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TS물-179화 (179/295)
  • 179회

    고백은 거절

    아스테는 승부욕이 아주 강했다.

    상대와 겨루어볼 만하면 물불 가리는 법이 없었다.

    그게 무례하게 군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붉은 머리 황자님이 포착한 적을 가로채듯 베어버리는 행위는…

    명백한 도전이다.

    "…."

    자이로 황자님은 이쪽을 쓱 돌아봤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했다.

    다른 곳 정리해야지!

    두 사람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어떤 모험가도 끼어들 수 없는 토벌 경쟁.

    참격을 「날릴 수 있는」 초인들끼리 붙자, 다른 사람은 나설 자리가 없다.

    아스테와 자이로는 깨끗해진 거리를 뒤로하고 사냥감을 찾기 위해 어딘가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나.

    "저기요."

    "네?"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이놈의 인기.

    아스테와 떨어지자마자 남자 모험가들이 줄을 선다.

    "저는 혼자가 좋아요."

    단호하게 거절한다.

    잠시 후, 아스테가 살짝 삐친 듯한 얼굴로 돌아왔다.

    귀엽네.

    아스테의 다양한 표정이 날 웃게 했다.

    "시현. 왜 웃어."

    "발리고 왔구나?"

    "발려? 뭘?"

    "아, 처참하게 졌을 때 사용하는 속어야. 하하하."

    "마수가 좀 더 많았더라면…."

    "큰일 날 소리."

    아스테는 평정심을 되찾고 한숨을 내쉬었다.

    "발리지는 않았어. 시현.

    한 마리에서 두 마리 정도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을 뿐."

    "크, 황자님 실력이 끝내주나 보네.

    아스테가 어쩌지 못하는 걸 보면."

    "누구 편이야. 시현은."

    아, 삐졌네.

    나는 킥킥 웃었다.

    "나는 내 편이지."

    "서운해."

    "동료한테 버림받은 내가 더 서운하지 않을까?"

    "윽, 그건….

    시현이 황자님과 경쟁해보라고 해서…."

    "다른 모험가가 같이 움직이자고 할 때 가버릴 걸 그랬나 봐."

    "…잘못했어."

    아스테는 솔직히 사과했다.

    다른 구획까지 뛰어가 버린 건 너무했지.

    물론, 정말로 화가 나서 따진 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장난스럽게 그녀와 접했다.

    거리감이 줄어든 기분이 든다.

    …친해진 계기가 좀 창피하긴 해도.

    아스테도 나를 편하게 대하는 분위기였다.

    "어디 안 가. 돕기로 했잖아. 두메른 토벌."

    "가끔, 승부가 날 때까지 멈출 수 없게 돼서…."

    "가끔?"

    "…꽤, 자주.

    내 스승님은 강해지는 방법을 일상에서 찾으라고 하셨으니까.

    나는 그 가르침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어."

    "대단한 스승님이네."

    "그래서 언제나, 눈에 띄는 모든 곳에서 강해지는 법을 찾고 있어."

    "나도 꽤 잡긴 했는데."

    아스테한테 내세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촉괴도 제법 강하다.

    나 자신도 성장했다.

    매혹의 마안, 음행술….

    이딴걸 어디 써먹냐.

    "강한 적이 나타나면 아이들한테 맡길래."

    "시현의 주 전투 수단은, 조련한 마물을 내세워 싸우는 거였지."

    "응. 딸들도 있어."

    그중 한 명은 유리검의 움직임을 습득했다.

    대면하면 깜짝 놀라겠지.

    어쩌면 세이나와 싸우게 해달라고할지도 모르겠네.

    "흥미로운 전투법이야. 좋은 영감을 받았어."

    "다음에는 이길 수 있겠어?"

    "…."

    아스테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이로 황자님이 그렇게 뛰어난가?

    "다음이 있다면, 직접 싸워보고 싶어."

    직접….

    "자이로 황자님은, 투신전에 나갈 생각인 듯해."

    "…흐음."

    아스테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 돌아갈까?"

    "…야한 꿈은 안 돼. 시현."

    "안 해…. 같이 씻지도 않을 거야."

    "그건 상관없는데. 같이 씻어도."

    "…."

    "…."

    "…진짜?"

    "풋."

    아스테는 웃음을 터뜨렸다.

    "…또 놀려먹기 있냐?"

    유도신문에 보기 좋게 걸렸다는 걸 깨닫고, 부들부들 떨었다.

    내 순정을 가지고 놀아?

    예쁘면 다야?

    방으로 돌아온 아스테는 결정타를 날렸다.

    "먼저 씻어도 돼. 시현.

    쳐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야…!"

    나는 아스테를 덮쳤다.

    그리고 막 간지럽힌다.

    "히약!"

    "자지 달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 주겠어!"

    "아하하. 그런 거 없어."

    뒹굴뒹굴.

    갑옷 벗은 아스테와 살을 비비면서 침대 위를 뒹굴었다.

    …개이득.

    당연하지만, 아스테의 하반신에 거대 자지 같은 건 없다.

    눈으로 봐 놓고 또 확인하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아스테와 눈을 마주친 순간, 그녀한테 붙잡혀 보지 팡팡 당했던 꿈이 생생히 떠올라 흠칫하고 물러났다.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티 나?"

    "시현이 이런 사람일 줄 몰랐어."

    "이런 사람이 뭔데…."

    "…틈만 나면 야한 생각하는, 음란한 사람."

    "…."

    아니라고 부정할 순 없었다.

    얌전히 몸을 씻고 나와서 침대에 들어간다.

    아스테는 장비를 손질하다가 허리를 일으킨다.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아스테의 알몸부터 해서 온갖 상상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자.

    이러다 또 야한 꿈 꾸겠어.

    아스테의 검 기술과는 달리, 내 스킬들은….

    야릇한 짓 할 때를 제외하면 쓸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있으나 마나라는 뜻이다.

    하지만, 상징성은 뚜렷하다.

    이성을 발정 나게 하고 꿈에 개입하는 스킬이 나한테 끼치는 영향은 명백하니까.

    나는 완전한 서큐버스가 되어가고 있다.

    그저 이방인에 불과했던 내 정체성이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며칠간은, 아스테와 함께 행동했다.

    틈만 나면 쏟아지는 마수를 정리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게 오히려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었다.

    "수가 큰 폭으로 줄었어."

    아스테가 말했다.

    이런 흐름이면, 오늘이 마지막이다.

    남은 마수는 제국병에게 맡겨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나는 보고를 위해 아스테와 헤어지고 별궁에 있는 서안 황자님을 찾아갔다.

    "시현. 오랜만에 보는 듯하군."

    "마수를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다.

    이미 제국 내에 떠들썩하거든."

    "유명인이니까요. 아스테는."

    "너를 말한 거야. 시현."

    "네?"

    "아스테도 유명하지만,

    제국 신민들이 너를 기억했어.

    이제부터 작은 행동도 소문을 타고 퍼질 거야."

    "제가 뭘로 알려졌는데요?"

    "궁금한가?"

    「젖탱이 창녀」 같은 것만 아니라면….

    황자님은 씩 웃었다.

    "말해주세요."

    "「도색눈의 천사」라고…."

    "크윽!"

    나는 내상을 입었다.

    "다시는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천사였나? 시현."

    "황자님!"

    요즘 왜 이렇게 창피당할 일이 많은 거야?

    천사라니, 이렇게 젖가슴 큰 천사 봤어?

    ….

    천사라면 왠지 클 것 같기도 하다.

    "「오크 슬레이어」같은 무난한 호칭도 있는데, 어째서…."

    "…눈이 예쁘니까."

    "보기 드문 눈 색깔이라는 건 아는데요."

    분홍은 자연적으로 날 수 없는 색이다.

    이 세계에도 검은 머리 여자는 많지만, 분홍색 눈을 가진 건 나뿐이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특징이 그 밖에도 많아서 두드러지는 경우는 잘 없지만, 그걸 처음 알아봐 준 게 두메른…이었지.

    "나중에는 복숭아 천사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봐 겁이 나네요."

    "신민들의 좋은 평가가 달갑지 않나?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마수 사냥을 열심히 한 이유가 있을 텐데."

    "아스테랑 있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황자님은 무슨 뜻인지 단번에 파악한 듯 기분 좋게 웃으셨다.

    나 참.

    "복숭아 천사 같은 거 말고,

    진짜 먹을 수 있는 복숭아라도 주세요. 황자님."

    "상을 요구하는 거냐? 당돌하구나."

    "디네스를 사로잡고, 모략까지 완전히 무마한 저한테 어울리는 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폐하께 보고가 올라간 참이다."

    "우와."

    폐하한테 직접!?

    이제부터 꽃길만 걷자. 시현아!

    "폐하가 큰 상을 내리실 거야.

    단."

    "단?"

    "아멜리아를 내버려 두면."

    "아직 받지도 않은 상을 다 뱉어내라는 소리예요. 지금?"

    "사실, 너는 폐하에게 미움받을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나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신민들의 좋은 평가와 전쟁에서 세운 공…. 특히 오염에 면역 체질이라는 게 알려지면, 아버지는 너를 분명히 요직에 앉힐 거야."

    "…."

    그렇다.

    이게 바로 피의 어머니가 깔아준 출셋길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말로.

    "아멜리아를 돕게 되면 겨우 손에 잡힌 모든 걸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네 작위, 돈, 그리고 집까지."

    "…."

    "그래도 하겠느냐?"

    "그냥 딱. 제가 뭘 하면 되는지 알려줘요. 서안 황자님."

    나는 서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계획이 있죠? 간 보지 말고 해요. 우리."

    "…거침없구나. 그래도 대답은 듣겠다."

    "세상에 자기 자식한테 그러는 부모가 어디에 있어요? 막을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

    "저도 예쁜 딸이 있거든요."

    황자님이 소리 없이 미소짓는다.

    그 미소가 아멜리아 구출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단 빼내고 보자.

    그게 나와 서안 황자님의 생각이었다.

    "폐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할 생각이다."

    "다 같이 반대했는데도요?"

    "오히려 황실 쪽에는 찬성하는 자도 적지 않다.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울 멋진 쇼가 되리라 생각하는 거지. 우리들만으로 여론을 뒤집기는 힘들어."

    "그럼 직접 빼내는 수밖에 없겠네요."

    "너와 나, 둘이서 하는 수밖에 없다.

    형들은 방관하겠지만, 협조를 기대할 수도 없어."

    예상했던 일이다.

    아멜리아는 범죄자니까.

    그녀를 가엾게 여겨 탈출시키려는 가족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지금은 감사하자.

    "이걸 너에게 맡기겠다."

    황자님이 내게 열쇠를 건넸다.

    "감방 열쇠인가요?"

    "아니. 지금 그쪽으로는 접근 금지령이 떨어졌다.

    우리가 아멜리아를 놓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신 거야."

    "그러면…."

    "당일에 빼내는 수밖에 없어.

    내가 간수를 매수했다. 투신전 당일, 아멜리아와 접촉해서 함께 빠져나가라.

    옆 마을에 숨어 지낼 은신처를 마련해 두었다."

    "알겠습니다."

    "후회하지 않나?

    앞으로 평생 도망자 신세가 될지도 몰라."

    "하나만 물어볼게요. 황자님."

    "무엇이든 물어봐라."

    나는 열쇠를 꽉 쥐고 말했다.

    "그년이 도망치기 싫다면서 뻗대면 다리 분질러도 돼요?"

    "하하하…."

    황자님은 체념한 듯 웃는다.

    오늘 많이 웃으시네.

    모두 다른 웃음이라는 걸 안다.

    마지막 웃음은 여동생이 걱정되어서 어쩔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절절히 배어 나왔다.

    알 수밖에 없다.

    왜냐면, 나도 말 안 듣는 여동생이 있으니까.

    만약에 내 여동생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어도, 나는….

    내가 패서 갱생시켰을 거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한 모든 황족은 폐하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해.

    아멜리아의 얼굴을 보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네게 맡기마. 전부."

    "…."

    OK.

    말 안 들으면 패도 된다 이거지.

    제국의 소중한 행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겠어.

    뭐든 망치는 게 제일 쉬운 법이다.

    "다음은 한참 뒤에 만날 수도 있겠네요. 황자님."

    "…그렇지."

    서안이 나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섹스할래요?"

    "…."

    "안에 싸게 해줄게요."

    "자신을 싸게 팔지 마라."

    "후회할지도 몰라요. 황자님."

    "…."

    "그때 할 걸 그랬어, 하고…."

    서안은 일어나서, 나한테 다가왔다.

    나도 허리를 일으키고 등을 곧게 편다.

    황자님은 나한테 입맞춤했다.

    "읍."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그런 섹스를 희망하는구나.

    그러면 맞춰드려야지.

    나는 입술을 맞대고 혀를….

    할짝대려고 했는데, 황자님이 나한테서 멀어졌다.

    "널 사모하고 있다."

    올 게 왔구나.

    "…."

    "도저히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안을 순 없다."

    "크헉."

    나는 크립토 나이트로 얻어맞은 슈퍼맨처럼 다리가 꺾였다.

    갑자기 로맨스로 넘어가는 분위기에 당황하지만,

    황자님은 부드럽게 내 허리를 끌어안고 말을 이었다.

    "네가 얼마나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해도 상관없다.

    만약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면, 너만이라도 살아라.

    내가 반드시 널 데리러 가겠다."

    "황자님. 그거 고백이에요?"

    "고백이다."

    서안이 다시 입맞춤했다.

    나는 볼이 확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사랑 고백하지 마!

    "그냥 방금 말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섹스해요."

    "알고 있어."

    "뭘요."

    "너는 줄곧 남자를 그런 식으로만 대해왔다는 걸."

    "…."

    "진짜로 사랑해본 적 없으니까."

    있겠냐?

    내 속사정도 모르고….

    "황자님이야말로.

    사랑하면 지켜주고 아껴줘야지, 위험한 임무를 떠넘기는 게 어딨어요?"

    "나도 처음이다."

    "…."

    "나도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으악.

    애틋하게 쳐다보지 마!

    잘생긴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나는 예쁜 여자와 딱딱한 자지가 좋아요.

    "너를 안고 도망치는 상상을…."

    황자님은 내 턱선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차분히 말했다.

    "몇 번 했는 줄 아느냐?"

    "갸아악."

    "…모처럼 분위기 잡고 있는데 망치지 말아라."

    "분위기 잡지 마세요. 제발. 저 죽어요."

    "너의 그런 모습까지 나는…."

    나는 황자님의 발을 밟았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