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좋은 건 쟁여놔야지 =========================================================================
< 좋은 건 쟁여놔야지 (4) >
쾅!
곧 엄청난 섬광이 무덤 안을 뒤덮었다. 주헌의 위압에 견디다 못해 기어이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뱀과 연못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서 낯익은 실루엣으로 변해갔다.
그것이 진짜 금도끼와 은도끼.
‘나왔다.’
흑심에 찬 주헌은 기다렸다는 듯 도끼 실루엣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것은 주헌에게 알맞은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덤을 경험해본 자>의 칭호를 획득하여 스킬이 생성 됩니다.]
[도굴꾼 기본 스킬 무덤발굴(F랭크)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낯익은 메시지.
하지만 이번에는 뜻 밖에도 낯선 메시지가 하나 더 있었다.
[<비열한 유물 협박자> 칭호를 획득하여 지배력이 상승, 친화력이 하락했습니다.]
유물 지배력: A+ (대지배자)
유물 친화력: D- (강압적인)
그 메시지를 보면서 주헌은 웃음을 터트렸다. 지배력과 친화력이 시스템적으로 뜨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런 칭호를 받게 될 줄이야.
‘지배력이 오른 건 좋은데 친화력이 떨어지다니.’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친화력이 떨어졌지만, 주헌은 차라리 이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유물과 친해지면 얕보인다.’
그렇기에 친화력보다는 지배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게 주헌의 경험이었다.
‘이 녀석 역시 마찬가지 일 테고.’
주헌은 손에 쥐어진 금색과 은색의 도끼를 살폈다. 도끼는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고전적 형태는 아니었다.
금도끼는 현대식 엑스(axe)로, 마치 도끼날과 등산용 피켈이 합쳐진 듯한 형태였다. 그리고 은도끼는 마치 아웃도어용 삽이었으나, 삽날이 날카로워 역시나 도끼에 가까웠다.
얼핏 곡괭이와 삽의 형태라.
확실히 도굴꾼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의 물건이지 않은가. 그래서 주헌은 웃음이 나왔다.
‘능력은 직접 사용해봐야 알겠군.’
그리고 주헌이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할 때였다.
“젠장! 유물은!”
갑자기 동굴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주헌은 황급히 몸을 숨겼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이곳에 들이닥친 건 물에 떠밀려갔던 아베와 린다였다.
“찾았다! 연못이야!”
특히 아베는 용소를 발견하자 밝은 얼굴로 달려갔다. 그는 마치 이 무덤이 어떤 무덤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연못을 발견한 그는 항아리 모양의 유물을 망설임 없이 연못에 던져 넣었다.
풍덩!
하지만 이미 금도끼와 은도끼는 다 털리고 난 후가 아닌가. 무슨 일이 벌어질 리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기대에 가득 찼던 아베의 얼굴이 똥빛으로 변하며 결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거야! 분명 예언가가 연못에 유물을 던지라고 했는데!”
하지만 아베에 말에 동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를 따라왔던 린다 조차도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예언가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울 뿐.
“예언가? 일본의 유물 사용자가 그렇게 말했나요?”
“칫!”
“……일본의 예언가는 도대체 어떤 유물을 사용하고 있길래!”
“그걸 알려 줄 것 같아요?!”
“말해 주면 좀 덧나나요!”
린다는 어떻게든 캐내려고 했지만, 입이 가벼울 것 같은 아베는 의외로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반면 영어로 싸우는 둘의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듣고 있던 주헌은 쯧 혀를 찼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일본의 미래기 사용자가 이 무덤에 대해 예언 했었나 보군.’
그래서 아베가 무덤의 클리어 방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쓰는 녀석은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쇼토쿠 태자의 미래기는 기억상 S급(영웅전설급)이다.
‘다른 건 몰라도 등급이 높은 놈은 눈엣가시지.’
그 때 끈질기게 캐묻는 린다에게 아베가 짜증을 냈다.
“아씨! 우리 예언가에 대해서는 좀 그만 물으란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무덤의 입구가 갑자기 열린 것도 그렇고, 누가 벌써 선수를 친 걸 수도 있단 말이야!”
그 말에 린다는 봉 라이트로 확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있는데…….”
“내 말이! 역시 먼저 들어온 놈이 있었나!”
바닥만 살펴보던 아베가 이번엔 주변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헌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출구로 나가려면 저들을 지나쳐야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들과 조우하든 말든, 사실 그건 주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걸리는 게 있다면 저들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했을 때 좀 귀찮아질 수도 있겠다는 것 뿐?
‘그냥 둘 다 없앨까.’
순간 서늘해진 눈빛으로 주헌이 이집트 신관의 나이프를 세웠다.
어차피 무덤에 만난 놈들은 모두가 유물을 노리는 적이었다. 무덤 안에서 서로를 배신하는 일은 흔했고, 죽이는 일도 당연했다.
그리고 주헌이 칼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베는 겁도 없이 주헌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빌어먹을, 주변에 누가 없나 살펴봐요!”
그렇게 한 걸음, 두걸음.
“이렇게 되면 선수 친 놈이라도 일본에 끌고 가야 하니까!”
주헌이 살의를 띈 채 아베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칼을 세워 발동시키려는 순간.
[이집트 장의사의 신들린 나이프 (C급-일반급/ 소모유물)]
[사용 가능 횟수(54/100)]
나이프에서 모션 그래픽 같은 글씨가 떠올랐다.
그걸 본 주헌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횟수제한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베와 린다를 보더니 곧 계획을 변경했다.
‘그래. 고작 이런 곳에서 두 번이나 낭비할 수는 없지.’
또 아직은 평화로운 시대에서 일을 벌였다간 얼굴이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빨리 무덤에 돌아다녀도 모자란 마당에, 발목을 잡힐 일을 만드는 건 사양이었다.
그래서 그가 집어 든 것은 돌 하나.
그러더니 돌을 반대 방향으로 집어 던졌다. 날아간 돌은 돌 길 위에 떨어지면서 고요한 동굴에 울려 퍼졌다.
탁, 탁!
아베와 린다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지?”
“저쪽인가!”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돌아간 순간, 주헌은 들고 있던 도끼들에 지배력을 실었다. 이 도끼는 이 무덤을 만든 장본인이었고, 덕분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무덤 클로즈(close)!’
그렇게 주헌이 명령을 내리자 도끼가 번쩍 빛이 나더니,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주변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쿠구구!
“뭐, 뭐야!”
땅이 뒤흔들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덤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아베와 린다는 비명을 질렀다.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해요!”
“하지만 어느 쪽이 출구야!”
“일단 왔던 길로 달려요!”
그렇게 그들이 우왕좌왕 혼란스러워 할 때 주헌은 홀로 출구 쪽으로 달렸다. 생성초기의 무덤인지라 함정도 없는 길은 일방통행이었고, 출구까지도 그리 멀지 않았다.
‘저기다.’
쿵!
주헌은 빛이 새어나오는 곳의 뚜껑을 열었다. 이 무덤의 출구는 아무래도 이 주변의 맨홀과 연결되었던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인적이 드문 동네 상가들이 보였다.
그리고 주헌이 완전히 밖으로 나왔을 때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르릉!
동시에 빌라단지를 뒤덮었던 수상한 무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으로 꺼졌다. 마치 땅으로 흡수 되는 것처럼. 그러자 고분에 파묻혀 있던 빌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해를 입은 빌라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건물들이 무사한 건 무덤의 등급이 낮기 때문이리라. 위험한 무덤일수록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수준이 재난 수준이니까.
그걸 보면서 주헌은 무덤에서 가지고 나온 도끼의 상태를 살폈다.
무덤에서 막 가지고 나온 거라 복원 과정을 거쳐야 완전히 능력이 발휘되겠지만, 아예 못 쓸 정도도 아니다.
기능은 차차 확인해봐야 겠지만 감으로는 대충 재물을 부르는 쪽일 터.
‘뭐, 이정도면 성공적이군.’
주헌은 웃었다.
* * *
하지만 웃는 주헌과 다르게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뭐라고요? 이미 예언이 있었다고요? 유물을 먼저 선수 칠 한국인이 있었다고?”
가까스로 무덤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아베는 한 통의 전화에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기껏 예언에 따라 무덤에 들어갔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이봐요! 그 사실을 이제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일 중요한 걸 말 안하고 있으면!”
그러자 전화 속 노인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자네도 알지 않나, 미래기 유물 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설마 또 한자를 못 읽었답니까?”
[바로 그걸세.]
“아오!”
아베는 통화 상대가 고위층 관리만 아니었어도 이 돈만 쳐 나오는 국제전화를 당장 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탓해봐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전부 쇼토쿠태자의 미래기를 사용하는 계집의 문제지.
‘이게 다 머리 빈년의 손에 떨어져서야!’
<쇼토쿠태자의 미래기>는 무덤에서 스스로 나와 주인을 선택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미래기는 참으로 터무니없는 주인을 선택해버렸다.
바로 고어는 커녕, 한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답 없는 날라리 여고생에게 떨어진 것이다.
한자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읽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데, 하물며 고어까지 섞인 걸 해석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 미래기에 실리는 문자들은 주인만 읽을 수 있으니,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옆에 학자들 붙여줬잖아요! 못 읽겠으면 받아 적어서 학자들한테 주라고 지시했는데!”
[아니……미래라는 게 실시간으로 변하다보니, 금방 금방 내용이 지나간다고 하더라고.]
“그냥 닥치고 다 적으라고 해요!”
[그래서 다 받아 적긴 하는데, 읽지를 못하니 뭐가 중요한 예언인지 몰라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거지.]
“아오씨!”
사실 이번에 무덤에 대한 정보도 그나마 겨우 알아낸 것이다. 이런 마당이니 일본의 예언가는 무적이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자네를 중심으로 미래를 읽고 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지금까지처럼 잘만 해주게. 한국에서 빼앗은 유물은 우리 연구팀이 갈 때까지 잘 숨기고 있고.]
결국 아베는 부글부글 끊는 마음을 식히며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한국에서 얻은 유물을 들고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다.
‘바보 한국인들이야 유물을 훔쳐가도 모르겠지만.’
다만 윗사람들이 쓸데없이 조심하라는 입장이었다. 한 번 틀어졌다간 괜히 사죄니 어쩌니 귀찮게 한다나 어쩐다나.
‘흥. 정당한 경매로 가져간 문화재도 약탈이라고 하는 놈들이니.’
일제강점기 때 가져간 골동품들로도 그 난리인데 능력을 가진 유물이라면 얼마나 지랄을 하겠느냐. 아베의 상관들은 그렇게 이상한 논리를 펼치곤 했다. 물론 아베는 그런 그들에게 동의하는 사내였다.
어쨌든 알아낸 정보는 결국 금도끼와 은도끼를 가져간 한국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한국인은 어째서인지 무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
‘심지어 우리 일본을 삼킬 수 있는 놈이라고?’
미래기에서는 마치 시 같은 구절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일본을 삼킬 거대한 위험이 있으니, 옆 나라에서 나타날 성대하고도 거친 별이로다.
그걸 되새기며 아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별은 개뿔이! 기껏해야 조선 놈이!”
뭐 어차피 잘 된 일이 아닌가.
무덤에 대해 아는 놈이 있다면 어차피 다음 무덤에도 그 놈이 냄새를 맡고 나타날 터.
“그 때야 말로 족쳐서 일본에 넘겨주지.”
아베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상대가 어떤 놈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