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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42화 (42/409)

00042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2) >

유재하가 죽었을 리 없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주헌이었다. 차 사고가 나서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고 하지만 과연 글쎄?

‘비행기에서 떨어져도 살아남는 놈인데 고작 차라니.’

스케일이 작아도 너무 작다!

그랬다. 주헌은 유재하가 또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놈이 죽은 척 하는 건 주헌에게 있어 너무나도 뻔한 속임수였고 말이다. 즉 유재하는 엄청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나마나 이 갤러리에 숨어 있겠지.

유재하와 만난 건 권 회장 밑에 들어갔을 때인터라, 정상적이라면 5년 뒤에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갤러리도 처음 와보는 곳이긴 하지만 주헌의 감은 정확했다.

‘유물의 냄새가 위에서 풀풀 느껴진다.’

보나마나 위조작품을 팔아댕기고 다녔으니, 위조나 카피와 연관된 유물이겠지만 말이다. 동시에 유재하가 숨어 있다는 걸 깨달은 주헌은 놈을 낚아내기로 했다.

근사한 미끼를 달아서 말이다.

미끼는 간단했다.

‘유재하는 유물에 엄청 욕심이 많은 놈이다.’

무덤에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유물에는 욕심이 아주 많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입과 능력으로 온갖 사기를 치며 유물을 훔치고, 빼돌리고, 얻어가고, 도망갔다.

어떻게 보면 대놓고 훔치는 주헌과는 좀 다른 의미의 도둑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동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오히려 동류라서 더 놈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주헌은 유물이라는 훌륭한 미끼를 달아 낚시대를 준비해온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윤민희가 먼저 물었다.

‘윤민희도 한 욕심하지.’

애초에 유물과 가까운 사람 중에서 물욕이 없는 놈이 누가 있겠느냐만은.

아니나 다를까.

“저, 일단 유물의 상태를 확인해봐도 될까요?”

화장실에 다녀온 윤민희가 생긋 웃으며 유물이 담긴 가방을 들었다.

“기계로 정밀 조사를 해봐야 하니, 잠깐 복원실에 다녀올게요. 그 사이에 여기 견적서랑 계약서좀 확인해주시겠어요?”

“그러시죠.”

주헌이 흔쾌히 보내주자 윤민희가 주헌을 관찰하듯 보았다.

‘아무래도 별 다른 의심을 안하는 것 같군.’

의심이 많은 사람이면 복원실에 따라가겠다는 둥, 여기에서 조사를 해보라는 둥, 요청 사항이 많았을 텐데 말이다.

그랬기에 윤민희는 가볍게 웃었다.

‘이정도면 빼돌릴 만 하겠어.’

까다롭지 않은 손님은 윤민희 일행에게 있어 소위 말하는 호구 손님 당첨인 셈이었다. 그렇게 윤민희는 주헌의 유물을 들고 유재하가 말한 1층 복원실로 갔다.

그 사이에 주헌과 오승우는 윤민희가 놓고 간 계약서와 견적서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견적서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건 다름 아닌 오승우였다.

견적서에서는 예시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고, 설명도 자세하게 되어 있어 고객이 어느정도 견적가를 계산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건 참 좋았지만, 문제는 가격이…….

실제로 오승우는 견적서를 쥔 손을 파르르 떨어댔다.

“혀, 형님. 보, 복원 가격이 원래 이렇게 비싼 거였습니까?”

오승우는 자신이 숫자 0을 잘못 샜나 싶었다. 하지만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상처 하나당 천만원씩이라니요. 심지어 훼손 된 크기에 따라 5천만원씩 추가라니… 이 견적대로라면 천 억이 넘겠습니다!”

유물 복원이 원래 비싸다는 걸 감안해도 이건 이건 사기였다.

말도 안되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헌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

왜?

‘이런 견적서 따위, 어차피 의미 없다.’

그렇게 주헌은 웃었다.

그럴 때 복원실에 들어온 윤민희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 그리고 바로 누군가를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대표님, 대표님! 가져왔어요!”

동시에 구석에서 덜컹, 의자가 움직였다.

그건 바로 3층에서 내려와 1층 복원실에 몰래 숨어 있던 유재하였다. 생쥐처럼 숨어 있던 그는 해맑은 표정으로 윤민희가 가져온 가방을 보았다.

“그거야?”

“네, 이것 보세요! 그리고 빨리!”

윤민희는 바깥에 있는 주헌에게 들킬새라, 서둘러 들고온 검은 스포츠 가방을 유재하에게 넘겼다. 그리고 재빨리 가방을 뜯어본 유재하는 입을 떡 벌렸다.

확실히 10개가 넘는 유물들이 눈 앞에 있었다. 대부분이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긴 했지만 어느 것 하나 가짜는 없고, 모두 진짜 뿐이었다.

그리고 유물의 등급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유재하였지만, 유물을 만져보는 그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놈들이다.’

금도끼 은도끼, 동아줄, 아누비스의 앙크, 오시리스의 모래시계, 세트의 말뚝, 셰익스피어의 펜 등등, 유재하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했다.

겉보기엔 그냥 현대의 물건으로 보이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다르다.

그랬기에 유재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탐이 났다.

너무나도 탐이 났다.

빨리 이것들을 사용하고 싶었다.

“10분만 망 보고 있어.”

“네, 네.”

곧 윤민희가 복원실 밖으로 나가자 유재하는 고철, 목재, 플라스틱, 석고 등 다양한 자재들을 들고 왔다.

그러더니 하얀 싸인지를 입에 물고 유물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처음 만진 건 금도끼인 금색 나이프였다. 그리고 눈이 빠져라 금도끼를 관찰하며 유물을 이곳저곳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웅.

유물을 만졌던 유재하가 평범한 철판을 만지자 그것이 금도끼 나이프로 점점 변하는 것이었다.

정말 흠을 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위조품이었다.

오라도 적당히 느껴졌고, 능력도 똑같다. 심지어 유물이 파괴된 부분까지 모두 똑같았다. 유재하의 천재적인 눈썰미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래봐야 위조품이라 위력이 떨어지고, 반나절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유재하는 상관없었다.

‘위조품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 쯤엔 이미 난 도망쳤을 거거든. 등신아.’

너무 원망하지 말라며 유재하는 낄낄 웃었다.

‘어차피 예술도 사기고, 인생 역시 사기다.’

유재하는 주목 받는 신인 예술가였지만, 그는 정직하게 본인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관뒀다.

왜?

결국 정직하게 살아봤자 손해를 본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해야 할까. 유재하가 몇 년을 개발하고 개발해 겨우 얻어낸 화풍을 훔쳐간 교수놈이 그 대표적이었다.

‘그림이 별로라고 빠꾸시키더니 그걸 훔쳐가?’

그 뿐인가?

스승이 훔쳐간 유재하의 화풍과 개념은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평가 받으며, 교수를 피카소 급의 유명한 화가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 뒤 유재하가 아무리 그림을 그려서 발표해도 아류, 혹은 카피캣이라는 소리 밖에 듣지 못했다.

오히려 진실에 관심없는 세상은 원작자를 매장 시켰고, 결과적으론 유명한 놈이 승승장구했다.

그러니 유재하도 똑같이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다른 놈의 그림을 훔쳐서 팔아댄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뭐가 문제인가!

‘하하, 속는 놈이 병신이지!’

그렇게 비뚤어진 유재하는 수많은 사기를 쳐왔고, 그런 유재하에게 반응하여 다가온 것이 위조 유물. 유물은 유재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주헌을 등쳐먹을 생각에 입꼬리가 흐흐흐 음흉하게 씰룩거렸다.

‘유물이 10개니까…… 3분의 1만 권회장한테 팔아도 몇 년은 여자를 끼고 놀아도 남아 돌겠다.’

이 때 모든 유물의 카피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도망가는 일 뿐.

유재하는 낄낄낄 웃었다.

* * *

“죄송합니다. 이를 어쩌죠?”

유재하에게서 가짜 물건을 받아 가방에 담아온 윤민희는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유물의 손상도가 너무 심해서 제 유물로는 복원할 수가 없었네요.”

그리고 그렇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오승우가 안타깝게 탄식했다.

“결국 못 고쳤네요. 유재하란 사람은 죽었다고 하고, 어떻게 하죠 형님?”

그러나 주헌은 가볍게 유물들을 확인했다. 그가 들어올린 건 아누비스의 앙크 십자가였다. 그리고 주헌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건지, 윤민희는 한술 더 떠 쓴 웃음을 지었다.

“죄송해요. 저희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파괴되기 직전의 유물들이라서요….”

물론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주헌이 가져온 건 전부 골골 거리다 못해 한 대 툭 치면 바로 골로 가실 병자들이었다.

‘하지만 재하선배라면 부활 수준으로 복원할 수 있지.’

그 걸로 한 몫 챙기는 거야!

어차피 주헌이 가짜라는 걸 알아차릴 리도 없고 말이다. 혹시나 싶어 윤민희가 가짜와 진짜를 대조해보았지만, 감정사 자격까지 있는 윤민희의 눈으로도 도저히 구분을 못할 지경이었다.

인정하긴 싫어도 유재하는 확실히 능력이 있긴 능력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대충 손 털고 뜰 준비부터 해야 겠다.’

그리고 그렇게 윤민희의 비웃음과 주헌의 시선이 교차한 순간.

콰직!

주헌이 사정없이 아누비스의 앙크 십자가를 집어 던지고야 말았다.

“어, 어어?!”

그 뿐인가.

주헌은 아예 발로 차, 책상을 뒤 엎어버렸다.

콰앙!

덕분에 갤러리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뭐, 뭐하시는 거죠!”

“혀, 형님!”

그리고 주헌이 생긋 웃었다.

“뭐하는 거냐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네, 네?”

“이게 어디서 개 수작이냐?”

살벌하게 떨어지는 음성에 윤민희는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서, 설마?

들켰나?

하지만 윤민희는 덜덜 떨면서 말을 돌렸다.

“그, 저기 그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

“슬쩍 똑같은 놈으로 바꾸면 모를 줄 알았냐?”

그 말에 윤민희는 몸을 떨었다.

아, 알아 차렸어?

동시에 주헌은 품 속에서 나이프를 펼쳐 들었다. 그걸 본 윤민희는 기겁을 했다.

“잠……오지마…꺄아악!”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주헌의 발차기가 그녀의 핸드폰을 처참하게 날려버렸다.

“이, 이 미친!”

결국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문 쪽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쿵!

주헌이 발로 문을 거칠게 닫아 버렸다.

“새끼들이 나쁜 것만 배워서.”

그의 눈빛이 정말로 무서워서 윤민희는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눈빛을 보니 사람 몇은 죽였을지도 모를 인물!

그 사이에 오승우는 윤민희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았다.

결국 오도가도 못하게 된 그녀가 외쳤다.

“죄, 죄송해요! 진짜는 옆방에 있어요! 제발 목숨만은!”

이번엔 사실을 말했다. 사기를 쳤다간, 주헌에게 정말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래?”

곧 이야기를 들은 주헌은 유재하가 숨어 있는 복원실로 향했다.

‘딱 걸렸어, 유재하.’

별거 아닌 떡밥으로 아주 월척이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옆방 복원실에서 엿듣고 있던 유재하는 기절할 뻔했다. 도망칠 준비를 마치고 살짝 궁금해서 얇은 벽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건만.

“아씨 저 미친놈!”

결국 뜻밖의 난동에 놀라 우당탕 의자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걸리면 죽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재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씨, 이상하다. 어떻게 눈치챘지?”

물론 유재하의 가짜는 완벽했다. 그는 그럴 만한 유물 사용자였으니까.

다만 속일 상대가 잘못 되었을 뿐.

“에이씨!”

동시에 유재하가 박차고 일어섰다.

이럴 땐 도망치는게 상책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복원 실력을 가졌어도, 그래봐야 자신은 싸움 방법도 잘 모르는 가련한 청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때, 끔찍하게도 문이 부서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ㅎㅎㅎㅎㅎㅎㅎㅎ

+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박 3일 워크숍이 있는 관계로, 글 연재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ㅠ.ㅠ 최대한 워크숍 가서 써서 올려보긴 하겠지만 흑흑. 실패한다면....흑흑.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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