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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12화 (12/409)

00012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

<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3) >

확실히 자신의 기억과 딱 하나만큼은 달랐다.

“엄마아! 여기 어디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기서 내보내줘요!”

바로 무덤에 함께 휘말린 사람들이다. 무덤을 살피느라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개새끼들아 저리 꺼져! 내 뒤에 서지마!”

“당신이 뭔데 날 건드려! 당신이 뭔데!”

주저앉아 엉엉 우는 사람들, 황소처럼 흥분하는 사람들에 예민하게 싸우는 사람들.

피난급 고분화에 휘말린 탓인지, 벽과 바닥에는 영등포역 상가의 잔해들이 보였다. 하물며 인간 같은 마네킹의 신체가 뒤엉킨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빌어먹을, 옷보고 있었는데 여긴 웬 땅굴이야! 지하에 떨어진 거야?”

“제발 여기서 내보내줘요!”

주변에 한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이상한 곳에 갇혔다며 울부짖고 있었지만, 주헌에겐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피난급 이상 무덤은 입구고 뭐고, 그냥 인간들을 집어 삼켜 버리는 일이 흔했으니까. 그건 유물이 많은 인간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야 말로 악취미.

‘확실히 여기는 무덤도, 유물이 내는 과제도 쏘우급이지.’

아니나 다를까.

[흉악한 오라가 느껴집니다. 지배자들을 향한 유물의 악의가 느껴집니다.]

[발진 위험. 유물의 흉악한 오라가 신체를 찌르고 있습니다.]

[신체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눈앞에 흉악한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헌은 그걸 보면서 웃음을 흘렸다.

‘벌써 시작 됐군.’

흉폭한 유물 놈들은 지배자들, 즉 유물 사용자만 골라서 공격을 해댔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질병.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병이라는 걸, 이 가소로운 유물들은 매우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이 무덤에 들어왔던 놈들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지 않았었나. 심지어 의료유물이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놈으로.

아니나 다를까, 주헌 역시 팔뚝에 따끔한 고통을 느꼈다. 팔뚝에는 종이에 베인 듯한 상처가 생기면서 그 주변이 조금씩 곪고 있었다.

그걸 본 주헌은 아차 싶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나도 위험해진다.’

그걸 잘 아는 주헌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이런 무덤은 시간이 생명이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이곳의 유물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주헌의 짐작대로 사방은 무기 밭이었다.

벽에는 부러진 날붙이들이 꽂혀 있었고, 바닥에는 낡은 무기 손잡이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날붙이들이야 창, 단검,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지만 그 어떤 것을 봐도 서양식 형태는 아니다.

동양식.

특히 칼날의 물결 파문이나, 검 자루의 형태를 볼 때 일본도.

경험상 틀림없었다.

‘무라마사.’

한국에 웬 일본 유물이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부터 유물들은 전 세계에 랜덤하게 나타났으니까.

덕분에 유물의 소유권을 두고 국제간 싸움이 잦았던 것이다.

그 증거로.

‘미국에 이슬람 유물이 나타났을 땐 아주 가관이었지.’

미국 따위가 고결한 이슬람의 유물을 쓰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했던가. 덕분에 급진 수니파들은 유물의 소유자를 죽이고 미국에 테러까지 감행했었다.

그만큼 애국심이나 종교정신에 따라, 특정 유물에 눈이 뒤집히는 사태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번 무덤에서도 그런 놈이 한 명.

“움직이지 마.”

주헌의 뒤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낯익은 목소리에 주헌은 힐끗 뒤를 보았다. 거기엔 주헌을 쫓아왔다가 무덤에 휘말린 아베가 있었다. 제 딴엔 군인이라고 소리를 죽이고 주헌을 뒤를 노린 것이다.

“너 이 자식, 딱 걸렸어.”

그리고 등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헌은 물건의 정체를 잘 알 것 같았다.

그건 총이다.

아베는 주헌이 한쪽 어깨에 멘 캠핑가방을 보면서 말했다.

“너, 가방부터 열어.”

아베는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만약 이놈이 금도끼 은도끼를 가져간 놈이면 무덤에도 그걸 들고 오지 않았을까 싶었던 탓이다.

하지만 주헌은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예언가 때문에 의심을 샀군.’

그걸 깨달았으면 당장 도주해도 이상하지 않은 데, 주헌은 의외로 순순히 가방 안을 보여주었다.

내용물은 단순한 캠핑도구.

그 바람에 아베는 깜짝 놀랐다. 예상했던 물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도끼 은도끼가 안 보여……?’

비슷한 물건으로 캠핑용 엑스 나이프와 삽이 있었지만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일반 쇠물건이다.

그래서 가방과 주헌의 등을 번갈아 보던 아베는 당황했다. 예언대로라면 금도끼 은도끼와도 조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 녀석이 아닌 건가?’

결국 아베는 쯧, 혀를 찼다.

“됐어. 물을게 있으니 천천히 뒤돌아라.”

주헌이 몸을 돌리자 권총을 겨누며 경계하는 아베와 무덤에 휘말린 일반인들이 보였다.

일반인들은 총을 들고 있는 아베를 보며 몸을 떨었다. 난데없이 이런 이상한 곳에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총을 든 괴인까지 있으니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아베는 이놈의 정체를 확실히 하는 게 더 중요했다.

‘만약 이놈이 그 예언의 도굴꾼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잘못하면 이 무덤의 유물도 빼앗길 수도 있지 않은가!

아베는 이미 이 무덤의 유물이 무라마사라는 걸 알았다. 예언가 덕분이었다. 그리고 일본도 무라마사는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본도 중 하나였고, 사무라이 정신과도 연결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타국인이 가져가고, 사용한다는 건 일본에게 있어서는 분하고 수치스러운 일.

‘어느 나라에도 절대로 뺏기면 안 된다.’

만약 그런 일이 생겼다간 일본의 총리와 간부들이 아베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숱한 자위대 군인들 중에서도 유물을 사용할 수 있어 특별히 발굴단 일원으로 선발된 자신이 아닌가.

그 책임은 막중하다.

그랬기에 아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죽기 싫으면 대답해라, 한국인.”

“뭘?”

물론 진지한 아베 앞에서 주헌은 귀나 후비지 않으면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빈정 상한 기분을 억누르며 아베가 일본어로 물었다.

“이틀 전, 밤 7시쯤엔 어디에 있었지?”

그러자 허, 가소롭다는 주헌의 웃음소리가 지하에 울렸다.

“너 경찰이야?”

“뭐?”

“네가 경찰이냐고. 그 질문에 답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주헌의 시니컬한 웃음에 아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 시건방진 새끼가.

그는 총을 바짝 세우며 눈을 부릅떴다.

“이봐. 넌 이게 안 보이나?”

“보이는데? 총이잖아.”

주헌은 아예 천연덕스럽게 웃기까지 했다. 진짜 머리가 돌지 않고서는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머리가 날아가기 싫으면 대답해.”

그러자 귀를 후비던 주헌이 코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래? 쏠꺼냐?”

“이봐, 한국인. 상황 파악 잘해라. 여기서 널 죽이고 목격자들도 전원 죽이면 그만이니까.”

“음, 소용 없을 테니까 안 쏘는 게 좋을 텐데.”

“뭐라고?”

이게 진짜 미쳤나!

결국 머리에 핏대가 선 아베는 살벌하게 웃었다.

“오냐, 이자식이 다리라도 날아가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동시에 참다 못한 아베는 일을 터트리고 말았다. 주헌을 향해서 기어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탕!

그렇게 폭격소리가 울리고, 움츠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교차했다. 사람들은 주헌의 비명소리를 예상했다.

그러게 왜 총을 든 사람 앞에서 깐죽거려서!

하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주헌 쪽이 아닌 아베였던 것이다.

아베가 총을 발사하자마자 총이 폭발하면서 아베의 손에 불똥이 튄 것이다.

“크윽!”

아베는 피투성이가 된 손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걸 보며 주헌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쏘지 말라고 했잖아. 멍청아.”

“너!”

주헌은 아베의 손을 힐끗 보면서 쯧쯧 혀를 찼다.

“뭐, 무덤 안에서 그 정도로 끝나서 운 좋은 줄 알아라.”

주헌은 그렇게 말하면서 길 막지 말라는 듯, 아베의 엉덩이를 뻥 걷어찼다.

아베의 권총이 폭발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은 무덤이었다. 무덤 안에서는 그 어떤 현대식 무기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뿐인가?

조금이라도 유물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건이면, 핸드폰이라도 죄다 박살내는 것이 유물이란 놈이었다.

그러니 유물의 관할인 무덤 안에서 총 따위를 쏘면 저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덤 안에서의 공격수단은 오로지 유물과 격투기뿐이지.’

반면 이를 모르는 아베는 화상을 입은 손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저 놈이 그 예언 속의 그 놈인가!’

무덤에 대해서 잘 아는 듯한 뉘앙스도 그렇고, 뭔가 수상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것이야 말로 이상한 것이리라.

결국 아베는 이를 갈았다.

“설마 네가 금도끼 은도끼를 가져간 거냐!”

그러자 주헌은 아베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웃을 뿐이었다.

“그래, 이 바보야. 어떻게 눈앞에 두고도 모르냐.”

동시에 주헌이 가방에서 물건을 꺼냈다. 그건 아베가 눈여겨보지도 않고 있던 캠핑용 도끼였다.

아베는 그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주헌이 금도끼에 지배력을 실어 발동 시켰다. 그러자 평범한 쇠에 불과하던 금도끼가 끝에서부터 빛이 나더니, 곧 빛을 따라 껍질이 벗겨지면서 금이 드러났다.

그 광경을 보면서 아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쇠도끼였는데 저게 어떻게!”

마침내 금도끼가 모습을 되찾자 주헌이 코웃음을 쳤다.

“왜? 그 쪽의 잘난 예언가님은 유물을 위장하는 법도 모르나 보지?”

“!”

동시에 주헌이 낮게 읊조렸다.

“재보를 찾아내라. 금도끼.”

도끼가 번쩍이자 주헌은 웃었다. 도끼는 수많은 무기들의 산에서 단 하나의 물건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무라마사는 저쪽인가.’

그걸 깨닫자마자 주헌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아베는 입에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젠장, 저자식이!”

저놈이 무라마사를 가져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

‘할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자신 역시 유물을 사용해서 놈을 추격하는 수밖에 없다.

일반인 목격자들의 처리는 그 다음!

그렇게 생각한 아베가 아픈 손을 부여잡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

주머니에 분명 있어야 할 유물이 없었다. 자신이 한국에서 훔쳐낸 유물 두 점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분명 이 무덤에 들어올 때까지 만해도 있었는데!

“아씨, 내 유물은 또 어디로 간 거야!”

그의 절규가 무덤에 쩌렁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물론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었다.

그저 이 군인은 몰랐을 뿐이다.

예언 속의 한국인은 사실 손버릇도 굉장히 고약하다는 것을.

============================ 작품 후기 ============================

데헷 손버릇도 나빠요. txt

선추코 감사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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