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TS물-225화 (225/295)
  • 225회

    어장 관리 암컷의 최후

    "제가 유리검을 데리고 나와서 혼란스러우시겠죠."

    "적절했다고 봐요. 이기기 위해서."

    "아무리 투신전이 실력이 겨루는 곳이라고 해도, 여성이 이곳에 직접 나온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나는 뒤늦게 태자님께 화가 나 있다는 걸 알았다.

    아스테를 끌어들인 이유.

    그런 건 뻔한데.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폐하가 당신을 너무나 아끼기 때문에,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가치가 많이도 올랐네요."

    알고 있었지만, 태자님한테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놈의 '순결한 처녀.'

    황제는 무슨 수를 써도 더럽힐 수 없는 나를, 진귀한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저는 이기기 위해 아스테를 부른 게 아닙니다.

    지지 않는 패를 골랐을 뿐."

    "제 자유를 보장하는 황자님이 무려 둘이나 있어서 참 든든하네요."

    "휘말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본래, 아멜리아를 구해준 은인인 당신에게 큰 상을 내리는 것이 옳은데…."

    "감옥에 가두는 건 너무했죠. 이것도 다, 이 나라 황제가 괴짜에…."

    "어흠! 어흠!"

    도하는 당황해 헛기침 소리로 내 말을 가렸다.

    태자 앞에서 황제를 깎아내리는 당돌함.

    내 몸 곳곳에는 「예쁘니까 용서받을 거야」라는 암컷 마인드가 구석구석 배어 있어서 쓸데없이 당당하다.

    잘 자란 황자님들 때문에 참는다.

    "황자님들 고생이 심하겠어요.

    편하게 앉아서 구경하고 싶었을 텐데, 원치 않는 투신전이 되었으니까."

    "이 일에 관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과연 말처럼 깨끗이 정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태자님은 태자님의 체면이 있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게 있을 텐데, 갑자기 투신전에 모든 걸 걸게 됐으니까.

    …아스테를 끌어들인 이유는 잘 알겠다.

    "확실한 것은, 이번 투신전을 제패하는 자가 많은 걸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폐하의 총애를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 알 수 없으니 부유한 귀족이 당신을 손에 넣는 것도 견제해야 했죠."

    생각해 보니, 돌고 돌아서 태자님께 신세를 진 셈이다.

    아스테가 아니었으면 테호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시현 씨는 이 투신전, 누구를 응원하십니까?"

    "아무나 상관없어요. 이기는 사람이 내 편이에요."

    도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시현 씨라면 투신전을 뒤엎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뭐, 이미 한 번 했으니까…."

    "예. 아멜리아를 구하기 위해서였죠.

    한데 자기 자신은 누구와 맺어져도 상관이 없다니…."

    "…."

    "그 앞은, 자칫하면 낭떠러지일 텐데요."

    태자님 눈은 못 속이겠네.

    내가 파멸을 바라는 것까지 들켰을까?

    저열한 인간에게 붙잡힐수록, 온갖 야릇한 짓을 당하게 되리라는 기대.

    아스테가 당할 때는 당황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스스로 그런 꼴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마 아무 상관이 없겠어요?

    생각해 봐야 별수 없으니 놓은 거죠."

    적당히 둘러댄다.

    어차피 태자님이 나와 어머니의 대화를 이해할 리 없다.

    파멸을 바란다는 게 어떤 것인지.

    태자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정상적으로 자라온 대다수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굴욕적인 섹스도 마다하지 않는 서큐버스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태자님은 모르겠지.

    "당신과 서안의 관계를 알고 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책감 느끼지는 말아 주세요.

    태자님이 이긴다고 해서, 거꾸로 원한을 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전사의 휴식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태자님이 대기실을 떠났다.

    아스테는 나와 제 4황자의 관계가 궁금한 눈치다.

    "시현. 북부에 있을 때, 서안 황자님과…?"

    "아, 아니야!

    그때는 눈 맞지 않았어…."

    "정말로?"

    "…상대의 마음은 모르지."

    "황자님의 짝사랑?"

    "아스테도 이런 얘기에 관심 있구나."

    아스테는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투신전이 끝나면 황자님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

    "그러면, 결혼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응. 근데 상황이…."

    투신전을 제패한 사람은 나를 가진다.

    그게 보지 노예든, 오나홀이든, 정액변기든….

    …나는 제국 신민들이 보는 앞에서 주인님을 인증하게 될 예정이다.

    그게 태자님이 된다면, 태자님은 나를 동생한테 양보할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태자님이 날 불러 보지 팡팡해도,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큰형님이 자제하더라도 내가 참을 자신이 없다.

    나는 이제 그런 배신섹스 못 참아.

    "아스테. 태자님한테는 적당히 둘러댔지만…."

    "응?"

    "사실 나는, 누가 이겨도 상관없어."

    "…."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내 주인님이 되더라도…."

    "알 것 같아."

    "정말로?"

    "예전에 책에서 읽은 적 있어.

    그거, 「마조히스트」라고 부르는 거 아니야…?"

    나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틀렸어?"

    "아니, 비웃는 게 아니라….

    아스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어."

    "야한 말이야?"

    "야한 게 연상돼."

    지금까지의 모험을 통째로 돌이켜 보면,

    강제로 마조히스트가 되는 조교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마조히스트라고 하면 채찍을 맞거나 달궈진 촛농을 떨어뜨리거나 욕을 먹으면 좋아한다는 인상이 있지만, 그런 건 너무나 단순하다.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마저 내던지는 강렬한 투신.

    첫째로 소중한 건 자기 몸.

    둘째로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

    황제는 모든 걸 내다 바치며 쾌락을 탐닉하는 괴물이고,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야릇한 암컷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그러나, 소중한 사람까지 팔아먹을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걸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아스테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꼬옥.

    "시현?"

    "아스테. 내가 당하는 건 좋아."

    "응. 알아. 시현은 변태니까."

    "하지만 아스테가 당하니까, 왠지 싫더라.

    흥분되기는 했지만…."

    "흥분돼?"

    "아주 조금 그랬다는 거야! 조금!"

    "내가 의식 없이 질내사정 당하는 거 보고, 시현은 흥분했어?"

    "아, 아니…. 어쨌든!"

    거기다, 너….

    그때 의식 없었던 거 아니야.

    관중석에 촬영기기를 들고 올 수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최면섹스가 촬영됐다면… 어휴. 생각하지 말자.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좀 전 같은 일을 당할 것 같으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기권해."

    "바보."

    "…내가 무슨 이상한 말 했어?"

    아스테의 반응에 주눅이 든다.

    "투신전에서 기권할 수 없다는 건 시현이 잘 알 텐데?"

    "아…."

    그랬지.

    "그 남자가 항복했을 때 멈춘 건,

    목숨까지 빼앗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기권 제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야."

    "…응."

    아스테가 돌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애완동물 대하듯이… 그렇게 쓰다듬으면…. 흐아아.

    "하지만, 네 마음은 잘 알았어. 시현."

    아스테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와줘서 고마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로?"

    "임신하면 좀 난처하겠지만, 그때는…."

    "내가 도와줄게!"

    나는 아스테의 손을 꼭 잡았다.

    "시현?"

    "아까 그 질싸 섹스로 임신했으면, 내가 꼭 돌봐줄게. 알았지!"

    "응."

    내 기세에 놀란 아스테는 고개를 끄덕인다.

    "임신한 것 같으면 말해야 해?"

    "…임신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시현."

    "아니야. 누가 그래?"

    "하지만, 알았어.

    질…싸 섹스? 그거 당한 건 처음이라서…. 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고 있었거든."

    헉.

    내가 질싸 섹스라는 어휘 써서, 따라 하는 거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네.

    아스테의 사랑스러움은 측정 불가다.

    "시현은 자주 임신해 봤지…?"

    "그럼!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출산했지."

    "그러면… 몸에 변화가 생기면 말할게."

    "응!"

    생각보다 대미지가 크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이 투신전에 안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특히 예쁜 여자가 참여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스테가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초월자를 상대로 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를.

    [신사·숙녀들이 당신의 지명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빨리 무대로 돌아오라 이거지?

    나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고 스카이라운지로 돌아왔다.

    아스테와 대화를 나눈 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이대로 나 혼자 안 좋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다음에는 경기장으로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흐흐. 무슨 일이 있었지?"

    흑의인이 내 뒤로 바짝 다가온다.

    "너한테 말해야 할 이유라도 있냐?"

    "유리검은 잘 극복했나 보군.

    네가 꼴리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당당하게 걸어오는 걸 보니."

    "…실룩거리지 않았어."

    나는 은근슬쩍 엉덩이에 손을 대는 흑의인을 뿌리쳤다.

    "엉덩이까지 된다고 한 적은 없거든?"

    "젖탱이를 만지면 들킬 텐데. 아쉽군."

    "하나도 안 아쉬워."

    "당장 너랑 섹스하고 싶은데. 시간 남았을 때 화장실이라도 갈까?"

    "맡은 일이나 잘해. 네가 내 남자친구냐?"

    하, 젖탱이 만지는 거 허락해줬다고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는 거 봐.

    "쉬는 시간에 젖 만지게 해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후후.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어느새 다음 경기 준비가 끝난 듯하다.

    이번에는 다른 그룹.

    1회전부터 자이로 황자님이 나섰다.

    아스테 못지않게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다.

    신부가 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저 사람이 하는 일이 잘 풀렸으면 해서.

    엄마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아세나스 황후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모르겠어. 무슨 생각 하는지.'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건 황제가 아니라 황후였을 텐데.

    "역시나 저 황자님은 강하군."

    흑의인이 중얼거렸다.

    나는 경기에 눈을 떼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내려본다.

    붉은 머리 황자님의 기량은 압도적.

    이 그룹에서 당해낼 자가 없을 정도였다.

    추잡한 마음을 품은 검투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린다.

    자이로 황자에게 보호받는 기분이라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이로….'

    그룹에는 한 명의 남자가 더 있다.

    나를 가지려는 사람.

    나를 신부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

    오직 그 마음으로 참전한 검투사….

    '서안 황자님.'

    둘 다 참 잘생겼다.

    남자 둘이 나 때문에 싸우는 상황. 속이 근질거린다.

    하필이면 아스테가 최면섹스를 당한 영향으로 경기장에는 아직도 음성 확대 마법이 걸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경기장 전체에 중계되었다.

    "서안."

    "자이로 형."

    상대가 나타나면 검부터 휘둘렀던 자이로가, 석상처럼 굳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서안이 어떤 마음으로 투신전에 나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마지막까지 맞닥뜨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무섭나?"

    "아니오. 어렸을 때부터 따른 형을,

    제 손으로 해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자이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서안. 뒷일은 내게 맡겨라."

    "그럴 수 없습니다."

    "시현은 내가 반드시 구해주겠다."

    으윽!!

    붉은 머리 황자님의 낯간지러운 대사에 내상을 입는다.

    한때 남자였던 내가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민망해서 손발이 퇴화할 지경이었다.

    "시현을 구하는 건 접니다."

    으으윽!

    몸을 굽히고 끙끙거린다.

    모두 보는 앞에서 그런 대사 하지 말아요. 제발!

    구닥다리 순정 만화 같은 대사를 읊으면서도 황자님들은 세상 진지하다.

    그래서 다들 몰입해서 보고 있지만, 당사자인 나는 죽을 맛이었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돼."

    "형들이 대신 구해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해야 해요."

    "…그런 생각인가."

    자이로는 서안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알았다."

    마치 싸우기를 체념하는 분위기다.

    자이로의 목적은 은인인 나를 구하는 것.

    서안도 같다.

    하지만 서안은 그 역할을 양보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자이로가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싸우다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큰일이니까.

    팽팽했던 긴장감이 완화되는 바로 그때.

    자이로와 서안의 검이 부딪쳤다.

    어라?!

    "…형님!?"

    "…."

    자이로는 말이 없다.

    말 대신에 검으로, 무수한 참격으로 서안을 몰아붙인다.

    적당히 봐주다가 지려는 거 아니었어?

    마치 서안을 한계까지 몰아세우는 것 같잖아!

    서안은 수비에 급급했다.

    자이로의 검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서안 황자님의 검술을 봤을 때보다, 지금 움직임이 훨씬 더 좋아.

    그런데도 자이로가 압도하고 있어.

    두 사람의 역량 차이는 뚜렷하다.

    알 수 없는 건 자이로가 왜 덤벼들었냐는 것인데….

    "흐읍!"

    서안은 망설임을 버리고 맞섰다.

    상대의 투지가 잡념을 허락하지 않기에.

    "와아아아!"

    "대박이다."

    "황자님들끼리 칼싸움이라니!"

    "서로 양보 없이 시현을 뺏을 생각이야."

    그럴 리가 있냐!

    서안은 몰라도 자이로는 그런 생각이 아닐 텐데?

    폭풍처럼 거칠게 휘몰아치는 검격에 맞서는, 서안 황자.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아서 위태롭지만, 발을 땅에 뿌리내리고 받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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