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331화 (1,202/1,205)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331화

"너 진짜 안 떨어져?"

"왜? 동생한테 뺏길까 봐 걱정이야?"

"하?"

우와. 사라야. 지금 표정 진짜 무서웠어.

닿으면 그대로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날카로운 표정의 사라였지만, 미리엘은 저 표정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그다지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이렇게 안기는 건 내가 조금 더 유리한 것 같군."

무서워하기는커녕, 도발까지 하는 미리엘이었다.

얜 진짜 목숨이 서너 개쯤 되는 건가? 왜 이렇게 목숨 아까운 줄 몰라?

"어때, 성자님?"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엘은 사라보다 조금 더 풍만한 가슴을 내 팔에 꾹 밀어붙였다.

아니. 야. 이것아. 너 진짜 미쳤어!? 날 왜 끌어들여!?

"나도 충분히 있거든!? 그리고 너랑 달리 우린…… 구원! 가만히 있지 말고 무슨 말이든 좀 해봐!"

뭔가 말하려던 사라였지만,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내게 고함을 질렀다.

아마 ‘우리한테는 사랑이 있어!’ 같은 말이라도 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말이야.

아까까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던 애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저러는 건 딱 그 모습만 놓고 보면 무척 예뻤지만, 그 후로 날 쏘아보는 눈빛은 누가 용사 아니랄까 봐 무섭게 날카로웠다.

젠장. 미리엘 녀석이 나한테 말만 안 걸었어도 이렇게 불똥은 안 튀었을 텐데.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좋아! 대답해주겠어!

"가슴은 레이……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라야. 오빠 슬슬 진짜 무서운데, 눈빛 조금만 부드럽게 바꿔주면 안 될까? 무슨 말을 못하겠네. 끝까지 말했으면 옆구리 살이든 등짝 살이든 어디 한군데 터졌겠네.

"크, 크흠! 미리엘! 넌 뭘 좀 모르는군! 가슴은 크기가 전부가 아니야! 중요한 건 그 가슴이 누구의 것이냐는 거지! 그리고 사라의 가슴은 말이지, 네 생각 이상으로 훌륭하다고. 이것 봐. 정확히 내 손 크기에 맞춘 것처럼 딱 들어오는……."

아, 아차! 말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 보란 듯이 움켜쥐어 버렸잖아!

사, 사라야. 이건 말이지. 오빠가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응……."

어? 이건 또 괜찮아? 진짜로?

살포시 얼굴만 붉히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라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서 그만 움켜쥔 사라의 가슴을 조물조물 만지기까지 해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그런 모습이, 아마 미리엘에게는 재미없었던 거겠지.

"그렇군. 성자님은 손에 넘치는 크기의 가슴은 싫다는 건가."

"아니. 그건 절대 아니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리엘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왜 싫어? 넘쳐주신다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지!

"……야. 구원. 너 엄청 단호하다?"

아, 아차! 함정이었나!

"아, 아니. 사라야. 이건……."

"하핫. 언니. 아무래도 형부는 손에 넘치는 가슴도 좋아하는 모양이야. 그럼 이렇게 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겠군."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미리엘은 다시금 내 팔을 끌어안고 자기 가슴을 꾹 밀어붙였다.

"구워어언……."

사, 사라야? 내 이름 그렇게 끌면서 부르는 건 섹스로 혀 풀렸을 때만 해주지 않을래? 그럴 땐 그렇게 예뻐 보이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무서울까?

"하핫. 하지만 형부라니……."

이제는 아예 내 어깨에 뺨을 기대고 올려다보는 미리엘. 그 모습은 누구 동생 아니랄까봐 무척이나 예뻤다. 예쁘기는 했지만…….

"무, 뭐? 왜?"

무서워 이것아! 제발 그만 좀 해! 너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이제 충분하잖아!? 진짜 사라가 폭발하는 거 보고 싶어!?

"아니. 새삼 형부라고 의식하니……조금 그렇군."

어?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불안하게 왜 맞는 말을 하는 거지?

하지만 나로서는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 그래! 그렇지!?"

"응? 성자님도 그렇게 생각해주는 거야?"

"당연하지!"

"하핫. 그런가. 성자님과 같은 마음이라니 기뻐. 역시 흥분되지. 금단의 관계라는 건."

"그……아니야아아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사라야! 오빠는 진짜 그런 뜻 아니었어! 얘 진짜 미쳤나 봐! 흥분되긴 뭐가 흥분돼!?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하지만 성자님."

당황해서 펄쩍 뛰는 나와 달리, 미리엘은 여전히 시원스러운 미소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 왜 또? 또 무슨 이상한 말을 하려고!?

"하핫. 이상한 말이라니. 섭섭하군. 이번에는 진지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엘은 정말로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말이야. 내가 그런다고 속을 것 같아?

"생각해 봐. 성자님."

"뭘!?"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언니가 인정해주면, 성자님의 용사 자매 덮밥을 맛볼 수 있어."

"……."

"야. 구원. 너 왜 아무 말이 없어?"

제, 젠장. 알고 있었는데. 미리엘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 할 거라는 것쯤, 알고 있었는데! 왜 나란 놈은 상상해 버린 거야! 왜 말문이 막혀 버린 거야!?

"아, 아니. 사라야?"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사라는 갑자기 손을 뻗어서 내 다리 사이를 덥석 만졌다.

옆에서 미리엘이 "언니도 의외로 대담하군."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놀렸지만, 사라는 상관하지 않았다.

"거, 거 봐? 안 섰지?"

평정심. 평정심이다. 구원아. 넌 할 수 있어. 위기는 곧 기회. 이 기회를 살려야 해. 여기서 잘만 넘기면 전부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어!

"흐으으음."

"하, 하하……."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다리 사이를 주물주물 만지는 사라에게,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줬다.

사라도 그런 내 미소를 보면서 가벼운 한숨과 함께 드디어 손을 내 다리 사이에서 떼……려다가 다시 덥석 잡았다.

"응? 구원. 지금 살짝 움직였지?"

"그럼 네가 그렇게 만져대는데 안 서겠냐!? 에잇! 도저히 안 되겠다! 너희 둘 다 떨어져!"

나는 화난척하며 그렇게 외치고 사라와 미리엘을 팔에서 떼어낸 다음, 정면에 마주 앉아 있는 디아나와 레이아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잘도 빠져나왔구먼."

디아나!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제발 쉬잇! 낭군님이 고통 받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어!? 이쯤 고통 받았으면 이제 충분하잖아! 지금 시간을 보라고! 저 둘 사이에 껴서 식은땀 뻘뻘 흘리며 지낸지 벌써 반나절이나……어? 반나절?

"하지만 조금 늦었네."

"도착했습니다."

"이, 이럴 수가……."

마차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다리에서 힘이 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제, 젠자아앙! 결국 오는 시간 내내 저 두 자매 사이에 껴있었잖아!

"구, 구원 씨. 힘내세요."

크흑. 천사님. 천사님만이 제 마음에 오아시스입니다.

"역시 형부는 큰 게 좋은 모양이야."

"너 자꾸 헛소리할래? 나랑 별로 차이도 안 나면서?"

너희는 제발 좀 그만 싸워……. 이럴 거면 차라리 둘 다 자매인 거 모른척할 때가 나았어. 왜 저렇게 티격태격 싸워대!? 같이 자란 자매도 저렇게는 안 싸우겠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래. 형부가 그렇게 페로몬을 뿌리며 처제한테 접근하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 그런 거 뿌린 적 없어 이것아!"

"하핫. 성자님이 자각을 못 하는 것뿐이야."

"아, 자네들. 이 몸은 먼저 나가도 되겠는가?"

디아나 너 아까부터 치사하게 진짜! 자기는 상관없다는 표정이나 짓고 말이야! 낭군님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그렇게 귀엽게 손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들어줄 것 같아!?

"구원 씨……디아나 씨는 마법진을 확인하셔야 하니까요."

……처, 천사님?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천사님도 은근슬쩍 문쪽으로 다가가신 이유는 뭘까요? 아니죠? 천사님까지 절 버리시려는 거 아니죠?

"구, 구원 씨도 내리셔야죠?"

"그, 그렇지? 응. 자, 다들 뭐해!? 내리자! 내려!"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일단 할 일을 시작하면 저 자매가 싸울 일도, 그 사이에 껴서 고통 받을 일도 없으니까.

역시 천사님이야. 천사님만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여기가 바로 그곳이야. 어때?"

뭐, 아무튼 반나절 내내 자매 사이에 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겨우 해방되고 나와 보니, 눈앞에는 요새가 있었다.

"……뭐야 이거."

"몬스터의 요새야. 안쪽에 있는 산은 복잡한 구조의 터널로 이어져 있어서, 작은 던전 같이 되어 있는 모양이야."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안다는 걸까?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가 투명 마법으로 모습을 감췄는데도, 미리엘은 딱히 내게 찝쩍거리는 일 없이 평범하게 설명해 줬다.

"들어가 봤어?"

"우리 클랜원 몇 명이 입구 쪽만 조금. 하지만 어지럽히면 안 될 것 같아서 금방 나왔어. 하지만 터널 안쪽의 공간이 생각보다 깊다는 건 확실해."

"수도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데 잘도 가만히 놔뒀군."

"아아. 입구 근처의 몬스터의 수준이 5계층 수준이었다고 해. 입구 쪽이 그렇다는 건 안쪽은 더 강한 몬스터가 있을 거야. 이곳 사람들에게는 부담되었겠지. 게다가 이 요새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요새 밖에 나오지를 않으니까,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그렇군. 바프라가 지하수로의 몬스터들을 방치한 것과 비슷한 이유라는 건가.

하지만 몬스터가 요새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니. 그렇다는 말은 즉…….

"그래. 터널의 안에 독자적인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말 그대로 소규모 던전이라는 얘기인가."

이렇게 용사단을 모아서 미리엘이 직접 출격해도 의심받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 이유가 이거였군.

"하지만 그정도 수준이면 용사단도 힘든 거 아니야? 분명 3계층을 다니던 멤버도……."

"그래. 아직 5계층에는 발도 못 들인 사람도 있지. 하지만 괜찮아. 용사단 대부분은 입구 근처에서 대기시킬 거야."

제대로 안을 탐험하는 건 우리라는 건가.

그리고 여기 몬스터들을 토벌한 공은 전부 용사단에게 돌아가서, 용사단의 평판과 함께 미리엘의 평판도 더더욱 급상승하게 된다는 계산이라는 거다.

"왠지 이용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

"됐어. 애초에 네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나 때문인데. 오히려 내가 널 이용하고 있는 거지. 땡큐."

"……."

"왜?"

"하핫. 아니야. 역시 성자님은 자각이 없군."

얜 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무튼 그러면 지금부터 당장 출발해 볼까?"

"그래."

우리 애들도 계속 투명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려면 답답할 테니까. 빨리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해방해 줘야지.

나는 오랜만에 던전 탐험을 하게 되어 살짝 설레는 기분으로 발을 내디뎠다.

뭐, 따지고 보면 지금 여기도 던전 안이고, 눈앞에 있는 요새가 오히려 유사 던전이지만.

요새 입구 쪽은 선발대가 미리 정리해놨는지 깔끔해서, 안쪽에 보이는 산까지는 별다른 전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산부터였는데.

"입구가 한두 개가 아니잖아?"

그래.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니, 입구처럼 보이는 터널이 산 곳곳에 뻥뻥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래서 이왕이면 파티를 나누려고 해. 나와 성자님의 파티 멤버는 누구든 한 명만 있으면 탐험에는 무리가 없을 테니까. 우리 클랜원들과 성자님의 파티 한 명이 한 조가 되어서 각각 다른 입구에서 들어가 안을 탐험하고, 나중에 지도를 맞춰보는 거지. 어때?"

그게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하네. 아마 우리 애들은 나랑 떨어져서 탐험하게 된다고 싫어하겠지만.

"너희 생각은 어때?"

허공에 대고 물어보니, 잠깐의 침묵 후 내 귓가에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곳이 이반이 준비한 마법진이라면 규모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을 걸세."

하긴. 기껏 해봐야 도시 하나 크기 정도일 테니까.

도시 하나 크기의 미로형 요새를 기껏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우리 실력이라면 그래 봤자 전부 조사하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할 거다.

즉, 디아나는 지금 괜히 따로 다니지 말고 같이 다니자고 은근히 돌려 말한 거다. 귀엽기는.

"성자님?"

"아니. 굳이 나눠서 갈 필요 없을 것 같아. 용사단은 그냥 조사하는 척 입구 안에 살짝 들어가서 모습만 감추고, 진짜 조사는 우리끼리 전부 다 하는 걸로 하자."

"……그래도 되겠어?"

"그래. 우리 애들은 내가 곁에 없으면 불안한가 봐. 특히 우리 디아나는 길치라서……아야. 아파. 디아나."

아프다고 하니까 토닥토닥 더 두드려주네. 디아나야. 기껏 투명 마법 써놓고 그렇게 존재감 어필해도 되는 거야?

"뭐,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갈까."

"……성자님?"

수많은 입구 중 대충 제일 가까이에 있는 하나를 골라서 들어가려고 하자, 미리엘이 내 소매를 잡고 드물게 내 눈치를 살폈다.

"응?"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응? 그럼 같이 안 갈 생각이었어?"

"……하핫. 들켰나.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쩔 수 없지. 조금만 기다려 명령을 전달하고 올게."

쟨 대체……아야! 뭐야 이거!? 이번엔 사라지!? 갑자기 옆구리는 왜 꼬집어!? 뭐!? 페로몬!? 갑자기 또 그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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