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4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
<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5) >
쾅!
주헌의 강한 지배력이 단도를 짓눌렀다. 그러자 단도는 꽤애애액 비명을 지르면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 놈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유물의 목소리가 주헌의 귓가에 내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빨을 세우던 유물은 순순히 굴복하고 말았다. 삵이 털을 세우는 것 마냥 붉은 오라를 풍겨 대더니, 점점 오라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시끄럽게 요동치던 검의 움직임도 완전히 멈추었다.
‘멈췄군.’
곧 단도 위로 염탐 스킬의 정보가 떠올랐다.
[무라마사의 조금 실패한 단도 (C급-일반급/ 소모유물)]
- 사용가능 횟수 (862/1000)
그걸 보며 주헌은 허, 웃었다.
고작해야 C급 주제에 반항하려고 하다니.
‘무라마사 중에서도 하위버전이군.’
무라마사는 본래 칼의 브랜드 명 같은 것이다. 당연히 무라마사라는 이름을 단 유물들은 수두룩했다. 기억이 맞는다면 무라마사도 C급(일반급)부터 A급(전설급)까지 있을 것이다.
유물의 등급을 나누는 몇가지 기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무라마사는 이 무덤을 만든 대장의 똘마니 유물이라고 보면 쉬웠다.
그랬기에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이 무덤을 만든 보스 놈은 더 안쪽으로 가야 한다.’
이 때였다.
“꺄아악!”
조종당하던 여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유물이 굴복하자 여학생은 정신을 차렸지만, 이번엔 다른 의미로 일이 터진 것이다.
바로 인간을 매는 것에 신이 난 동아줄이 문제였다.
“사, 살려주세요! 밧줄이……!”
여학생은 몸에 뱀이라도 기어 올라온 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여고생을 휘감고 있던 밧줄이 멋대로 움직이면서, 다른 형태로 옭아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 형태가 제법 수상했다.
결국 쯧, 혀를 차던 주헌이 황급히 밧줄을 붙잡았다.
‘아주 신이 났네, 신이 났어.’
하여간, 유물이란 놈들은 좀만 눈을 떼면 이 난리였다.
“돌아와!”
강한 지배력이 실리자 동아줄이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빛을 뿜었다. 동시에 빠르게 줄어들던 동아줄은 주헌의 팔목에 휘감겨 들었다.
빛이 사라지자 모습이 변한 유물이 나타났다. 이번엔 아베가 가졌을 때처럼 촌스러운 형태가 아니었다. 색깔은 고동색, 세련된 남성용 패션 매듭팔찌였다.
“아…….”
사람들은 멍하게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도 상황이지만, 밧줄이 팔찌로 변한 것도 괴기스럽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조종당한 여고생이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그 말에 주헌은 웃었다.
어떻게 된 거긴, 지배력으로 유물의 형태를 변환 시킨 거지.
쉽게 말해 <위장>이다.
금도끼 은도끼도 이렇게 위장시켰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유물들의 사정 따위 알 바는 아니지만, 유물들은 현대의 물건으로 위장하는 걸 수치스러워 한 달까.
‘제 본모습에 자부심이 있는 건지, 인간에게 굴복한 것 같아서 분해하는 건지.’
덕분에 유물이 굴복할 지배력이 아니면 모습을 변해주기는 커녕, 주인을 잡아먹으려고 하겠지만.
그렇게 웃으며 주헌은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은 그 일본 놈의 처리였다.
* * *
“역시 난 천재인 것 같아!”
하하하! 아베는 소리 높여 웃어댔다.
일반인들을 속여 함정에 밀어 넣은 아베는 기어코 무라마사가 있는 방에 도달해 있었다. 방 내부는 굴식 무덤이었고, 흙바닥에는 무기들의 잔해로 가득했다.
아베는 이곳에서 무라마사를 찾고, 목격자 전원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무덤에서 죄다 죽여 버리면 완전 범죄 아니야?’
무덤에서 죽으면 멍청한 한국정부도 사고사로 처리할 테니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국익이었다.
‘쇼토쿠태자의 미래기가 있는 이상, 일본은 최강이 될 수 있다.’
미국 따위가 뭔가! 중국 따위 알게 뭔가!
수차례의 대지진, 경제 불황. 한 때 아시아의 태양이던 자신의 나라도 해가 지는 나라가 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물은 기회였다!
수십 년 전, 일본의 무용담을 듣고 자란 아베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 일의 거룩한 초석이라고 여겼다.
그랬기에 아베는 지금 상황이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아씨, 도대체 무라마사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고!”
카랑 카랑.
쨍그랑!
거친 아베의 손길에 무기들이 무자비하게 던져지고 있었다.
“그 날라리, 제대로 말해준 거 맞는 거야?”
아베는 예언대로 무라마사를 찾으려고 했다. 무덤의 함정을 지나 4번째에 있는 방.
그곳에 무라마사가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그의 눈으로는 찾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였다.
“저 빌어먹을 자식, 딱 걸렸어!”
갑자기 방으로 우르르 들이닥치는 인파에 아베는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이 자식들!”
“개새끼, 감히 우리를 속여? 죽이려고 해?!”
사납게 밀려드는 사람들은 아베를 보자마자 죽이려고 들었던 것이다. 결국 아베는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었다.
이놈들은 바로 자신이 함정에 밀어 넣었던 일반인들이었다.
'이 자식들이 어떻게!'
주헌 덕분에 함정에서 벗어난 그들은 부탁을 받은 건지, 아니면 자의인 건지 아베를 발견하자 그를 붙잡았다.
“이 자식은 전 세계에 알려서 매장 시켜야해!”
그리고 아베가 제 아무리 군인이라고 하더라도 무기도 없이 이만한 인파에 둘러싸이면 답이 없는 법이다.
“젠장!”
결국 주헌 덕분에 해방된 사람들에게 포박 당한 아베는 화를 냈다.
“도대체 이 자식들은 어떻게 함정에서 나온 거야!”
유물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걸 분명 제대로 확인 했었건만!
그럴 때였다.
“어떻게 나오긴?”
낯익은 목소리에 아베는 헉하고 고개를 돌렸다. 당황한 아베가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청년이 칼무덤 위에 앉아 있었다.
그건 주헌이었다.
아베는 그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주헌은 씩 웃으며 아베에게서 빼앗은 유물을 흔들어 보였다.
“잘 썼어, 일본 자위대 육군 소령 아베 키요시.”
하나는 떡, 하나는 동아줄이었다. 아베는 그걸 보고 거품을 물 뻔했다. 저자식이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역시 저자식이 저걸!
“야! 너 그거 안 내놔?”
“내가 왜?”
그렇게 말하자 아베는 눈을 부라리면서 주헌을 노려보았다.
저자식이 진짜.
이리 된 이상, 방법은 하나.
“너 무라마사를 찾기만 해봐라. 그걸로 제일 처음 베이는 건 바로 너일 거다.”
바로 이 방에 있는 무라마사를 찾는 것이다. 아직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지만 그것만 찾으면!
하지만 아베의 말에 주헌은 어째서 인지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베는 당황했다.
“뭐야, 뭐가 웃겨!”
그 웃음이 하늘을 찔렀다.
“뭐야, 예언가를 끼고도 아직도 못 찾았어? 눈앞에 있는데?”
“뭐, 뭐?”
순간 아베는 당황했다. 주헌의 어조가 마치 이미 찾았다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앞에 있다고?
‘말도 안 돼!’
“여기에 무라마사가 어디 있다고!”
예언대로라면 이곳에 있는 무라마사는 선명한 물결 파문을 띄는 소태도일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여기엔 그런 게 없었다. 보이는 건 부러진 칼들 뿐. 그나마 멀쩡한 것이라고는 창이나 단검, 대도류였다.
그러자 주헌은 학생을 가르치듯 웃으면서 아베에게 다가갔다.
“바보야, 여기 있잖아.”
그리고 눈앞에서 집어든 것은 낡은 검이었다. 하물며 멀쩡하다고 할 만한 형태가 아니었다. 칼날도 부러졌고, 그나마 붙어 있는 부분도 이가 빠져서 나무 하나 벨 수도 없어보였다.
그러니 아베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한 건 당연 완전한 형태의 무라마사였으니까.
“허. 그게 무라마사라고?”
“그래, 이 멍청아.”
동시에 주헌은 칼에 지배력을 실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낡은 칼 코스프레를 하던 소태도가 돌변해서 흉악한 오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잘도 날 찾아냈구나, 멍청한 인간이여!]
그동안 말하고 싶은 걸 어찌 참았는지, 칼은 신이 나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힘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여.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어서 열 명의 피를 적셔라. 인간의 피를 삼켜야만 나의 육신이 되살아 날 테니!]
사람들은 그 말에 몸을 떨었다. 그들로서는 이 상황도, 저 무기가 지껄이는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저건 무슨 소리야!”
하지만 확실한 건 열 명을 죽이라는 것. 이 낯선 상황에서 목숨까지 위협 받게 생겼으니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다.
이 곳 유물의 과제는 단순 살육.
사람의 피로서 회춘, 아니 날붙이가 돋아나는 취미 나쁜 유물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많은 인원을 무덤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건 무라마사만의 문제라기 보단, 사실 일본도 관련 유물의 과제가 정말 모 아니면 도였다.
살육이거나, 철저한 장인정신을 요구하거나.
그리고 이름을 떨치는 무기들은 대다수가 전쟁에서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유물의 내력에서도 피비린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래서 날붙이류는 별로 안 내킨단 말이지.’
무라마사 역시 대고분화 이후에 팔아버릴 생각이었고 말이다. 무라마사의 진짜 기능 때문에 비싸게 팔아먹을 타깃이 있었으니까.
이 때 살육을 시작하지 않는 주헌이 답답했는지, 무라마사가 재촉했다.
[이봐 인간, 어서 인간을 죽여라! 나를 가지기 싫은 거냐? 도대체 뭐하는 거……]
“안 닥치냐. 날붙이.”
[뭐, 뭐?]
주헌은 이 유물이 시키는 대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당초 이곳에 있는 건 대다수가 일반인. 미쳤다고 유물이 좋아죽을 방향으로 따라주겠는가?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무라마사의 검신을 복원 시킬 방법을 잘 알았다.
물론 놈의 저항력이 문제지만.
‘뭐, 그래도 B급(희귀급) 까지는 할 만 하지.’
주헌은 무라마사의 낡은 손잡이를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시끄러우니까 일단 닥쳐라.”
강하게 지배력을 실었다.
쿠웅!
주헌의 지배력과 무라마사의 오라가 부딪치자 무덤이 크게 뒤흔들렸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땅에 엎드리거나, 밖으로 도망쳤다.
동시에 무라마사가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악! 이 건방진 인간이! 감히 누굴!]
쿵! 쿵!
아까 전 하급 무라마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나운 오라였다.
하지만 주헌은 개의치 않고 무라마사를 억눌렀다. 그러자 무라마사가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인간!]
그리고 유물과 기싸움을 하던 것도 잠시, 주헌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네 분신들을 모두 흡수해라. 무라마사.”
동시에 비명과 함께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덤 전체에 꽂혀있거나 흩어져 있던 날붙이들이 가루로 변하면서 무라마사에게 몰려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인간의 피 없이는 육신을 만들 수 없다고 지껄이던 무라마사의 몸에서 칼날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빛이 잦아들면서 나타난 완전한 소태도의 형태.
그걸 얻자마자 주헌은 외쳤다.
“클로즈(Close)!”
그러자 쿠구구, 무덤이 뒤흔들리면서 천장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덤이 무너지면서 출구로 향하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주헌은 동아줄 유물을 발동 시키면서 일반인들을 향해 외쳤다.
“밧줄만 붙잡아. 그럼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그러자 사람들이 정신이 번쩍 든 듯, 우르르 밧줄을 붙잡았다. 코브라처럼 덩실 거리던 동아줄은 꼿꼿이 서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아줄이 하늘로 올라가며, 이제 남은 것은 주헌과 아베 뿐.
곧 눈치를 보던 아베도 밧줄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뻐억!
주헌이 그를 걷어차 떨어트리고 말았다.
“커, 커헉!”
“넌 어딜 가려고.”
“크윽! 너 이 자식!”
그러나 주헌은 가늘게 웃었다.
“왜, 먼저 나간 사람들한테 무슨 해코지를 하시려고?”
그 말에 찔려하던 아베는 황급히 뒤를 보았다.
쿠르릉.
뒤에서부터 무덤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갈 곳은 저 천장뿐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라고 생각한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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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키가 어딜 오려고! 확!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