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너는 도굴꾼이다 =========================================================================
< 너는 도굴꾼이다 (2) >
‘도굴꾼이라고?’
마치 모션그래픽 같은 글씨가 옆에 떠다니고 있었다.
주헌은 그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왜 이런 게 보이는 건지도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굴꾼 서주헌]
레벨 1
- 삽도 못 다루는 안쓰러운 소매치기꾼
다소 거슬리는 단어가 있었지만 도굴꾼! 이 시기와 절대 연관이 없을 낯선 단어가 나타난 것이다.
“내 눈이 미쳤나.”
하지만 이걸 무시할 수 없었다. 이걸 본 이상 확인을 해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능력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에 따라 지금부터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건 기회였다.
그러니 일단 첫 번째로는.
주헌은 슬쩍 녹슨 의자를 붙잡고 몰래 능력을 사용했다.
‘복원!’
하지만 애석하게도 의자에는 변화가 없었다. 주헌은 결국 작게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유물 없이는 안되나.’
복원능력은 고고학자의 유물로부터 얻은 능력 중 하나.
기억대로라면 의자에 녹이 슨 것 정도는 사라져야 정상인데.
역시 환각인가?
그런데 이 때 눈앞에 낯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복원을 쓰기 위해서는 선행스킬이 필요합니다.]
[기본 스킬 4개를 모두 활성화 해주십시오.]
‘선행스킬?’
마치 게임 인터페이스 같은 창이었다. 주헌은 내심 당황했지만 곧 입 꼬리를 올렸다.
희한하면서도 낯익은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도굴꾼 기본 스킬 (1/4)-
[염탐(F랭크) : 반경 1m 주변을 탐색한다.]
그 설명을 보면서 주헌은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경찰들은 당황해서 주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새끼, 미쳐 돌았나?”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하지만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그저 웃겼다.
분명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이건 분명 제 능력중 하나, 탐색능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 모양으로 변했다?
‘설마 원래 쓰던 능력이 게임 스킬처럼 변해버린 건가.’
그랬기에 주헌은 눈을 번득였다.
이대로라면 고고학자의 유물을 찾지 않아도 능력을 쓰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 메시지창 하나가 떠올랐다.
[도굴꾼으로 각성하기 위해 잠들어 있는 4개의 재능을 깨우십시오.]
[미션: 도굴꾼 기본 스킬 4개를 활성화 하는데 성공하라.]
얼씨구. 스킬창 다음에는 퀘스트 창이냐.
물론 불만은 없었다.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지금 능력을 쓰게 해주겠다는 데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스킬을 활성화 하라는 거지?’
그렇게 주헌이 잠시 고민할 때였다.
“아 진짜, 야! 빨리 무릎 꿇고 싹싹 안 빌거야? 깜빵 들어가고 싶어?”
주헌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고등학생 한 명과 잘 차려입은 사모님이 한 명 있었다.
“빨리 우리 애 때린 거 인정하라고! 합의금 천만원! 싫으면 깜빵 들어가고!”
여자의 외침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들은 뭐지.’
하지만 주헌은 금방 알아차렸다. 기억력이 비상해 수 년 전에 길거리에서 받은 전화번호까지 기억하는 주헌이었다.
이 때의 상황을 꽤나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 상황은 저녁 길거리.
‘아마 저놈이 술 마시고 시비를 걸어온 거였나.’
아니나 다를까, 남학생쪽은 꼴좋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어쭈, 뭘 꼴아봐? 그러게 누가 수험생 건들래? 지금 너 때문에 손도 못 쓰잖아.”
“그래, 전치 8주라고 8주! 너 때문에 우리 애 대학 떨어지면 책임 질거야? 우리 애 인생 망가지면 책임 질거냐고!”
하지만 정작 주헌은 코웃음을 쳤다.
저게 전치 8주?
“꼴값 떠네.”
문득 떨어진 말에 두 모자는 황당해서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방금 전까지 만원도 없다며 사정하던 놈이 이게 무슨!
“야! 이게 갑자기 돌았나!”
하지만 주헌은 같잖아서 웃음만 나왔다. 과거로 돌아온 지금, 자신이 할 일은 하나였다.
바로 유적에 있는 유물의 선점. 그리고 그를 위한 능력 개방. 그런데 이런 곳에서 애새끼들과 시간 낭비를 해야 하다니.
‘15년 전의 나를 걷어차고 싶군.’
물론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고고학 능력을 얻기 전까지 자신은 이렇게 살던 놈이었다. 고졸로는 취업도 어려웠고, 악덕 사장에게 걸려 착취당하던 간 작은 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지.’
그런 의미에서 이딴 꼬마들을 상대할 때가 아니다.
반면 주헌이 웃음을 터트리자, 둘은 황당해했다.
“야, 이 병신이 돌았나. 뭐가 재밌다고 쳐 웃어? 어?”
“이 백수 같은 놈이 본때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
결국 여자 쪽이 주헌의 뺨을 후려치려고 할 때였다. 경찰들이 당황하며 말리려는 그 순간.
“꺄아아악!”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들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주헌의 뺨을 치려던 여자의 손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잠……!”
“아악! 내 팔, 내 팔!”
주헌은 가볍게 웃으면서 팔을 비틀었다.
“이 아줌마가 칠 것, 못 칠 것도 구분 못하면 쓰나.”
“꺄아아악!”
“어, 엄마! 괜찮아? 이자식이!”
결국 아들 놈까지 반사적으로 주먹을 들자 주헌은 그놈의 팔도 비틀었다.
“아아악!”
“어이쿠, 넌 전치 8주라며? 손이 잘만 돌아가는데?”
“아악! 그만, 그만! 잘못했으니까!”
경찰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말렸다.
“야, 너희들 그만 안 해?!”
그 때 미련 없이 손을 놓은 주헌이 귀찮다는 듯 일어섰다.
“됐고, 유치장 어딥니까?”
“엥?”
“어차피 유치장에 넣을 것 아니요? 난 졸리니까 일단 들어가서 잠이나 자렵니다.”
그렇게 주헌은 귀찮다는 듯 유치장으로 걸어갔다. 위치가 어딘지 아주 잘 아는 것 같았다.
“아씨, 저 놈 보래?!”
주헌의 태도에 경찰들은 당황해서 쫓아갔다. 그걸 보며 두 모자는 손을 부여잡고 황당해했다.
손은 생각보다 멀쩡하긴 하지만.
“아오, 저 자식! 또라이였어?”
“저거 당장 처넣어요! 당장!”
“제대로 고소를 먹여주겠어!”
그들은 씩씩 거렸지만, 그들은 정작 중요한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자신들의 품속에서 지갑이 사라진 사실을.
* * *
“오, 요놈들 지갑은 꽤 두둑하네.”
주헌은 훔친 지갑을 보며 낄낄 웃었다. 바로 잔재주를 부려 슬쩍한 지갑이었다.
원래도 주헌은 10년 간 쥐새끼 소리 들으며 일했었다. 시선을 끌고 슬쩍 하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실력이 가히 마술사, 기인급이었다.
물론 원래는 임무 때만 발휘하던 잔재주였지만, 과거로 돌아왔겠다 시험 삼아 몸을 풀어본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성공했다.
‘괘씸한 놈들, 중요한 것도 있어보이는데 엉엉 울어보라지.’
이제 기본 스킬이라는 것만 활성화하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아직 그 방법을 알 수 없는게 문제였지만.
‘도대체 어떻게 스킬을 활성화 하라는 거지.’
최소한 그 방법이라도 알게 된다면 좋을텐데.
그런데 이 때였다.
[염탐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갔습니다.]
[악마도 기겁할 손놀림으로 기본 스킬 <손재주>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이쿠?’
그걸 본 주헌은 잠시 생각하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혹시 스킬을 활성화 하려면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한다는 건가?
곧 주헌은 시스템창을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지만 황급히 훔친 지갑부터 숨겼다.
자신을 향해서 걸어오는 형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이 녀석아. 내 와이프 얼굴도 한달 째 못 봤는데 네 얼굴을 여기서 봐야 겠냐?"
그 말에 주헌은 킥킥 웃었다.
김건우.
그는 어릴 적부터 고아로 자란 주헌을 친동생처럼 돌봐주던 강력계의 젊은 형사였다. 주헌이 피붙이들을 찾기 전까지 곁에 있어준 유일한 가족이었고 말이다.
“어쨌든 이번 일은 내가 처리했으니까 걱정마라. 하여간 그 상습범 사기모자들 같으니.
너 같은 사례가 많아서 오히려 그 쪽을 깜빵에 넣어야 할 판이다.”
그 말에 픽 웃던 주헌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형, 궁금한 게 있는데.”
“궁금한거?”
주헌은 대답대신 TV를 가리켰다. TV에는 온갖 뉴스 속보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금일 오후 3시경, 명동 한 복판에 정체불명의 고분이 나타나 충격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천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고…….]
그러자 함께 뉴스를 보던 김 형사는 쯧쯧 혀를 찼다.
“무덤이 나타나는 이유를 묻는 거면 경찰도 잘 몰라. 9개월 째 밝혀진 게 없거든.”
아니 그건 별로 상관없었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주헌은 저 현상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분화]
저건 유물들이 자신의 주인을 찾기 위해 일으킨 현대의 재난이다.
제우스, 솔로몬, 소크라테스, 파우스트, 노스트라다무스, 치우천왕 등. 신과 영웅, 호걸들의 능력이 담긴 유물이 현대에 출몰한 것이다.
유물들은 갖은 방법으로 주인을 골랐지만, 공통적으로는 무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신호로 무덤으로 몰려갔다.
‘저게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지옥이 펼쳐질 테지.’
분명 유물은 인간에게 부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만약 그 목적이 인류의 멸망을 노린 것이었다면, 그야 말로 대 성공이라 할 정도로 세상은 급변했다.
유물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독식자들에 의해 사회구조가 바뀐 것이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유물을 선점해 뛰어난 유물 사용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또 반복될 뿐이야.’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본론이었다.
“형, 혹시 초능력자 본 적 있어?”
“뭐? ………아! 얼마 전에 봤지, 1000만 영화라잖냐! 히로인이 죽여주던데.”
그 말에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반응으로 보건데 그 말은 아직 무덤이 공략 되지 않았고, 유물 사용자가 세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의미였다.
드문드문 무덤과 유물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징조단계. 그러니 특별한 경쟁자도 없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왜?
바로 권 회장 때문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권 회장은 초기에 신급 유물을 얻은 선점자였다.
‘그러니 그놈보다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권 회장이 가질 유물을 가로 채는 것.
주헌은 아직도 사지가 분리되던 감각이 생생해 이가 갈렸다.
‘복수를 떠나서라도 또 전처럼 살지 않기 위해선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생각을 굳힌 주헌이 인사를 하고 경찰서 밖으로 나갔다.
과거로 돌아온 지금,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래, 유럽. 초반에 돈이 되는 무덤은 유럽 쪽에 많았으니 그 쪽부터 가야 한다.’
하지만 이 때였다.
주헌은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아니 그도 그럴 법한게.
‘잠깐. 이 때의 난 알거지 아니었나?’
그렇다.
이 무렵이라면 전기세와 수도세도 못내던 시기였다.
그러니 비행기는 개뿔, 당장의 생활비도 위급한 판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걸 깨달은 주헌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훔친 돈으로는 밀린 핸드폰 요금을 내면 끝일 것 같고.’
시기 상 한두 달 정도 뒤면 본격적으로 유물의 시대가 시작 될 것이었다. 그런데 무덤에 들어가는 건 고사하고 그 나라에 가는 것부터가 어려울 것 같다니!
‘젠장, 내가 왜 로또 당첨번호를 기억에서 지워버렸지.’
기껏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게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였다.
“야! 서주헌!”
경찰서 앞에서 주헌을 사납게 부르는 무리가 있었다. 주헌은 그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녀석들은 분명?’
저놈들은 자신이 이 무렵에 착취당하던 회사의 상사, 아니 형님 놈들이었다.
그들은 침을 뱉으면서 주헌에게 빨리 오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안 오면 죽여 버리겠다는 건가?’
정확한 용건은 모르지만, 적어도 같이 야동을 보며 히히덕거리자는 건 아닐 터.
하지만 그들을 보며 주헌은 뭔가 떠오른 듯 입 꼬리를 삐죽 올렸다.
마침 쓸 만한 놈들이 저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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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