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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4화 (4/409)

00004 내 돈은 내놔야지  =========================================================================

< 내 돈은 내놔야지 (2) >

동시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나이프가 뜨거워지며 주변 사람들의 신체가 붉게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건 나이프를 든 주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헌은 한 눈에 그 부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장기가 보이는 건가?’

나이프를 살짝 비틀자 이번엔 뼈가 투과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 마치 이건 엑스레이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럴 때 주헌이 한가롭게 칼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 한건지, 참다못한 박경태가 윽박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칼 안내놔?!”

그러더니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벽돌을 쥐고 달려들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어디서 좀 무술이라도 익혀온 모양인데!”

칼이야 폼으로 썼지만, 주먹만큼은 왕년에 이름을 날렸을 정도의 박경태였다. 하물며 건달 인생 수십 년. 그에 반해 새파랗게 어린 주헌은 진짜 건달도 아니지 않나. 주헌이 칼을 쥐었다고 한 들, 연장까지 든 진짜 싸움꾼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터!

“깝치지 말라고 새끼야!”

하지만.

“헉?”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잠시 나이프를 비트는 듯 하던 주헌의 손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 박경태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아악! 이 새끼!”

“형님!”

뜨겁게 달구어진 쇠가 옆구리를 가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박경태는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짚으며 데굴데굴 굴렀다.

“아오! 시팔!”

하지만 정작 박경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의 주헌은 분명 이상했다.

이상한 무술이야 그렇다 쳤다. 막말로 잠깐 안 본 사이에 죽을 만큼 특훈이라도 받았나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방금 전에 칼을 쓰는 모습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거의 살인귀 같은 수준이었다.

‘피보는 것도 무서워하던 새끼가……!’

하물며 평범하게 찌른 것이 아니라 살점을 떼어내려는 느낌까지 들었다. 돼지가 산 채로 도축 당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그 비명에 주헌은 나이프를 휘휘 돌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사내들은 주헌이 다가오자 흠칫 몸을 떨었다.

“오, 오지 마! 형님을 죽일 셈이냐!”

그러자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조폭 주제에 엄살 피우지마, 깊게도 안 찔렀어.”

“시, 시팔! 오지 말라고!”

사색이 된 그들은 침을 튀기며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하면 오줌까지 지릴 정도로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야 무서운 게 당연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머리 굴리는 것 밖에 못하던 꼬마가 무술의 달인에, 심지어 칼에 접신한 듯한 상태로 나타났으니 정상이 아니라고 여길 수밖에.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 그래! 이 자식 귀신 들렸다. 귀신이 들린 거라고!”

“귀신?”

“그게 아니면 저걸 뭐라고 설명해!”

그러자 주헌은 낄낄 웃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귀신이 들렸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무술쪽은 그렇다 쳐도, 칼 쪽은 유물을 사용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렇다. 놈들은 장식이 멋있네 어쩌네, 뭣도 모르고 이 나이프를 썼겠지만 이건 엄연히 유물이었다.

바로 <빙의형>의.

주헌은 이 유물의 내력을 쓴 것뿐이다.

‘히에라틱 문자(이집트 신관문자)가 새겨진 걸 보면 이집트 관련 유물이겠지.’

자세한 감정은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집트의 지배층 계급의 장의사(신관)의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은 미라를 만들면서 그야말로 정확한 솜씨로 시신의 배를 갈라 장기들을 꺼내곤 했다. 그러니 이 검을 사용했을 때, 상대의 장기나 뼈의 위치가 보이는 능력이 발휘 되었을 터.

더불어 빙의형은 유물의 주인의 능력이 빙의되어 사용하는 것. 쉽게 말해 칼을 쓸 줄 몰라도 칼을 쥐면 칼의 달인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체감상 그래봐야 C급(일반급) 소모성 유물이지만.’

C급이면 위력도 고작해야 일반인이 놀라워할 수준이고, 몇 번 쓰고 나면 깨질 물건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헌이 있던 시대에서 C급이 낮은 등급이었던 것뿐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꽤 귀할 터.’

그렇게 웃던 주헌이 박경태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박경태는 졸지에 도축 직전의 짐승 심정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씨, 저, 저 자식이 진짜!”

하지만 아직은 건달의 자존심, 아니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아직 남아 있는 그들이었다.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놈. 심지어 반항 한 번 못하고 얻어터진 놈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억울하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박경태가 눈을 부릅뜨면서 외쳤다.

“야! 보고만 있을 거야! 됐으니까 니들도 칼이고 뭐고 다 동원해서 죽여 버려! 빨리!”

“예, 예! 형님!”

그 말에 주헌이 쯧 혀를 찼다.

“바보들이 아직 혼쭐이 덜 났군.”

그리고.

주헌은 귀찮다는 듯 박경태의 목에 아예 칼을 겨누어버렸다. 단순한 위협이긴 했지만, 서늘한 칼날이 피부에 닿자 박경태는 사내의 자존심이고 뭐고 곡소리를 냈다. 정말 주헌이 조금만 힘을 주면 그대로 피로 떡칠을 할 판이었다.

“아구구, 그만! 서주헌 이 배은망덕한 자식아!”

“혀, 형님!”

덕분에 박경태는 울기 직전이었다. 사실 요즘 시대의 조폭이라고 해봤자 대부분은 진짜 싸움이라는 걸 모르는 겁쟁이들이었다.

그에 반해 주헌은 이미 유물 때문에 서로를 죽이는 게 익숙한 시대에서 왔다. 이런 일이야 우스운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걸 알 턱이 없는 박경태는 바들바들 떨었다.

‘젠장, 이자식이 우리한테 스트레스를 받아서 미쳐버렸나, 진짜 귀신이 들렸나.’

어느 쪽이든, 건들면 안 되는 놈을 건드린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하면 뭘 하겠는가. 공포를 느낀 그는 알아서 이렇게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니까 용서해 주십쇼! 그동안 못 드린 월급이랑 퇴직금도 바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심지어 말투까지 바뀌어 있었다.

그러자 주헌은 흔쾌히 칼을 거두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넉넉하게 30분 줄 테니 뽑아와.”

하지만 박경태는 눈치를 보며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순순히 이 자식 말에 따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 이 자식을 밟을 기회를 모색한다. 그리 머리를 굴린 박경태가 침을 꼴깍 삼키며 운을 띄웠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도 대표님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회사 돈을 막 뽑을 수는 없어서……”

그러나 주헌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아 그래? 승인?”

주헌의 말에 박경태는 이거다 싶었는지, 잇몸을 드러내며 비굴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시간만 더 주시면 현찰로 가져오겠습니다! 대표님께는 저희가 잘 말씀드려서……!”

잠시 후 그의 계획을 눈치 챈 부하들도 최대한 불쌍하게 웃어보였다.

“네, 맞아요! 회사 돈은 저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까요. 헤헤.”

이걸로 이 어린 애새끼는 시간을 더 주겠다고 하겠지. 그럼 그 사이에 시간을 벌어서 아군을 더 불러온다. 이 자식의 친구라도 인질로 붙잡으면 이놈도 꼼짝 못하겠지. 그렇게 그들은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그 때 건달들의 귓가에 싸늘한 음성이 작렬했다.

“이것들이 돌았나.”

곧 주헌과 눈이 마주친 그들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장난스럽게 웃고 있지만 번득이는 눈빛은 매우 불길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생긋 웃은 주헌이 우두둑거리며 주먹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뻐억!

주헌은 사정없이 사내들을 두들겨 팼다. 아주 때린 곳만 집중적으로 때리면서 사내를 가지고 놀았다. 제 딴엔 건달들이라고 맷집까지 좋을 테니, 뼈를 부술 각오로 치지 않으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

뻐억! 뻐억!

“아이씨, 그만, 그마아안! 잘못했으니까, 으아악!”

결국 사내의 자존심이고 뭐고, 박경태는 엉엉 울어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말 귀를 못 알아들은 모양인데.  회사 통장에서 돈 빼오라는 소리 안했다. 5분 준다. 뽑아와.”

그제야 실수를 인식한 사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때는 좀 늦은 것 같았다.

* * *

[뭐라고? 일에서 손을 때겠다고? 그 서주헌이?]

박경태는 자신의 누나, 박경주의 분노에 눈을 질끈 감았다. 골드미스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박경주는 현재 작은 미술품 브로커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법 돈이 될 일이 들어와서 주헌을 데리고 일을 나가게 하려고 했든 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보냈던 놈들이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를 법도 했다.

[이 등신들아! 병신같이 서주헌이 그런 말을 씨불이게 내버려뒀어?]

“아니 그게! 건들 수가 없었다니까요! 갑자기 사람이 변해가지고는 무술의 달인이 되서 하마터면 저희가 죽을……”

[야! 이것들이 돌았나! 그딴 애새끼한테 뭘 겁을 먹어서 건달이란 것들이 그 지랄을 떨고 있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됐어!]

박경주는 더 이상 이런 같잖은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놈은 일단 보류하고, 니들은 일단 일 처리하고 와. 늘 있는 중요한 거래야. 샘플은 잘 가지고 있겠지?]

그녀의 말에 박경태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기 때문이다.

“아니 저… 그게.”

[뭐야. 무슨 문제라도 생겼냐?]

“저, 그…… 주헌이 그 자식이 가져가 버려서요.”

[뭘?]

“가지고 갔던 그 미술품을……”

[뭐야? 그걸 진짜 뺏겼어?]

“네…네. 그간 못 받은 월급 겸 퇴직금이라고 다 가져가 버렸……”

그 말을 하고 박경태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오, 이 진짜! 등신들아! 너 그 불상이 어떤 건지 몰라서 그래!]

두목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게 얼마짜린 줄 아냐고!]

“그……그리고 저희 지갑도 뜯겼는데!”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니들 돈이 알게 뭐냐는 둥, 사투리로 온갖 욕이란 욕이 다 들려왔다. 결국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박경주가 히스테리를 부려댔다.

[심지어 서주헌 그 자식, 경찰이랑 친하잖아! 그 불상의 정체가 뭔지 눈치 채면 어쩌려고! 미치겠네 진짜!]

“아, 아뇨! 괜찮을 겁니다! 주헌이……아니 그 새끼도 그 미술품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를 못 챌 테니까요! 지가 무슨 수로 그 내용물을 알아낸다고……!”

[아 몰라! 난 몰라! 당장 찾아와, 당장! 찾을 때까지는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뚝.

그렇게 앙칼진 전화는 매정하게 끊겼다.

“으이구, 정말!”

이게 전부 다 서주헌 때문이다!

박경태는 짜증을 내며 머리를 휘저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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