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이자식이 뭐래? =========================================================================
< 이자식이 뭐래? (1)>
아누비스는 지금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미친 인간 때문이다.
“자, 어서 42개의 질문을 다시 내보실까. 검은 깽깽이.”
그렇다.
주헌은 무라마사를 앞세워 아누비스를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네 놈을 가져야겠으니 다시 과제를 내!' 그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물론 아누비스도 이딴 인간에게 굴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당초 무덤의 과제는 한 인간에게 두 번이나 내는 법이 없었다. 이미 실패한 인간을 또 시험할 정도의 아량이 유물에게 있을 리가 있겠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놈은 이미 지나간 버스를 다시 끌고오려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버스가 마음에 안들지 차량을 개조하겠다는 말까지 지껄였다.
그러니 기가 막히지 않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 괘씸한 인간놈이! 감히 어디서!]
“감히 어디서?”
[그렇다. 과제를 다시 내라니, 과제는 같은 인간에게 다시 내는 법이 없다는 걸 모르는 거냐?]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아누비스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면서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무라마사로 아누비스의 팔찌를 긁기 시작한 것이다.
‘유물들의 약점은 고통이다.’
유물들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걸 즐기는 새디스트들 주제에, 정작 본인들의 고통은 정말 참지 못한다. 이게 바로 주헌이 알고 있는 유물의 약점 중 하나. 남들은 유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데다가, 유물을 애지중지하니 알 리가 만무한 약점.
그랬기에 주헌은 사정 봐주지 않고 유물들을 갈아댔다.
까드득, 까드득.
마치 공예가가 금속을 깎아 내듯이, 아니 생선이라도 썰어 내듯이 주헌은 손을 움직였다. 그래봐야 아누비스의 팔찌가 목재도 아니고 잘라질 리가 만무했지만, 유물의 입장에서는 아프긴 더럽게 아플 것이었다. 자신의 몸이 톱으로 썰리고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만큼.
그리고 예상대로 쇳가루, 아니 순도 99%의 금가루가 되어 흩어지던 아누비스는 끄아악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동시에 주헌에게 당해 주변에 떨어져 있던 오시리스와 세트가 기겁을 하고 외쳤다.
[인간! 제발 그만 둬라!]
그들은 마치 남자의 말 못할 고통을 함께 느끼는 동지들 마냥 울부짖었다.
[빌어먹을, 인간! 그만 두라고, 이 미친 놈아! 그 놈이 불쌍하지도 않냐!]
불쌍하기는 개뿔이.
“하하. 이 금가루들을 모아 팔면 돈이 꽤 되겠구만.”
곧 주헌은 일부러 더 잔인하게 아누비스의 몸통을 슬근 슬근 톱질을 했다. 평소라면 안할 짓이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떼워야 하는 법. 신급 유물을 강제지배할 수는 없고, 유물을 얻으려면 과제를 실행해야 한다.
'다시 과제를 내기 전까진 안 그만 둔다.'
결국 칠판을 긁어대듯이 철의 선율이 울리자 세트는 정말 듣기 힘들어 했다.
[으악! 그마안! 천벌 받아 죽고 싶냐, 이 인간놈아! 아이고, 저 자식 진짜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저렇게 몸체가 깎여나가다니! 이쯤 되면 차라리 인간에게 굴복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물론 오시리스 쪽은 현실을 외면하는 건지, 아니면 듣다 못해 기절했는지 침묵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둘과는 다르게 아누비스는 제법 뚝심이 있었다.
[크윽! 이정도로 인간 따위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아니, 주헌이 정말로 자신을 파괴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래봐야 욕심 많은 인간은 유물을 파괴하지 못한다.’
돈욕심이 많은 사람이 돈을 버리거나 태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아누비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래? 그럼 죽든지.”
끼기기익!
아누비스는 비명을 질러댔다.
이러다가 정말 죽겠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그렇다. 보통의 인간들은 유물에게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욕심 많은 인간들은 좋은 유물일 수록, 애지중지하고 한 번이라도 더 유물의 능력을 쓰기 위해 어루고 달래고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아누비스는 다급하게 휴전 요청을 했다.
[자, 잠깐! 기다려!]
그러자 칼로 톱질을 하려던 주헌의 손이 드디어 멈췄다.
“그래. 과제를 다시 낼 마음이 드셨나?”
만약 저 인간이 든 무기가 이집트 관련 무기였으면 유물을 협박해서라도 이 빌어먹을 하극상을 관두게 했을 것이다.
신급 유물은 같은 문화권의 유물이라면 100%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말도 통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주헌이 든 무라마사는 일본관련 유물. 이집트 신이야 듣보잡 신으로 취급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랬기에 여기서 아누비스가 택할 수 있는 건 하나 였다.
[좋다. 특별히 재시험을 허가하지.]
동시에 번쩍 빛이 나면서 아까 전에 보았던 황금색의 재판장이 다시 나타났다. 심판의 저울도, 42명의 배심원들도 아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아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둘에게 처한 상황 정도였다.
곧 아누비스가 말했다.
[지금부터 심판을 시작하겠다. 지금부터 너에게 42개의 질문이 주어질 것이다. 거기에서 모두 예를 말할 수 있으……커억!]
아누비스는 또 다시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주헌은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
“말이 길다. 시끄럽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이자식이!
[....그, 그럼 첫번째, 질문이다. 너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커억!]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고는 했지만, 네놈이 멋대로 문제를 내라고는 안했다.”
아이씨, 이 인간놈이 방금 진짜 작정하고 쳤어!
하지만 주헌은 입꼬리를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물건. 너는 닥치고 내가 말하는 대로 문제를 낸다. 먼저 첫번째. 너는 도둑질을 했느냐.”
[이자식이!]
아누비스는 굴욕감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과제를 낸 것 만으로도 이미 말이 안되는 것인데, 과제까지 자기 마음대로 바꿔?
곧 참다못한 아누비스가 외쳤다.
[이런 치사한 방법은 용납할 수 없……커억!]
끼기긱!
[크윽!]
“난 여러번 말하는 건 싫어한다. 죽기 싫으면 따라해라. 자, 너는 도둑질을 했느냐.”
[크으…! 너, 너는 도둑질을 했느냐…!]
하지만 주헌은 탐탁지 못한 듯, 무라마사를 번쩍 들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목소리가 작다.”
[젠장, 너는 도둑질을 했느냐!]
그러나 또 다시 주헌은 무라마사를 치켜들면서 외쳤다.
“욕은 빼고, 인간에게 경의를 담아 공손하게!”
[크윽!]
진짜, 이 인간을 죽여버리리라. 하지만 무라마사의 저주에 몸이 너덜너덜 해진 아누비스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었다.
[귀, 귀공은 도둑질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제야 주헌은 만점짜리 답안지를 보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하셨다.”
동시에 주헌의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유물이 몹시 굴욕감을 느끼며 기를 꺾었습니다.]
[기가 꺾여 유물이 반발하지 못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론 졸지에 인간에게 굴복한 아누비스는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유물은 이제 겨우 한 턱을 넘었을 뿐이었다.
왜?
앞으로 아누비스에게는 41개의 질문이 더 남아 있었으니까.
* * *
“말해. 38번째 질문. 서주헌 님은 돈을 빼앗은 적이 있으십니까.”
[서, 서주헌님은 돈을 빼앗은 적이 있으십니까.]
“당연하지. 등신아. 자, 다음 질문. 서주헌 어르신은 맞다가 화가 나서 똑같이 남을 때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서, 서주헌 어르신은 맞다가 화가 나서 똑같이 남을 때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럼 그걸 쳐 맞고 앉아 있냐? 자, 다음 질문.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서주헌님은 지나가던 여자를 쳐다본 적이 있으십니까.”
[세,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서주헌님은 지나가던 여자를 쳐다본 적이 있으십니까.]
“시선이 안가면 그게 남자 새끼냐? 자 마지막. 호칭은 알아서!”
[그, 세상에서 제일 뛰어나고 멋지신 서주헌님은 색을 탐한 적이 있으십니까!]
동시에 주헌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인간이면 당연한거다, 알았으면 다시는 이딴 질문들 하지마!”
그리 말한 주헌이 기어이 아누비스를 뻥 걷어차자, 하늘로 날아 오른 아누비스의 팔찌가 번쩍 빛이 났다. 42개의 질문을 통과하면서 무덤의 과제가 완전히 클리어 된 것이다.
동시에 주헌의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무덤의 과제를 훌륭하게 완료하였습니다!]
[대고분을 만들어냈던 세 유물 중 하나가 완전히 굴복하였습니다!]
[아누비스 유물의 무덤을 완벽하게 클리어 하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지창이 사라지고, 번쩍이는 섬광 속에서 주헌은 아누비스의 유물을 손에 집었다. 나타난 형태는 꼭대기가 타원형인 십자가, 앙크. 이집트의 벽화에서 아누비스가 늘 들고 있는 물건이다.
곧 다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집트 신급 유물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해, 이집트 관련 유물의 지배력이 올라갑니다.]
[아누비스의 유물에 의해 죽음계열 유물에 대한 내성이 올라갑니다.]
[내성 스킬의 레벨이 C급으로 올라갑니다.]
[<대고분 탐험가>의 칭호를 획득해 무덤발굴 스킬이 E랭크로 올라갑니다. 무덤에 대한 이해도, 함정이해도, 미션이해도가 증가합니다.]
[<정직하지 못한 발굴꾼> 칭호를 획득해 유물과의 친화력은 다소 감소하고, 무덤 도둑의 속성이 강화됩니다.]
수많은 메시지들이 지나가고, 주헌이 아누비스의 유물을 쥔 채 외쳤다.
“클로즈(close).”
이에 주변이 빛이 나면서 무덤 관련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계를 뒤덮은 대고분의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대고분을 만든 다른 두 유물들 역시 심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무덤을 유지할 힘이 사라져 곧 대고분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곧 이집트 관련 건축물들이 쿠구궁, 소리를 내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모래로 변해 바람에 날아가거나 지면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식이었다.
그리고 주헌은 그 사이에 누더기가 된 세트하고 오시리스의 유물을 일단 챙겨 넣었다.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갈 수 있으려나.’
까마귀는 무덤이 무너지면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유물들의 대화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주헌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까마귀가 이번 일에 도움이 되었고, 뭔가 특수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자칫 유물에게 휘둘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눈 앞에 있는 놈한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노친네.”
주헌의 앞에 기어 나온 것은 권 회장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한심하게 미라에게 붙들려 있어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권 회장은 분명히 보았다. 주헌이 이 무덤을 클리어하고 신급 유물을 3개나 차지한 것을. 그리고 그것에 욕심이 나지 않을 권 회장도 아니었던 것이다.
'저걸 빼앗아야 한다. '
그러나 탐욕스러운 권 회장의 눈빛은 뜻 밖에도 유물이 아니라, 주헌에게 향해 있었다.
‘유물도 유물이지만, 저 놈은 내 상상을 뛰어 넘는 인재다.’
주헌에게는 남들과 다른 유물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 뿐인가, 낮은 등급의 유물로 상위 유물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유물을 잘 다루는 센스하며 기술, 유물을 빼앗는 손재주. 심지어 자신의 정복의 유물에도 멀쩡할 수 있는 뭔가가 있었다.
‘잡아야 한다. 이 인재는!’
권 회장의 정복의 유물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저놈이 있으면 유물들도 순조롭게 손에 넣을 수 있을 테지.’
윤시우와 이진아 변호사는 비교상대가 되지도 않았다. 이건 주헌의 재능을 살짝 엿본 덕분이기도 했지만, 강력한 직감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가 호기롭게 외쳤다.
“자네, 바라는 건 없나?"
“?”
주헌은 저놈이 무슨 말을 하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권 회장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TKBM의 회장으로서 자네가 바라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지. 연봉, 신분, 뛰어난 부하, 관리, 다 만들어 줄 수 있네. 내가 가지고 있는 귀한 유물도 네게 모두 빌려줄 수 있어. 또 나는 여러 나라의 정부와 거부들과도 손을 잡고 있지. 그걸로 좀 더 자유롭게 무덤에 들어갈 수 있네.”
권 회장은 안다.
지금 이 시기의 유물 사용자들이 어떤 흑심을 품고 있고,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재들을 끌어모으지 않았나.
그랬기에 그는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유물로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뀔거야. 그리고 자네는 혼자서 이런 곳에서 썩히고 있을 재목이 아니네. 좀 더 큰 물에서 놀아야해. 자네를 키워주고 싶어. 그러니 내 밑에 들어오게. 함께 유물을 쓸어 담아서 차세대의 리더가 되는 거야.”
무려 글로벌 IT 테크놀로지 기업의 회장이 찬사를 날리며 일개 양아치에게 직접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한 권 회장은 스스로도 굉장한 제안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말에 주헌이 시니컬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폰팔이가 지랄하네."
권 회장의 표정이 아주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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뭬야???????
+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