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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5화 (5/409)

00005 내 돈은 내놔야지  =========================================================================

< 내 돈은 내놔야지 (3) >

하지만 그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말거나, 주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지.

“손님. 이 물건, 그래봐야 추정가 5만원도 안 나오겠는데요?”

“네?”

“그냥 적당히 집에서 모시세요. 이딴 걸 살 미술상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좀 난처할 뿐이었다.

“………허. 무슨 수천만 원짜리처럼 굴더니.”

미술품의 견적 겸 판매를 위해 고미술상을 찾은 주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참으로 이상했고, 정말 곤란한 일이었다.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명목으로 기껏 놈들이 가지고 있던 불상을 빼앗아왔건만.

‘망할, 추정가 5만원이라고?’

박경태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미술품을 되찾으려고 하기에 수천만 원은 족히 넘어가는 줄 알았더니?

감정결과가 거짓은 아닌가 싶었지만, 주헌이 이런 놈들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미술품에 관심이 없다 못해, 주헌을 잡상인 취급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니 가게 밖으로 나온 주헌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칫. 그 멍청이들은 감정을 똥으로 했나.’

이딴 걸 중개하려 해?

이래서야 이 물건을 팔아도 퇴직금도 못 건질 노릇이 아닌가. 그게 있어야 유물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 텐데.

물론 이건 불상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자신의 불찰이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이 미술품이 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네.’

주헌에게는 돈 냄새를 맡는다고 해야 할까, 뛰어난 촉이 있었다. 고고학능력을 얻고 난 후 유물을 만지면서 귀신같은 감이 몸에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이 이 불상이 돈이 된다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왜지? 왜 이런 싸구려를 들고 돈이 될 거란 촉이 선거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유물도 아니고 내 감이 평범한 미술품에도 맞으리란 법도 없지.”

주헌이 적당히 5만원에라도 팔아야 겠다며 다시 고미술상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였다.

“어?”

문득 이상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염탐 스킬 발동.]

[불상 내부에서 수상한 물질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어이쿠, 이것 봐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메시지에 주헌은 웃음을 흘렸다.

* * *

‘수상한 물질이라고?’

주헌의 눈매가 교활한 여우처럼 가늘어졌다. 그러면서도 그 표정이 묘하게 들뜬 아이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예상 컨데 이건 도굴꾼 기본 스킬에 있던 <염탐> 스킬의 메시지일 것이다. 대충 이해하자면 게임 상의 탐색과 비슷한 종류의 기술일 터.

‘그런데 내부에 뭔가가 있다?’

설마 진짜 다이아몬드 사리라도 들어 있을 리도 없고.

곧 주헌은 불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 흔들어보기까지 했지만 역시 별 다른 걸 느낄 수 없었다.

‘도대체 내부에 뭐가 있다는 거지?

원래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던 물건이었지만 주헌은 도굴꾼 스킬 탓에 굉장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박경태도 하루 이틀 브로커를 한 것도 아니고, 고작 5만원도 안 되는 것에 그리 안절부절 못할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목적은 이 겉껍데기가 아니라 안에 있는 뭔가일 수도 있다는 것.

‘……미술품 안에 뭔가를 숨겼다라.’

숨겨서 고액에 거래 될 물품.

‘쉽게 생각하면 뒷돈……탈세용 현찰…보석…’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그 모두 주헌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 외에 또 뭐가 있을 까 잠시 생각하던 주헌은 아차 싶었다.

‘이 자식들이 설마.’

곧 그의 입 꼬리가 음흉하게 올라갔다.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주헌은 단번에 눈치 챈 것이다. 보통 이렇게 숨겨서 거래할 품목이라면 대개 하나일 터.

‘그래도 그렇게 간 덩어리가 부운 짓을?’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주헌은 재빨리 유물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유물이 완전히 발동되자 신들린 것 같은 칼부림과 함께 석상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칼부림에 접합부가 벌어지며 뜯겨진 것이다.

그러자 안에서 딱 들어 맞는 물약 통이 나타났다. 그걸 본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안에 든 것은 투명한 액체. 그건 마약이었다.

얼핏 식염수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신의 눈물(TG)이라는 대마계열(XLR-11 성분 합성)의 액체형 마약이었다. 주사기 대신 담배에 몇 방울씩 뿌려 환락을 즐기는 놈이었다.

그런데 이걸 들여와 미술품 안에 숨겨서 유통시키고 있었다니!

“이 겁 없는 놈들 봐라. 100ML나 되면 가격이 꽤 나가겠는데.”

그러니까 박경태가 그렇게 혈안이 되어서 되찾으려고 했었지.

어렸을 적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주헌은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놈들이 취급하는 미술품이 수백 개는 됐었지?’

그리고 만약 그 안에 전부 마약이 들어 있다면?

그걸 떠올린 주헌은 사악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단숨에 초기자금을 모을 방법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라면 새모이만한 월급에, 고작 몇 백 만원 될 퇴직금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약물을 파는 더러운 취미는 없었다.

단지.

“어, 형. 나야. 아까는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 그런데 지금 안 바쁘지?”

마약 거래 신고 포상금이 최대 1억이나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뿐.

* * *

“아니, 아닙니다! 회장님. 물건이 준비가 안 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네, 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보는 눈이 있어서 잠시 거래를……네. 네. 알겠…윽!”

다음날 오후 8시. 박경주는 거래 시간이 훌쩍 지나면서 온갖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 항의를 해오고 있는 것은 모두 은밀한 거래를 요구했던 거래처들이었다.

그런데 그 마약이 든 불상을 서주헌이 가져간 것으로도 모자라, 도로 되찾아오라고 했던 등신들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라니!

그게 해결 되든 말든 해야 안심하고 거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 때 이후로 하루가 꼬박 지났는데 진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럴 때 조직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것이 자신의 동생들이라 생각한 박경주는 벌떡 일어나 짜증부터 냈다.

“야! 너희 지금 몇 시 인줄 알아? 진짜 이 날씨에 바다에 뛰어 내리고 싶어?”

하지만 들려온 건 뜻 밖의 목소리였다.

“바다는 너무 춥고, 깜빵은 어때? 특식으로 설렁탕도 넣어드릴게.”

“……헉!”

문을 열고 들이닥친 건 자신들의 동생이 아닌 바로 경찰들이었던 것이다. 아니 물론 동생도 있었다. 단지 경찰들에게 수갑이 차인 상태로 말이다.

김 형사에게 붙잡혀 온 박경태는 욕을 씨부렁거리면서 훌쩍이고 있었다. 주헌에게 찔리고 맞은 것으로도 모자라 김 형사한테도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누님, 다 망했어요……”

박경태의 말에 누나 박경주는 입을 다물지는 못했다.

“뭐, 뭐야! 당신들 뭐냐고!”

“마약 밀수 및 유통혐의로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그걸 보며 박경주는 화부터 냈다.

“마약은 무슨, 우린 미술품을 파는 상인이라고! 선량한 시민한테 무슨!”

“거참, 모든 범죄자들이 잡히기 전엔 똑같은 소리 하더라.”

그러면서 김 형사는 품속에서 불상과 액체 마약을 꺼내며 웃어보였다.

“꼬리 잡히셨고요. 지금 신고 받은 갤러리도 조사 중입니다.”

“개, 갤러리?”

갤러리라는 말에 내심 찔려하던 박경주는 침을 삼켰다. 확실히 미술품을 보관해둔 갤러리가 있었다. 물론 마약이 담겨 있는 미술품들은 전부 보안상의 명목으로 보관실 금고 안에 들어가 있지만.

‘괜찮아. 전부 다른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데 이 자식들이 어떻게 풀겠어.’

“증거도 없으면서 생사람 잡지마!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남의 사업장에 막 들이 닥치는 건……!”

그런데 그럴 때 김 형사의 품에 있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함께 온 마약단속반이었다.

[협력을 받아 화성시 갤러리 보관실에서 미술품 600점 모두 확인. 안에서 모두 마약물질이 발견 되었습니다.]

[총 8000ML 정도를 밀반입한 것 같습니다. 이정도면 시가 8억 원에 달할 것 같은데요.]

동시에 박경주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세상에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누가 금고를 열어줬어!”

그러자 김 형사는 웃으면서 수갑을 꺼냈다.

“감사하게도 내부 직원의 협조가 있으셨지.”

하지만 박경주는 다른 의미로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협력은 그렇다 쳐도 모든 금고에는 서로 다른 비밀 번호가 걸려 있었을 텐데!

금고의 개수가 개수인터라 누구라도 표를 보지 않으면 전부 열 수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그 표를 가진 건 박경주 자신 뿐.

도대체 누가 600개나 되는 금고의 비밀번호를 다 알려준 거지?

그럴 때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던 김 형사가 박경주를 보았다.

“아, 협력해주신 분이 당신을 꼭 바꿔 달라네.”

그러면서 그는 박경주에게 핸드폰을 귀에 대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굉장히 낯이 익었다.

[아줌마. 그러니까 사람 무보수로 부려먹는 거 아니야.]

그 목소리에 박경주는 눈알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제야 누가 제보자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덕분에 박경주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이, 빌어먹을 서주헌! 너! 네가!”

[아 뭐 물어보려고 했는데, 모를 거 같으니까 관두련다. 그리고 참. 비밀번호는 6개월에 한 번씩 바꿔라, 좀.]

그 천연덕스러운 말에 박경주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게 은혜를 배신으로 갚아!

“야! 서주헌! 이 겁 없는 도둑놈이 이젠 비밀번호까지 훔쳐가?”

[아니? 훔쳐간 적 없는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따준거야.]

그 말에 박경주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뭐? 돌았어? 이게 진짜 어떻게 600개나 되는 비밀번호를 다 기억한다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너 바보야? 그걸 왜 기억 못하는데?]

뭐가 어쩌고 저째?

“야! 서주헌!”

결국 박경주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팔짝 뛰었다.

“진짜 이 새끼, 가만 안 둔다! 너 가만히 있어. 금방 따라가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 형사가 매우 안타까운 듯이 웃었다.

“미안한데. 그 전에 우리부터 따라오셔야 할 것 같은데.”

* * *

[몇 주 뒤에 포상금 1억 가까이 들어갈 거야. 막 쓰지 말고 꼭 저축해! 일반통장 말고 적금으로 묶어! 꼭!]

저녁 7시.

집으로 향하던 주헌은 김 형사의 걱정스런 메시지를 보면서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건우 형은 옛날부터 날 너무 걱정한다니까.”

아무래도 공급 책과 유통책 모두 잡아넣을 수 있었으니 포상금이 꽤 큰 것이리라.

‘창고 위치랑 비밀번호 패턴을 잊지 않은 게 다행이군.’

아무리 15년 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주헌은 한 번 본 건 거의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도감 없이도 온갖 유물들의 기능을 알아볼 수 있었고 말이다.

미술품의 금고건도 번호는 형님들이 눌렀었지만, 옆에서 훔쳐 본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이 기억력으로 주식정보나 복권 당첨번호를 기억하지 않은 건 영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어쨌든 이걸로 초기자금 걱정은 덜었군.”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진작 이렇게 했으면 좋았었을 텐데 말이다. 겁이 많았던 건지, 어려서 세상 일 아는 게 없어서 그랬던 건지.

뭐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쓸 만한 유물도 얻었고, 스킬도 차근차근 얻어가고 있고,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무덤의 위치를 파악해 권 회장보다 먼저 유물을 선점하러 돌아다니는 것 뿐.

‘이미 떠돌고 있는 유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사실 주헌은 박경주한테 다른 수상한 미술품은 본 적 없었느냐 물어보려 했었다. 박경태가 유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유물에 대해 알 것 같지도 않았다.

‘됐어. 일단 집에 가서 조사나 시작해보자.’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야 하니까.

그렇게 주헌이 자신이 살던 빌라 단지 쪽으로 들어설 때였다. 주헌을 멈춰 세우기라도 하듯 염탐 스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변에서 수상한 무덤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

그리고 뜻밖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눈앞에는 탁 트인 전망으로 주택가와 회사들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은 꽤나 예뻤고, 주헌 역시 다 좋다고 생각했다.

다 좋은데.

“……우리 집은 어디로 갔냐?”

주헌은 황당한 듯 입을 벌렸다.

분명 있어야 할 아파트가 증발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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