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TS물-54화 (54/295)
  • 54회

    위기를 기회로잠시 후.

    헤나 일행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았다.

    "아무리 커플이라지만, 이런 상황에 뭐 하는 거야?"

    "물침대…. 하얗게 돼버렸어요."

    "죄송합니다…."

    "미안."

    나는 케인과 함께 솔직하게 사과했다.

    "언제까지고 이런 데 있을 순 없어. 마력이 찼으니, 당장이라도 황녀님을 데리고 나가야 해."

    헤나는 어깨를 풀며 말했다.

    "좋아."

    "그 빨간 고블린은?"

    "재웠어. 불침번 서느라 피곤할 테니까."

    "흐응. 뭐, 상관없지만."

    마력을 회복했기 때문일까?

    헤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가 먼저 나갈게. 클로라. 적 탐지 부탁해."

    "…수는 40마리 정도. 근처를 경계하고 있어."

    "칫. 끈질기네."

    그러면 입구로 나가기는 좀 어렵겠는데.

    밖에서 기형 오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찾고 있는 게 분명하다.

    먹잇감을 눈앞에서 놓쳤으니 몹시 화가 났을 테지.

    "지금 나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은데."

    헤나가 나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그럼 다른 생각 있어?"

    "일단 이 방을 샅샅이 뒤져보자. 뭔가 찾을지도 모르니까."

    "오크한테 물어보는 편이 빠르지 않겠어?"

    헤나의 손에 불꽃이 맺혔다.

    "부, 부오옥! 부옥은 아무것도 모른다. 부옥!"

    "겁주지 말고 대화로 풀자."

    "…묘하게 오크를 감싸네."

    나는 뜨끔했다.

    "어제 좀 시끄럽던데. 무슨 밀담이라도 나눴어?"

    "부, 부홋."

    "부옥. 아는 거 있으면 전부 말해. 헤나가 너를 숯덩이로 만들기 전에."

    "살려준다. 흑발 암컷. 오크 살려준다!"

    부옥이 나한테 매달려 목숨을 구걸했다.

    "하아. 이런 무능한 오크한테 빚을 지다니…."

    "나는 시현이 의견대로 해봤으면 좋겠어. 여기, 쓸데없이 넓기도 하고.

    뭔가 있을 것 같거든."

    트리샤가 말했다.

    "도적의 예감이야."

    "그럼 흩어져서 한 번 찾아보죠. 저랑 시현 씨는 벽면을 조사해 볼게요."

    우리는 석실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여기야. 통로가 있어."

    놀랍게도 트리샤가 감춰진 통로를 찾아냈다.

    이런 게 왜 여깄지?

    예전에 사용됐던 비밀 통로 같은데.

    나는 아멜리아를 돌아봤다.

    "황녀님. 뭐 아는 거 있어요?"

    "…전시에 쓰려고 만든 통로다."

    "어디로 이어져 있어요?"

    "모른다. 이런 통로는 한둘이 아니니까.

    밖으로 나가는 통로일 수도 있고, 두메른의 성채 한복판에 나오는 통로일 수도 있지."

    아멜리아는 정말로 이 통로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모를까?

    황족인데?

    "나를 의심하는구나."

    "한 짓이 있으니까 의심하지."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오크의 정…. 으흠. 여기서 잡히면 오크의 포로가 될 거라고 말이야."

    그래. 황녀 스스로 위험한 길을 택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해소된 건 아니야.

    애초에 왜 제국의 황녀나 되는 사람이 마물 편을 들까.

    "황녀님.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다치고 불행해질 뿐이에요."

    다들 클로라의 호소에 입을 다물었다.

    "흠. 굳이 말하자면…."

    아멜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통치하는 세상이 끝났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곧 알겠지. 마왕이 탄생할 때가 머지않았다는 걸."

    "마왕?"

    다시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듣게 되는군.

    <마왕>이라는 말을.

    "마왕은 필연적인 존재다. 마물이 융성하면 반드시 나타나게 돼. 너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네가 그 마왕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설마. 누구도 감히 그런 생각을 품을 수는 없지. 나는 멸망의 전령이 되어 너희 앞에 나타났을 뿐이다."

    "오늘은 말이 많네. 황녀님.

    천박한 것들에게는 말해줄 게 없다고 하더니."

    아멜리아는 미소 지었다.

    "임신한 몸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크 워리어들이 깔린 바깥으로 가보겠느냐?"

    나는 권역 포탈을 열었다.

    "비르. 나와."

    역시 안 되겠어.

    알고 있는 걸 모조리 말하게 만들어야 해.

    아멜리아는 비르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기다려. 그런 건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헤나가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방금 못 들었어? 사상이 위험한 년이야. 황녀 대우를 해줄 이유는 없어."

    "황녀 대우를 하라는 게 아니야. 그 고블린을 이용해서 아멜리아를 강간할 생각이라면, 두고 볼 수 없어."

    클로라도 소심하게 말했다.

    "저, 저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하아. 젠장.

    트리샤를 돌아봤더니, 트리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응? 고블린의 힘찬 보지섹스로 모조리 자백하게 만들면 만사 해결 아니야?"

    다들 트리샤를 보았다.

    "아…. 윽….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지금은 트리샤 말대로 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헤나와 클로라는 거칠기는 해도 상식을 가진 모험가.

    아멜리아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기도 하다.

    '황녀' 딱지를 떼더라도 아멜리아의 몸에 잔인한 짓을 하는 걸 지켜보지는 않겠지.

    결국 내가 접었다.

    "그러면 어쩔 거야.

    밖에 나가서 싸울까? 아니면 뭐가 있는지도 모를 통로로 나갈까?"

    "뭐가 걱정이야? 내가 있는데.

    어디로 가든 문제없어. 이 통로 끝이 두메른의 처소라면, 바라던 바야.

    전쟁을 끝낼 기회니까."

    헤나는 가슴을 쭉 펴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헤나는 여기 있는 사람 중 제일 강하다.

    나도 그녀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나 혼자 헤이스트 링으로 탈출해서 지원군을 불러오는 건 어때?"

    황녀도 이 반지를 믿고 오크 진영을 드나들었으니, 나라고 안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의견을 반대하고 나선 건 트리샤였다.

    "시현. 잊었어?

    그 누구도 위험에 처한 모험가를 구하지 않아.

    황녀님이 여기에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모를까…."

    "신분을 증명할 물건?"

    "황녀님의 소지품이나 친필 서신 같은 거."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혹시나 해서 트리샤와 몸 검사를 해봤지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헤이스트 링은?"

    "가치가 높은 매직 아이템일 뿐이야.

    그것만 가지고는 누구도 이 숲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걸."

    그래. 보물은 의미 없다.

    위험에 처한 모험가를 목숨 걸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잘 알고 있잖아?

    트리샤와 나는 몸으로 배웠다.

    소굴에 갇힌 여자가 어떻게 되는지.

    그런 미래는 이미 목전에 와 있었다.

    나 혼자 탈출해도 지휘관이 내 말만 믿고 병사를 차출할 가능성은 한없이 작다.

    서안 황자님을 찾아가서 아멜리아를 구하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황자님은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황자님의 위치를 몰라.

    이 방안에 갇힌 사람들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 헤나가 내 팔을 붙잡았다.

    "헤나…?"

    "시현. 날 믿어. 나도 널 믿을 테니까. 톱니 오크도 같이 쓰러뜨렸잖아?

    우리가 여기에 와 있다는 건 아무도 몰라. 상대도. 심지어 제국군도."

    나는 헤나의 기백에 압도되었다.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이다.

    여왕벌 메타니 뭐니 하면서, 비르 뒤에서 젖탱이나 흔들며 치어리더 하려고 했던 내가….

    어떻게 토를 달 수 있을까?

    창피해서 볼이 달아올랐다.

    나는….

    나 힘든 것만 생각해 왔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런 건 삼국지에 있는 줄 알며 살았지.

    [숙녀「피의 어머니」가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메인 퀘스트 - 여황제]

    [【후원자】- 피의 어머니]

    [전쟁에 공을 세운다]

    [보상 - 이계의 포탈]

    릴리스는 마치 나를 격려하듯이

    내가 잊고 있던 퀘스트 내용을 상기시켰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

    어린애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자."

    나는 치졸한 협박 대신 대의를 따르기로 했다.

    아멜리아를 겁탈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부터….

    적장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으으. 여기서 나가면 잘생긴 남자 하인 300명 데리고 살 테야."

    나는 케인과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같이 가줘. 케인. 트리샤."

    "제가 어딜 가겠어요? 시현 씨 배속에 제 아이가 있는데.

    돌아가면 우리 결혼…."

    트리샤가 다급히 케인의 입을 막았다.

    "얘는 뭐라는 거야. 죽고 싶어? 그런 말 여기서 하는 거 아니야!"

    "읍. 읍읍!"

    "트리샤는 어쩔 거야?"

    "길잡이 없이 갈 셈이었어? 나도 당연히 따라갈 거야.

    머리가 이상한 황녀님을 감시할 사람도 필요하잖아?"

    "누가 누구더러 이상하다는 거냐."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아주 옳은 말이다.

    길잡이 없이 길을 떠날 수는 없는 법이지.

    그것이, 위험천만한 외길 통로라도 말이다.

    헤나는 숨을 들이키고 단단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열부터 정하겠어!

    남자는 맨 앞으로 가줘.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맞는 역할."

    "조금 순화해서 말씀해 주시면…."

    "당신은 인간 방패야. 알았어?"

    "네…."

    "도적은 후방 경계. 황녀님을 데리고 있어. 무슨 일 생기면 앞으로 나오고."

    나는 헤나와 클로라를 보며 말했다.

    "너희 둘은?"

    "우리는 중간. 시현 너도 임신했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우리 뒤에 숨어 있어."

    "비르릇!"

    비르는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뛰어올랐다.

    "꺅!"

    헤나는 허그 당하는 줄 알았는지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어흠.

    너는 알아서 해. 어차피 시현 말 아니면 안 듣잖아?"

    "케케케.

    빨간 머리 마법사. 귀엽다."

    "…성희롱 고블린. 죽여버린다?"

    "왜 기를 죽이고 그래?"

    나는 농담조로 웃으며 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르릇. 비르는 마마 말 잘 듣는다."

    "대열 준비 끝. 인간 방패! 앞장서줘."

    "돌아가면 결혼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앞으로 갈까?"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헤나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같은 편이 되니 무척 든든하다.

    하지만 같은 편이 되면 발목 잡는 놈도 있다.

    "부옥. 너도 케인 옆으로 가."

    "부오옥! 부옥 무섭다. 방패 못 한다. 부옥!"

    "그럼 뒤로 가든지."

    "부옥! 뒤에서 공격당할까 봐 무섭다. 부옥!"

    …기분 탓인가.

    헤나를 중심으로 온도가 올라가고 있어.

    "야. 돼지.

    한 번만 더 불평하면 머리를 태워버릴 줄 알아."

    "부오옥…."

    하. 못난이 오크 같으니.

    "내가 데려갈게. 먼저 가."

    "시현이 널 살렸네. 허튼짓 하면 가만 안 둬. 오크!"

    "부옥…."

    케인이 부싯깃 통을 꺼내서 횃불을 만들고, 우리는 케인이 밝히는 빛을 따라 통로를 걸어갔다.

    비밀 통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깊었다.

    곧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시간으로 희석될 만큼.

    지루할 정도로 걷기만 하다 보니,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용케 지하에 이런 땅굴을 팠네.

    별로 깊지도 않던데, 여태껏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방향이 점점 안쪽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클로라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두메른의 성채로 가고 있다는 얘기지.

    아멜리아라면 알 텐데."

    아멜리아를 슬쩍 돌아봤지만, 그녀는 무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아멜리아의 진의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적이 확실하게 매복하고 있는 장소를 피해서 이 길을 골랐다.

    앞으로 닥칠 상황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대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로 나올 수도 있겠지.

    지금 확실한 건 이 통로가 오랫동안 방치됐다는 사실 뿐이다.

    우리는 서로 약 6ft 정도의 간격을 두고 계속 걸었다.

    방향 감각도 시간 감각도 이상해져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뒤로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될 무렵.

    정말 뜬금없이 누가 내 엉덩이를 건드렸다.

    아니, 거의 대놓고 주무른다.

    주물럭주물럭.

    "……."

    아니나 다를까 범인은 부옥이었다.

    이런 상황에 뭐 하는 거야?

    괜히 일 만들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더니, 부옥은 내 젖탱이를 움켜잡고 주물렀다.

    "읏."

    그만하라고 몸짓한다.

    상황 봐 가면서 하라고.

    부옥은 더 흥분해서, 남들 몰래 입맞춤했다.

    나는 부옥과 츄츄 하면서 노려봤다.

    소리 내면 들킨다고.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부옥은 입을 떼고….

    딱 붙어서 내 젖탱이를 주물러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내 엉덩이와 젖가슴이 심심풀이 장난감이 됐다는 사실에 굴욕을 느끼면서도, 몸은 달아올랐다.

    부옥 옆에 달라붙어서…. 마음껏 성추행 받는다.

    젖가슴은 곧 추잡한 손놀림에 휘말렸다.

    부옥은 재킷 지퍼를 내리고 내 허리에 팔을 감더니, 주머니에 손 넣어서 자기 물건 찾는 것처럼

    내 젖탱이를 음습하게 주물러댔다.

    조물조물….

    "하아…."

    또 입맞춤한다.

    고개를 들고 몰래 부옥과 혀를 할짝거리면서, 젖탱이를 내주었다.

    앗…. 궁둥이도 잡혔어….

    부옥의 두툼한 손가락이 내 다리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왔다.

    허리 부근이 화끈화끈했다.

    마치 자기 와이프를 다루는 것 같은 손놀림에, 기가 막히면서도 짜릿하다.

    "좀 쉬었다 갈까요?"

    케인이 말했다.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나는 겨우 부옥의 품에서 해방되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