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회
오크 격멸"…."
세이나는 적의도, 살의도, 증오심도 없는 순수한 눈으로 코스카를 바라봤다.
엄마가 죽이라고 했으니까 죽인다.
세이나의 정신파에서 느낄 수 있는 동기는 오직 그뿐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세이나가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코스카의 암컷 갑주가 클로라다.
클로라까지 죽을지도 몰라.
"시현의 딸인가. 닮았군."
"엄마를 알아요? 아저씨."
"알다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고 전해줘라."
"알았어요."
세이나의 검이 번뜩였다.
"허억!"
코스카는 간신히 엎드려 피했지만,
피했다는 사실에 자기가 더 놀란 것 같았다.
"머리만 노리는 걸 아는데도 이 정도라니…."
멀리서도 안 보이는 공격을 어떻게 피했나 했더니….
세이나가 암컷 갑주를 피해서 공격한다는 걸 미리 짐작한 듯하다.
한편, 두메른은 유리검의 참격을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커억!"
"큿…!"
아스테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경갑이 부숴진 걸 보니 두메른의 주먹이 배에 꽂힌 듯했다.
서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상황.
코스카는 암컷을 매단 수레바퀴를 앞세워 세이나에게 돌격했다.
"아이 상대로 이런 짓까지 하게 될 줄이야!"
앗. 이런…!
코스카를 공격할 틈이 없어.
온몸이 암컷으로 가려져서…!!
"웅?"
세이나는 짓쳐 드는 코스카를 새침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렇게 하면 되나?"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설마… 유리검의 "참격"을 흉내 낸 건가?
코스카는 다리가 잘려 나가면서 세이나 앞에 무릎 꿇었다.
동시에 암컷들도 바닥에 엎어진 꼴이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세이나의 참격이 보이지 않는 칼날처럼 코스카의 하단부를 베고 지나갔다….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크으윽!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왜 두메른 님을 배신한 거냐.
네가 도왔으면, 우리는…!"
코스카의 목이 떨어졌다.
나는 즉시 트리샤와 유피넬을 불러 클로라를 보호하게 했다.
세이나한테 더 많은 오크가 달라붙었지만, 매서운 참격이 오크를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떨쳐버렸다.
피가 물보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걸 보고 오크들이 침묵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도망치려는 자도 보였다.
"부욱!"
부욱이 점프한다.
충격량이 수십 톤을 훌쩍 넘길 것 같은 어마어마한 보디 프레스로, 오크를 매장한다.
…진짜 땅이 울렸다.
"부욱아!"
세이나는 부욱의 몸 위에 올라서더니, 주변에 있는 오크들을 원거리 참격으로 날려버리고 뛰어내렸다.
그러더니 오빠와 함께 합을 맞추며 오크들을 밀어낸다.
"비릇!"
감격스러운 광경이었다.
우리 혈족이 이렇게 강해지다니!
지금껏 해온 게 헛일이 아니었구나.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비르 오빠.
같이 엄마를 기쁘게 해요!"
"비르르. 한 놈도 빠짐없이, 처리한다."
"네!"
오크들이 결국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형 오크와 코스카는 죽었고, 우두머리인 두메른마저 패색이 짙은 상황.
더는 꿋꿋이 맞설 이유가 없었으리라.
욕망에 충실한 놈들답게, 몸에 끼운 암컷이라도 챙기려고 허둥지둥 뛰어간다.
"오크들이 도망친다!"
"쫓아가서 죽여라!"
"한 놈도 놓치면 안 된다."
제국 병사들의 외침이 내 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한 놈도 놓치면 안 돼.
…두메른을 배신하고 얻은 성과니까.
어설프게 끝낼 수 없어!
"비르. 세이나. 놓치지 마!"
"네!"
"카악!"
비르와 세이나가 뛰어간다.
싸움에서 이기고 바로 섹스할 때는 암컷 갑주가 좋았을지 몰라도, 도망칠 때는 아니다.
오크 섬멸은 시간문제였다.
"흐읍…. 흐으…!!"
두메른과 아스테의 싸움도 슬슬 끝이 보였다.
둘의 움직임은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고, 서로 지친 기색이 뚜렷했다.
특히 두메른의 출혈은 심상치 않아서, 바닥은 피바다나 다름없었다.
사람이었으면 진작 과다출혈로 죽었을 양이다.
황자님은 두메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다.
승리가 확실해졌지만, 두메른을 비웃거나 기뻐하는 일 없이….
무력에 경의를 표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두메른의 최후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크아아앗!"
두메른이 포효했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참격이란 덫에 걸린다.
"하!"
유리검의 공격이 두메른의 살갗을 가른다.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이.
목이 잘리는 것만 간신히 막고 있을 뿐, 두메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세이나와 비르가 개선하고 돌아온 후에도 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엄마. 저 왔어요."
"응. 잘 왔어. 세이나.
비르와 부욱도 고생했어."
"비릇!"
"부욱?"
나는 말에서 내려와, 세이나를 품에 안았다.
"저 오크는 엄마 짝 아니에요?"
"맞아."
"그러면…."
세이나는 말을 멈췄다.
복잡한 사정이 얽혔다는 걸 이해해준 것일까?
사실, 어려운 것 없는 이야기다.
이제 결별할 때가 왔을 뿐이야.
안녕. 두메른.
아스테의 검이 두메른의 몸통 깊숙이 박힌 순간.
모두 침묵했다.
두메른의 거체가 드디어 힘을 잃고 기울어진다.
"읏…!?"
그런데, 아스테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검을 비틀어 빼려는데 빠지지 않는다.
두메른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아스테의 어깨를 잡고 혼신의 박치기를 먹였다.
황자는 물론 뒤늦게 도착한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아, 아스테 님!"
"저런 저력이!"
아스테는 머리가 찢어졌는지 피를 질질 흘리며 휘청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두메른의 박치기로 뇌진탕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하하하. 봤느냐! 시현."
나는 움찔했다.
"내가…. 이겼다."
어떻게….
어떻게 이겼냐.
이겨도 진 거나 다름없는데, 저런 몸으로….
"공격해!"
"지금이라면 쓰러뜨릴 수 있다!"
"숨통을 끊어라!"
제국 병사들이 달려든다.
나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세이나. 막아!"
"네!"
"으앗!"
세이나는 두메른을 지키고 서서, 검압으로 제국 병사들의 무기를 전부 날려버렸다.
황자는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고 나를 바라봤다.
"시현. 이게 무슨 짓이지?"
"황자님. 죄송합니다."
"…."
두메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지 눈을 반쯤 감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는다니, 오크의 왕이라고 칭할 만하다.
"이제 모두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돼."
황자님은 평정심을 가장하고 있지만,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강한 건 나.
내가 또다시 배신하면 벌어질 일을 상상하면 두려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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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다 싶었는지 초월자들이 나를 부추긴다.
내용 좀 그만 쳐 바꿔라.
나한테 뭘 시키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적어도 '피의 어머니'처럼 일관성 있게 하란 말이야.
"무례한 일인 줄은 알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두메른을 살려주세요."
"받아들일 수 없다. 두메른은 살려두면 반드시 화근이 될 존재다."
"알고 있습니다. 대신에 제가 황자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
"제 쓸모는 충분히 보여드린 줄 압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두메른을 연모하게 되었나?"
내 딸이 볼을 물들이며 부끄러워하는 걸 보고 현타가 왔다.
그런 거 아닌데.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나…?
"아스테를 이겼잖아요."
"…."
"제가 간섭하지 않으면 두메른은 제국 병사들을 모두 죽이고, 황자님에게 손을 뻗쳤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에 그런 가정은 의미 없다."
"두메른의 무용에 감명을 받았다….
그정도 이유로는 안 되겠습니까?"
"이 선택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다.
그냥 두메른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밖에는.
내가 얻을 건 없다.
두메른을 살리는 행동은 내 평가에 안 좋게 작용한다.
이제부터 사람들 사회에서 살 거라면 더더욱.
두메른까지 깔끔하게 죽이고 영웅으로 개선할 기회를 발로 걷어찼으면서, 대단한 노림수도 뭣도 없다는 사실에 자신도 놀라고 있다.
인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웃기지만,
어쩌면.
남자끼리 통하는 게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연모는 아닌 듯하구나.
너는 큰 공을 세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네게 목숨을 빚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렇기에 의아하구나.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지."
"…."
이제 할 말은 없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하늘에 맡길 뿐.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두메른의 운명을 내 눈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전군, 퇴각하라."
"황자님!"
"지금이 아니면…."
"알고 있다."
황자님은 말을 몰아 나를 지나치면서 말했다.
"밖에서 만나자. 시현."
"감사합니다. 황자님."
"내 목숨을 구해준 값을 톡톡이 받아 가는구나."
나는 떠나가는 황자님의 등에 묵례했다.
제국군이 기절한 아스테를 데리고 떠난 후.
"부욱아. 얼른. 비르 오빠랑 언니들도!"
세이나는 모두를 재촉해서 권역 포탈로 들어갔다.
단둘이 얘기할 수 있게 비켜준 거야?
쪼그만 게 눈치는 빨라요.
"나를 동정하지 마라."
두메른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안 했어."
"그럼 뭐지?"
"방금 다 들었잖아."
"알아듣기 쉽게 말해라."
"너 존나 멋있었다고."
"…그런 이유로?"
"어."
"하하. 하…하…!"
두메른은 웃다가 상처를 감싸 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치료해 줘?"
"됐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훈장 삼도록 하지."
"센 척은. 도대체 어떻게 이긴 거야?"
"내 여자가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길 수 있었다."
"지랄."
"이런 건 싫어했었지?"
"그래.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잊었어?"
두메른은 상처가 벌어져 피가 터져도 개의치 않고 시원하게 선언했다.
"네 젖탱이를 쥐고 교배섹스할 생각에 힘이 솟아서 이길 수 있었다!"
"좋아!"
나는 주먹을 내밀었다.
두메른은 눈치를 보다가 힘겹게 팔을 들어, 주먹을 맞춘다.
브로피스트!
"새 암컷 찾길 바라.
우린 여기서 깨끗하게 헤어지는 거야. 서방님."
"…."
"왜 말이 없어?"
"…알았다.
전투는 이겼지만, 전쟁에 패했으니까. 이번에는 물러나지."
"어허. 구질구질."
"…내가 졌다."
"안녕."
두메른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내 눈총을 받고 마지못해 말했다.
"안녕."
나는 등을 돌리고 미련 없이 떠났다.
황자님 흔적을 따라서 걷다 보니 제국군 주둔지가 보인다.
오크들 막사보다 훨씬 낫네.
막사 근처에 목책까지 둘러놓고 초병을 세워 경계하고 있다.
나는 별 의심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정지!"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공격하겠다."
어라?
분위기가 좀….
황자님이 별말 안 했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무언으로 호소했지만, 초병들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듯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젖탱이에 엄청난 시선을 느낀다.
"…혹시 방금 전투로 풀려난 여자 모험가인가?"
음….
나한테 해당하는 말이기는 하네.
"맞는데요."
"흐흐…. 그러면…. 오염 정도를 검사하겠다. 입 벌려."
"앗…."
시발.
갑자기 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지네.
어딜 가나 이딴 짓 해야 해?
입 열 준비 하고 있었더니,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분은 제국의 귀빈이다!
손대지 마라!"
엇.
아까 같이 싸운 정예 병사 중 한 명이 나를 변호하고 나섰다.
초병들의 안색이 파래진다.
"모, 몰라뵀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식들.
내가 귀빈이라고. 귀빈.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초병들을 올려다봤다.
"괜찮아. 근무 힘들지?"
나는 초병들을 가볍게 안아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병사 한 명이 나한테 급히 뛰어왔다.
"황자님이 부르십니다."
"안내해줘요."
"옛."
황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통제실 역할로 보이는 큰 텐트.
그럴싸한 테이블에, 근처 지형을 약식으로 그린 지도도 놓여 있다.
"…."
"…."
음.
분위기가 묘한데.
차렷 자세… 해야 하나…?
등을 곧게 펴고 자세를 바로 했더니, 황자는 무심하게 말했다.
"치료 스킬은 쓸 수 있나?"
"아, 네…."
"대답은 짧게."
"넵!"
"부상자 텐트로 시현을 안내해줘라."
"예."
으, 으응…?
황자님, 나를 굴릴 생각으로 가득 찬 눈빛인데.
살짝 싸했다.
[여황제를 달성했습니다]
[『이계의 포탈』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잔여 횟수:1번】]
이게 뭔데.
현대로 가는 포탈은 아니겠지?
그것도 잔여 횟수 1번이라니….
훈련소에서 전화시켜주기도 아니고, 이게 뭐야?
[숙녀「피의 어머니」가 기뻐합니다]
[숙녀「방탕한 황후」가 전설로 남을 추잡한 섹스를 기대합니다]
[신사「속사라고 불러주실까」는 적당히 야한 것도 좋다고 말합니다]
[숙녀「거품에서 태어난 여신」이 크라켄의 이빨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신사「요승」이 새로운 전개를 반깁니다]
[신사「촉수 괴물」이 수줍어하고 있습니다]
[신사「젖가슴 애호가」는 당신의 빅젖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신사「인생의 절반 손해」가 죽어버린 오크들의 명복을 빕니다]
…못 말리는 것들 같으니.
맡은 일부터 해결하고 보자.
나는 부상자 텐트로 발을 옮겼다.[작품후기]오크 에피소드가 끝났네요.
쓰기 전에는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지만...
이제 무대는 제국으로 옮겨 갑니다.
시현이의 스테이터스는 잠시 후 업데이트 됩니다!
+오늘 시현이의 지명도는 7,531!
지명도는 여러분의 추천으로 반영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