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30화 (30/409)

00030 웃는 놈, 열 받은 놈, 미치겠는 놈  =========================================================================

< 웃는 놈, 열 받은 놈, 미치겠는 놈 (1) >

“누구한테 온 겁니까?”

“등록 안 된 거 보면 모르는 번호 아니야?”

하지만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왜?

그건 주헌이 기억하는 번호.

그렇다.

그건 권 회장의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비즈니스용이 아니라 개인용 핸드폰 번호였다. 그의 핸드폰 번호야 수십 년간 바뀌지 않았으니, 기억력이 좋은 주헌이 못 알아볼 리도 없다.

‘하지만 개인용 번호라니, 꽤나 급했나 본데.’

권 회장이 전화를 건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간다. 그랬기에 주헌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연결 버튼을 눌렀다.

“네.”

첫 시작은 차분하게.

그러자 전화 너머로 그가 말했다. 주헌을 총애했으나, 막판에 도마뱀 꼬리 자르듯 먼저 배신한 권 회장이.

[자네가 서주헌인가?]

꽤 진중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듯한 신사의 목소리였다. 척 들어도 너그러운 듯 하나 빈틈은 없는 사업가의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네, 제가 서주헌입니다. 어디서 거신 거죠?”

[TKBM의 권태준이라고 하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보이스피싱도 적당히 하라며 끊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유하자면 난데없이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나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라고 하네.’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해외라면 몰라도, 적어도 TKBM과 권태준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만큼은 그 정도의 위치였다.

하지만 주헌은 끊는 것 대신,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네, 권태준 씨. 무슨 볼 일 이시죠.”

웃고 있지만, 말투는 꽤나 차갑다. 그러자 권 회장은 허허 웃었다.

[자네, 어제 분명 마이더스에서 만났었지.]

“글쎄요? 제 기억력이 별로 좋지 못해서요.”

[그래?]

“그보다 생판 처음 전화 받는 사람한테 듣는 말투치곤 불쾌하군요. 볼 일 없으면 끊습니다.”

곧 주헌이 끊으려고 할 때, 권태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듣자하니 자네가 아이린 홀튼이 낙찰해갔던 나무를 가져갔다면서?]

여유롭지만 나름대로 날이 서 있는 목소리였다. 꽤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왔던 터라 주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것은 어지간히도 불로초를 탐내고 있다는 의미일터.

[괜찮다면 그걸로 좀 이야기를……]

하지만 주헌은 냉정하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바쁘니 끊습니다. TKBM의 권태준 씨.”

뚝.

주헌은 통화를 끊자마자 핸드폰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참으로 가차 없는 태도였다. 그리고 정작 놀라서 비명을 지른 것은 오승우 일행이었다.

“어? 잠깐만!”

“T, TKBM?”

“권태준이면 내가 아는 그 권태준? 그 재벌이 전화한 거예요?”

아무래도 그들에게도 권태준의 이름은 유명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린 홀튼을 본 것으로도 놀랄 노자인데, 이번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기업가랑 전화 통화라니!

“역시 행운의 도시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신이 나 보였다. 평소라면 연결 될 일이 없는 사람과 연결이 되었으니, 믿지도 않았겠지만 그들은 어제 경매장에 있지 않았나.

유명한 거부들이 오기도 하는 곳이었고, 실제로 주헌이 거기서 물건을 낙찰 받아왔기 때문에 아주 현실성이 없는 일도 아니다.

“도대체 왜 전화를 했대요?”

왜긴 왜인가.

보나마나 불로초 때문에 똥줄을 태우다가 전화한 것이 분명했다.

낙찰이야 아이린이 했지만, 그걸 가져간 건 자신이라는 걸 조금만 조사해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권 회장이라면 마이더스 직원과 연결해서 내 번호를 알아내도 이상하지 않지.’

그 뿐인가.

이쪽의 회사 규모에 대해서 간략하게 조사를 해봤을 터. 그리고 이쪽에 대해서 잘 알아봤기에, 그 불로초를 두고 협상을 하자고 어쭙잖게 전화를 해온 것이 분명했다.

동네구멍가게를 상대로 TKBM이 무서워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으니만큼. 그래도 유물 거래랍시고 권 회장이 직접 나선 건, 탐욕스러운 권 회장답긴 했지만.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나.’

하기야 불로초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지만.

하지만 그래봐야 어쩐단 말인가.

불로초는 이미 자신에게 귀속되어있고, 넘길 마음은 추호도 없는 것을.

* * *

“빌어먹을.”

권 회장은 이를 갈며 의자를 내리쳤다. 동시에 윤시우가 가져왔던 위스키 잔이 경매장 바닥에 떨어졌다.

“회, 회장님.”

그리고 그 모습을 비서와 윤시우만이 난처해하며 바라볼 뿐이다.

“이야기가 잘 안 풀리셨습니까?”

윤시우의 말에 권 회장은 이를 갈았다.

비서에게 불로초의 행방을 들은 권 회장과 윤시우였다. 낙찰은 아이린이 했지만, 불로초를 가져간 것은 시앙 갤러리라는 아직 상장도 못한 코딱지만 한 동네 구멍가게였다.

어떻게 그런 놈들이 대부호 아이린 홀튼과 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불로초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불로초를 가지고 협상을 하려 했으나,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저, 회, 회장님?”

“끊겼다.”

“네?”

“끊겼다고.”

권 회장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리자 그의 눈치를 보는 윤시우는 창백하게 질렸다.

원래는 자신이 연결을 해보겠다고 했으나, 권 회장은 특별히 자신이 하겠다고 했었다. 그만큼 그가 직접 욕심을 내고 있는 물건이란 증거였다.

그런데 뭐가 어째?

끊어?

그래봐야 근본도 모를 미술품 브로커 양아치들 주제에 감히 누구의 전화를 끊어?

어쩐지 왜 이렇게 권 회장의 심기가 안 좋은가 했더니!

‘빌어먹을, 서주헌이라는 놈,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왜 하필 자신이 있을 때 권 회장의 심기를 건드는 것이냐고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지만, 윤시우는 애써 웃어야 했다.

“하하. 별 거 아닐 겁니다. 스팸전화라고 알고 끊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윤시우는 자신이 말하고도 아차 싶었다. 권 회장의 표정이 다른 의미로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했던 윤시우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젠장. 어떻게든 그 불로초를 회장님께 드려야 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사실 있었다.

오늘로 마이더스 경매 이틀 째.

사실 권 회장은 아침 일찍부터 경매에 참여했었지만, 마땅히 그의 눈에 차는 물건이 없었던 것이다. 눈에 차는 물건, 즉 그들은 유물을 찾았지만, 유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단 하나도!

물론 권 회장이 주헌처럼 유물을 알아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묘하게 인상이 깊은 물건이 있는 법이었다.

왜, 흔히 길거리를 걷다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물건이 생기는 경우가 한두 번 정도는 있지 않나.

권 회장은 그렇게 물건을 골랐고, 그 경우 높은 확률로 유물일 때가 많았다. 그건 전부 권 회장이 가지고 있는 유물이 가져다 준 감 덕분이었다.

그리고 어제 주헌과 끝까지 붙었던 아몬드 나무의 경우에도 그런 감이 강하게 발동한 경우였고 말이다.

“빌어먹을!”

그랬기에 권 회장의 심기가 이렇게 안 좋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강하게 감이 왔던 불로초는 아이린 홀튼한테 빼앗기고 말이다.

그리고 윤시우는 그런 권 회장의 눈치를 보며 옆에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망나니질로 사고를 쳐서 집안에서 쫓겨났다가, 권회장 덕분에 겨우 재기한 자신이 아니었나.

'권회장한테 점수를 따야 한다.'

그런데.

‘어제 2억 달러에 낙찰 받았던 검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검이었다.’

윤시우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낙찰 받게 한 백정의 검. 하지만 받아서 사용해보니 단순한 저주의 검이 아니었나.

2억 달러나 들여서 완전 똥을 사버리고 만 셈이었으니!

그 생각을 하며 윤시우는 어제의 경쟁자를 떠올렸다. 백정의 검도 그 놈이 가격을 다 올려놓고 빠져 2억에 낙찰 하지 않았었나.

2억이 놈의 한도금액이었던 건지, 아니면 살 생각도 없으면서 일부러 가격을 올리고 빠지는 양아치인지는 윤시우도 알 길이 없었지만.

‘서주헌, 서주헌이라.’

서주헌이라면 어제 아이린 옆에 있던 그 놈일 것이었다. 경매장 직원이 자기 타입이라면서 인상착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얼굴만 반반하고 싹수없게 생긴 놈. 꽤 눈에 띄는 놈이라 경매장 직원이 말한 놈이 누군지 딱 알 것 같았다.

결국 그를 떠올리던 윤시우는 미간을 좁혔다.

‘혹시 그 놈, 유물 사용자인가.’

가능성은 크다. 권 회장이 노렸던 아몬드 나무에 응찰 했던 것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곧 윤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이린은 또 몰라도, 사내놈 쪽은 아닐 것이다.

‘그 놈은 헐리웃 배우가 쓰던 때밀이 돌이나 낙찰 받아갔으니.’

그냥 취향 이상한 변태 빠돌이이리라. 권회장도 딱히 응찰하지 않았었고 말이다. 그리고 정작 그것이 중요한 4대 법전 유물 중 하나,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걸 알 턱이 없는 윤시우는 권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역시 어제 그 아몬드 나무에 미련이 남으신 건……”

“그건 내 유물과 비슷할 정도의 감이 오던 나무였다.”

“!”

권 회장의 짜증 섞인 탄식에 윤시우는 놀랐다.

권 회장은 이미 신급 유물을 소지한 사내였다. 물론 사용에 조건이 있는지 그 유물은 잘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유물의 존재를 알게 된 권 회장은 이리저리 유물을 모으고 다녔다.

그런데 그 정도 급이라니!

‘진짜로 놓치면 안 되는 유물이었잖아!’

젠장, 정력제 유물이 아니었어!

그런걸 아이린이 넘긴걸보면 아이린도 생각이 없거나 유물사용자는 아닌 것 같았다.

'제 아무리 사회적으로 대단한 놈도 유물 사용자한테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지.'

그게 아니더라도 권회장의 유물의 힘을 본 윤시우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이 예비장인을 이길 수있는 놈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유물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었다.

결국 표정이 바뀐 윤시우가 뭔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회장님. 제가 책임지고 그 나무를 꼭 가져오겠습니다. 유물을 써서라도요.”

그렇게 말하며 나가는 윤시우의 눈빛이 분노에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자식.

근본도 모를 양아치 주제에, 아주 본때를 보여주지.

* * *

물론 본때를 보여주기는커녕, 주헌을 만나는 과정부터 이미 물을 먹고 있는 윤시우였다.

‘이 빌어먹을 자식.’

윤시우는 지금 씩씩 거리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인맥을 동원해서 주헌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건지 어떤 건지, 꼭 자신이 이미 갔던 곳에만 나타나곤 했다.

‘젠장,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으니.’

덕분에 윤시우는 팔자에도 없는 생고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발견했다.

태연하게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빌어먹을 놈의 면상을!

“실례합니다. 당신이 서주헌씨 입니까?”

바는 관광코스와는 좀 떨어진 곳이라 꽤 음침한 곳에 있었고, 손님도 없었다.

주헌은 바텐더 앞에서 느긋하게 위스키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다.

윤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감히 회장님을 물 먹여? 이 어린놈의 새끼가.’

하지만 윤시우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주헌은 힐끗 고개만 돌릴 뿐이었다. 그 표정 없는 얼굴이 자신을 같잖게 여기는 눈빛이라 윤시우는 순간 울컥했다.

반면 주헌은 표정과는 다르게 속으로 큭큭 웃고 있었다.

‘날 찾으려고 꽤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나 보군.’

딱 봐도 평소보다 짜증이 가득했고, 독이 바짝 올라 있다.

'여전 하군 여전해.'

자신에게 밀려 2인자가 되었다고 스스로 말하며 씩씩 거리던 놈.

하기야 일부러 싸돌아다니며 윤시우를 똥개 훈련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주헌은 이놈의 화를 더 돋을 이유가 있었다.

그럴 때 윤시우는 주헌을 노려보았다.

“이봐, 내 말 안들려? 사람이 물으면 답을 해야 할 거 아냐!”

그 말을 하며 윤시우는 바텐더에게 외쳤다.

“일단 물. 물부터 줘요. 술이든 뭐든 괜찮으니까 시원한 거!”

그리고 주헌의 옆에 앉으려고 했다.

“그리고 너 애송이!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그는 처음부터 주헌과 좋은 말로 이야기 할 생각이 없었다. 유물로 처리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럴 때였다.

어째서인지 주헌이 윤시우를 걷어차면서 의자에서 넘어 트린 것이다.

“컥!”

“소, 손님!”

바텐더는 당황해서 술을 만들다 말고 달려 나왔다. 졸지에 꼴사납게 넘어진 윤시우는 이게 무슨 갑자기 날벼락인가 싶어 주헌을 보았다.

“이 새끼가, 미쳤나!”

하지만 정작 턱을 괴고 있는 주헌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이야기 좋지. 그런데 우리 초면 아냐?”

“뭐, 뭐야?”

그렇게 말하고 주헌은 날카롭게 웃었다.

“그럼 일단 그 싹수없는 말투는 고치고 시작해보지.”

윤시우의 표정이 신문기사 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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