자 안에서는 주헌의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이번엔 진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이거나 말거나, 이 상황에서 미치겠는 건 바로 다름 아닌 유재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하이씨, 야! 니가 내 암호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기가 막혀서 열이 뻗친 모습이 아주 볼만 했다.

반면 주헌은 웃었다.

“어떻게 알긴. 술에 취할 때마다 다 불었다 자식아.”

덕분에 유재하는 황당해했다.

“뭐, 뭐? 너 나 알아? 아이씨, 나 또 실수했나?”

“글쎄.”

주헌이 칼을 세우며 유재하에게 다가가자, 유재하가 뒷걸음을 쳤다.

“흐악, 오지마!”

그러면서 유재하는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발차기로 날린 주헌이 웃으며 뭔가에게 한마디 읊조렸다.

“뭘 꾸물거리고 있냐.”

그러자 귀신 같이 반응한 동아줄 유물이 금고에서 튀어 나왔다. 동아줄은 매섭게 허공을 날아 유재하를 꽁꽁 묶고 말았다.

덕분에 허공에 매달린 유재하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뭐야, 이거! 아이씨!”

여자가 아니라 실망한 건지, 아니면 훈남이라서 더 좋은 건지, 성별을 알 수 없는 동아줄 유물은 정말 사정없이 유재하를 졸라댔다.

나랑 놀자, 인간! 나랑 놀자, 인간!

하지만 유재하는 숨이 막혀서 죽으려고 했다.

“야, 너 이거 안 풀어? 야! 커헉!”

그러자 시끄럽다는 듯이 동아줄 유물이 유재하의 입까지 틀어막아버렸다.

“으으읍! 개생키 이거으으라그! (개새끼, 이거 놓으라고!)”

하지만 굴비가 된 유재하를 보던 주헌은 잠시 고민했다. 일단 이놈을 일노예로 부리긴 하더라도, 그걸로는 좀 부족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왜?

유재하는 박쥐 같은 타입이 아닌가. 다른 독식자가 돈을 더 준다고 하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갈 놈이었고, 본인이 좀 위험해진다 싶으면 유다처럼 주헌을 팔아넘길 수도 있는 놈이었다.

옛날에야 유재하도 권 회장에게 약점이 잡혀 있었으니, 권 회장의 오른팔인 자신이 강압적으로 대하면 그나마 말을 들어먹긴 했지만 말이다.

‘뭐, 사실 지금도 함무라비 법전을 쓰면 그만이긴 하지만.’

하지만 주헌은 과거 유물을 두고 싸우면서 늘 깨닫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돈, 힘, 약점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고, 인재를 완벽히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뿐인가? 유재하는 특히나 신급 유물 지배자였다. 아직은 신급 유물을 얻지 못한 것 같지만, 놈이 좋은 유물을 얻으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다.

‘그러니 힘으로만 굴복 시키는 건 안 된다.’

한번 쓰고 버릴 놈도 아니었고, 유물이라는 귀중한 걸 맡겨야 하는 만큼 신뢰구축은 필수 적이었다.

그렇다고 이놈한테 의리를 가르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서 그런지, 유재하는 사람 자체를 믿지 않는 비뚤어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놈에게 어떻게 자신을 따르게 해?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부드럽게 달래주고 보듬어주기라도 해야 하나?'

그렇게 주헌이 답지 않게 조금 진지하게 고민할 때였다.

“이 시팔, 이거 놓으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속는 놈이 잘못이지! 너 이새끼, 고자나 되어버려라! 이 병신 사이코패스 새끼야!"

속사포처럼 흘러나오는 그의 쌍욕에 주헌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려고 하면 안 돼.’

“말썽쟁이 부하놈, 기껏 이번엔 예뻐해주려고 했더니.”

“하하, 뭔 개소...!”

동시에 옛 귀신 단장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동아줄이 기특하게도 만년필을 주헌에게 옮겨주었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만년필이다.

[셰익스피어의 펜 (A급 - 보물급 / 소모성 유물)]

하지만 그게 무슨 유물인지는 모르는 유재하는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허. 펜으로 눈깔이라도 찌르려고 그러냐?”

그의 우롱에도 불구하고 주헌은 캔버스에 능숙한 필기체 영어문장을 써내려갔다. 마치 희곡의 한 장면을 써내려내듯이.

그리고.

[매달려 있는 불쌍한 유재하(26세)는 죽기 직전의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쿠웅!

“?!”

동시에 유재하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말로는 이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다리 사이에 닥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돼지 멱따는 소리가 갤러리에 울려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끄아아악!”

정수리를 관통하고, 전신이 마비 되는 듯한 그 감각에 유재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씨…시팔! 아씨, 아오 아……!”

꺽꺽 거리는게 아파도 정말 아파보였다. 셰익스피어의 펜의 기능이 유재하에게 작동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순식간에 유재하는 셰익스피어의 펜에 의해 괴로워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느긋한 주헌이 말했다.

“자, 어디 다른 걸로 한 번 더?”

이 악마 새끼!

확실한 건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주헌이 또 무슨 유물을 쓸 지도 몰랐으니까!

‘에이씨 아파서 도망은 못치겠고!’

결국 아픈 걸 싫어하는 유재하는 그가 살기 위해 빌었다.

“아이씨! 복원비는 안 받을게요. 속여서 죄송합니다! 시, 시키는 대로 할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아무래도 목숨을 구걸하는 정도의 아픔이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다리 사이를 움켜쥔 유재하가 먼저 항복했다.

“제바아알!”

곧 주헌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복원비 안 받는 건 당연한거고. 계약서 들고와.”

“네, 네?”

“전속계약서.”

물론 전속계약서라고 쓰고, 노예계약서라고 읽을 계약서지만.

* * *

아직도 여파가 남은 건지, 다리 사이를 움켜쥐고 있는 유재하는 몸을 떨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도장 찍힌 계약서 때문이었다.

아니 물론 계약하는 건 좋았다.

돈을 버는 건 좋으니까. 하물며 전속 계약이란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자길 해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또 아프게만 안하면 계약이고 뭐고 다 좋은데.

“이건 또 무슨 노예 계약이냐고!”

유재하의 절규 섞인 외침에 주헌은 태연하게 웃었다.

“왜? 그게 어때서?”

유재하는 울화를 삼키며 계약서를 보았다.

8장이나 되는 계약서였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1. 모든 복원비는 공짜. (단 출장비는 지급)

2.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올 것 (단 교통비는 지급)

3. 계약기간은 10년. (계약이 끝나면 자동연장) (단 퇴직금은 지급)

4. 복원의뢰는 갑(서주헌)의 의뢰만 맡을 것.

5. 갑이 시키는 대로 하며, 계약과 관련된 모든 갑의 행동에 토를 달지 말 것.

8. 갑과 을은 계약 내용에 서로 성실히 응할 것이며, 계약을 어길시 함무라비 법전에 의해 응징을 당할 것.

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시키는 대로 하라니, 이게 무슨 현대판 노예 계약도 아니고!

결국 참다못해 유재하가 외쳤다.

“야! 이게 정상적인 계약이라 생각해?”

그러자 주헌이 헛웃음을 흘렸다.

“왜? 도장 찍은 건 너잖아. 다 읽은거 아니었어?”

그 말에 유재하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파 죽겠는데 서류를 내밀어본들 제대로 읽을 수나 있었겠는가! 아들이 무사하고 싶으면 도장을 찍으라니 찍었지!

그런데 내용이!

‘안 되겠어, 이 자식 신고부터 해야………’

그러자 주헌은 유재하가 무슨 짓을 할 지 아는 듯 웃었다.

“신고하는 건 자유인데, 네가 불리한 건 알지?”

그 말에 유재하는 크윽 이를 갈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계약을 어길시, 계약대로 처벌당한다는 사항이었다.

덕분에 유재하는 머리를 휘저어야 했다.

'빌어먹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라진 놈이 왜 이놈한테 있는 거야!'

그렇게 유재하가 이를 갈 때, 주헌이 말했다.

“너한테 나쁜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니까 잘 생각해봐.”

확실히 주헌의 말처럼 유재하도 혹할 만한 내용은 있었다.

6. 계약에 성실히 응하면 갑은 을에게 기본 연봉 5천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한다. (복원 건수마다 상여금 추가 지급)

7. 계약기간동안 갑은 을의 모든 의식주 편의와 안전, 질병의 위험 등을 책임진다.

하지만 유재하는 아이씨, 머리를 쥐어뜯었다. 혹하긴 하지만, 이런 정체도 모르는 놈을 덥석 잡아 물 정도로 유재하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젠장, 이딴 어린 놈을 뭘 믿고! 권 회장이 천만배는 낫지!’

이상한 양아치랑 세계 글로벌 회장하고 쨉이 되겠는가! 권 회장 쪽이 훨씬 든든하고 붙어먹기 좋은 건 당연했다. 인맥도 넓힐 수 있고, 출세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지원도 받을 수 있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한 놈한테 코가 꿰여서는!

‘하이씨, 권 회장이랑 밀당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몸 값 좀 높게 받으려고 상당히 튕긴 상태였고 말이다. 하지만 고민하던 그는 눈을 반짝였다.

‘그래. 권태준 회장이라면 이 놈을 처리해줄 수 있을지 몰라!’

그리고 이 때였다.

뚜르르.

유재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수신인을 확인한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눈빛이 바뀐 그는 주헌에게 말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와도 되냐?”

“그러시던가.”

순순히 그를 보내준 주헌이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쳤다.

‘저 놈의 마음을 사로 잡을 방법이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게 먹힐까?

하지만 방법을 떠올린 주헌은 뭘 복잡하게 고민 하냐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은 해봐야 알겠지.

한 편, 주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유재하는 슬쩍 밖으로 나가 몰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건 다름 아닌 권회장 이었던 것이다. 계속 유재하가 튕겨냈기 때문에 권 회장이 나름 설득을 위해 재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전화가 연결되자 마자 유재하가 다짜고짜 외쳤다.

“회장님! 복원 해줄게! 그냥 다 해드린다고!”

그러나 막상 전화를 받은 권 회장은 황당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만해도 거만하게 튕기던 그 놈과 동일인물인가 싶었던 탓이다. 하지만 유재하는 절박했다. 주헌에게만 벗어나면 일단 다 해결 될 것 같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지?]

유재하는 주헌이 들을새라 도망가면서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해줄게, 다 해줄테니까 회장님, 나 좀 살려줘요! 유물은 원하는 대로 다 복원해줄게!”

[살려달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웬 미친놈이 나타나서!”

[그게 누군데 그러는……]

그런데 바로 이 때였다.

“누구긴 누구야. 나지.”

유재하는 기겁했다.

전화를 빼앗은 채,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주헌이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도..독자분들을 너무 얕봤다...OTL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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