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좋은 건 쟁여놔야지 =========================================================================
< 좋은 건 쟁여놔야지 (2) >
쾅!
사람들의 소동이 가라앉았을 때 쯤, 어둠 속에서 큰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무덤을 파괴하려는 소리였다.
“오! 파였어!”
“몇 번만 더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대피한 지 오래였지만, 군인들은 지시를 내리며 무덤을 파괴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상태 좋아, 그대로 몇 번 더 포격해본다.”
도심 한 복판인지라 화력이 약한 무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통하긴 통하는 것 같았다.
“이제 구멍이 완전히 뚫리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라져.]
그들은 곧 있으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초조해하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젠장!”
바로 일본 자위대 발굴꾼 아베와 CIA 린다 워커였다. 특히 아베는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왜 무덤을 파괴하는데도 입구가 안 나타나는 거야!’
그렇다.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구>를 통해야 했고, 아베와 린다는 그 입구를 찾는 것이었다.
‘벌써 30분이나 흘렀는데.’
분명 쇼토쿠태자의 유물을 가진 ‘예언가’의 말에 따르면 무덤을 파괴하면 입구가 나온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무덤의 입구가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분명 박사의 이론대로라면 지금쯤인데...’
린다 역시 초조해하며 주변을 살피는 건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무덤을 발견했을 땐 항상 멀지 않은 곳에 무덤의 입구가 열렸기 때문에 그걸 찾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그런 그들을 비웃는 한 명이 있었다.
‘병신들! 백날 파괴 해봐라, 안에 들어갈 수 있나.’
그 사람은 바로 주헌이었다.
주헌은 저들이 무덤을 파괴하려는 이유를 모르진 않았다. 무덤을 파괴하면 무덤의 입구가 드러난다고 믿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일일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덤의 입구는 무덤을 열심히 파괴한다고 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
‘무덤의 입구는 늘 숨겨져 있거든.’
대놓고 보이는 곳에 입구가 생길 때도 있지만 그건 대부분, 호전적인 유물의 미끼다.
이를 테면 무덤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위해 일부러 문을 열어주는 놈들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죽어버린 타국의 군인들이 많았다.
그러니 최대한 안전하게 유물을 갈취하려면 반드시 입구를 찾아 그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하나.
‘입구를 찾아내려면 반드시 그게 필요한데.’
그럴 때였다.
“주헌아, 아까부터 뭘 찾고 있는 거야?”
군인에게 얻어맞을 뻔한 불쌍한 청년, 아니 주헌의 룸메이트는 주헌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헌은 딱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시대에는 자신이 찾는 걸 말해줘도 알아먹을 사람이 없었으니 만큼.
그럴 때였다.
“진짜 세상이 미쳤나봐. 하다 하다 저런 거 까지 나오다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뭔가를 감지한 주헌이 급하게 자리를 이동했다.
‘혹시 그게 나왔나?’
우는 사람들과 구경나온 사람들로 섞인 그 곳은 근처 단지의 야외 주차장 쪽이었다.
“도대체 저게 뭐지? 재수 없게 진짜.”
“아이고, 집 값 떨어지겠네.”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자 주헌은 척봐도 불길해 보이는 낙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강령 술이라도 한 것 마냥, 주차장의 벽이 핏빛 문자로 가득했던 것이다.
얼핏 고대 한자 같기도 하고 이집트 상형문자 같기도 한게, 일반인들이라면 그냥 취미가 고약한 그래피티라고 볼 수도 있는 문자들이었다.
“누가 장난 친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갑자기 저게 나타났다니까!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그거잖아.”
“아 됐고! 군인들이 저런 것도 안 닦고 뭐해요! 아파트 단지 주변에 저런 게 있으면 집 값 다 떨어진다고!”
“이 아줌마가 미쳤나! 지금 상황이 이런데 무슨 개소리야!”
“물러나세요! 위험합니다! 물러나세요!”
행여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군인들까지 투입되어 바짝 경계가 올라갔다. 그리고 문자가 시한폭탄처럼 깜짝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식겁하기에 이르렀다.
“꺄악! 갑자기 뭐야! 문자가!”
마침내 글자가 크게 번쩍이자 군인들이 시민들을 밀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씨 물러서라고! 진짜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아아악! 폭발한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주헌만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안 폭발한다, 이놈들아.’
저것의 이름은 툼글리프(Toombglyph).
무덤과 함께 돌연 나타난 정체불명의 무덤문자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헌이 계속 찾고 있던 것도 바로 저것이었다.
저게 있어야 무덤의 입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무덤 주변에 스물 스물 나타나기 시작했군.’
저놈은 유적의 정보를 내뱉는 놈이었다. 저것을 보고 유적의 입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아무나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툼글리프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주헌 정도 밖에 없을 테니까.
‘대충 입구가 어딘지 알겠군.’
주헌이 문자를 읽어낸 그 순간이었다.
[<뛰어난 해독가>칭호를 획득하여 스킬이 생성됩니다.]
[도굴꾼 기본스킬 언어학(F랭크)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언어학 (활성화)]
레벨 F랭크
- 모든 언어에 대한 습득능력, 회화 능력, 구사 능력이 올라간다.
- 모든 언어에 대한 이해 능력이 올라간다.
- 유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며, 대화가 가능해진다.
- 툼글리프(유적문자)에 대한 지배력이 상승한다.
-도굴꾼 기본 스킬 (2/4)-
염탐(F랭크)
언어학(F랭크)
어이쿠?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스킬이 개방 되었다. 그걸 확인한 주헌은 내심 놀랐다.
상황에 맞춰 칭호를 얻고, 칭호를 통해 관련된 스킬을 얻은 건 처음 겪는 일인 만큼.
‘이런 식으로 스킬을 얻는 것이었나.’
염탐이 액티브 스킬이라면, 언어학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겠지.
그걸 확인한 주헌은 웃으면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정보도 확인 했겠다, 이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동현아. 넌 여기에 있어.”
“뭐?”
룸메이트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주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 *
주헌이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와 도착한 곳은 인적이 없는 인근 하천이었다.
서울 관악구를 가로 지르는 도림천에는 하늘을 가릴 만한 높은 다리가 서 있었다. 드문드문 찻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적막이 깔린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그래봐야 아까 있던 곳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긴 하지만 말이다.
‘이 근처인가.’
사실 주헌이 주차장에서 읽은 툼글리프는 엄연히 이 하천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고분화 지대라는 걸 증명하듯, 아까 봤던 툼글리프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주헌이 찾는 건 딱 하나의 문자였으니.
‘찾았다.’
다리를 지지하는 바닥 돌에 합집합 기호(∪)처럼 생긴 붉은 문자가 있었다. 그걸 확인한 주헌은 바로 이집트 나이프 유물을 뽑아 들었다.
이제부터 시작할 작업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지금부터 할 작업은 무덤의 <봉인해제식>.
꼭꼭 봉인되어 있던 무덤을 처음으로 개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의식이 아닌가.
그렇기에 주헌은 나이프 유물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쉭!
합집합 기호를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돌풍이 일며 쩌억, 문자가 파괴되었다.
그 순간.
쿵!
폭발소리와 함께 갑자기 땅이 뒤흔들렸다. 마치 땅에서 마그마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으로 주헌의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꺄아아악!”
갑자기 일어난 지진 현상에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재빨리 자세를 잡은 주헌의 앞으로 긴급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렬한 기운이 지저 위로 폭발합니다.]
하지만 경고는 잠시 뿐이었다.
‘온다.’
동시에 지면이 갈라지면서 강력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쾅!
물론 놀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숱하게 겪어본 적 있지 않은가.
무덤의 개방.
유물의 시대에 낮이면 낮, 밤이면 밤. 봉인을 푸는 걸 안 사람들이 툭하면 입구의 봉인을 풀어 조용할 날이 없었던 그 현상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터져나가는 붉은 빛이 그 시작을 알렸다. 마치 이곳에 무덤의 입구가 나타났다는 걸 알리듯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빛 속으로 뛰어 들어 들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이걸 발견하고 올 땐, 한 발 늦었을 테니까.
* * *
쾅!
갑자기 터지는 포탄 같은 굉음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한 몇 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까, 하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은 성층권에 닿을 듯 높이 치솟았다.
“이번엔 또 뭐야?”
“무슨 빛이야!”
일반인들은 무슨 레이저쇼라도 하는 거냐며 술렁거렸지만 그 빛을 알아보는 두 명이 있었다.
바로 아베와 린다다.
‘저건, 설마?’
‘입구?’
틀림없었다. 잘은 몰라도 저런 기이한 현상은 무덤과 연관 있는 현상일 터. 그리고 입구가 열렸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린다와 아베에게 각각 부하들의 연락이 날아왔다.
[입구가 열린 것 같습니다.]
[저희가 가볼까요?]
그걸 인식한 린다와 아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다. 물론 부하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바카춍(ばかチョン)들한테는 강한 2차 여진의 위험이 있으니 자리를 지키라고 해!”
급하니 본성이 나오는 걸까. 핸드폰을 들고 소리치는 아베의 으름장에 린다는 실소를 흘렸다.
뭐? 2차 여진의 위험?
“지질학자 흉내 잘 내시는군!”
거짓말도 적당히 해야지!
하지만 린다는 뭐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덤의 입구가 나타난 것 같은 지금의 상황, 한국군이 쫄래쫄래 따라오는 게 곤란하다고 여기는 건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이곳의 유물은 우리 거다.’
그들이 각자의 흑심을 품으며 빛이 뿜어지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엔 거대한 싱크 홀이 파여져 있었고, 그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으며 광에너지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저 구덩이, 저거 분명해. 입구야!”
몇 번 안 되긴 하지만 그들이 자료상으로 본 그것이 맞았다.
그러자 린다가 먼저 어두운 구덩이 안으로 돌을 집어 던져보았다.
탁, 탁!
풍덩!
물소리가 꽤 깊게 났다.
‘바닥은 물인가!’
그걸 확인한 린다가 밧줄을 내렸다. 하지만 다급했던 아베는 겁도 없이 그냥 뛰어 들었다.
“이봐!”
놀란 린다가 입을 벌렸지만, 큰 물소리와 함께 ‘くそ(젠장)’ 하는 욕지거리가 울려 퍼졌다.
“컥, 컥! 빌어먹을! 켁! 썩은 물! 똥물이야 이거?”
무덤 안의 환경은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물이 있다는 걸 깨닫고 호기롭게 뛰어내린 것은 좋았으나, 그들은 사실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썩은 물도 물이지만, 무엇보다 아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지하통로에 멀리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아베의 목소리는 이미 깊숙한 곳에 있던 주헌의 귀에도 들어갔다.
“등신들이 뒤쫓아 왔나 보군.”
어차피 따라 들어올 걸 알고는 있었지만.
물론 주헌은 유물을 차지하기 위해, 저놈들과 촌스러운 달리기 시합 따위를 할 마음도 없었다.
그랬기에 주헌은 웃으면서 벽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수상한 짓을 하는 건 한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ㅎㅎㅎㅎ 누굴 따라오냐.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