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회
혈족에 바쳐라
좆집 생활은 익숙해진 듯하다.
신애는 헤나를 보고 느낀 바가 있었는지,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신애?"
"그분은 사부님과 함께 살고 있나요?"
"응."
"가족처럼…?"
"비슷해."
반은 권속이나 다름없지.
준혈족이라고나 할까.
좆집이라고 부르지만, 각별한 좆집이다.
"내 권역에는 오염된 여자들이 살고 있어.
그중 몇몇은 내 집에서 지내기도 해."
"혹시나, 저도…."
"가능성은 있지."
신애는 군침을 삼켰다.
"고블린의 좆집이 되는 게 매력적으로 보여?"
"궁금합니다."
"여기 생활을 쉽게 포기하지 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오염 탓이야."
"…."
"만약 일로넨을 먹고 오염이 내려간 후에도 똑같은 소리 하면, 받아줄게."
"정말입니까?"
"응. 약 먹고 불편한 점은 없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약의 부작용 때문에 느끼는 증세 맞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천박하게 범해지는 제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잦고, 그럴 때마다 두근두근해서…."
"저렇게?"
디네스가 천박하게 범해지고 있다.
바로 옆에서.
"앗. 앗. 아…. 응홋…! 오크 자지 쳬고오!"
찌걱찌걱찌걱찌걱.
"보지에 싼다!"
디네스는 거친 좆 찌르기를 받고 질싸 당하면서 황홀한 보지 절정을 맞이했다.
추잡한 광경임에도, 신애는 살짝 부러운 눈초리였다.
"네.
저는… 자지를 이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
"상상 속에서도 저는…. 자지를 이길 수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
내 기분까지 이상해지잖아.
안 그래도 으슥한 곳에서….
"오염 수치는 1% 떨어졌네.
일로넨은 효과가 있어…."
"…그런가요."
"다시 황자님의 곁을 지키는 신애로 돌아가야지…?"
"…."
신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로넨이 효과가 있어도….
만약 여자가 약을 먹는 걸 거부하면 어쩌지?
다양한 문제들이 머리에서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상에서 비명이 들린다.
나와 신애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다.
"시현 님!"
"올라가 보자!"
"부욱!?"
부욱은 급하게 우리를 따라서 뛴다.
"옥! 옥!"
디네스는 보지에 삽입 당한 채로,
부욱이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섹스하는 꼴이 되었다.
밖으로 나왔더니 병사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물과 싸우고 있었다.
"마수다!"
그것은 큼직한 개의 모습이었다.
덩치가 워낙 커서 늑대인 줄 알았다.
게이트를 철거하면 튈 수도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걸 얘기한 거였나?
"마수가 뭐야?"
"악마의 영향을 받은 짐승들입니다."
"디네스. 어떻게 된 거야?
게이트는 철거했는데, 왜 마수들이 도시에 나타나?"
"응…. 응흣…. 응…. 응…! 안에 있던 것들이 무작위로 튄 거야….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나도 몰…라…. 오호옷…. 보지 팡팡…. 그만해…. 미칠 것 같아…!"
귀찮아졌네.
마물이 쏟아지는 건 막았지만,
어디서 물이 계속 샌다는 소리잖아.
"신애. 우리도 돕자!"
"네!"
"아, 응, 오홋. 잠깐…. 나는? 흐앗…? 흣? 흣? 윽!?"
"부욱은 디네스의 보지 계속 혼내주고 있어!"
"부욱!"
부욱은 황릉 앞에서 디네스를 깔아뭉개고 힘차게 보지를 쑤셔댔다.
찌걱찌걱찌걱찌걱.
디네스는 필사적으로 내게 손을 뻗었다.
"두고 가지 마! 주인님…. 두고 가면 안 돼. 제발! 오호옥♥"
나는 디네스를 방치하고 거리로 나왔다.
병사들은 마수와 대치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피령이 떨어졌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도울게요!"
"평범한 짐승이 아니다. 여자가 상대할 수 있는…."
병사의 말을 끊듯이, 신애가 벌써 개 마수 하나를 처리했다.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진 마수 뒤로, 새로운 마수들이 몰려온다.
"설마 신애 님입니까?"
"어디가 제일 급하죠?"
"광장입니다!"
나와 신애는 광장으로 뛰어갔다.
생각보다 병사들의 대응이 효율적이다.
사람들을 신속하게 피난시키고, 3인 1조로 뭉쳐서 움직이고 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한 것처럼.
여기저기서 마수가 쏟아져 나오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가 지켜지고 있다.
미리 언질을 준 정도로 이렇게까지 잘한다고?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해졌는지, 신애가 입을 열었다.
"서안 황자님입니다."
"응?"
"시현 님이 수도에 게이트가 있다는 보고를 올리신 후에, 서안 황자님이 직접 발이 빠르고 무력이 뛰어난 자를 선출해서 방위대를 만드셨습니다."
"매일 훈련한 거야?"
"네, 일반병들은 대피 훈련을.
방위대는 도시 내부에 나타난 마물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에 숙달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나한테 전부 떠맡긴 게 아니니, 쉬어도 괜찮다고 했던 황자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빈말이 아니었구나.
황자님을 의심한 건 아니지만, 이토록 대비가 잘 돼 있을 줄 몰랐다.
"우리가 도울 게 없겠는데?"
"이게 끝이라면요."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그림자를 휘감은 검은 말이 나타났다.
"…저것도 '마수'야?"
"네."
말 모습을 한 마수는 병사들을 걷어차며 날뛰고 있다.
미친 짐승은 매가 약이지!
"비르!"
포탈을 열고, 비르가 나타났다.
비르는 내 정신파를 받고 즉시 뛰쳐나갔다.
"고블린!"
"붉은 고블린이다!"
신애는 일부러 비르와 함께 움직였다.
"진정하세요. 이 고블린은 우리 편입니다."
"신애 님!?"
"고블린과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검은 말이 머리를 들고 덤벼든다.
신애는 경로에서 비켜섰지만, 비르는 오히려 앞으로 뛰쳐나갔다.
벼락불이 밤을 환하게 밝혔다.
말 머리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군다.
성장한 비르는 작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마수들을 척척 정리하는 모습에, 병사들도 눈을 돌리고 싸움에 집중했다.
"저기 오는 걸 막아!"
"크윽. 한 명만 더 붙어 줘!"
수가 많네.
가만히 있으면 비르가 알아서 정리하겠지만,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원치 않아.
나는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다.
"세이나."
"네, 엄마."
세이나가 내 부름을 받고 나타났다.
"거짓말쟁이를 찾아내는 일인가요?"
"검은 짐승들을 처리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못된 짐승이야."
"네, 엄마!"
세이나가 손짓하는 곳으로 이빨이 달린 검은 파도가 휘몰아쳤다.
파도에 휘말린 마수는 갈기갈기 찢어져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짐승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세이나의 정신파가 부풀어 오른다.
「엄마의 도움이 되어서 기쁘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세이나는 사신처럼 마수를 징벌하며 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다.
포탈에는 부르지 않은 권속도 나타났다.
"설아니?"
"…."
설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 눈송이처럼 예쁜 애는?
얼마 전까지는 젖먹이였던 소녀가 세이나만큼 컸다.
이제 막 숙녀로 자라기 시작한 가녀린 몸에 긴 속눈썹,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
머리 위로 돋아난 멋들어진 뿔이 없었으면 못 알아볼 뻔했다.
두메른의 아이.
그리고 내 아이다.
"설아도 도우려고 왔어?"
"…네. 어머니."
설아는 점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리할 필요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을 내보내도 괜찮을까?
왠지 모르게 잘 싸우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두 딸이 전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사랑스럽고 가녀린 외모였기 때문이다.
"앗!"
그때, 반대편에서 여기까지 뛰어온 개 마수가 설아를 덮쳤다.
"…."
설아는 무표정으로 서 있다가, 개를 잡아서 급소를 찌르고 바닥에 내팽개쳤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놀란 나를 돌아보며, 설아가 말했다.
"어머니, 물러나 계세요."
"…으, 응?"
"위험하니까."
"…응."
듬직하다.
누구 닮아서 그런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권역에는 '초반에 쓸만한 칼' 줄여서 초반칼이 보관돼 있는데, 무장하지 않은 것을 보면 설아는 맨주먹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발차기.
극도의 유연함을 과시하며 절도 있게 상대의 급소를 강타하는 발차기는, 이미 예술의 경지였다.
촉수 갑옷을 쓴다고 저 피지컬을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약간은 흉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촉수 괴물의 막대한 스탯을 흡수하고 힘을 휘두를 뿐인 초보자라면, 설아는 이미 천재적인 격투 센스를 가지고 태어난 우량아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마수들을 받아넘기고 한 번 한 번 치명적인 공격으로 제압.
조금은 우쭐거릴 법도 한데 표정은 지극히 평온하다.
"자, 잘한다. 설아!"
"…."
설아는 하이킥 자세 그대로 이쪽을 흘낏 보고 묵례했다.
숨통이 끊어진 마수가 그녀의 발끝에 걸려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멋있네….
내 딸인데, 왜 이렇게 멋있지?
두 딸의 활약으로 광장에 몰린 마수는 금세 처리했다.
죽은 마수는 시간이 흐르자 바닥에 녹아 없어졌다.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것들이 훨씬 많이 쏟아져 나왔다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새어 나온 것'에 불과하니까.
"상황 종료. 상황 종료!"
"광장 이상 없습니다."
"부상자 없는지 확인해!"
"예!"
병사들이 선임병 지시로 분주히 움직인다.
현장을 지휘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제국을 위하여!"
"제국을 위하여."
"도움 감사드립니다."
나는 곁에 다가온 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고블린은…."
"제가 조련한 고블린입니다."
"과연, 시현 님이셨군요."
"네. 비르. 인사해."
"비르~르."
비르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다.
연기가 제법이야?
"안녕하세요."
세이나도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설아도 언니 눈치를 보고 같이 인사했다.
"따님입니까?
하필이면 함께 나와계실 때 이런 일이…."
"…."
이런 늦은 밤에 어린 딸을 데리고 산책을 나올 리가 있나.
하긴….
얘들이 마수를 대량 학살했다고 믿는 것보다는 현실적이다.
"황자님은 어디 계시죠?"
"북쪽에 큰 마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동하셨습니다."
북쪽, 큰 마수?
직접 처리하러 가셨나?
나는 바로 가보고 싶었다.
"저는 그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신민이 있는지 계속해서 조사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병사가 돌아서자마자 세이나가 내 품에 안겼다.
"엄마, 저 잘했죠!"
"응. 응. 잘했어. 세이나."
나는 세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줬다.
그다음에 설아를 바라본다.
"…."
"…."
침묵.
팔을 벌리고 기다렸지만, 설아는 쑥스러운지 눈을 돌렸다.
그래서 내가 안았다.
"설아야. 잘했어."
"…."
아무리 껴안고 부비부비해도 반응이 없는 듯하더니,
설아는 뒤늦게 볼이 빨개졌다.
…숨 안 쉬네. 얘.
"후읍. 후…."
심호흡하는 설아를 꼭 끌어안았다.
귀여워 죽겠어!
"우웅…. 어머니."
차례대로 안아주고 나니, 비르가 남았다.
비르는 흠칫했다.
이제 엄마 품은 창피할 나이지?
나는 대신 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생들 데리고 돌아가 있어."
"비릇!"
비르는 설아와 세이나를 데리고 권역으로 돌아갔다.
"무척 귀여운 따님이네요."
"그렇지?! 설아도 세이나도 사랑스러워 죽겠어."
나는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흠….
신애는 나를 보며 부드럽게 웃는다.
"갈까요? 시현 님."
"응."
우리는 황자님을 뵈러 북쪽 주택가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수의 시신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몹시 거대했다.
울퉁불퉁한 팔뚝에 머리는 소, 몸통은 개, 다리는 말.
지금까지 본 짐승들을 모조리 섞어 놓은 군집처럼 보인다.
나는 오싹함을 느꼈다.
이런 건 병사들이 이길 수 없었을 텐데?
"여기는 끝났다."
붉은 머리의 황자가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자이로 황자님…!"
제 2황자, 자이로.
서안 황자님이 아니었어…?
그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듣지 못했나?"
"죄송합니다."
놀라서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자이로는 오히려 의아한 듯했다.
"왜 사과하지?
책하려는 게 아니다. 고개를 들어라."
"네…."
"가까이 와라."
오싹함을 느낀 이유를 알았다.
섬뜩하리만치 예술적인 솜씨로 절단된 시신에서, 유리검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건 전율이었다.
나는 자이로 황자 앞에 서서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나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머리도, 가슴도, 다리도….
하지만 음란한 눈빛은 아니었다.
"…다친 데는 없어 보이는군."
"네?"
워낙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려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
"서안은 옆 지구에 있다."
그는 돌아서면서 툭 던지듯 말하고 떠나버렸다.
낯가림이 심한가?
아니면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
나는 상대의 관심을 충분히 끌지 못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현."
서안 황자님이 나타났다.
"황자님."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된다.
지하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 황릉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얘기했다.
…디네스를 어떻게 안내하는 젖탱이로 만들었는지는 제외하고.
"그러면, 오늘 한 번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군."
"제가 너무 성급했을까요?"
"아니, 한 번에 몰려오는 것보다는 낫다.
투기장 일정을 멈추고 도시 안정화에 힘써야겠군.
시간을 벌었다고도 할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아멜리아는 안전하다.
"이제 어쩌죠?"
"우선 오늘은 쉬어라.
내일, 정식으로 길드에 의뢰를 넣겠다."
나는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에 의뢰한다는 게 무슨 말이지?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황자님의 뜻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