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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6화 (6/409)

00006 좋은 건 쟁여놔야지  =========================================================================

< 좋은 건 쟁여놔야지 (1) >

이상했다.

분명히 있어야 할 빌라 단지가 보이지 않았다. 주헌의 눈에 보이는 건 거대하고 둥근 언덕 뿐이었던 것이다. 얼핏 보면 비상식적인 크기의 왕릉이나 산소 같기도 했다.

물론 5층짜리 빌라 여덟 채를 삼켜버린 저건 거대한 언덕이 아니었다.

‘저건 분명 무덤이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 고분화 현상이라고?

그리고 이 당시를 떠올려보던 주헌은 아,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이 때였다. 같잖은 조폭 놈들 밑에서 일하느라 집에도 못가고 있을 때 룸메이트가 전화를 해왔던 게.

분명 집이 사라졌다고 했던가. 그런데 주헌은 그 때의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은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무덤이 소멸했었다는 건.

‘누군가가 무덤을 공략했었다는 건가?’

그리 판단한 주헌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껏 나타난 무덤이 가시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빌라 단지 쪽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주헌은 귀가 터질 듯 한 싸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저 근처다.’

그리고 문제의 장소에 도착 했을 때, 주헌은 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가 뭐가 잘났다고 사람을 무시해? 어? 내가 돈 벌어오는 기계야?”

“야 이 새끼들아! 경비가 우습게 보이냐. 지들이 뭘 잘나서 우리를 해고해! 어?”

“꺄악! 어디를 더듬는 거야! 이거 놔!”

“너 잘 만났다, 밤에 기타 치지 말라고 새끼야!”

“누가 내 가방 훔쳐갔어!”

백 명이 넘는 주민들, 그들을 말리는 경찰과 군인들마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러 방향으로 흥분하고 있었다.

아주 난장판이어도 이런 난장판은 또 없을 지경이었다.

“아오씨! 싸우지 말라고 새끼들아!”

“뭐야? 나랏돈 먹는 놈들이 지금 나한테 욕했어? 죽어 새끼야!”

사람들은 평소보다도 더 과격하게 반응했다. 잠깐 스친 것만으로도 짜증을 내며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보통 고분화(古墳化)가 벌어진 곳에서 발생하는 정신이상 현상이었다.

감정의 격앙, 인간의 욕망이 절제되지 않는 것이 고분화 일대의 특징이니까. 평소라면 억누르고 있을 욕망들이 그대로 폭발하고 만 것이다.

주헌은 포악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동거하는 친구를 찾으려고 했다.

‘혹시 무덤 안에 삼켜졌나?’

전화를 걸며 주변을 살피던 그 때, 난장판 속에서 주헌은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에이, 시팔! 내가 너희들 때문에! 너희 같은 새끼들 때문에!”

“이, 이러지 마세요! 총은 제발!”

소리가 들린 건 뒤쪽. 군중 사이에서 군인에게 위협 당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체격도 좋은 편이지만 어째서인지 두들겨 맞을 기세의 청년이 한 명.

‘김동현?’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틀림없었다. 실랑이를 벌이는 청년 중 한 명은 틀림없는 자신의 룸메이트였다.

‘거참, 예나 지금이나 덩칫값 못하는 놈이라니.’

하지만 새삼 반가워 할 상황도 아닌지라, 주헌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친구를 향해 군인이 소총을 겨누려는 순간!

뻐억!

“끄아악!”

그깟 총이 뭐 대수냐는 듯, 주헌의 발차기가 총 째로 군인을 날려버렸다. 동시에 울컥한 군인이 다른 무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주헌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군인을 내려찍었다.

동현은 주헌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 하면서도 그의 격투기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주, 주헌아?”

반면 상대를 날려버린 주헌은 신음을 흘리는 군인을 향해 혀를 차고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시민을 지키러 나온 새끼가 지금 뭐하는 거냐.”

“끄, 끄헉, 죄송합니다!”

남자는 무장한 것이 무색하게 죽을 듯이 기침을 하면서 제정신을 차렸다.

“…가, 갑자기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잠시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원인은 이해했다. 이놈도 고분화 징조 때문에 맛이 간 것뿐이다.

오죽하면 흉흉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고분화를 흉조라고 부르는 이도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지만.

“알았으면 빨리 이 상황 정리하고, 떨어진 지시가 뭔지나 말해. 위에서 뭐하고 있으라고 했지?”

“네, 네?”

주헌과 또래로 보이는 군인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름대로 각을 잡으려고 해봐도 어리바리한 모습이 딱 이제 갓 들어간 이등병 모습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건 둘째 치고 민간인에게 상부의 명령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주헌이 그걸 묻는 이유는 있었다. 과거에 이곳에 발생한 무덤이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가 무덤을 공략했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즉 과거에 누군가가 유물을 가져갔었다는 것.

‘혹시 이놈들이었나?’

그러니 이놈들이 무덤에 대해서 어디까지 파악했는지 캐물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직 안에 뭐가 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유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릴 주헌도 아니었으니까.

“저 무덤 안에 너희들이 탐색하러 들어가는 거야?”

“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주헌은 이 놈보라면서 사악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나도 고발해야겠군. 군인이 민간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했다고.”

그러자 죄송하다고 사죄하던 이등병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헌의 눈빛에 할 수 없이 몰래 속삭여왔다. 이 정도는 아마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 타협하는 눈치였다.

“사실은 곧 무덤을 폭파시켜서 내부를 탐색해보려고 합니다.”

“폭파시켜서?”

그딴 걸로 파괴 될 무덤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걸로 과거에 무덤이 공략 되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등병은 이어서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지금 그것 때문에 해외 전문가들까지 와 있거든요.”

그 말에 뭔가 눈치 챈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아하, 외국 전문가 놈들 말이지?

* * *

세상에 이상한 무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덤의 정체나 유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엄연히 유물의 존재에 대해 눈치 채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정부는 아직 무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맞죠?]

한국을 찾은 미국 CIA 요원 린다 워커는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그러자 날아온 답변은 지극히 간단했다.

[YES]

그걸 보며 린다 워커는 가볍게 웃었다. 이번에 린다 워커는 CIA가 아닌 지질연구가로서 한국에 입국했다. 신분을 숨기고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무덤에는 유물이 있어.’

그렇다. 세계인들은 무덤에 대해 단순히 지질 이상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무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몇 나라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미국이다.

징조현상처럼 드문드문 무덤이 나타나기 시작한지도 어연 9개월.

몇몇 나라에 유물 사용자가 나타난 것이다. 유물이 은밀하게 주인을 선택한 경우였다. 하지만 유물에 대해 눈치 챈 나라들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귀신에 씌인 일이라 덮으며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린다 워커 역시 명령을 받고 여러 나라에 투입 된 요원 중 하나였다.

‘목적은 무덤의 조사, 할 수 있다면 유물까지 가져오는 것.’

물론 유물에 대해서는 한국정부에게 절대로 들키면 안 되는 극비사항이었다.

아직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나라는 무덤을 재난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 유물을 빼돌려 올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유물은 우리 미국에 가져가 연구를 해야 한다.’

막말로 신 자원이나 발명품 하나로 역사책이 다시 쓰이고, 세계 경제가 바뀌곤 했다. 그런데 마법 능력에 가까운 유물의 존재를 벌써 공표해버리면 어찌 되겠는가. 세상은 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대통령의 주도하에 CIA가 정보를 얻어 미국의 연구팀에게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비밀로 한 채 남의 나라에서 유물을 가져가는 일이 꽤 꺼림칙했지만 말이다.

‘마치 도굴꾼이라도 된 기분이군.’

하지만 대놓고 탐욕스럽게 유물을 노리는 놈들도 분명 있긴 했다.

“린다, 여기서 또 보네요?”

유쾌하게 웃으면서 나타난 남자는 일본 자위대 출신 아베 키요시였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몇 번이나 린다를 방해한 요주의 인물이었다.

생긴 건 젓가락처럼 생겼지만 엄연히 일본 정부에서 보낸 조사팀이었다. 미국과 차이점이 있다면 벌써부터 국가적인 차원으로 은밀하게 유물 발굴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키요시는 그 책임자였다.

“미국도 욕심이 장난이 아니네요? 우리야 이웃나라니까 그렇다 쳐도 12시간이나 날아서 오다니.”

“허.”

“적당히 알레스카라도 가지 그랬어요? 시간도 많네.”

그의 이죽거림에 린다 워커는 뭐라고 하려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걸 보고 아베가 낄낄 웃어댔다.

“거참 경계도 심하시긴. 아무도 없거든요? 우리도 한국한테는 유물에 대해 알리기는 싫으니까.”

그러자 린다는 바로 톡 쏘아붙이듯 답했다.

“미국은 세계 경찰국 차원에서 유물을 가져가려는 겁니다. 순전히 평화를 위해 조사와 연구가 목적이죠.”

“허, 미국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CIA가 그렇게 말해도 안 믿어요. 실제로는 유물의 가치를 깨닫고 다른 나라에 뺏기기 싫은 거면서.”

“그건!”

“왜요, 아니에요? 그럼 다른 나라가 연구하겠다고 유물을 달라고 하면 줄 겁니까?”

“…….”

“봐, 역시나.”

아베는 만족 한 듯, 그제야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동맹국끼리 너무 날 세우지 맙시다. 우리의 적은 중국이잖아요. 아 그래도 유물은 총리께서 너무 기대하셔서 내줄 마음이 없지만.”

“됐고요. 괜히 입을 놀려서 한국의 귀에 유물의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게 해요.”

“하하. 할 리가 있나요. 이깟 조그마한 땅의 유물은 전부 일본이 가져가야 할 텐데.”

뭔 자신감으로 그렇게 말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린다는 일본이 그렇게 기세등등한 이유를 알았다.

일본에 ‘예언’ 능력을 얻은 유물 사용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유물인지 미국은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확실한 건 그 예언가를 중심으로 일본이 유물사냥에 착수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린다도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한국은 유물을 가질 능력도 안 된다. 중국이 눈치 채기 전까지는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조심하면 될 뿐.’

그렇게 생각한 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작 이 장소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는지도 모른 채.

* * *

‘아하, 이제 알겠군. 과거에 누가 이곳의 유물을 가져갔었는지.’

어느 정도 폭동이 제압되고 있을 때, 주헌은 린다와 아베를 발견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주헌은 비록 저놈들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정체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았다.

‘머리 굴리는 CIA랑 멍청한 자위대 발굴단이지.’

이 무렵에 유물과 무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나라가 있다는 건 주헌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미국은 징조기에 메두사의 유물 사용자를 얻었고, 일본은 쇼토쿠태자의 《미래기(未來記): 일본의 미래를 예언한 예언서》 유물 사용자를 얻지 않았던가.

사실 그들은 무덤을 공략했다가 보단, 운 좋게 유물이 먼저 주인을 선택한 케이스였다.

‘그래봐야 메두사 유물사용자는 어린 꼬마 애라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고, 미래기 쪽은 유물 사용자가…….’

잠시 그를 떠올리던 주헌은 실소를 흘렸다.

‘멍청이도 그런 멍청이는 없었지.’

그리고 이 시기에 유물에 대해 먼저 안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 몰래 유물을 빼가려고 기회를 엿봤었다. 그리고 최대한 무덤과 유물에 대해 자신들만 알고 독차지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 의미 없는 짓이지.’

그래봐야 지금은 징조의 시기였다. 몇 달 후면 <대고분화>사건으로 전 세계인들이 모두 알게 되고, 민간인들까지 유물을 사용하게 되는 유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주헌은 무덤의 유물을 누가 가져가든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물은 먼저 가진 놈이 임자였고 승자였다.

‘그래도 일본의 얼간이들이 가져간다는 건 맘에 안 드는 군.’

미국이라고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주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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