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회
탑 꼭대기에 서큐버스
금오의 탑은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쾌적한 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 개방된 시설이었다.
규모로 따지면 태자님의 별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황자님들과 나의 사생활 때문에 하인 수는 극도로 제한된다.
극소수의 사용인들은 마치 닌자처럼 은밀하게 탑 내부를 돌아다니며 더러워진 곳이 있으면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는 등 잡일을 도맡았다.
'예상한 거랑 비슷하네.'
같이 산다고 해서 정말로 같은 방에 넣고 부대끼면서 지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짐승처럼 틈만 나면 붙어서 섹스하라고 만든 곳이 아니야.
황자들은 '품위 있게' 나한테 어필할 의무를 진다.
탑에 들어가자마자, 속된 말로 폭풍 섹스 하게 될 줄 알았던 나는 살짝 김이 샜다.
눈매가 예리한 하녀가 나를 방으로 데려가면서 하는 말이,
"기상은 06시 30분에. 7시까지 환복, 세안하고 8시에는 아침 식사를 마쳐주세요.
황자님들보다 늦게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어…. 왜 이렇게 해야 해요?"
"저는 시현 님을 시중드는 하녀. 필리에입니다.
하녀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휴가온 것처럼 편하게 지내면 안 돼?"
"안 됩니다."
단호하네….
"해의 기운을 가장 강하게 받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접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거 누가 정했냐?
"아침 식사 후에는 저와 함께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제국의 역사와 마물의…."
"잠깐! 공부를 왜 해야 하는데?"
필리에는 나를 다소 한심하게 바라봤다.
…노파 라곤이 그리워질 정도로 냉엄한 눈빛이다.
"아기를 위한 일입니다. 스케줄을 계속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하하…."
최면의 신님, 도와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초월자에게 기도했다.
하지만 필리에의 단호한 지침을 바꿀 최면술이 나한테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밤 10시까지 촘촘하게 설정된 일과를 듣고 난 후 처음 한 생각은, '못 해 먹겠다.'
이런 생활을 100일 동안 한다고?
나는 그냥 까놓고 물었다.
"온종일 자기 계발하면 섹스는 언제 하는데?"
"주에 한 번, 해의 기운이 가장 강해지는 주말에 동침하시면 됩니다."
그놈의 해의 기운.
"아니, 애가 달의 기운을 받고 싶을 수도 있지."
"…시현 님.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계십니까?"
필리에의 기세에 짓눌린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지만…."
"저는 금오제 운영을 5대째 맡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와 할머니도 똑같은 일을 하셨죠."
어마어마한 직업의식이 전해져 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두고 봐.
틈틈이 변태 섹스할 거야.
"오늘은 우선 짐을 풀고 편히 쉬어주세요.
내일부터 일과를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 당일부터 터치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내 방은 금오의 탑 꼭대기에 있었다.
탑으로 지은 것도 해의 기운을 강하게 받기 위함인가?
꼭대기 층은 오직 내 방뿐이었다.
층 하나를 전부 사용한 방이 얼마나 넓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숨을 토해낸다.
"하아."
얼떨결에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게 됐네.
황자님들은 지금쯤 내가 먼저 시현을 임신시켜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낳아줄 생각이야.
후후. 이렇게 예쁘고 기특한 암컷이 어딨어?
"히히!"
침대에 부비부비하면서 뒹굴다가, 거울을 보고 현타가 왔다.
'아….'
으아악.
흑역사를 떠올린 것처럼 자괴감이 밀려온다.
아니,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만들고 있기에 밀려오는 자괴감인가?
하는 짓이 암컷 그 자체다.
"옷 벗겨줘. 얘들아."
아.
생각해 보니, 촉괴들 벗어 놓고 왔구나.
어쩐지 쭈읍 쭈읍 피드백이 없더라.
나는 옷을 직접 벗다가,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에 당황한다.
'뭐야.'
하녀들이 입혀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쓱 올리고 쓱 내리고 쓱 돌리면 몸에 착 붙었던 기억.
그대로 되감았을 뿐인데 쓱 돌리다가 옷을 찢어 먹었다.
"으앗."
내 잘못 아니야.
옷이 솜사탕처럼 찢어지는 게 어딨어….
나는 조심조심 마저 벗고 나서, 속옷 차림으로 창문을 열었다.
"와!"
밖을 향해 소리 한 번 질러준다.
"시현 님!"
…필리에한테 혼났다.
「아무도 없을 때도 품위를 지켜주세요!」
란다.
…아스테는 뭐 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
* * *
"익숙한 냄새가 나는군."
시현이 금오의 탑에 들어간 날,
오크의 왕 두메른은 인간 마을 근처를 지나면서 코를 킁킁거렸다.
오크는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두메른도 마찬가지였다.
두메른이 맡은 냄새는 매력적인 암컷의 냄새.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냄새였다.
"부옥. 인간 마을을 덮칩니까? 부옥."
어느새 그의 심복이 된 겁쟁이 오크 부옥이 잽싸게 두메른의 의중을 묻는다.
두메른은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안 된다.
우리 마왕님의 방침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순 없지."
"그러면 왜 마을을 보고 계십니까?"
"대기해라. 내가 용무를 마치고 오는 동안."
"옛."
두메른은 날렵하게 마을 외곽을 가로질렀다.
손쉽게 유리검 아스테의 기척을 찾아낸 두메른이 머리를 숙이고 다가갔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지근거리에 두메른이 와 있음을 알아챈 상태였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무슨 일이지? 두메른."
"아스테 언니. 왜 그래요?"
"누나…?"
아스테는 목검을 쥐고 있었다.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마을 아이들에게 검술을 지도해주고 있었다.
두메른은 가슴이 끓는 걸 느꼈다.
끝내 무력으로 이기지 못해 넘볼 수 없었던 암컷을 범하고 싶다.
그러나, 눈앞에 띈 아이를 인질로 잡지는 않는다.
두메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아무것도 아니야.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나 봐."
"누나. 저 백번 다 휘둘렀어요"
"응. 잘했어. 관절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해. 쉽게 부담이 가니까…."
잠시 후.
아스테는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초원까지 나왔다.
마을이 보이는 거리지만, 한밤중에는 사람이 죽어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음산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시야가 제한되는 상황이 익숙했다. 낮에 죽인 괴물보다 밤에 죽인 괴물이 더 많을 정도다.
아스테는 허리를 곧게 펴고 우아하게 걸어서, 두메른이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질문에 대답해라.
내가 즉시 너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네가 시현의 하수인이기 때문이다."
"이쪽도 마찬가지.
와이프의 말을 거스를 순 없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다."
"그러면 뭐지?"
"대결해라."
"…."
아스테가 여유롭게 웃는다.
"또 일격에 패배하고 싶나? 두메른."
"힘의 두메른을 모욕하는가!"
두메른의 근육에 핏줄이 도드라진다. 오크라고 생각하기 힘든 거구에 흉흉한 패기.
보통 사람이면 하얗게 질려서 도망갈 광경에도 아스테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내가 이기면 얌전히 떠나라.
오크들이 쉭쉭대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밤잠을 설치니까."
두메른이 움직인다.
아스테는 곧장 유리검을 휘둘러 참격을 내뿜었다.
순수실력으로 한 번 이겼던 상대. 다시 덤벼도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스테가 간과한 일이 있었다.
새 마왕의 출현으로 흥분한 마물을 주먹 하나로 평정한 두메른이, 3개월간 휴식한 그녀의 기량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는 것을.
"하앗!"
아스테의 필살의 일격!
그러나 두메른은 엄청난 민첩성으로 몸을 던지고, 아스테를 몰아붙인다.
"읏!?"
서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상황 변화만으로 흐름이 크게 뒤집힌다.
그래도 아스테의 유리검은 예리함을 잃지 않았고, 두메른의 급소를 노렸다.
하지만 단순한 공격으로는 흥분한 오크의 왕을 막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버겁지…!"
갑옷을 입지 않은 만큼, 몸놀림은 평소보다 가벼울 터.
언제나 실전 속에 살았던 아스테가 이번만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그간 너무 마음이 풀려 있었다는 사실.
"벌써 항복인가? 유리검!"
"웃기는 소리!"
거센 칼놀림이 지면을 가른다.
두메른은 차분하게 아스테의 움직임을 보고 몸을 날렸다.
"아…!"
급하게 움직이려다가 발목을 접지른 아스테는, 그대로 두메른에게 덮쳐졌다.
하얗게 질린 아스테는 몸부림쳤다.
"아, 안 돼!"
아스테는 두메른의 품에 안겨 도망칠 수 없었던 굴욕을 떠올리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만.
이제는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도 없다.
두메른의 딱딱한 좆이 아스테의 뽀얀 살갗에 꾸욱 닿는다.
"큭, 저리 비켜!"
"설치지 마라. 패배를 인정하나?"
"…."
할 말을 잃은 아스테.
두메른이 자신에게 결정타를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이것이 정말로 단순한 결투였음을 깨닫는다.
두메른은 그저 무력한 암컷이 된 아스테의 목에 손을 얹고, 머리카락을 꽉 붙잡은 채 다시 묻는다.
"패배를, 인정하나?"
"…으…. 읏…."
아스테는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걸 느꼈다.
'뭐지…?
패배할 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싫은 기분이 드는데….'
수컷의 손아귀에 꽉 붙잡힌 지금, 아스테는 묘한 가슴 울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 허무한 패배 이후로 무언가 변한 것일까.
이것이 패배에 순응하는 거라면 아스테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꽈아악.
목을 조여오는 손.
생살여탈권을 쥔 채 자신을 그저 패배한 암컷이라고 각인시키는 두메른의 힘.
아스테는 다리를 바동바동 흔들다가, 폐에 있는 공기를 다 토해내고 말했다.
"내가 졌…어."
두메른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지.
그런 너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다."
"…무슨, 바람? 마물 주제에…."
"시현이 마물로 태어난 자기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하려는 것 같더군.
솔직히 정말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인 내가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
"내가 이겼다. 틀림없이."
"…그래."
이때, 아스테는 현역으로 돌아가 검술을 연마하고픈 욕구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층 더 강해진 오크의 왕을 또다시 뛰어넘기 위해.
지금은 뼈아픈 패배를 깨끗하게 받아들인다.
오늘은 몸도 마음도 모두 져버렸다고.
"두메른, 너의 승리다.
하지만 다음에는…."
두메른이 갑자기 자지를 꺼냈다.
아스테는 주저앉은 채 자지를 눈앞에 두고 화들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도 너무나 잘 보이는, 그것.
두메른의 자지는 두꺼운 혈관이 양각된 석상처럼, 눈으로 보기에도 엄청난 딱딱함을 과시했다.
방심한 틈에 강탈당하는 섹스였다고는 하나….
한 번 섹스를 경험한 아스테는, 그 자지를 본 것만으로 온갖 상상에 빠졌다.
'저런 게 들어온다면….'
"무슨 생각이지?"
아스테는 속내를 감추고 두메른을 노려봤다.
"빨아라."
"뭐?"
"정성 들여서 내 자지에 봉사해라. 그게 패배한 네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스테는 당당하게 자지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두메른을, 한참 쳐다봤다.
정말로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메른은 세상 떳떳하게 자지를 내민다.
"내 연인처럼 소중하게 자지를 쓰다듬고, 군침을 내서 입에 머금고 빨아라.
내가 쌀 때까지."
"그런 걸… 어떻게…."
아스테의 머릿속은 하얗게 물든 상태였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
상상해본 적도 없어.
남자의 자지를 빠는 자신의 모습을, 두메른의 말을 듣고 지금 막 떠올렸을 뿐.
"밤공기가 차갑다.
너한테 꼴린 자지를 풀어줘야 돌아갈 것 아니냐."
"그런… 거야?"
"결투하는 동안에도 큰일이었다. 얇은 옷 입고 살랑살랑 뛰어다니는 네가 꼴려서."
"…살랑살랑 뛰어다니는 게 뭔데."
"흠. 시현이처럼 좋은 반응이 안 돌아오는군."
"나는 아무것도 몰라. 뭘 해야… 꼴리…? 는지도."
"빨아라. 정성스럽게."
"…꼴린 자지, 꼭 풀어줘야 해?"
"패배한 자한테 달리 선택지가 있나?"
두메른은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는 궤변에 불과하지만, 그는 정말로 아스테한테 좆 빨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중이었다.
아니, 만약에 시현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당장 아스테를 덮쳤겠지.
그 사실만은 아스테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얌전히 패자답게 굴기로 했다.
"알았어. 자지 빨게…."
두메른이 가까이 다가온다.
아스테는 움찔하며 다가오는 자지를 멍하니 올려봤다.
"높아서… 입이 안 닿아."
"이렇게 하지."
두메른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스테는 무릎을 꿇은 채로 슬금슬금 기어 와서, 두메른의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간다.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두메른을 째릿 노려보는 아스테.
"세기를 조절하려면 여기를 잡아야 한다."
"…복잡하네."
"군침을 모아라."
오물오물….
아스테는 경건하게 두메른의 자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두꺼운 오크 자지에 손을 올리고 침을 모았다.
그리고 입을 아 벌린 채….
땀으로 찌든 자지에 예쁜 입술을 갖다 댔다.
쪽.
[작품후기]
아스테를 덮치는 암컷 타락의 위기..!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