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TS물-181화 (181/295)

181회

구출 준비

내가 덮쳐서라도 기정사실을 만들겠다고 벼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잘됐다.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벌써 두 명의 황자와 부적절한 육체관계를 맺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진실한 사랑을 나누기는 글렀단 말이야.

원래부터 그런 건 질색이다.

그러니까, 황자님에게 가르쳐 줬다.

'나를 취급하는 올바른 방법'을….

아침에 방을 나왔더니 노파 라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자님이 한 번 돌려보냈는데도 매복하고 있었구나.

딱 걸렸네.

"안녕하세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지."

"'이런 일'이 뭔데요?"

"태자님께 모든 사실을 알리겠다."

"좋아요."

나는 지금 질내사정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

면전에서 무슨 소리를 들어도 흥분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라곤이 손을 들기 전까지는.

"이런."

헐벗은 것처럼 보여도,

저는 [촉수 갑옷]을 입고 있어요. 할머니.

대수롭지 않게 손목을 낚아채고 힘을 넣는다.

"으윽!"

노파는 고통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손찌검은 안 돼요."

"황자님을 홀리는 못된 여우 년!"

여우라니, 내심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맞아요. 여우는 질내사정 잔뜩 받았어요.

황자님, 오전 근무는 힘드실지도 몰라요. 불알이 텅텅 빌 때까지 쥐어짰으니."

"부끄러움을 모르는구나."

"서로 동의하에 했다는 것만 알아줘요.

약간… 몸으로 부추기긴 했지만."

나는 라곤의 손을 미련없이 놓아주었다.

언젠가 이런 일로 다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눈앞에서 사라져 줄게요. 할머니."

"썩 꺼져라."

어차피 다시 올 일 없다.

당분간은.

아멜리아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했으니까.

그게 황자님의 계획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계획을 실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아멜리아와 만나서 함께 피의 권역으로 도망치기만 한다면, 열쇠도 필요 없다.

바꿔 말하면,

그녀가 있는 곳에 다다르기까지가 문제다.

황자님이 큰 틀을 세워줬으니 세부 계획은 내가 짠다.

마음속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아 있었다.

…정말 이대로 도망치기만 하면 끝인가?

나는 별궁을 나왔다.

스산한 아침 공기, 기분이 좋다.

질펀하게 섹스한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지만, 딱 좋아.

'일로넨'의 효과도 검증했겠다.

나는 기노단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메이드 루아가 이쪽을 발견하고 고개를 숙인다.

"주인님은 안쪽에 계십니다."

별택의 어두컴컴한 방 안.

제 3황자 기노단이 의자에 앉은 채로 나를 반겼다.

"약효는 어땠지?"

"효과가 있었어요."

첫 피험자는 신애였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오염 수치가 내려갔음을 알린다.

"같이 다니던 그 여자로군. 바로 시험해 봤나?"

"네."

권역에 있는 오염된 여자 중에 말이 통하는 사람은 내 친구들뿐이다.

신애는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오염되었고, 임상시험에 협조적이었다.

"나머지 두 알은?"

"아직이에요. 오늘은 보고할 게 있어서 왔어요."

"뭐야. 빨리 끝내."

사람이 기껏 발로 뛰어 알아 왔더니….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기노단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돌렸다.

"…말해 봐."

"황릉 지하에서 듀롯 제조 시설을 발견했어요."

"흐음. 혹시 건드렸어?"

"현장은 보존해 두었습니다."

"네가 멍청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기노단 황자는 산발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올리고 허리를 일으켰다.

폐인 생활을 했는지 꺼슬꺼슬해 보이는 턱이 눈에 띈다.

"루아. 나갈 준비를."

"알겠습니다."

"안내해."

"황릉인데요?"

"그건 방금 들었어."

몰래 들어가는 방법 외에 황릉에 접근할 수단이 있나?

나는 기노단을 황릉 앞까지 안내했다.

예상대로 병사들이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다.

"저 밑에 있다고?"

"예."

"믿기지 않는데."

…직접 보든가. 그럼.

"잠시 기다려."

기노단은 구부정한 등을 쭉 펴고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생각 외로 병사들이 쉽게 물러났다.

"뭐라고 하신 거예요?"

"도굴흔이 없나 살펴보러 왔다고 했다."

…그냥 둘러댄 거잖아.

"그 표정은 뭐야? 하늘을 날아서 들어가기라도 할 줄 알았냐?"

"그냥 제멋대로 해도 되는 게 부러워서요."

"꼬우면 황자하든가.

야, 이 여기가 확실하지? 다른 곳이었다거나 하면 혼날 줄 알아."

"…저 갈래요."

"알았어. 알았어. 돌아와."

기노단이 내 팔을 잡는다.

"…서안이랑 있다가 왔냐?"

"어떻게 알았어요?"

"그 녀석 향수 냄새가 나서.

그거 내가 선물로 준 거거든."

"…아.

네, 먼저 보고할 게 있어서."

"'보고' 말이지."

들켰다….

약점 잡혀서 섹스하게 되는 흐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노단은 조용히 황릉 안으로 나아갔다.

"안내해. 지하로 가는 길은 어디야?"

"이쪽입니다."

지하에 있는 듀롯 제조 시설을 본 황자님은 탄성을 질렀다.

"잘도 이런 설비를…."

"도움이 될까요?"

"잘했어. 큰형님에게 말해서 설비를 옮길 수 있도록 해야겠군."

하나 또 해결이다.

"시현. 여기로 와 봐.

이건 지금 옮겨야겠어."

"뭔데요?"

다가갔더니, 기노단이 바닥에 있던 호스를 쥐고 내 얼굴에 향했다.

"아."

"푸슉."

"…뭐해요?"

"내가 그럴 마음이 있었으면, 너는 순도 100%의 듀롯을 뒤집어썼을 거야."

"…."

"너, 조심성이 없다고.

아무리 내가 황자라도, 남자랑 단둘이 이런 곳에 오기 전에는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걱정해주셔서 고맙지만, 저는 괜찮은데요."

"서안은 이런 게 뭐가 좋다고…."

"듀롯 안 뿌려요?"

나는 호스 구멍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 나갔냐?"

억지로 약 빨게 하고 질내사정 섹스해도 상관없으니까, 무방비하게 서 있지.

기노단은 내 몸을 훑어보더니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남의 여자는 안 건드려.

그렇게 헐벗고 나를 유혹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면, 꿈 깨라."

"아."

나, 노출도 높은 복장이었지.

기노단 황자의 취향은 분명히「조신한」이었을 텐데.

수컷 간파를 활용하지 않은 내 패배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는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수가 있어요."

"퍽이나."

"일로넨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한참 멀었어. 허튼 기대 품지 마."

"약이 완성되면 오염을 극복할 수 있잖아요."

"그게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 몇십 년 후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어."

"…."

기노단은 주변을 둘러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라면 듣는 사람도 없을 테니 편하게 말하지.

아멜리아를 구출하는 건 포기해."

나는 울컥했다.

포기하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잖아.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

너는 이해 못 하겠지. 투신전은 단순한 스포츠, 놀이가 아니야."

"뭔데요. 그럼?"

"고대의 삽화로 추정한 투신전의 원형은 인신 공양 의식이었어.

제국은 천 년도 넘은 옛날부터 산 제물을 바쳐 사람들의 안녕을 빌었지."

…너무나 있을 법한 일이라서 말문이 막혔다.

탈출 불가능한 원형 경기장도, 인신 공양도.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상상보다 훨씬 잔혹했음을 알기에.

1년 내내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인육을 섭취한 제국도 있다.

안식일은 1년 중에 고작 5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날마다 사람을 잡아먹고 해골로 탑을 쌓았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용감한 투사를 모아 싸우게 했지.

투쟁심으로 들끓는 심장을 바치면 신들이 크게 기뻐했으니까."

"그러니까….

아멜리아를 바치는 건 오랜 관습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냐?"

나는 곧 기노단이 하려는 말을 깨달았다.

"큰형님은 그걸 「스포츠」라고 부르지만,

그곳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합리성도 규칙도 존재하지 않아.

참가자는 모두 신에게 운명을 시험받는 존재가 되어, 부조리한 상황에 놓이게 돼."

"운명을 시험받는 존재…."

"그러니 서안은 네게 도망가라고 했겠지."

…그렇다.

서안 황자님의 계획에, 내가 대전사로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말은 없었다.

내가 투신전에 참가하길 바란 자는 단 한 명.

'피의 어머니' 뿐이다.

'여기가 엔딩이구나'

나는 직감했다.

피의 어머니는 후원한 나에게 무언가를 받아내려고 한다.

여황제가 되거나….

아니면… 어떻게 되는 거지?

도망치면 선택을 미룰 수 있다.

투신전은 매년 하니까.

돌이킬 수 없는 건 아멜리아의 목숨.

또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초월자들의 시선….

[당신의 지명도가]

[당신의 지명도가]

[12,000을 넘었습니다]

[12,000을 넘었습니다]

갑자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장을 쥐어 짜이는 것 같아.

왜 나를 지명하는 거야?

어떤 꼴이 되는지 보기 위해?

"이제 투신전에 참가한다는 게 어떤 의민지 알겠냐?"

"꼭 참가해야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만약에 네가 아멜리아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봤어?"

"…즉결처형당한다든지."

"그건 너무 쉽지.

…우선, 관중들이 널 보고 환호할 거야."

나는 상상해 봤다.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환성을.

"너를 신이 보낸 투사라고 생각할 테니까.

자격이 없다고 쫓겨날까? 천만에.

관중들이 보고 싶어 할 거야. 네가 아멜리아를 지키다 망가지는 모습을."

"저도 자연스럽게 구경거리가 되겠네요."

"그래.

그렇게 되면 아무도 널 구하지 못해."

기노단이 말하는 '아무도' 에는.

나를 사모한다고 말한 서안 황자님까지 포함돼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로 무섭다.

그런 곳에….

매년 신들에게 바친다는 구실로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곳에, 자기 딸을 바친 놈이 있다는 사실이.

"잘 알았어요."

[메인 퀘스트 - 여황제]

[【후원자】- 피의 어머니]

[원형 경기장에 참가한다]

[보상 - 없음]

[메인 퀘스트 - 마왕]

[【후원자】-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

[수도를 점령한다]

이제 알았어.

클리어 후 소식이 없는「전설적 창녀」 임무를 제외한, 모든 주 임무가 눈앞에 정렬한다.

「여황제」임무를 수행하겠어.

[숙녀「피의 어머니」가 미소짓습니다]

"투신전 이야기 더 해줄래요?"

"…너, 뭔가 변했는데."

"서안 황자님을 슬프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투신전.

노예한테는 자유가 있는 곳.

검투사한테는 명예가 있는 곳.

야만적인 의식이 거행되는 제사장.

누군가에게는 스포츠 경기가 펼쳐질 바로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이 세계에 왜 떨어졌는지 알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개막은 사흘 후.

이제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시현. 가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스테와 만났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모든 게 끝나면 다시 이쪽에서 연락할게."

이 일에, 유리검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다.

그녀는 두메른을 잡기 위해 돌아왔고, 그 일 역시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미룰 수 없는 일이겠지."

"갑자기 자리를 비워서 미안해."

"사과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함께 묵었던 이 숙소를 거점으로 하자.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돌아오도록 해."

"고마워. 아스테."

나는 아스테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문을 열기 무섭게 세이나의 마중을 받는다.

설아까지 나와 있었다.

은근슬쩍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정신파를 날린 건 비밀이다.

"엄마. 오늘은 같이 자요. 네?"

"아직 날도 안 저물었는데?"

"엄마 품에서 낮잠 자고 싶어요."

뒤를 보니 비르가 서 있는 게 보인다.

비르는 첫째답게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 세이나.

그게 끝나면 엄마랑 낮잠 자자."

"네!"

"비르. 부욱을 데리고 거실로 가 있어."

"비르릇."

트리샤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나간다.

"무슨 일이야? 시현."

"나중에 얘기할게."

나는 먼저 혈족들을 모아 놓고 얘기했다.

"세이나. 이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몰라."

"아…."

세이나가 시무룩해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 다시 이런 집을 구하게 될 수 있을지는 몰라.

미안해. 얘들아."

"마마. 비르 믿는다."

'비르를 믿는다'

비르가 고블린 소굴부터 나한테 해준 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비르 믿는다."

"괜찮아요. 어머니."

설아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어른스러워.

세이나는 내 몸에 달라붙어 볼을 부비부비했다.

"저는 엄마만 있으면 돼요.

누가 엄마를 힘들게 해요? 말해 주세요."

벌써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는 모습이다.

부욱은 태평하게 배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부욱."

…방귀 소리 아니지?

독한 냄새 때문에 코를 막는다.

비르가 항의하듯이 부욱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지만, 체격 차이가 워낙 커서 부욱은 꿈쩍도 안 했다.

"어려운 싸움이 있을 예정이야.

싸움의 결과를 떠나서, 우리는 여기 있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

"맡겨주세요! 엄마를 위해서 뭐든 할게요."

"상대는 사람입니까?"

설아가 세이나의 뒤를 이어, 차분히 말했다.

"음…. 사람일 수도 있고, 마물일 수도 있어.

나도 잘은 몰라."

"저는 언니를 따라, 임기응변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우리는 엄마 편이에요!"

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라는 게 이토록 든든할 줄이야.

이 난관을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다면 진작 우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너희에게 미리 이야기해두고 싶었어.

이건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야."

"어떤 분이에요?"

세이나가 물었다.

"엄마한테 소중한 사람?"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냥 망할 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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