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내 돈은 내놔야지 =========================================================================
< 내 돈은 내놔야지 (1) >
마침 잘 됐다.
주헌은 그들을 보며 웃음을 흘렸지만 그들을 발견한 김 형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었다.
“어? 저 새끼들? 와씨, 딱 걸렸어! 지난번에 널 칼받이로 써먹고 도망가더니!”
오늘은 가만 두지 않겠다며 김 형사가 나서려 하자, 주헌이 가볍게 막았다.
“아 됐어, 형. 내가 알아서 할게. 마침 저 새끼들한테는 볼 일도 있고.”
“뭐? 볼일이라니?”
“아, 혹시 모르니까 구급차는 불러봐. 저것들이 죽어도 곤란하거든.”
그러자 김 형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뭐? 죽긴 어느 쪽이 죽어?
“잠깐!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주헌아!”
너 싸움 못하잖아! 김 형사가 급하게 쫓는 것도 잠시, 주헌은 골목으로 훌쩍 사라졌다.
* * *
과거로 돌아온 후, 주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과거 청산이었다. 아니 엄연히 과거 청산이라는 명목의 자금 조달이지만.
물론 그 대상은 조직폭력배 출신 미술품 브로커들이었다.
고등학생 무렵, 돈이 급해 일용직을 구하다가 코가 꿰어 조폭 놈들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주헌은 정말 그런 놈들 밑에서 딱가리로 일했었다.
‘기억대로라면 스물 중반에 능력을 얻기 전까지 쭉.’
심지어 이 무렵의 주헌은 놈들에게 돈까지 뜯기며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도망칠 생각은 못했었던 것 같았다. 형사가 주변에 있었어도 조폭들이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몰랐으니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기에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놈들도 처음엔 미술품으로 빚을 지게하고 몸이나 해체할 생각을 하더니, 주헌의 기억력이 굉장히 쓸 만하다는 걸 깨닫고 늘 그를 귀찮게 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씌벌, 우리 주헌이. 이 애미 애비도 없는 자식아. 형님들을 봤으면 뻐득 인사를 해야 할 것 아냐.”
“일이다 일.”
숫자는 넷 정도.
좁은 골목길에 덩치 큰 사내들이 몸을 풀면서 주헌을 가로 막고 있었다. 그들의 품에는 미술품이 담겨 있는 나무상자가 하나 있었다. 틀림없이 그것과 관련된 일로 온 것일 터.
“알았으면 퍼뜩 가자. 시간 없다 새끼야.”
“그래도 기특해졌네. 알아서 형사도 따돌리고 오고.”
“이제야 붙어 먹을 대상을 깨달은 거겠죠. 인생은 사지 멀쩡하게 보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여기가 얼마나 꿀 직장이냐? 어? 취업도 힘든 세상에 한 달에 2번 꼬박 꼬박 집에 보내주지, 인턴한테 월급도 주지, 일도 가르쳐 주는데 돈은 오히려 우리가 받아야 하지 않냐?”
진심으로 그리 생각 하는 건지, 그들이 이죽거리자 주헌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들은 뭔가 착각을 해도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애당초 주헌이 김 형사를 루팡 마냥 따돌리고 온 것은 이들의 협박이나 권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 왜?
이유는 간단했다. 형사가 보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예로 들면.
“알았으면 퍼뜩 따라온……커헉!”
난데없이 골목가에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이빨이 깨진 남자 하나가 날아갔다. 그리고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 하나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했다.
주헌이 웃으며 한 마디 하기 전까지는.
“등신들이.”
“뭐?!”
“형사를 따돌리고 온 건 과잉방위로 벌 받기 싫어서거든?”
“이, 이, 이자식이?!”
“야! 서주헌! 너 감히 작은 형님한테!”
그들을 사정없이 날려버린 주헌은 손을 툭툭 털면서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사직서는 안 써왔으니 두목한테 구두로 전해라. 이제 니들 일에서 손 땐다고.”
“뭐, 뭐라고?”
사내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저게 미쳤나 싶었다. 평소 저들의 눈치만 보던 놈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이다.
하지만 주헌은 주먹을 우득 거리면서 사납게 웃었다.
“아. 그리고 퇴사 전에 하나 더.”
“?”
“니들 돈 좀 있냐? 밀린 월급과 퇴직금은 지금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하물며 사람까지 바뀌었다.
그러나 사내들이 어리둥절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헌은 진심이었다.
앞으로 몇 달 후면 본격적으로 유물의 시대가 올 것이었다. 당장 무덤에 들어가 유물을 선점해도 모자를 마당에 이놈들과 연을 지속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니 귀찮게 굴만한 건 죄다 정리한다.
하지만 주헌의 태도에 사내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려댔다.
“허, 진짜 이게 미쳤나. 뭐? 월급? 퇴직금?”
“와씨, 서주헌. 이 새끼가 정신교육부터 다시 해야 겠네.”
“시팔, 싸움도 못하는 거지새끼가 허세부리는 거 아니다, 병신아!”
결국 빈정 상한 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주헌은 달랑 한 명, 심지어 그들에게 있어 주헌은 고작해야 기억력만 좀 좋은 애새끼였다.
반면 주헌은 그들을 보며 쯧 혀를 찼다. 말로 통할 상대는 아닐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말이다.
“할 수 없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은 쇄골의 급소를 푹 찔렀다.
“컥!”
동시에 팔꿈치를 세워 목을 가격했다. 그리고 머리를 휘어잡고 무릎으로 인중을 강타!
빠각!
“크허억!”
사내들은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손동작에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주헌은 틈을 주지 않고 비어버린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맞은 곳은 모두 급소.
결국 장정의 남자 둘이 꾸에엑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혀, 형님!”
그들은 너무 놀라 주헌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미, 미친. 싸움도 못 하던 놈이 갑자기 뭐냐!”
주헌은 본래 고고학자의 능력을 가진 발굴꾼에 불과했다. 전투하고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유물과 관련된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만만했겠는가.
하다못해 잭 더 리퍼 같은 살인귀와도 유물을 두고 살벌한 러브신을 찍어야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싸움은 필수였지.’
호신용으로 절권도와 여러 잡무술을 익혔던 것이지만 이깟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뻐억!
“너 이 자식! 컥!”
이번엔 몽둥이까지 뽑아 들었었던 남자가 나가 떨어졌다. 그걸 보며 주헌은 여유롭게 웃었다.
놀랍게도 몸이 정말 가벼웠다. 원래라면 유적에서 얻은 질병도 있고 해서 말년엔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거라면 생각보다 더 문제없겠어.’
아까 경찰서에서 어느 정도 느끼긴 했지만, 감이 살아 있었다. 비록 체력이나 힘은 완전히 따라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15년 전의 몸으로도 충분히 기술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몽둥이를 놓친 사내가 쓰러지자, 날아간 몽둥이는 훙훙 허공을 돌다 주헌의 손에 잡혔다.
“저자식!”
사내들이 눈을 부라렸지만 주헌은 웃었다. 몽둥이를 쥔 주헌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다른 놈들에게 일격을 날렸다.
빠각, 하고 턱이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크, 크윽!”
아찔한 감각에 남자가 비틀거리는 사이, 주헌은 바로 다음 놈을 노렸다.
다음은 다리!
주헌이 휘두르는 몽둥이가 무릎 관절과 정강이에 아찔히 작렬했다. 그 뿐인가. 뾰족하게 부러트린 몽둥이는 배를 가격하고.
파박!
뒤이어 상대의 안면을 가격했다.
“끄아아악! 내 눈!”
“아아악!”
조악한 몽둥이로도 아주 날아다니는 주헌이었다. 결국 세 명이 모두 쓰러지자, 이들의 리더인 박경태가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씩씩 거렸다.
“진짜, 이 버르장 없는 자식이!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새끼가 죽어야 정신을 차리지!”
하지만 주헌은 같잖았는지 코웃음을 쳤다.
‘키워주긴 누가 키워줘?’
세 명과 차이점이 있다면, 저놈은 정말 생각이 없는 놈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품속에서 화려한 칼을 뽑아 들었다. 지금은 미술품 브로커라고 이빨을 까도 태생은 건달이다. 때가 되면 연장도 불사하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어지간해서는 조폭들도 칼을 뽑지 않을 시대지만, 박경태는 칼에도 피맛을 보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양아치였다.
‘누가 미술품 브로커 아니랄까봐, 또 괴상한 미술품을 수집 했나보군.’
보나마나 또 부하들을 시켜서 희한한 놈을 골라오라고 한 거겠지만.
그리고 그가 칼을 들자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던 부하들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형님, 경찰서 근처에서 칼은 좀……!”
“시끄럽다, 짭새 무서워서 어디 어깨 피고 다니겠나. 칼은 자고로 한 번이라도 사람 맛을 봐야 진짜 칼이 되는 거지.”
박경태가 칼날을 세우자 주헌은 픽, 웃음을 흘렸다.
‘뭐, 나이프야 날려버리면 그만.’
주헌이 나이프를 날려버리려는 기술을 쓰려 할 때였다. 나이프를 응시하던 주헌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것이었다.
개가 달려 있는 형태의 황동색 나이프, 바로 그 골동품 나이프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저건?’
남이 볼 땐 좀 화려할 뿐, 평범한 나이프였지만 주헌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확실했다. 저 느낌.
유물이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상하다. 왜 저걸 저놈이 가지고 있지?’
아직은 유물이 마구 떠돌아다닐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던 주헌은 곧 납득했다.
유물이 주인을 찾는 방법은 다양했다. 저런 식으로 무덤에서 나와 천연덕스럽게 인간들의 물건 사이에 숨어드는 놈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술품들 사이는 유물들이 택하는 베스트 은신처였다.
‘뭐, 아무래야 상관없나.’
어차피 일반인이 가지고 있어봐야 그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경태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새끼야! 오늘 야산에 묏자리나 알아봐야 할 거다!”
우렁찬 목소리가 아주 호기로웠다.
하지만.
뻐억!
“끄아아악!”
칼을 휘두르기는커녕, 도리어 팔이 비틀려버린 박경태는 그만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컥, 컥 이, 이 자식!”
반면 떨어지는 나이프를 낚아챈 주헌은 씩 웃었다. 그러나 그걸 본 박경태는 눈이 번쩍 뜨여 거품을 물었다.
“너 이 자식, 그거 안 내놔?! 너 같은 놈이 막 만질 게 아니거든! 그 장식이 얼마짜리 인 줄 알아!”
그 말에 주헌의 가소롭다는 웃음이 하늘을 찔렀다.
“장식?”
비록 자신의 것은 될 수 없었지만, 이미 수많은 유물들을 만져본 주헌이었다. 유물 앞에서 고작 장식 타령을 하고 앉았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아무리 일반인이더라도 오래 들고 있으면 이게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인지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도 유물의 가치를 못 알아볼 놈 같으니.’
뭐 안 그래도 잘 됐다 싶었다.
기껏 15년 전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손에 들어온 유물이었다. 어떤 놈인지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저 새끼 일단 잡아!”
놈들의 외침 속에서 주헌은 가볍게 유물을 발동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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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