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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1화 (1/409)

0001 너는 도굴꾼이다  =========================================================================

< 너는 도굴꾼이다 (1) >

이 쓰레기 놈.

그것이 근 10년 동안 주헌이 들은 말이었다.

“형. 참 엿 같은 세상이다.”

그렇게 말하는 동생은 늘 한숨을 쉬곤 했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지도 않았다.

바로 빌어먹을 무덤 때문이다.

2025년, 15년 전 세상에 돌연히 나타난 수상한 무덤들.

신화, 위인, 전설, 민담, 대중소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그리고 그것들이 무덤이 되어 돌연히 현대에 출몰했다.

문제는 그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 그놈의 유물 탓이었다.

유물들은 혁신과 부를 몰고 왔고, 누구나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버렸다.

유물로 영웅의 능력을 쓰게 된 사람들, 지위를 얻게 된 사람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시대.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딱 좋은 유물이 남아 있을 때까지만.

15년.

주헌은 누구보다도 그 시기를 악몽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이었다. 그만큼 15년 만에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중산층의 몰락. 1%와 99%만 남은 사회로.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바로 유물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귀족과 천민의 사회로.

이미 좋은 유물을 독식한 <독식자> 들은 정부도 무시하지 못할 재벌이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유리하게끔 사회구조를 바꿔버렸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저임금의 노예로 몰려버렸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선 <독식자>들을 따르는 것뿐.

주헌 역시 그 부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시팔, 그 빌어먹을 새끼!”

주헌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피를 토했다.

그랬다.

주헌은 지금 죽어가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따르던 권 회장 탓이었다.

10년 동안 그의 오른팔로 있었던 주헌을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내던진 것이다. 그것도 될 성 부른 떡잎은 제거해야 한다는 거지같은 이유로.

“아 권태준, 그 빌어먹을 노친네가 진짜!”

신급의 유물을 가진 권 회장은 <독식자>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모든 유물을 차지해 확실한 일인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평소 주헌과 친했고, 그의 재능을 탐내던 권 회장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자신을 따르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신급유물로 주헌과 가족의 병도 책임져주겠다고.

주헌은 그 말만 믿고 정말 닥치는 대로 했었다.

불법밀수, 도둑질, 스파이질.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온갖 더러운 일이란 일은 다 했다. 목숨이 위험한 일도 했다. 방패막이도 서슴지 않았다.

이미 독식자들이 입맛대로 바꿔놓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 주헌이 중심적으로 했던 일은 바로 ‘불법발굴.’

즉 도굴이었다.

권 회장은 무덤의 도굴을 주헌에게 맡기곤 했었다. 그편이 정식발굴보다 훨씬 남겨 먹는 게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건 바로 자신의 능력 덕분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고고학자의 유물이었던 걸까.

목숨을 걸고 찾아낸 유물은 주헌에게 뛰어난 고고학 능력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주헌은 권 회장의 불법발굴팀의 에이스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년.

주헌은 수많은 유물들을 강탈해 권 회장을 왕의 자리에 올려주었다. 주헌이 이끄는 도굴단은 압도적인 힘으로 권 회장의 적을 쳐냈다.

남들은 그런 주헌을 향해 ‘부자에게 빌붙은 쓰레기 새끼, 노예 새끼’라고 조롱했지만, 주헌은 굴욕을 삼키고 일해왔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자신과 가족의 병을 고칠 유물을 가진 건 권 회장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주헌은 권 회장을 믿고 어떻게든 버티고 일 해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이라니.

“진짜 개 같은 새끼! 정상의 자리에 오르니까 이제 우리가 무서워졌냐!”

주헌의 주변에는 그의 육체를 탐내며 거대한 구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함께 했던 소중한 부하들은 이 구렁이들의 밥이 된 지 오래였다.

물론 여기가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권 회장이 찾아낸 미확인 최상급 무덤이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이곳이 이제 자신의 무덤이라는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주헌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개새끼들, 내가 앞으로 유물을 가진 새끼들을 믿나 보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억울함과 배신감에 위가 끊길 듯이 아파왔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귀신이 되어서 그 새끼들을 괴롭혀 줄 테니까!”

절규가 기어이 미궁을 때릴 때, 주헌은 뜻 밖의 목소리와 조우했다.

[시끄러워 죽겠군.]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주헌은 실소를 흘렸다.

“미안한데, 조용히 죽어줄 생각은 없거든?”

[오.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건가?]

꽤나 흥미로워 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주헌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유물 새끼의 말을 하루 이틀 듣나.”

[너 같은 놈도 있었다니 재미있군.]

“재밌긴 얼어 죽을. 네가 어떤 신의 물건짝 인지는 모르겠는데, 좋은 말로 할 때 여기서 날 내보내.”

[그 몸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동시에 주헌은 울컥 피를 뿜어냈다. 그의 안색이 파리하게 시들어 있었다. 아니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의 허리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보이는 것은 절단면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뿐이었다. 그나마 쇼크사하지 않은 게 대견할 정도였다.

주헌의 의식이 흐릿해질 때 쯤, 그것은 느릿하게 비웃었다.

[겁도 없이 신들의 보물을 탐내는 도둑이여. 그것이 미천한 네놈의 최후다.]

주헌은 제 죽음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는 않았다.

“시끄럽고, 잔말 말고 내보내라고.”

[희대의 재능을 가졌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고생만 하고, 기껏 가진 잔재주도 다 부리지 못했구나.]

그 말에 울컥한 주헌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듣자 듣자 하니까 물건 새끼가 뭘 잘난 듯이…누구는 이렇게…”

누구는 이렇게 살고 싶었느냐고 하려 했다. 하지만 주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새삼 자신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와 권 회장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시팔……권 회장. 운좋게 신급유물을 빨리 얻어서 팔자가 핀 주제에.”

[하하.]

그러자 그것은 또 다시 웃음을 흘렸다. 사람이라면 마치 능구렁이 노인네 같을 웃음이었다.

[확실히 이대로 죽이기엔 그 재능이 아깝군.]

동시에 주헌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빛이 터져 나오면서 주변이 새하얗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헌은 수면에서 나오는 뭔가를 보았다.

그건 수많은 유물들을 접해본 주헌조차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건 세상의 그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환락이었다.

영웅급 유물? 신급 유물?

아니다.

그럼 저건 도대체.

그 순간, 주헌은 터지는 빛 속에서 까마귀의 환영을 보았다.

[네게 기회를 주지. 그리고 진짜 왕의 자리를 차지해 보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헌의 의식이 끊겼다.

* * *

왕의 자리는 개뿔이.

그 말을 읊조리며 주헌은 다리를 움직였다. 어차피 다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어?’

움직였다. 심지어 있을 리가 없는 다리가 손에 만져졌다. 당황한 주헌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주헌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깜짝 놀랐다.

눈 앞에 웬 험상궂은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좀 듭니까?”

주헌은 대답대신 눈만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다.

아마도 경찰서인 것 같았다.

취조를 받던 사람들은 주헌을 힐끗 보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주헌은 잠시 멀뚱멀뚱 서 있었다.

뭔가 좀 이상했다.

이때 형사가 짜증이 난 듯 탕탕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봐요, 아까부터 신원을 말하라고 했잖아. 신분증 없냐고 어? 한마디도 안 하고. 묵비권 행사야? 우리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아니 묵비권이고 자시고.

뭐가 어떻게 된 줄 알아야 대답을 하지.

자신은 분명 무덤 안에서 뱀의 먹이가 되고 있었을 터인데, 경찰서라니?

‘설마 그 까마귀 놈의 수작인가?’

불쾌해진 주헌이 얼굴을 찡그리며 의자에 앉았다. 문득 자신이 죽어가던 그 최후의 미궁이 떠올랐다.

‘무덤에 침입한 벌을 주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그런데 이때 마주 앉은 경찰이 툴툴거렸다.

“으이구, 우리도 2025년 새해 첫날부터 이래야 하는 거 짜증나거든? 빨리 끝내고 가자고 좀.”

그 말에 주헌은 순간 제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방금 말도 안되는 말을 들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잠깐만. 2025년이라고?’

동시에 그는 확인 겸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벽에 걸린 경찰서의 달력은 꽤나 예전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25년 1월 5일]

정확히는 15년 전, 자신이 스물 세 살일 무렵. 심지어 무덤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도 전!

그걸 확인한 주헌은 아찔해질 만한 소름이 돋았다. 잘못 들은 게아니었다. 그리고 만약에 저 날짜가 사실이라면!

‘와씨, 그럼 신급 유물들도 아직 무덤 안에 있다는 소리잖아?’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주헌의 눈빛은 탐욕스럽게 빛났다.

‘지금이라면 유물들을 모두 가질 수 있어.’

그럴 만한 지식도, 경험도 머리에 있다. 하물며 지금은 병에 걸려 있을 때도 아니었다. 권 회장에게 얽매일 것도 없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금방 무너졌다.

바로 능력의 부재다.

유물님이 집에 계시면 뭘 하는 가.

자신이 얻었던 고고학자의 유물이 출몰하는 건 앞으로 5년 뒤. 즉 지금은 일반인이라는 소리였다.

‘기껏 유물에 대해 잘 알아도 그 도굴 능력이 없으면……….’

그를 깨달은 주헌은 짜증 섞인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에이씨, 좋다 말았네.

역시 그 까마귀 놈의 농락인 모양이었다.

보물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보물을 털 능력이 없는 도둑이라니. 완전 비웃음거리가 아닌가.

‘또다시 비참한 인생을 반복해보라는 건가?’

그런데 이때 혀를 차던 주헌이 눈을 크게 떴다.

책상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다. 특히 얼굴 옆에 떠오르는 낯선 글씨가.

[도굴꾼 서주헌.]

그걸 확인한 주헌의 눈이 사납게 반짝였다.

‘어이쿠, 이것 봐라?’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기존 원고에서 좀 수정을 거친 후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스타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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