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좋은 건 쟁여놔야지 =========================================================================
< 좋은 건 쟁여놔야지 (3) >
쿵!
주헌이 어둠속에서 뭔가를 만지자마자 지하 통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주변이 흔들리더니, 점점 외곽으로 떨림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막 입구에 들어온 린다와 아베는 깜짝 놀라 경계했다.
“무, 무슨 소리지?”
린다는 위험을 감지했는지 재빨리 전등을 켰다. 전등을 켜자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몸부림을 치며 뚫고 간 것 같은 동굴이 나타났다.
길은 한 갈래가 아닌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틀림없이 고분화 현상 탓에 이런 지하통로가 생겨난 것이리라. 물론 진짜 동굴은 아닌 터라 종유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괜히 긴장하며 주변을 살피던 아베가 헛웃음을 흘렸다.
“거참 멀리서 물소리까지 들리는 게 딱 워터파크……”
하지만 거기까지 말을 내뱉은 아베와 린다는 동시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깐만.
물소리?
쿠구구.
물소리도 그냥 물소리가 아니었다. 처음엔 졸졸 거리는 듯하던 물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폭포 같은 굉음소리로 변하는 것이었다.
“뭐, 뭐야 이거!”
그리고 마침 내 그 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왔을 때, 린다와 아베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쓰나미 같은 파도가 자신들을 향해 덮쳐들었던 것이다.
“시팔!”
“저게 뭐야!”
그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무작정 달렸지만 인간의 발속도가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결국 파도에 휩쓸린 비명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끄아악!”
결국 비명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주헌에게 닿았을 때, 그는 웃음을 흘렸다. 그는 소리만으로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눈치 챈 기색이었다.
“그러게 누가 함부로 뒤따라오래, 병신들.”
주헌은 낄낄 웃으며 무덤의 중심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별로 한 것도 없었다. 그저 유적에 있는 함정을 살짝 건드려줬을 뿐.
처음 들어온 무덤의 함정을 어떻게 잘 아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딴 건 주헌에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어지간한 무덤들의 함정들은 다 머릿속에 있기도 했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유적 내부에 들어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왜?
무덤 내부에도 툼글리프가 있으니까.
주헌이 일회용 라이터를 동굴의 벽 쪽으로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그 모습이 고대사원이나 피라미드 무덤 속의 벽화나 조각 같아서 주헌은 웃음을 흘렸다.
[언어학 스킬의 영향으로, 툼글리프의 독해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그랬다. 이건 무덤의 정보를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이곳의 유물이 여자를 좋아하는지 남자를 좋아하는지, 그 딴 식의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도.
‘이걸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그 유물이 맞는 것 같은데.’
주헌은 계속 걸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무덤의 중심부, 즉 유물이 있는 핵에 가까워질수록 곰팡이 냄새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무덤냄새는 언제 맡아도 죽을 맛이야.’
그렇게 주헌이 내리막길로 내려갔을 때였다.
“아.”
탁 트인 공간과 함께 투명한 연못이 나타났다. 생긴 것은 흡사 동굴 속에 생긴 용소, 호수라기엔 작고 연못이라기엔 제법 컸다. 어두운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발광하는 연못 탓에 주변은 매우 밝았다.
주헌은 그걸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찾았다.”
틀림없었다. 이곳에 그 유물이 있다. 그렇게 판단한 주헌은 이집트 나이프 유물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남들이 까무러칠 일을 저질렀다.
풍덩!
기껏 얻은 유물을 연못에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무슨 금붕어에게 먹이라도 던져주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물에 대해 아는 아베나 린다라면 기절초풍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쿵!
땅이 뒤 흔들리는 것 같은 지진이 또 일어나더니, 연못 안에서 하얀 짐승이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 크기가 사람을 삼킬 만큼이나 컸다.
[또 어떤 불쌍한 놈이 물건을 빠트려 버렸구나.]
나온 것은 건물 크기의 거대한 흰 구렁이였다. 마치 산신령처럼 모습을 드러낸 순백의 구렁이는 입을 쩍 벌렸다.
얼핏 살벌해 보이는 입 안에는 주헌이 던졌던 나이프와 똑같은 유물이 두 개 있었다. 단지 색깔만 금색과 은색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 구렁이는 주헌을 분석하듯 바라보며 눈웃음을 흘렸다.
[자 말해보거라. 이 금 나이프와 은 나이프 중 어느 것이 네 것이냐?]
그 말에 주헌은 기다렸다는 듯, 혐오 어린 실소를 흘렸다.
왔구나. 이 건방진 유물놈.
* * *
어느 것이 내 거냐고?
구렁이의 질문에 주헌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뻔한 질문을 하는 군.’
이 설화는 전래동화를 아는 성인이라면 도무지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지 않나.
<금도끼와 은도끼>
확실했다. 이곳의 유물은 금도끼와 은도끼였다. 그리고 이 상황은 저 빌어먹을 유물 놈이 내는 일종의 시험인 것이다.
이처럼 유물을 얻기 위해서는 무덤 안의 과제를 정당히 통과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유물이 주인으로서 인정을 하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주헌은 이 유물의 가치를 계산했다. 별 득도 안 되는 유물을 위해 목숨을 바쳐 개죽음을 당하는 일들도 빈번했으니까.
‘뭐, 그래도 금도끼나 은도끼정도면 그저 그런 쓰레기도 아니지.’
금도끼 은도끼는 기억상 얼추 B급 (희귀급). 그 정도 급이면 일단 차지하고 봐야한다.
그럴 때 구렁이가 주헌을 재촉해왔다.
[자, 어느 것이 네 것이냐?]
곧 주헌의 시선이 물건에 향했다.
금도끼와 은도끼, 아니 금 나이프와 은 나이프인가. 척보기 에도 귀해 보이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모를 주헌도 아니었다.
“둘 다 내 것이 아닌데?”
그러자 씨익 눈을 반달로 접던 구렁이가 이번엔 낯익은 나이프를 보여주었다.
[그럼 이것이 네 것이냐?]
쇠로 된 나이프. 그건 어딜 보나 그건 자신의 것이 맞았고, 금도끼 은도끼 설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맞아. 그게 내거야.’
그러면 정직함의 대가로 금도끼 은도끼까지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무덤은 그렇게 클리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미국 놈이나 일본 놈도 이렇게 유물을 들고 나갔었겠지.
금도끼 은도끼는 <헤르메스와 간사한 나무꾼>이라는 꽤 유명한 이솝우화가 원형이었고, 여러 나라에 흡사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등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걸 그냥 들고 나갔었겠지.’
그랬기에 주헌은 선량하게 웃으면서 구렁이에게 물었다.
“잠깐 내 물건이 맞는 지 확인해도 돼?”
[얼마든지.]
동시에 나이프를 받은 주헌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리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푸욱!
[꽤애애액!]
구렁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토했다. 주헌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이집트 신관의 나이프를 구렁이의 몸통에 쑤셔 박은 것이다.
미끌거리는 비늘을 통과한 나이프는 뱀의 살을 회뜨듯 가르고, 장기를 도려냈다.
서걱! 칼끝에서 둔탁한 뼈의 감촉이 스치고, 피가 튀었지만 주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쿠웅! 풍덩!
결국 뱀의 육중한 몸뚱이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피투성이가 된 구렁이는 괘씸하다는 듯 피를 토했다.
[도대체 왜……!]
“왜?”
[정직하게만 말했으면 이 금도끼와 은도끼가 네 것이 되었을 텐데!]
산신령이 땅 밖에서 죽는 소리를 냈지만, 유물에 대해 잘 아는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시끄러워. 난 기본적으로 너희를 안 믿거든?”
[뭐?]
“그 유물에 저주라도 걸렸을지 또 어떻게 알아?”
[……!]
동시에 구렁이는 찔리는 게 있는지 몸을 떨었다. 뱀은 흔들리는 눈으로 금색과 은색 유물을 보았다.
그 반응에 주헌은 역시라며 이죽거렸다.
‘그럼 그렇지.’
그랬다.
실제로 과거에 나왔던 금도끼 은도끼는 미국에서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야 말로 제이슨이 되어 신나게 사람들을 죽여댄 것이다.
그건 다 진짜 금도끼 은도끼의 괘씸한 장난이었다. 저주가 걸린 가짜를 선물로 보내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녀석도.
“네가 준 선물을 받으면 미치광이 살인자가 될지 알게 뭐야?”
주헌의 말에 뱀은 허를 찔린 듯이 눈을 부릅떴다.
[큭! 인간 주제에 어떻게 그걸……!]
“어떻게?”
하지만 표표히 웃던 주헌은 이집트 신관의 나이프를 들고 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푸욱!
[아악!]
다시 한 번 뱀의 몸을 찔렀다. 몸이 갈라진 것으로도 모자라 졸지에 구멍까지 난 뱀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도구는 인간이 쓰려고 만든 거야. 그런데 인간이 도구의 생각을 못 읽어서야 쓰나?”
미래를 겪은 주헌은 이 유물이란 놈들의 가증스러운 본색을 잘 알았다.
처음에야 사람들도 유물을 행운과 부의 천사라 여겼지만,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도구 놈들에게 마음을 허락하면 안 된다.’
유물들은 분명 인간에게 많은 능력과 부를 전해주었지만, 사실 본성은 해충들에 가까웠다.
인간의 3대 욕구가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면 이놈들의 3대 욕구는 막말로 인간무시, 인간조롱, 인간 살해라고 해야 했으니까.
능력과 부를 줬으니 마치 그 대가라도 내놓으라는 걸까. 엄청난 능력으로 유혹하면서 인간의 눈을 멀게 해놓고, 결국엔 주인을 폐인으로 만들고 죽이려고 하는 작은 악마들.
‘그러니까 유물에게는 교육이 필요하지.’
그래서 인간은 유물이라는 이 건방진 놈들을 인간만의 특별한 힘으로 억눌렀다.
바로 <지배력>으로.
“얌전히 굴복해라, 유물.”
그리 말하면서 주헌은 뱀의 몸통에 찔러 넣었던 나이프를 비틀었다.
[악!]
쿵!
하얀 뱀이 피를 흩뿌리면서 요동을 쳤다. 날붙이에 의한 고통보다는 칼에서 느껴지는 주헌의 <지배력> 때문에 더욱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쿵쿵!
[인간 놈이!]
<지배력>이란 유물을 제압할 수 있는 재능, 혹은 카리스마를 말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지배력이 낮으면 유물을 만지기는커녕, 유물 따위에 휘둘리는 일반인이나 하급 사용자가 되고 만다.
‘뭐 지배력에 대해 공론화 되는 건 몇 년 뒤겠지만.’
반면 지배력에 괴로워하던 뱀은 사납게 몸부림을 치면서 외쳤다.
[이런 식으로 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원래라면 유물이 내는 과제를 통과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법. 그렇게 유물과 친해지며 이놈들에게 주인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딴 놈들한테 인정받으려다가 또 병에 걸릴 수는 없지.’
유물은 주인과 친해지면 은밀하게 독기를 뿜어 자신의 주인을 앓게 했다. 마치 조금씩 음식에 독약이라도 타듯이. 그래서 주인이 약해지면 바로 주인을 조종하려고 드는 것이다.
그리고 유물들의 그 본성을 깨달았을 땐 이미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치사율 90%의 불치병을 얻은 뒤였고, 주헌 역시 의료 유물만 바라보며 권 회장을 따라야 했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확실히 할 생각이었다.
“난 니들이 내는 과제를 풀면서 너희들과 히히덕거릴 생각도, 비위를 맞출 생각도 전혀 없다.”
[뭐라고?]
구렁이는 희번뜩하게 눈을 떴지만, 주헌은 코끝으로 비웃었다.
무덤의 유물이야 강제로 털어 가면 그만.
“인간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용지물들은 닥치고 지배나 받는 게 어울리지.”
[너!]
“굴복하기 싫으면 하지 마. 어차피 내 말을 안 듣는 유물은 파괴하면 그만이니까.”
그 말에 구렁이는 심하게 당황했다. 이 유물로서는 주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얼핏 주헌을 분석하기로도 이 인간은 유물에 대한 욕심이 엄청났다. 인간 중에서도 매우 탐욕스러울 정도로 유물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유물을 파괴 하겠다고? 이게 돌았나!
[이 미친놈이!]
하지만 주헌이 위압적인 눈빛으로 싸늘하게 읊조렸다.
“닥쳐라, 도구.”
바로 그 때였다.
[큭!]
결국 위압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주헌이 정말로 자신을 파괴할 미친놈이라고 생각한 건지, 뱀과 연못에서 엄청난 빛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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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