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TS물-158화 (158/295)

158회

임신 보고

"신애. 부탁한다."

"예, 황자님."

"한데, 둘 다 임신한 몸으로 괜찮겠나?"

신애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미 임신한 만큼, 적극적으로 질내사정 섹스할 수 있어서 괜찮습니다.

시현 님께 배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

나까지 창피해.

황자님 당황하는 표정 좀 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잖아.

"하, 하하….

못 보던 새에 많이 밝아졌구나. 신애."

황자님이 쥐어 짜낸 말을, 내가 받는다.

"신애랑 아주 친해졌어요.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이 좋다고, 제가…."

"친구라, 부럽군.

그러니 함께 일했을 때 성과가 좋을 수밖에.

둘 다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해줘라."

훈훈하게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정신이 오염되어 나사가 빠진 여자를 다루는 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나는 한 호흡 쉬고,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서안 황자님.

저는 아멜리아가 알려준 게이트에서 디네스를 찾았습니다.

이건 지금 상황에 꽤 도움 될 정보 아닌가요?"

"아멜리아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단 말이냐?"

"예.

이만하면 황자님의 뜻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훌륭하다."

서안 황자님은 나를 보며 눈을 빛냈다.

"시현,

부디 형님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해다오."

"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멜리아가 알려준 게이트에 디네스가 있었던 것은.

디네스는 자다 깬 모습으로 나와서 우리한테 잡혔다.

'아멜리아가 아니네?'라고도 했었다.

아멜리아는 특정 게이트 안에 디네스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도, 아멜리아가 삼장 중 한 명을 사로잡는 일에 큰 공을 세운 건 사실이다.

나는 사실대로 말한다.

황자님들 앞에서.

부름을 받고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붉은 머리를 한 건장한 남자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

"앗."

황당하게도,

살짝 치였을 뿐인데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가 그 남자의 팔에 안겼다.

"…."

뭐야, 왜 아무 말도 없어?

사람을 쳐놓고.

"죄송합니다."

보나 마나 높은 사람이겠지.

먼저 사과하고 일어난다.

붉은 머리 남자는 한참 동안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이 사람이 자이로인가?

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봐?

한눈에 반했나?

제발 아니었으면.

그런 상황을 한 번 겪어본 나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침실에 끌려가서 보지 팡팡 당하며, 사랑해 섹스를 강요당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더니 살짝 오싹했다.

그건 아직 내성이 없어.

부부 생활이 오래되기 전에 서방님과 헤어져서 망정이지….

빨간 머리에 푸른 눈을 한 미남은, 그대로 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자이로 황자님이었네.

키가 작고 어린애티가 나는 제 5황자를 제외하면, 다들 잘생겼다는 사실이 나를 기가 막히게 한다.

유전자 빨 죽이네.

나는 곧 제국의 황위 계승권을 가진 귀한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임무 중 보고 들은 일에 대해 보고하게 되었다.

상석에 앉은 도하 태자님,

그리고 옆에는 기노단 황자와 자이로 황자.

뒤에는 신애 같은, 경호원처럼 보이는 무사들도 있다.

긴장되네.

지휘통제실에 보고하러 온 기분이야.

황자님들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 보면, 국방부 장관 앞에서 보고해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겠다.

"어이. 빨리 아는 걸 얘기해 보라고."

기노단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까 한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나는 여기까지 이른 경위를 설명하면서 인생무상, 허탈함을 느꼈다.

내가 아멜리아를 변호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그런 년 콱 뒤져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변호가 아니야.

아멜리아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잖아?

"이상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아멜리아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서, 디네스를 잡았다는 게…."

"네. 사실입니다."

"너, 도하 형님 앞에서 거짓말하면 큰일 나."

기노단이 말했다.

"이야기 중에 수상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냐.

게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디네스가 자고 있었다? 그리고, 공작원 하나 데리고 가서 사로잡았다?"

"기노단. 의심부터 하는 버릇은 좋지 않아."

"형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 여자한테 그럴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에요."

"…."

후, 참자.

먼저 말 걸기 전에 끼어들면 안 돼.

나는 그냥 등을 곧게 펴고 가만히 있었다.

신루는 내 젖가슴을 빤히 보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기분 나쁜 꼬맹이네.

"시현. 증명할 방법은 있습니까?"

증명?

"뭣하면, 지금 여기에 디네스를 불러드릴까요."

황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서안 황자님이 꽤 조마조마한 모습이다.

너무 세게 말했나?

그래도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하하. 모험가분이라 그런지 역시 혈기가 넘치는군요."

"음,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에 적절한 말투를 배우지 못해서…."

"괜찮아요. 예쁘니까."

신루가 말했다.

"저는 믿을래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악독한 애는 아닐 거라고 했잖아요."

나는 꼬맹이가 아멜리아를 애 취급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기보다 나이가 있어?

고등학교 때도, 남들보다 묘하게 키가 안 크는 애가 있기는 한데.

신루 황자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린애처럼 생겼지만, 어린애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이 자리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

"자이로. 할 말 있나?"

"…."

자이로는 태자님의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우리 다섯 명의 뜻이 모인 것으로 알고,

아버님께 진언해보도록 하지."

시시한 결말이군.

아무리 황제 폐하라도 자식들이 전부 통촉해달라고 하면, 생각을 바꾸시겠지.

뜻하지 않게 아멜리아를 구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노단이 나를 붙잡았다.

"어이."

"…네."

"표정이 그게 뭐야?"

방긋.

"…눈앞에서 고치니까 더 짜증 나는데."

어쩌라는 거야.

귀찮으니까 저리 가버리라고. 훠이.

"나중에 내 연구실로 와."

"…알겠습니다."

뭐지?

몸이 목적인가?

"그 많은 듀롯을 무슨 수로 처리하겠어?

너도 도와야지."

"그냥… 땅에 묻으면 안 되나요?"

"네가 마생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으면 안 되는 이유를 스무 가지는 말해줄 수 있지만, 그냥 안 된다고만 알아."

"…예."

재수 없어.

"물에 뿌릴 수도 없어. 골칫거리라고.

나중에 꼭 와. 알았어?"

"알겠습니다."

내가 일거리를 가져왔으니 돕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전부 떠맡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시현."

서안 황자님이다.

기노단은 자리를 비키듯 떠난다.

"기노단 형이군.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

"나중에 연구실로 와 달라고 하셨어요."

"…흐음."

서안 황자님, 살짝 화난 것 같은데.

질투는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줘.

주변에 남자가 늘어나는 게 이렇게 불안할 수 없다.

시현이 역하렘의 서막 같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딴 하렘 따위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그나마 황자들은 품위를 지키기 때문에,

노골적인 성추행도 없고 침실로 꾀어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는 남자 중에 드물게, 서안 황자님과는 성관계 없이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서안 황자님이 날 보는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낀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시현.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

"게이트에서 언제 마물이 쏟아질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되어도 문제없도록 준비해 놓았다.

너에게 모든 걸 맡긴 게 아니야. 피로를 제대로 풀어라."

"네."

그래도 날 걱정해주는 건 이 사람 뿐이다.

좋은 사람이야.

좋은 오빠기도 하고.

"실은, 보고를 마치면 신애와 목욕탕에 가기로 했어요."

"목욕탕. 좋지."

"하룻밤 쉬고 다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잠은 별궁에서 잘 생각인가?"

"…황자님이 주신 제집에서 자려고요."

"알았다."

"…."

나는 황자님이 떠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아멜리아를 잘 부탁한다."

"네."

붙잡고 싶으면 침실로 부르면 되잖아.

왜 어렵게 생각할까.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내가 덮쳐버릴 테다.

별궁을 나서서, 신애와 만난다.

"시현 님."

"바로 가볼까?"

"네. 이쪽입니다."

나는 신애와 함께 대목욕탕에 갔다.

슬럼 말고 이쪽으로 나오는 건 처음일지도.

주택가 길목마다 병사들이 서 있었지만, 태자님께 1급 시민권을 받은 나에게는 손쉽게 넘을 수 있는 울타리였다.

"와."

이게 목욕탕이라고?

들어가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된다.

이미 목욕탕 하나만으로 궁전 같았다.

"제국 수도에 하나뿐인, 대목욕탕입니다."

"굉장하네."

"접수는 이쪽이에요."

"아, 나 돈 없는데…"

나는 뒤늦게 내가 빈털터리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보지나 젖으로 결제할까?

왠지 흔쾌히 받아줄 것 같은데.

접수대에 있는 아저씨가 음흉한 시선으로 우리를 훑어보고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제가 내겠습니다."

"고마워."

"먼저 들어가셔도 됩니다."

"응."

신애와 떨어져 혼자 걷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은 이제 익숙했다.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눈으로 찾는다.

아, 여긴 여탕이네.

휴. 큰일 날 뻔했다.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발 잘못 들였다간, 고소당했을지도….

나는 남탕을 찾아갔다.

칸막이를 지나서 자연스럽게 탈의실에 들어간다.

아, 익숙한 풍경.

어느 목욕탕이나 헐벗은 아저씨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건 똑같단 말이야.

"잠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촉수 갑옷을 손으로 벗었다.

젖 가리개를 훌렁,

팬티를 허벅지 밑으로 쓱 내린다.

왠지 시선이 뜨겁다.

다 벗고 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에 오는 게 맞던가?'

"시, 시현 님!"

"어, 앗?"

"여긴 남탕입니다."

신애가 파래져서 뛰어왔다.

아차, 무심코…!

나는 신애의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 옷 안 입었어."

"우선 여탕으로 가주세요. 시현 님의 옷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응. 미안."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니까요."

자기 성별을 착각하는 병신이 어딨어.

나는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엄마. 저 누나는 왜 벗고 다녀?"

"이리 와. 보면 안 돼."

"나, 저 누나 봤더니 고추가 이상해…."

"…."

빨리 가자.

아니, 접수대 양옆으로 남탕 여탕 입구가 붙어 있는 게 문제 아냐?

층별로 나누어져 있었으면 안 헷갈렸을 거라고!

나는 괜히 씩씩대면서 여탕으로 갔다.

여긴 여기대로,

헐벗은 여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으니 잘못 온 기분이 팍팍 들었다.

으으으….

섹스할 때 암컷이 되는 경험으로 익숙해진 줄 알았더니.

아직 일상생활까지 침투하지는 못했구나.

남탕에서는 있을 수 없는데, 여탕에서는 이방인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하니.

적당히 물로 씻고 온탕에 숨듯이 몸을 푹 담갔다.

곧 벗은 신애가 샤워 후에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왜 안 되겠어."

"실례하겠습니다."

신애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 옆에 앉아, 미소 지었다.

"따뜻하네요."

"미안. 이상한 실수 해서."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예전이었으면 몹시 당황했겠지만, 남자의 알몸에 익숙해졌거든요."

"…."

따뜻한 물에 녹는다.

정말로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신애와 나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말없이 목욕을 즐기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 올래?"

"다음 임무 수행을 위해, 장비를 점검하려고 합니다."

"음…."

그런 일이라면 어쩔 수 없네.

우리 귀여운 세이나와 설아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저…."

신애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초대해주신 건… 정말로 기쁩니다.

다음에라도 꼭, 갈 수 있게 해주세요."

"…."

나는 살짝 감동했다.

"당연하지. 꼭 부를게."

"집까지 호위하겠습니다."

"아냐. 얼른 가서 쉬어.

내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까."

"다음에 뵙겠습니다."

신애가 사라졌다.

…진짜 닌자 아닐까.

"우리도 돌아갈까?"

옷으로 의태한 촉괴들이, 금방 목욕한 엄마의 젖가슴에 달라붙는다.

쭈읍 쭈읍….

"그래, 그래. 마음껏 빨아라."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

어떻게 알았는지, 세이나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어느새 세이나 바로 밑 동생처럼 성장한 설아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이나. 설아까지…."

우와.

자식들이 마중 나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였어?

큰 놈들도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다.

비르와 부욱이.

그리고….

부욱이와 결합한 클로라.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거지…?

떨어져 있는 걸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엄마, 일하고 왔다."

"어, 왔어?

마침 밥하고 있었으니까 먹고 가."

트리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네가?"

"아니, 시현이의 하녀들이."

"그럼 그렇지."

"나도 할 줄 알아! 단지, 네가 데려온 하녀들이 너무 유능할 뿐이라서 할 일이 없을 뿐이라고."

"그래서 게으름 피우고 있었다?"

"후후후."

유피넬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주 경건한 모습으로….

누가 봐도 신실한 신도 같다. 상의만 입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말이지.

"유피넬."

"아, 시현!"

"나 왔어."

"응. 어서 와.

시현의 무사 귀환과 보지 팡팡을 기원하고 있었어."

나는 피식 웃었다.

이래야 내 집이지….

2층에서는 헤나의 신음이 들린다.

쿵쿵쿵하고 고블린들과 슬양이가 계단을 뛰어 내려온다.

"뀽! 뀽뀽!"

"크케엑!"

쿠키가 슬양이의 먹을 것을 훔쳐 도망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일상은 어딘가 오염될 듯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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