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8 목은 잘 닦아 놨어? =========================================================================
< 목은 잘 닦아 놨어? (2) >
올해 나이 중3.
남자만 보면 한참 심장을 어택당할 나이인 사사키는 주헌을 보고 정말로 깜짝 놀랐다.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앉아있지만 키가 큰 것이 체감이 될 정도였고, 덩치는 멸치처럼 마른 것도,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체격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평범한 댄디컷에, 입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검은색 목 폴라티에 청바지, 그게 전부다.
자신이 좋아하는 굴지의 아이돌 소스케에 비교하면 그냥 일반인 같은 행색이었다.
하지만.
‘꺄! 완벽해! 이케맨! 잘생겼어!’
사람이 옷 빨을 받는 게 아니라, 옷이 사람빨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남자다운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에 분위기 있는 얼굴은 당장 스크린에 나와도 될 정도였다.
‘꺄, 최고야! 귀공자 타입이야! 왕자님이야!’
물론 이 모든 건 사사키의 콩깍지가 섞인 결과겠지만 말이다.
실제로는 왕자님은 개뿔, 적이라면 상대가 여자라도 안 봐주는 도굴꾼이었다.
그러니까 주헌의 외모가 제법 잘난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껍데기만 봐줄만 할 뿐, 내용물까지 사사키가 바라는 이상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사키를 바라보는 주헌은 살의를 가득 담아 입 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왔구나, 미래기.’
나름 직원이랍시고 변장한 것 같지만, 사실 주헌은 사사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고, 확실하게 얼굴을 본 사사키는 꽤 귀엽게 생겼다.
그러니까……
‘화장만 연하면.’
갸루까지는 아니었지만 딱 보기에 소위 좀 노는 학생이었다.
양 갈래로 느슨하게 묶은 머리는 밝게 탈색했고, 액세서리와 화장법은 10대 패션 잡지를 마스터했을 법한 모습.
물론 본판이 나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아이라인 욕심을 내고, 머리카락보다 더 두꺼운 빗자루 속눈썹을 저리 붙여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뭐, 외모는 중요하지 않지.’
어차피 없앨 예정이니.
쓸데없는 살생은 안하는 주의지만, 미래기를 가진 사사키는 주헌에게 있어 적이었다.
미래기를 넘기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일본의 앞잡이가 그럴 리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무라마사로 처리한다.
동시에 주헌이 무라마사에 손을 얹었다. 그걸 눈치 챈 자위대 군인들이 놀라 황급히 품속에 총을 짚었다.
‘설마 사사키의 정체가 들킨 건가?’
타국인을 시내 한복판에서 사살할 생각은 없지만, 저 놈이 먼저 칼을 뽑아 든다면 그것이 포격의 신호.
하지만 주헌은 웃었다.
‘어디 한 번 움직여보시지.’
그는 어차피 자위대 군인들이 숨어든 걸 파악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변장한 모양이지만, 그래봐야 뭐하겠는가.
‘뻔히 보이거든, 이것들아.’
하물며 사람을 죽이는데 익숙한 곳에서 온 주헌이 살의를 품은 군인과 민간인의 표정도 구분 못할 리도 없었다.
‘아까 이미 다 체크했지.’
그랬기에 주헌은 이미 수를 써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헌이 무라마사를 뽑으려는 그 순간!
“오빠, 나 오빠 팬 해도 돼요?”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사사키의 외침에 주헌도, 방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자위대 군인들도 순간 멈칫했다.
그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그리고 고민해야 했다.
‘뭐지. 자위대 놈들의 신종 작전인가.’
눈살을 찌푸린 주헌은 심각하게 그렇게 고민했고.
‘뭐야! 모리 대령이 뭔가 지시한 건가?’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계획이 있었어? 미래기가 시킨 거야?’
자위대 군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결국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주헌이었다.
“지금 뭐라고?”
좀 짜증이 섞인 듯한 어조였다. 그러자 사사키는 본인이 말하고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 한 듯 입을 떡 벌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눈치를 보던 사사키가 태연하게 미닫이문을 닫았다.
그러자 밖에서 잠복 중이던 군인들이 꽥 기겁을 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사사키!’
‘문을 닫으면 어쩌자고!’
‘안보이잖아!’
그들은 주방에서, 객석에서, 각자 다른 곳에서 좀 떨어져 지켜보던 참이었다. 결국 시야가 완전히 가려지자 그들은 저들끼리 쑥덕거렸다.
“어찌 된 거죠. 뭔가 들으신 게 있으십니까?”
“모리대령의 지시일까요?”
“쳐들어갈까요?”
결국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들이 내린 답은 이것이었다.
“지켜보자. 저 한국인을 꾀려는 작전일 수도 있어. 사사키도 버젓한 일본 국민이니까. 나라를 위할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런 곳에서 난동을 피우면 피해가 생기는 걸 아는 거야.”
“하, 하긴, 사사키는 나라를 구할 천녀죠.”
그래. 그녀는 그래보여도 나라를 대표해서 미래기를 사용하는 유물 사용자니까.
그녀를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로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사사키가 나라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는 개뿔.
그녀는 그냥 주헌의 핸드폰 번호를 따고 싶은 것뿐이었다. 군인들에게서 벗어난 건 그들이 옆에 있으면 방해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저 번호 좀 주시면 안 돼요?”
단 둘이 되자마자 사사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주헌은 귀찮아서 무라마사를 들려고 하다가, 사사키가 내민 핸드폰 화면을 보고 흠칫했다.
주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TдT) 꺄, 잘생긴 오빠↗. 한 눈에 반했음. ★ 난 미래기 사용자에요. (??>?<?)。?♡ ->오빠랑 친해지고 싶어요.?(♡ε♡ )? =여자 친구 있어요?(??ω??)??]
한자 하나 섞이지 않은 문장, 심지어 이모티콘과 줄임말로 가득한 걸즈문자가 나타났다.
주헌은 내심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람이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무덤을 돌면서 다양한 일본인을 봤지만 이런 녀석은 또 처음이다.
‘이게 진짜 무슨 생각이지.’
자신에게 정체까지 알아서 밝히다니.
연극인가.
그런 것인가. 친한 척 굴면서 자신의 뒤통수를 칠 생각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미래가 있었나?’
하지만 미래기를 잘 아는 주헌이었다. 그 범위도 자신이 예상한 범위일터.
그럴 때 주헌이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자 사사키는 당황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퍼뜩 뭔가 깨달은 듯 다시 핸드폰으로 뭔가를 썼다. 그리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I fol in love. I Futrue see. (´;ω;`) Yu and I frend. A u Ok? And…… Glis frend iru? ?( ;∀;)]
“……….”
아무래도 주헌이 외국인이라고 제딴엔 영어를 쓴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헌은 머리가 다 아파왔다.
주헌은 졸지에 문장을 뜯어고쳐주고, 문법 강의를 해주고 싶은 욕구까지 생길 지경이었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내용과 목적은 알겠으니.
그랬기에 주헌은 핸드폰을 받으며 뭔가를 능숙하게 쓰더니, 사사키에게 보였다.
그걸 본 사사키는 얼굴이 정말로 환해졌다.
그리고 사건은 동시에 일어났다.
쨍그랑! 쾅!
“꺅! 갑자기 상이!”
큰 소리와 함께 밖에 있던 자위대 군인들이 시선이 돌아갔다. 시선을 돌린 곳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상이 엎어져 당황하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아! 사사키!”
그들의 시선에 주헌과 사사키가 들어왔다. 혼란을 틈타, 사사키와 주헌이 가게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덕분에 군인들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저것들이?”
“당장 쫓아, 당장!”
“남자 쪽은 사살해도 좋다!”
“네!”
하지만 이 때.
군인들을 보며 웃는 것 같던 주헌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동시에 군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쿵!
갑자기 다리를 걸고넘어진 뭔가가 군인들을 포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악! 이건 뭐야!”
그건 주헌이 미리 은밀하게 풀어둔 동아줄이었다. 가게를 뱀처럼 기어 다니던 밧줄은 아까는 상을 엎더니, 이번엔 신이 나서 군인들을 묶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정말로 빨랐다.
결국 가슴과 다리 사이, 졸지에 귀갑 묶기를 당한 군인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이게 뭐야!”
“젠장, 이거 놔! 놓으라고!”
“쫓아! 놓치면 다들 진짜 죽는 거다!”
“하지만! 이 이상한 밧줄이!”
“젠장, 사사키이이!”
“위, 위치부터 파악해봐! 발신기 붙여놨잖아!”
“하지만 지금 묶여서 소, 손을 쓸 수가……!”
“큰일입니다! 이거 사시미 칼로도 잘리지 않습니다!”
“그럼 본부에 다시 연락부터 해! 남자에 대한 정보를!”
“알겠.....으, 으읍!”
“젠장, 이 밧줄새끼, 입까지 막고 있어! 이것부터 빨리 잘라! 빨리... 으읍!”
하지만 그들이 몸부림 칠수록, 주헌에게 명령 받은 동아줄은 남자 군인들을 콱콱 조여 댔다.
월척, 또 월척이구나!
그렇게 신이 난 듯한 해님과 달님 동아줄에게 당한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처절한 외침뿐이었다.
덕분에 구경거리가 된 그들은 하나 둘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사진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이 사진이 볼거리로서 인터넷 상에 퍼지는 건 그리 먼 일이 아니었다.
* * *
사사키는 정말로 행복했다.
[그럼 오빠랑 잠깐 사랑의 도피 좀 해볼까?]
설마하니 그런 답변을 듣게 될 줄이야.
사사키는 자신을 인적이 없는 골목으로 데려가는 주헌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처음부터 이런 으슥한 장소라니, 너무 빠르지 않나.
‘헤헤, 모르겠다. 기껏 밖에 나왔으니 아저씨들 올 때까지 조금만 놀다가 들어가지 뭐.’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마킹도 했으니까 내가 더 유리할거고.‘
그녀는 그렇게 음흉하게 웃었다.
주헌 역시 유물을 가진 것 같지만, 그래봐야 자신의 미래기에는 미치지 못할 터.
여차하면 미래기를 앞세워 협상하거나 도망치면 된다. 어차피 이 오빠도 소스케나 일본 간부들처럼, 미래기 앞에서는 원하는 걸 모두 들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빨리 알아차려야만 했다. 눈앞에 있는 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저, 오빠. 이름은 뭐에요? 나이는요? 나카무라 소스케라고 혹시 알아요? 좋아하는 음식은……꺄악!”
사사키는 비명을 질렀다.
콰직!
주헌이 들고 있던 자신의 핸드폰이 사정없이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꺄악! 내 핸드폰!”
주헌은 사정없이 사사키의 핸드폰을 망가트렸다. 제일 먼저 핸드폰에 있는 발신기와 GPS를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사사키는 울부짖었다.
“으앙! 무슨 짓이에요! 소스케의 음성메시지가 저장된 핸드폰이! 당장 협상해요! 자위대 아저씨들도 발신기 따라 금방 올 텐데 당장 협상하게 할 거야!”
그녀가 엉엉 울면서 속사포처럼 항의했지만 곧 그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헉!”
살벌한 칼날이 자신의 목에 들어온 것이다.
그건 무라마사였다.
결국 사사키는 털썩 주저앉았고, 주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협상이 아니라 배상이겠지. 이 바보야.”
사사키는 흠칫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주헌이 생긋 웃고 있는 게, 배상의 배자라도 꺼냈다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 우리 데이트 안 해요?”
그 말에 주헌은 방긋 눈웃음을 지었다.
“이미 하고 있잖아?”
“엑?”
이, 이게 데이트?
하지만 사사키가 혼란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주헌은 씩 웃었다.
“자, 그럼 오빠가 데이트 해줬으니 이제부터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좀 해볼까?”
그는 웃고 있었지만, 사사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린 그녀는 무식해도 눈치까지 없지는 않았다.
‘어, 엄마야. 왕자님이 아니야.’
눈앞에 나타난 건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사악한 마왕님이었다.
하지만 그걸 지금 깨달으면 뭘 하겠는가.
공포의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아버지는 말하셨지~ 남자는 얼굴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어제는 이번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하다가 연재를 못했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