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
<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4) >
유물이 사라진 걸 깨달은 아베는 패닉에 빠졌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예언 속 한국인도 놓친 마당에,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물까지 사라져?
이건 정말 할복 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아베는 순간적으로 편의점에서 주헌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때도 주헌이 자신의 아이디카드를 줍지 않았었나.
떨어질 리 없는 그게 떨어져서 이상하다고는 생각 했건만.
혹시 그것도 떨어진 것이 아니라, 놈이 슬쩍 해간 거라면?
‘설마 유물도 그 놈이 가져간 건가?’
그러나 곧 아베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아냐, 세상 어느 미친 인간이 그런 손재주가 있겠나.’
물론 있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를 떠나서 아베는 골치가 아팠다. 얼마 후면 자신이 훔친 유물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서 조사팀이 넘어올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잃어버렸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거기에 무라마사까지.’
더욱 가관인 것은 아베에게 닥친 위험은 유물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바로 주헌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몇몇 일반인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만. 예언가니, 유물이니 다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 그 금도끼 이야기는 뭐고?”
‘젠장.’
일본어를 알아 듣는 몇 명이 주변에 퍼트리며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아베는 더욱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무덤과 유물에 대한 정보는 한국에 숨겨야 한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자식은 일반인들 앞에서 유물이나 써버리고 앉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 일이 쓸데없이 한국정부의 귀에 들어가면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외교적인 문제로도 번질 사안을 소령급 장교가 우습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젠장, 어떻게 하지.
계획대로라면 유물을 몰래 차지하고, 이 일반인들에게는 거짓정보를 흘려서 내보낼 생각이었다.
정 안되면 무덤에서 입막음하고 사고사로 처리하려고 했으나 무기까지 잃어버렸다.
‘어떻게 한다.’
아베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대로 그냥 무덤 밖에 나갈 수는 없었다.
* * *
정보가 흘러 나갔다.
그 사실에 아베는 동요하고 있었지만, 사실 주헌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왜?
주헌이야 무덤과 유물의 존재가 알려지든 말든,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 세계인이 무덤과 유물에 대해 알게 되는 <대고분화>가 곧 일어난다. 그러니 유물의 능력 정보라면 모를까, 무덤과 유물의 존재 자체를 숨기는 건 무의미한 일.
게다가 주헌으로서는 오히려 무덤과 유물의 정보가 소문으로 퍼지는 걸 바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물과 무덤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화, 전설, 민담, 대중소설 등 ‘이야기’를 힘으로 하는 것.
그래서 일까. 좋든 기괴하든, 일단 사람의 입에서 이야기가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유물과 무덤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리 되면 무덤의 수가 늘어나거나, 생성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유물을 얻는 데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대고분화 전까지 몇 개 더 챙기면 편하지.’
그렇게 주헌은 목적지로 걸어가며 아베에게서 훔친 유물들을 확인했다.
하나는 동아줄로 만들어진 팔찌였고, 하나는 네모 모양의 화과자 케이스에 든 수상한 경단이었다.
팔찌라고 해봤자 굵은 동아줄을 팔찌모양으로 묶은 것에 불과했고, 풀색 경단은 마치 둥근 주먹밥처럼 생겼다. 화과자 케이스에 넣은 건 아베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주헌은 이 유물의 정체를 알았다.
‘그 일본 놈, 한국판 일월(日月)전설을 알고 있었나.’
한국판 일월 전설.
그러니까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수상한 경단 떡은 호랑이가 달라고 조른 그 떡일 것이고, 이 동아줄은 하늘이 내려준 그 동아줄인 것이다.
둘 다 등급은 그리 높지 않지만 꽤 유용한 부속 유물들이다. 그리고 그 만큼 얻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덕분에 유용한 유물을 슬쩍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주헌의 눈앞에 낯익은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치사한 손재주> 칭호를 획득하여 스킬이 생성됩니다.]
[도굴꾼 기본스킬 손재주 스킬 (F랭크) 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손재주 (활성화)]
레벨 F랭크
- 처음 만지는 물건도 사용법을 금방 익히게 된다.
- 소모유물 사용 시, 마모 속도가 아주 조금 느려진다.
- 유물 손질, 복원 작업이 다소 능숙해진다.
- 인간에게서 유물을 빼앗을 확률이 증가한다.
-도굴꾼 기본 스킬 (4/4)-
염탐(F랭크)
언어학(F랭크)
무덤발굴(F랭크)
손재주(F랭크)
그리고 메시지창과 함께 미션 알림 창도 떠올랐었다.
[잠들어 있는 4개의 재능을 모두 깨우는데 성공하여 완전한 도굴꾼으로서 각성하였습니다.]
[미션완료. 무덤을 나가면 보상이 주어집니다.]
맨 처음, 경찰서에서 보았던 미션이 클리어 되었던 것이다. 주헌은 그 게임 보상 같은 시스템도 웃겼지만, 내심 보상이 뭔지도 궁금했다.
‘그러니까 빨리 무라마사를 얻고 나가봐야 겠군.’
그리 생각하면서 주헌은 어떤 길목에서 빠져 나왔다. 무라마사로 향하는 길은 함정 투성이이기 때문에 안전한 루트로 조금 돌아온 것이다.
뒤쫓아 올 아베 놈이야 샛길의 존재를 모를 테니, 함정 앞에서 전전 긍긍하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일반인들이야 무덤을 클리어하면 나갈 수 있을 테고.’
그런데 이 때였다.
주헌이 무라마사가 있는 곳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그는 뜻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아아악!”
근처에서 낯익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거긴 주헌이 일부러 피해왔던 함정 루트였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자 거기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으아아아, 살려줘!”
“살려주세요!”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은 어떤 골목의 바닥 쪽이었다. 놀랍게도 외길 한 가운데가 싱크 홀처럼 푹 꺼져있었던 것이다.
높이는 7m 쯤 될까. 칼 밭 구덩이에는 50명의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안에 있는 건 모두 무덤에 휘말렸던 일반인들이었다.
‘유물의 함정이군.’
다행히 죽은 사람은 아직 없다.
단지 사람들이 빠진 구멍 위로, 붉게 빛나는 오라의 다리가 생겨 있었다. 그걸 확인한 주헌은 한 눈에 그것의 정체를 알았다.
‘희생형 함정.’
그렇다. 이건 무라마사가 만들어낸 함정, 제물의 다리였다. 쉽게 말해 인간을 제물로 넣어 발판을 만들어내는 것. 그 발판을 밟고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구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발판을 보니 사람이 이미 지나간 듯한 흔적이 보였다.
곧 주헌을 본 사람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 저희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그들이 그렇게 울부짖는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빠져 있는 50명 중 한 명이 살인귀로 둔갑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여고생이 단검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다. 이미 검에 찔려 부상을 입은 사람도 보였다. 이건 이 무덤에 있는 무라마사의 질 나쁜 장난일 것이었다.
저 검에 찔리면 찔린 사람 역시 미쳐버려 살인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빠진 사람이 다 죽으면 함정의 발판도 사라져서 리셋 된다.
그런 식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기어서 올라오자니, 사람들이 벽에 가까워지면 살벌한 칼날들이 인간들을 위협했고 말이다.
결국 주헌은 구덩이 밑을 보면서 쯧, 혀를 찼다.
“누가 당신들을 여기에 빠트렸지? 설마 그 일본인?”
그러자 사람들은 엉엉 울었다.
“네, 자기가 출구를 잘 안다고 따라오라고…! 그런데 갑자기 이런 곳이 나타나서!”
“그러더니 비밀 엄수를 위해서 저희가 다 죽어야 한다고……!”
안 봐도 비디오였다.
아베인지 삼베인지, 그 일본 놈이 일반인들의 입막음을 하려는 것이었다.
‘무기랑 유물까지 빼앗아서 아무 짓도 못할 거라 생각 했는데.’
그 뿐인가. 함정을 통과하는 방법을 알다니.
‘보나마나 그 예언가의 짓이군.’
자신의 기억상 쇼토쿠태자의 유물 지배자는 멍청이라 유물을 잘 활용하지 못할 텐데 말이다.
해님과 달님 유물을 얻은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유물을 잘 활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주헌은 슬슬 그 예언가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물론 함정에 빠트린 건 아베지만, 애당초 일반인들의 입막음을 명령한 건 아베의 윗대가리들 일 것이다.
쇼토쿠태자의 미래기를 얻었다고 지들이 뭐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것들이 아직은 그냥 내버려 두려고 했더니.’
아무래도 그냥 둬서는 안 될 모양이었다.
이 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다시 울렸다. 칼에 조종당하는 여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탓이다.
이에 사람들이 옷을 휘두르는 둥, 여고생을 견제했다.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 장정의 사내조차도 학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악! 오지 마, 오지 마!”
“저리 꺼지라고! 아악!”
이윽고 공포에 질린 비명과 주헌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곧 주헌이 훌쩍 구덩이로 뛰어 들었다. 구덩이의 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위, 위험해요! 벽 쪽에는 칼이!”
하지만 미끄러지는 주헌은 칼을 가볍게 뽑아 들었다. 이집트 신관의 나이프였다. 그걸 주헌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주헌을 위협하는 잡스러운 칼날들은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아……!”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그럴 때 칼에 조종당하는 여고생이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다음 먹이는 주헌으로 결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꺄악! 위험해요!”
그러자 주헌이 손을 움직였다. 물론 유물에 조종당하는 죄 없는 여학생을 절권도로 날려버리는 취미는 없었다.
오히려 주헌이 꺼낸 건 아베에게 훔친 유물 중 하나, 동아줄 팔찌 쪽이었다.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C급-일반급/ 소모유물)]
- 사용가능 횟수 (940/1000)
동시에 주헌은 팔찌에 지배력을 실으며 명령했다.
“포박.”
그러자 유물이 번쩍 빛이 나면서 순식간에 길이가 늘어났다. 그러더니 살아있는 뱀처럼 여고생을 향해 달려들었다.
“꺄아악!”
동아줄이 조종당하던 학생을 옭아매자 여고생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밧줄은 그야말로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 여자를 순식간에 미라로 만들어버렸다.
칼을 쥔 손만 제외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주헌은 거칠게 몸부림치는 여고생에게 다가갔다. 칼에 조종당하는 여자는 이빨을 세우면서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쉿, 얌전히 있어.”
달래듯 부드럽게 손짓을 하던 주헌은 단칼에 단도를 빼앗아갔다. 사람을 대할 때와는 달리, 유물을 대할 때의 주헌의 손길은 무척이나 단호하고 강했다.
그러자 흉악한 단도는 아주 요동을 치면서 난리를 피워댔다.
주헌의 강한 지배력과 만나면서 더 난리를 치는 것이 틀림없었다.
[죽여라. 인간을 죽여라.]
심지어 머릿속으로 유물의 사념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주헌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유물 따위가 감히 어디서.”
동시에 주헌이 지배력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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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치고 내 말들엇!!.txt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