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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17화 (17/409)

00017 목은 잘 닦아 놨어?  =========================================================================

< 목은 잘 닦아 놨어? (1) >

유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물은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예언 능력만큼 인간이 탐내는 능력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예언 능력을 가진 유물 사용자는 전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미래기(未來記) 도 그 중 하나지.’

하지만 미래기 사용자는 독식자, 그러니까 유물 지배자들의 우위에 서진 못했다.

왜?

미래기 사용자는 바보니까. 그리고 S급(영웅전설)급인 미래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초반에 일본이 미래기를 통해서 엄청난 이득을 봤던 건 사실이지만, 그 후에 나온 예언가한테 살해당했었다.

바로 그 예언가가 독식자 중 <운명왕>으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서 죽을 테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러면 이야기는 좀 다르지.’

그 바보가 뭘 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그 피해가 자신에게 닿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남에게 읽힌다는 건 꽤나 불쾌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미래기는 지금 처리해두자.’

거슬리는 걸 굳이 처리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물며 처리해야 이유는 또 있었다.

‘미래기에 권 회장이 얽혀 있다.’

아베에게서 들은 정보, 그러니까 미래기의 연구에 관여하고 있는 그룹 TKBM.

그곳은 권 회장의 회사였다. 물론 권 회장이 일본과 손을 잡고 있는 게 이상할 것도 없긴 했다. 원래도 권 회장은 일본 쪽과 친했으니까. 하지만 초반에 미래기와 연관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주헌이 권 회장과 연루된 것은 이미 그가 독식자라고 불리는 위치에 올랐을 때니까.

‘개자식. 미래기를 활용해 초반에 유물을 긁어모은 거구만.’

그러니 잘 됐다.

권 회장의 앞길은 막는다.

그렇게 짐을 챙긴 주헌이 거실로 나왔다. 20평쯤 되는 작은 빌라.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는 아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덜컹!

곧 주헌이 현관문을 열자, 다른 방 쪽에서 룸메이트 김동현이 하품을 하며 나왔다.

“회사도 때려치웠다더니 이 새벽부터 어디에 가냐?”

“아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냐?”

“그래, 저녁에는 집에 올 거야.”

“점심약속인가 보네. 여자냐? 밥은 어디서 먹는데?”

“흠, 일본? 신주쿠에 죽이는 점심메뉴가 있거든.”

“아 그래, 일본 신주쿠 죽이지………맛있게 먹고……”

하지만 순간 친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잠깐, 일본?! 신주쿠? 옆 나라?”

너무 황당한 말에 잠까지 확 깨버렸다.

“야! 지금 점심 먹으러 비행기 탄다고?”

하지만 주헌은 어느 사이 사라져 있었다.

* * *

“꺄아악!”

미래기 사용자 사사키 유카.

올해 중3이 된 사사키는 낡은 책을 보다가 기절해서 죽을 뻔했다. 바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낡은 책이 보여준 글귀 때문이다.

“아씨 뭐야, 저게!”

결국 그녀가 기겁을 하며 집어 던진 고서에는 괴기할 정도의 글귀들이 실시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내용은 모른다.

책에 쓰이고 있는 건 요즘에도 잘 쓰이지 않는 한자, 심지어 글씨체조차도 현대적인 글씨체가 아니었으니까.

하물며 자기 이름조차도 한자보다 가타가나를 더 즐겨 쓰는 사사키가 고어 따위를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뭔 내용인지 알겠어.’

그렇다. 그녀가 아무리 무식해도 死 란 단어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물며 그 단어가 한 문장에 수십 번 반복 되고, 그게 몇 페이지나 이어진다면 무섭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佐?木が死ぬ。(사사키가 죽는다)

佐?木が死ぬ。(사사키가 죽는다)

佐?木が死ぬ。(사사키가 죽는다)

佐?木が死ぬ。(사사키가 죽는다)

佐?木が死ぬ。(사사키가 죽는다)

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殺………

“진짜 뭐야 이거!”

덕분에 사사키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쯤 되면 예언서가 아니라 저주 하는 편지라고 하는 편이 나을 지경이었다.

‘이게 다 그 늙은 아저씨들이 이상한 걸 시키고 나서야!’

사사키는 결국 엉엉 울부짖었다.

수백 평이 넘는 호화로운 맨션의 침대에는 그녀가 즐겨보는 미용잡지와 패션잡지, 연예인 가십 잡지로 가득했다.

물론 한자 사전이라든가, 고어 해석을 위한 책들도 있었지만 그건 그녀의 안중에도 없었다.

나름 고어들을 베껴 써본다고 노트에 필기한 흔적이 있지만, 몇 장 쓰고 귀찮아졌는지 휴지통 행.

결국 그녀는 벽을 한가득 채운 잘생긴 남자 아이돌의 사진을 보면서 훌쩍였다.

“우리 잘생긴 소스케가 아니었으면 그런 아저씨들이 시키는 말은 듣지도 않는데.”

그녀가 미래기를 얻게 된 건 등굣길이었다. 길 위에 웬 더러운 책이 있어서 걷어찬 것이 문제의 발단.

이 이상한 책은 자신을 걷어찬 여자는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사사키가 다니는 곳 마다 쫓아왔다.

책가방에도, 편의점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책은 찢고 태우고, 버려도 사사키를 쫓아왔다. 그리고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라의 군인과 총리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 TKBM의 권 회장에게서 유물의 존재와 미래기에 대해 들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런 건 사사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으앙, 소스케. 구해줘, 소스케에에.”

물론 지금의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평생 살아보지도 못할 집에서 살게 되었지, 가족들도 생활고를 벗어났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남신으로 섬기는 굴지의 아이돌 나카무라 소스케와도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세상에 그보다 잘 생긴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사키였다.

그러니 다 좋았다.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을 못 보는 것. 험상궂은 아저씨들한테 감시를 받으며 팔자에도 없는 고어 공부를 하는 것만 빼면.

그런데 그 아저씨들의 말에 한국 도굴꾼인지 뭔지를 추적하기 시작하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으앙, 아베 아저씨도 그렇게 된 마당에!”

이번엔 자신이 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사사키는 무서워졌다.

못생긴 나라 어르신들이야 네가 일본을 구할 신성한 천녀니 어쩌니 했지만, 나라고 개뿔이고 쥐뿔도 관심 없는 사사키였다.

‘엄마야, 한국인이 날 죽이러 온다, 날 죽이러 와.’

한국남자들이 잘생기고 키도 크고 매너도 좋다는 말을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그래봤자 지금은 암살자이지 않은가.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과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소스케뿐.

‘아니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결국 책을 다시 펼쳐본 사사키는 침을 꿀꺽 삼켰다.

* * *

“역시 본고장 스시는 맛있긴 맛있네.”

신주쿠.

그곳에는 줄 서서 기다린다고 하는 유명한 고급 스시집이 있었다. 물론 유명해지는 건 몇 년 뒤니, 주헌은 대기도 없이 꿀맛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리고 정말로 점심을 신주쿠에서 해결하고 있는 주헌이었다.

유물 때문에 해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주헌은 이런 저런 맛집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때야 권 회장에게 받은 발굴단 전세 비행기로 여기저기를 탐방했었지만.

그리고 1인실 방에 홀로 앉아 참치대뱃살을 입에 넣은 주헌은 핸드폰의 시계를 살폈다.

이 스시 집에 들어온 지 어연 한 시간 째.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주헌은 픽 웃으면서 가방 안을 보았다. 가방 안에는 사사키 유카를 죽여 버리겠다는 저주 일색의 노트가 있었다.

왜?

주헌은 S급(영웅전설)급 미래기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미래기는 분명 사람의 미래를 읽는다. 특히 일본인이거나 일본과 관련된 내용일수록 효과는 증대했고, 실시간으로 책에 미래가 써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약점 없는 유물은 없다고, 미래기에는 치명적인 단점 하나가 있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대상자는 반드시 그녀가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를 읽기 위해선, 반드시 상대의 실제 얼굴을 봐야 하는 마킹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니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크지.’

그래서 단번에 미래의 운명왕에게 당한 것이다. 물론 지금 주헌이 미래를 읽히는 건 좀 다른 건이었다. 마킹은 안 당했지만 그녀에게 마킹 당한 아베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마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주헌의 미래도 조금 읽힌 모양이지만 자세한 미래는 읽을 순 없을 터.

‘아마도 날 확실하게 마킹하기 위해서 나올 텐데.’

그래서 주헌은 엄청난 양의 살해예고 글귀를 썼다.

그리고 그녀는 미래기의 주인. 주인에게 향하는 악의 넘치는 미래를 미래기가 안 알려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자신의 위치를 읽어낼 사사키와 일본 놈들이 알아서 접근 해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주헌은 무라마사로 그녀를 처치할 것이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틀림없습니다. 무라마사 소태도입니다.”

주헌을 감시하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말한 건 주방에서 은밀하게 스시를 손질하고 있던 장인(?) 이었다.

“그 한국인 도굴꾼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진짜 정체는 직원인 척 하는 자위대 발굴단 대원이었다.

한 다섯 명 정도 될까.

직원과 손님으로 위장한 그들은 사사키의 이야기를 듣고 주헌을 몰래 잡으러 온 참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큰 소란을 피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상대는 한국인이었고, 유물에 대한 이야기도 세계에 아직 자세히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파견된 대원들의 말을 전달 받은 모리 대령이 답했다.

[좋아. 사사키한테 마킹하라고 전해라. 반드시 은밀하게.]

“네.”

곧 이어폰으로 연결된 모리 대령의 말을 들은 그들이 사사키를 보았다.

“준비는 됐지, 사사키.”

그러자 사사키는 입을 삐죽 거렸다. 그녀는 스시집의 종업원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킹을 위해서 직원으로 변장을 한 것이다.

“정말 제가 가야해요?”

“우리가 옆에 있으니 괜찮아. 어차피 너도 상대의 눈을 보고 마킹을 해야 하잖아.”

“하지만 들키면요?”

“어차피 놈은 네 얼굴을 모른다. 괜찮아.”

결국 스시집 장인으로 잠시 전직한 군인들은 사사키에게 잘 올려진 스시접시를 내밀었다.

“반드시 성공해라.”

“칫.”

이윽고 사사키는 주헌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사사키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소스케도 아니고, 왜 이런 못생긴 아저씨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하지만 그녀 역시 죽고 싶진 않았기에 방긋 미소를 머금었다.

드르륵.

그리고 문이 열리고.

“저, 주문하신 추가요리가 나왔습니다.”

안에 있던 주헌과 사사키의 눈이 마주쳤다.

단지 주헌과 사사키의 얼굴이 서로 다른 의미로 달라졌다.

‘왔구나.’

주헌은 살의 넘치게 웃었고.

‘헉, 말도 안 돼. 소스케보다 잘 생겼어!’

충격에 빠진 사사키는 여심이 흔들렸다.

============================ 작품 후기 ============================

오빠 왔져 뿌. 목은 잘 닦아 놨어? 스릉 스릉.

흑, 오늘은 0시 연재를 못했네요 ㅠ.ㅠ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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