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뜻 밖의 보상 =========================================================================
< 뜻밖의 보상 (1) >
아베가 급하게 외쳤다.
“제발 나가게 해줘! 여기서 나가면 널 일본정부에 추천할게!”
“뭐?”
그렇다.
지금은 저놈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중요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자신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놈은 미래기가 경고했을 정도의 놈이었다. 그럴 만한 놈이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이겠는가.
없애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바보가 아니었다. 과거의 문명처럼 ‘예언에서 불길한 놈이랬으니 싹을 잘라라!’ 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걸 잘 알았다.
위험해?
‘그럼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그만 아냐?’
아니 무엇보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자신이 이 녀석에게 유물을 빼앗긴 것도, 무라마사를 빼앗긴 것도 모두 덮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관들도 그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할 만한 인간들이었다.
“그러니까 1억 엔!”
“?”
“내가졌어. 넌 진짜 대단한 한국인이야. 네 지식을 우리 일본 발굴단을 위해 사용하면 1억 엔, 아니 10억 원 연봉은 보장할 수 있어!”
“호, 10억 원?”
아베의 말에 주헌이 호기심을 가지는 듯 했다. 그러자 아베의 표정이 간사해졌다.
'역시 그래봐야 서민이군.'
“관심이 생기나?”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데?”
“무덤에서 유물을 발굴하면 되는 것뿐이야. 원한다면 미래기를 사용하게 해줄게.”
그 말에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미래기를 사용하게 해준다고? 그 유물은 주인만 쓸 수 있을 텐데?”
“그렇긴 한데 그 부분을 해결 할 수 있는 기업이 있어. 어쨌든 네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어. 대신 무덤과 유물에 대한 정보를 다른 나라에는 퍼트리지 않는다는 조건이야.”
“오호.”
주헌은 꽤나 흥미를 가졌다.
“그러니까 네 말은 잘해 줄 테니까 일본이랑 손잡자? 대신 한국에는 퍼트리지 말아 달라?”
“바로 그거지.”
그 말에 동아줄에 매달려 있는 주헌은 웃었다.
“괜찮은 이야기네. 어디 이야기를 더 들어보지.”
뜻 밖에도 주헌이 손을 내밀자 아베는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걸로 탈출할 수 있다.'
그리고 주헌의 손을 잡고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한 아베가 신이 나서 말했다.
“오해했는데, 넌 말 좀 통하는 한국인이군. 밖에 나가면 바로 모리 대령님께 소개 시켜줄게. 너 생각 잘 한 거야.”
“아, 그런데 그 전에 하나.”
“뭐?”
“그 일본 발굴단을 돕고 있는 기업의 이름이 뭐지? 이상한 기업이면 괜히 얽히기 싫어서.”
확실히 그 말 대로였다.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알고 보니 막말로 다단계 기업일 수도 있는 법.
그걸 눈치 챈 건지 아베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상대는 그 TKBM 그룹이니.”
“그래?”
그리고 그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어?
주헌이 미련없이 아베의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잠……!”
아베는 당황해서 주헌을 보았다. 하지만 그대로 주헌의 손을 놓친 아베는 허공에서 지면으로 추락했다.
쿵!
무너지는 무덤 안으로 떨어진 아베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내다리!”
적어도 6m 에서는 떨어졌다. 그 충격에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심한 격통이 몰려왔다.
‘젠장, 이 바보 자식이!’
“이봐! 뭐하는 거야, 놓쳤잖아! 너 사내놈이 그렇게 힘이 없어서……어?”
하지만 아베는 멀어지는 주헌의 눈빛을 보고 헉,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아베를 바라보는 주헌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놓친 것이 아니다.
진짜 놓아버린 것이었다!
그 증거로 주헌은 교활한 여우처럼 눈웃음을 지으며 읊조리는 것이었다.
“이 등신.”
아베는 입을 떡 벌렸다.
‘저, 저 개새끼!’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는지 주헌은 소리 높여 웃었다.
“이 멍청아! 덕분에 유용한 정보를 얻어간다! 그럼 이제 어디 혼자 잘 나가보라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아베는 창백하게 질렸다. 뼈가 나간 것 같은 격통은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너, 너 뭐야! 우리랑 손잡을 생각을 한 거 아니었어? 1억 엔에!”
하지만 주헌은 뜻 밖에도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고작 10억?”
그 웃음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죽고 싶어? 누구 몸값이 고작 10억이야?”
“야, 하지만 너! 아까는!”
“애당초 니들이랑은 손 안 잡아. 일반인들까지 태연하게 입막음 하려는 개새끼들. 니들은 유물들 보다 못한 짐승들이다.”
“야!”
동시에 무덤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상황을 깨달은 아베는 떨어지는 돌들을 피하면서 외쳐댔다.
“기, 기다려! 진짜 이러기야? 사람을 생매장 시킬 생각이냐고!”
그러나 들리는 건 그의 비웃음 섞인 외침뿐이었다.
“먼저 우릴 죽이네 마네 떠 든 게 누구였더라?”
“그, 그건.....!”
“모리인지, 모기인지, 네 상관한테는 잘 전해주지. 아베 키요시는 예언가만 믿고 한국에서 재촉하다가 죽었다고!”
“이봐 그러지마, 잘못했......아악! 저 빌어먹을 새끼이!”
잠시 후 주헌이 완전히 사라지자, 무덤이 무너지는 소리와 아베의 절규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젠장, 이런 개죽음이라니, 빌어먹을!’
그는 눈물을 머금고 오늘의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왜 겁도 없이 혼자 무덤에 들어 왔을까. 왜 미래기의 말만 듣고 저 놈을 처치하려고 했을까.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일반인들은 건들지 말고, 저놈의 비위를 맞췄으면 결과는 좀 바뀔 수 있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몇 시간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후회(後悔)라고 하는 것이겠지만.
* * *
쿵!
지저의 무덤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아베를 완전히 보내버린 주헌은 출구 쪽 구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아마 아베 놈은 두 번 다시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출구는 어디냐.'
잠시 후 시선에 들어온 건 남성용 소변기였다. 결국 출구의 정체를 깨닫자 주헌은 허, 웃었다.
“이번 출구는 화장실이냐.”
지난번의 맨홀에 이어 이번 출구는 화장실이라니. 정체를 알게 되자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주헌은 실소를 흘렸다. 참 이럴 땐 무덤에 들어가는 게 가끔 꺼려질 정도였다.
‘출구가 여자 욕탕과 연결되어 있을 땐 진짜 최고였는데.’
물론 그 안에 있던 게 죄다 어르신들이라 눈물이 나왔지만.
그리고 이 때였다.
“들어가게 해주세요! 무덤과 연결된 출구라는 걸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안 됩니다!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아 좀! 들어가 보자니까!”
주헌이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데, 바깥이 꽤나 시끄러운 걸 깨달았다.
“KBN에서 나왔습니다!”
“YTM에서 나왔는데요!”
그 시끄러운 소리에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아, 역시 왔구나 왔어.
바깥은 이미 기자들의 밭이었다. 하기야 사건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 기자들이 꼬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뭐, 이미 무덤은 봉쇄되어서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주헌은 아예 매스컴을 통해서 무덤과 유물의 존재를 공표해버릴까 싶었지만, 지금은 참기로 했다.
소문을 퍼트리는 건 좋지만, 그 방법이 얼굴 팔리는 쪽인 건 별로 원치 않는다.
‘할 수 없지.’
조용히 화장실 창문 쪽으로 나가는 수밖에.
하지만 이 때였다.
쿵쿵쿵!
“!”
가방 속에 넣어놓았던 무라마사가 난데없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라마사는 무슨 자신이 악인에게 붙잡힌 규수라도 된 것 마냥, 빼애액 소리를 질렀다.
주헌은 조금 당황했다.
‘이자식이!’
무라마사는 자신의 과제를 통과하지 않은 놈에게 굴복 당한 게 몹시도 수치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쿵쿵쿵!
결국 움직임이 커지자 주변 사물에 부딪칠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밖에 있던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화장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안 들려요?”
이놈이 진짜!
주헌은 이를 갈면서 가방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들리자 무라마사는 주헌을 골탕 먹이려는 듯, 더욱 광분해서 움직여댔다.
쿵쿵!
“안에 들어가봐요!”
“거기 누구야!”
‘칫.’
이윽고 문이 열리자 주헌은 황급히 후드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 썼다. 그리고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이 당신!”
“기다려주세요! 이봐요!”
주헌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 *
“진짜 이 사고뭉치가.”
다른 인적 없는 화장실을 찾은 주헌은 못 마땅한 듯 혀를 찼다.
무라마사는 가방 속에서 맹알 맹알, 알아듣지 못할 외계어로 쫑알거리고 있었다.
뜻은 알 수 없지만, 보나마나 자신을 가방 속에 가두었다고 항의하는 것일 터.
계속 되는 쫑알거림에 주헌은 자신의 한쪽 귀를 틀어 막았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이 유물의 쫑알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인간이 유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바로 유물이 과제를 낼 때다.
지난 번 산신령 구렁이라든가, 무라마사 때라든가, 어느 경우든 과제를 풀 때만 유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유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역시 귀찮아.’
주헌은 과거 고고학의 능력 탓인지, 그리고 지금은 도굴꾼의 능력 탓인지 유물의 소리가 들렸다.
‘언어학 스킬이 더 올라가면 무슨 말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겠지만.’
뭐 이딴 쓰잘떼기 없는 능력은 필요 없으니, 그냥 모든 유물이 좀 닥쳐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적어도 주헌은 그리 생각했다.
결국 계속 되는 쫑알거림에 주헌은 짜증이 난 듯, 무라마사를 변기통에 박고 물을 내려버렸다.
그러자 무라마사는 빼애애액 비명을 질렀다. 떠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처음 맞아보는 변기샤워 맛은 최악이리라.
결국 무라마사가 좀 조용해지자 주헌은 조금 피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B급(희귀급)이니까 이정도지, A급 이상은 아예 말도 들어먹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거야 지배력을 높이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하여간 이놈들 때문에 몸이 성한 곳이 없어.”
주헌이 옷소매를 걷자, 화상을 입은 듯 팔뚝을 뒤덮은 흉측한 상처가 나타난 것이다.
‘강제지배의 대가는 꽤 아프군.’
그렇다.
유물을 얻으려면 원래 과제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주헌은 과제 따위는 개무시해버리고 지배력으로 강제 굴복 시켰다. 그러지 않으면 유물에게 틈을 보여 비명횡사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인지 이 모양이 되었지만.
주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미래를 알기에 유물의 강제지배는 필수. 하지만 앞으로도 이 상태라면 좀 문제가 될 터.
‘그래도 그냥 고통을 참고 유물을 계속 강제 지배해?’
그건 사실 무리였다. 지금도 사실 꽤 아팠다.
‘의료유물을 얻으면 해결 되겠지만, 시기상 의료유물이 벌써 나올 리는 없다.’
악독한 건 유물의 종특인지, 선해야 할 의료유물조차도 꼭 뒤늦게 등장했다. 인간들이 다 병에 걸리고 나서야.
어쨌든 강제지배의 대가도 한두 번이지, 이게 계속 반복 되면 주헌도 버틸 자신은 없었다.
이러다가 다른 병을 먼저 얻어 죽을 판이었다.
‘칫, 유물들에게 굴복하기는 싫은데.’
바로 그 때였다.
고민하는 주헌의 눈앞에 뜻밖의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지연된 <도굴꾼 기본스킬 활성화> 미션보상이 지급됩니다.]
마치 누군가가 이 상황을 예상 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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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접한 무라마사.TXT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