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한국에 이상한 놈이 있다 =========================================================================
< 한국에 이상한 놈이 있다 (2) >
“참, 여긴 언제와도 시끄러운 곳이야.”
주헌은 진토닉을 마시며 불꽃이 수놓는 밤하늘을 보았다.
시간이 벌써 밤 8시였다. 심지어 1월 한 겨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라스베가스는 지칠지도 모르고 시끄러웠다.
붉은 빛, 푸른 빛, 형형색색의 불빛과 꺼질지 모르는 황금색 건물들,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북적이는 관광객들.
이 미국 서부의 관광, 도박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규모만 좀 작다는 것만 빼면.’
주헌의 시대에는 이미 유물 최대의 경매장 중 하나로서 이보다 훨씬 성장했었으니까.
그랬기에 주헌에게 이 사막의 도시는 상당히 낯익은 장소였다.
세계옥션.
일명 <마이더스>라고 불리는 지하 비밀경매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주헌은 그 경매장에 참가하기 위한 로비에서 오승우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말이다.
남들이 보면 평범한 룸식 레스토랑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경매장의 로비다.
‘이것들은 왜 이렇게 안 와.’
마이더스는 5일간의 장기 경매였다. 지금이야 한정판 브랜드 물건들이나 명화, 도난 미술품들이 오가는 비밀 경매장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돈 많은 거부들이 취미겸 놀러온다고 하지만, 미래에는 전 세계의 대기업 CEO, 거부, 왕족, 스타들, 정계인사들 할 것 없이 흥미를 가지는 유물 경매장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주헌은 권 회장의 오른팔로서 마이더스에 자주 왔다. 거기에서 알게 된 스타들이나 CEO, 왕족들도 있었다.
‘뭐, 놈들한텐 내가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르지만.’
권 회장의 재력으로 유물을 쓸어 모았기 때문에, 주헌의 악명은 꽤나 높았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경매장에서만 그랬을까.
권 회장은 독식자 중 한 명이었고, 그가 거느리는 발굴단은 그 당시의 발굴단 중 가장 위상도 악명도 높았다.
주헌이 그 발굴단의 단장이었고 말이다. 물론 주헌이 있던 발굴단은 그 당시 발굴단이라기 보단 무법 도굴단에 가까웠지만.
그리고 그 어느 독식자들도 주헌이 이끄는 도굴단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놈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같은 도굴단이었던 동료들, 그리고 적대관계였던 당시의 독식자들.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유물을 가진 지배자들이었다.
‘그래봐야 아직은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겠지만.’
그럴 때였다.
“허억, 허억! 찾았다! 서주헌!”
주헌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어설프게 정장을 차려 입은 오승우 일행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헌은 주먹을 우득 거리며 그들을 반겼다.
“30분 오버.”
그의 싸늘한 음성에 오승우 일행은 힉, 몸을 떨었다. 수트를 입은 주헌은 멋지고 신사다웠지만, 그들은 저 신사의 포악한 내용물을 너무도 잘 알았다.
“기, 기다려!”
“자, 잠깐! 여기엔 다 사정이!”
“뭐? 사정은 무슨 사정.”
주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겁에 질린 오승우 일행은 억울한 듯 가슴을 쳤다.
“경주누님이 없으니까 여기 들어오는 게 힘들어서!”
“들어보라고! 젠장, 도대체 우리를 왜 쫓아내려고 하는 건지!”
그들은 억울해 했지만 주헌은 그들을 보며 허, 웃었다.
‘거울을 보면 잘 알 텐데.’
그렇다.
인상도 인상이지만, 무엇보다 의상.
마이더스의 기본 드레스코드가 정장이다 보니 그들 역시 정장을 차려 입었지만, 셔츠가 문제였다.
도대체 몇 십 년 전 스타일인지 입은 것은 촌스러운 꽃무늬 조폭 셔츠. 심지어 넥타이는 어디다가 팔아먹고 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씨, 됐고 어쩔 거냐. 우리 다 영어 못하잖아. 경매장 신청서 내려면 주문할 때 이상한 회화해야 한단 말이야.”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면 되잖아?”
그의 태연한 답에 오승우 일행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그러니까 평소엔 누님이 다 했다고! 너도 우리도 다 까막눈 일 거아냐!”
그러자 주헌은 허,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곧 교육을 잘 받은 듯한 웨이터가 다가와 친절히 물었다.
“Are you ready to order, sir? (주문하시겠습니까?)”
그가 다가오자 영어 울렁증이 있는 오승우 일행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갑자기 부르면 어떡해!
이쪽은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하지만 주헌이 대수롭지 않게 메뉴판을 보며 뭔가를 주문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 어?’
주문이 뭔가 능숙하다.
그리고 주헌이 경매에 대해서 뭔가 말하기 시작하자 오승우 일행의 표정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라? 하더니, 점점 뒤로 갈수록 그들의 표정은 기어이 경악의 단계에 이르렀다.
‘도대체 뭐야?’
‘이, 이자식이 언제 영어까지 익혔어?’
영어로 술술 말하는 게 아주 원어민 수준이었다.
그 뿐인가? 그 와중에 웨이터와 농담 까먹기라도 하는 건지 서로 말하며 하하 웃어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물며 웨이터와 주헌은 오승우 일행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오승우는 답답하다 못해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치고 말았다.
“야!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새 우리 욕하고 있는 거냐?”
하지만 주헌은 실례라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니들이 블랙컨슈머인줄 알고 쫓아내려고 했다기에 오해를 풀어준 것뿐인데?”
“……?!”
“참고로 위에서부터 다 시켰어. 오해 풀어준 대신, 여기 식사 값은 니들이 다 내라.”
“뭐? 야, 야!”
“아. 팁도 니들이 다 낸다고 말해놨어.”
이미 계산은 자신들의 몫인가!
어쨌든 그런 작은 소동이 끝나고, 주헌은 지배인으로부터 경매 카탈로그를 받을 수 있었다.
200페이지 쯤 되는 한손 크기의 책자에는 경매에 출품되는 물건들이 나와 있었다.
커다란 물건 사진과 거기에 대한 영어 설명. 주헌은 혹시라도 물건들에 섞여 유물들이 들어오진 않았나, 내용물을 하나하나 훑었다.
오승우 일행은 그런 주헌을 보면서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저자식……저거 진짜 다 읽고 있긴 한 겁니까?”
“그, 그보다 형님, 정말 이놈을 도와도 되는 겁니까? 경주누님이랑 경태형님을 깜빵에 넣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게……”
“그래요. 기왕 치외법권으로 나왔는데 여기서……”
아우가 일어서려고 하자 오승우는 발을 콱 밟으면서 눈치를 주었다.
“너 지금 저놈 이길 자신 있냐?”
동시에 그들은 침묵했다.
확실히, 무리다.
저 괴물 같은 놈을 무슨 수로.
미국에서 저놈을 처리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자신들이 총살당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마약밀수범으로 들어간 사람들한테 의리 챙겨서 좋을 게 뭐가 있어.”
“하지만!”
“그 박남매한테 우리도 딱가리로 굴려졌던 거 벌써 잊었어?”
“하지만 어쩌자고..!”
그러자 오승우가 끙, 고민을 했다. 지금은 주헌에게 잡혀 있고, 하는 일에 따라 보수를 준다고 했지만 저 새파랗게 어린 놈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건가.
‘젠장, 어떻게 하지.’
그럴 때였다.
“JK가 3명이었다고?”
주헌의 말에 오승우 일행이 흠칫 놀라 서류부터 내밀었다.
“어, 어 그래. 이 녀석들이야.”
그들은 경매장의 직원과 친분이 있는 건지, 용케도 JK에 대해서 알아왔다.
주헌은 꽤 조사가 잘 된 내용물을 보면서 웃었다.
‘이런 놈들도 쓸모가 있긴 하군.’
확실히 지금의 자신 위치로는 이런 경매장의 정보를 얻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박경주 회사의 자격으로 이 경매장에 들어온 것이니. 그러니 때가 될 때까지만 이녀석들을 부려 먹으면 편하긴 편할터.
물론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얻을 수 있긴 하지만, 할 일은 많고 고작 이런 일에 신경쓰기는 귀찮으니까.
‘지금이야 딴 맘을 먹는 모양이니, 정신교육은 시켜야 할 것 같지만.’
곧, 주헌의 시커먼 속내를 알리가 없는 오승우가 땀을 삐질 거리며 주헌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JK는 세 명이야. 근데 세 명 다 국적도 직업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라…….”
“그, 그래. 한 명은 여자, 얼핏 헐리웃 배우라는 소문이야. 또 한 명은 남잔데……그냥 돈 많은 금수저 예술가 같고. 또 한 명은 작가야. 워낙 가명으로 많이 쓰이는 것 같아서 잘은 모르겠는데, 네가 찾는 사람이 있긴 하냐?”
이거 잘못하면 허탕 칠 수도 있다며 오승우 일행이 혀를 찰 때였다.
서류를 보던 주헌이 어째서인지 웃는 것이었다.
“아니, 왔어.”
그들은 깜짝 놀랐다.
“뭐?! 누군데! 여, 여배우 쪽이냐?”
하지만 주헌은 그들이 가져온 명단 자료를 보면서 입 꼬리를 올렸다.
여배우는 무슨.
주헌은 세 명중 한 명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올 줄 알았다. 권 회장.’
확실했다.
그리고 놈이 왔다는 건, 경매장에 유물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인간은 선천적인 건지, 어떤 건지는 몰라도 가는 곳 마다 유물이 따라다녔으니까.
그랬기에 카탈로그를 뒤지는 주헌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있다.’
주헌의 손길이 멈췄다.
* * *
카탈로그에서 주헌은 유물 몇 점을 발견했다.
함무라비 법전.
셰익스피어의 펜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다. 팔찌, 장난감, 담배 등 전부 다른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핵심 부분은 남아 있어 주헌의 눈에 금방 들어왔다.
‘신급 유물은 안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예언상으로는 신급 유물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말이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건가?’
하지만 그런 주헌을 보고 오승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탈로그에는 20세기 한정판 명품백도 있고, 고흐의 그림, 게다가 수십억 단위에 되팔 수 있는 와인도 있었다.
물론 그런 건 자신들도 넘볼 수 없는 것이니 그렇다쳐도, 그래도 저딴 이상한 것에 책갈피를?
하지만 그들은 주헌이 고른 물건의 경매가격을 보고 끄악 비명을 질렀다.
‘시작가가 20억?’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몇 개는 엄청났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주헌의 말이었다.
“얻어야 할 물건이 몇 개 있어.”
그 말에 오승우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야! 너, 너 설마 방금 네가 체크한 거 낙찰 시키겠다는 거냐?”
“그런데?”
“야! 애당초 마이더스에서 뭔가를 낙찰 시키겠다는 게 말이 되냐! 그 중에는 대기업 회장님들도 있을 거라고!”
박경주의 경우에도 마이더스 경매는 인맥을 챙기기 위해 관람차 들렀을 뿐이었다.
이런 거부들의 승부의 장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야! 네가 고른 게 인기가 없는 품목이라고 치자. 하지만 애당초 기본 억 단위잖아! 돈이 어디에 있다고!”
하지만 주헌은 픽 웃었다.
“돈이야 불리면 되지.”
“뭐, 뭐?”
“우리가 있는 곳이 도박의 도시라는 걸 잊었어?”
오승우 일행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경악했다.
“도, 도박이라니. 너 무슨 잭팟이라도 터트릴 생각이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가능하다면?”
“뭐?”
그러자 주헌은 품속에서 금색의 나이프 하나를 꺼냈다. 그건 금도끼 은도끼 중 금도끼였다.
들고 다니기 편하게 나이프 형태로 위장 시킨 것이었다.
“너, 이 근방에서 지도 샀지? 그거 꺼내.”
“이, 이 자식이 진짜 뭘 생각하는 건지.”
오승우는 당황해하면서도 앞주머니에 넣어뒀던 라스베가스의 관광지도를 얌전히 펼쳤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던 주헌은 생각이 있었다.
돈이야 불릴 수 있다.
돈을 불릴 수 있는 ‘명당’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니까.
바로 자신이 가진 이 금도끼로.
[금도끼 은도끼 - 금도끼 (B급-희귀급/ 소모성 유물)]
- 사용횟수 (941/1000)
금도끼 은도끼는 가난하고 진실한 나무꾼이 부를 얻은 것처럼, 기본적으로 주인에게 재물을 가져다주는 재물과의 유물이다.
그리고 금도끼의 기능은 돈이 되는 곳, 재보가 있는 곳 등, 재물 냄새가 나는 곳을 찍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해 돈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찍는 것이다.
‘그럼 오늘 잭팟이 터질 장소를 찍어라. 금도끼.’
주헌이 유물을 발동 시키며 나이프를 허공에 던졌다.
그리고.
콱!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나이프는 지도의 어느 장소에 보란 듯이 찍혔다.
그걸 본 주헌이 입 꼬리를 올렸다.
자 그럼 잭팟을 터트리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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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왕.txt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