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329화 (1,200/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329화

    왜 하필 우리 애들이랑 같이 왔을 때, 그것도 사라랑 같이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어도, 미리엘은 이제 우리 계획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니까.

    "하아……하아아아……."

    "미안하다."

    아니. 딱히 앨리시아 너 들으라고 한숨 쉰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뭐, 네가 정 그렇게 미안 하다면 어쩔 수 없지.

    "자위를 명령한 다음에 이틀 동안 방치 플레이……자기 애인을 그런 파렴치한으로 봤단 말이지."

    "그,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렇게 미안하단 말이지?"

    "그, 그래."

    "잘못했어?"

    "그, 그렇다고!"

    재차 묻는 내 모습에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면서도 앨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자신을 수치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대답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럼 넌 오늘 하루 동안 일인칭 앨리시아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일인칭? 내가 날……."

    "앨리시아가 앨리시아를. 너 전에도 해본 적 있지 않아?"

    옛날에 나랑 사귀기 전에, 외모는 되니까 행동만 좀 여자답게 행동하라면서 시험 삼아 시켜본 기억이 있는데.

    "……노, 농담이지?"

    한 번 정정당하고 나서야 겨우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건지, 앨리시아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 보여?"

    "나 조금 이따가……."

    "앨리시아."

    "이, 이 새……애, 앨리시아……크윽……조금 있으면 밑에 애들 훈련시키러 가야 하는데……."

    "잘됐네. 카리스마 교관님이 가진 의외의 깜찍한 일면을 어필할 기회잖아. 지금보다 인기 더 많아지겠네."

    "필요 없어 새끼야! 안 그래도 맨날……."

    "응? 맨날 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네가 그렇게 소리 지를 필요도 없었겠지.

    뭐, 대충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예상은 된다. 앨리시아 얘는 아라크네 클랜 내에서 워낙 인기가 많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나도 거기 클랜원들한테 좀 들은 얘기가 있거든.

    "여자들한테 고백받아서 귀찮다고?"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언제부터!? 누가 말해 줬어!?"

    "그건 말이지……."

    "크윽……."

    내가 앨리시아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스윽 들이밀자, 앨리시아는 무슨 착각을 한 건지 갑자기 두 눈을 꼬옥 감고 몸을 긴장시켰다.

    앨리시아. 지금 우리가 키스할 분위기는 아니잖아?

    "비밀."

    앨리시아의 귓가에 그렇게만 속삭여주고 다시 거리를 벌리자, 앨리시아는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잠시 머리 위에 물음표를 엄청 띄우더니.

    "이, 이 개새……!?"

    이윽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부들부들 떨었다.

    자기가 착각해놓고 괜히 부끄러우니까 화내기는.

    "아무튼 넌 오늘 하루 일인칭 앨리시아야. 봐줄 생각 없어. 훈련장이든 어디든, 어기면 용서 안 해. 분명 네 입으로 잘못했다고 했지?"

    그 손목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여서 앨리시아의 손이 튀어나오는 걸 미연에 방지한 다음,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선언했다.

    "이, 이 사디스트 새끼……."

    사디스트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굳이 따져 보자면 난 져줄 때가 더 많지 않아?

    ……잘 생각해 보니 앨리시아한테는 별로 져준 적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뭐, 아무렴 어때?

    아무튼 그렇게 신나게 앨리시아를 가지고 놀아서 기분을 환기시켜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할 일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자기 방에서 발정하고 있을 미리엘……을 처리하기 전에 우선 우리 애들한테 말부터 해야겠지.

    "……저기……얘들아?"

    딱히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우리 애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걸까?

    진짜 미리엘 그 녀석 이따가 두고 보자. 두고 봐도 딱히 손쓸 방법이 없긴 하지만. 괴롭혀도 좋아하는 망할 녀석. 진짜 걜 어떻게 하지?

    "왜?"

    어째선지 얘기를 꺼내기도 전부터 사라의 시선이 차가운데, 내 기분 탓인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탓이 아니야.

    "……혹시 다 들렸어?"

    "상태 안 좋다는 얘기만 어렴풋이."

    역시나……하긴. 사라 얘 귀 엄청 밝지.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사라가 그냥 저렇게만 말하고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평소라면 "뭐가? 구원 지금부터 다른 여자랑 하러 간다고?" 같은 말을 하면서 내 양심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을 텐데, 아무리 사라라도 자기 동생 상대로 그런 말은 하기 힘들다는 건가.

    "잠깐만 기다려줄래? 진짜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까."

    방치할 수도 없잖아? 그런 느낌으로 사라에게 어색하게 미소 짓자, 사라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표정은 저렇지만, 별말 없는 거 보면 다녀오라는 뜻이겠지.

    "진짜 금방 다녀올게. 앨리시아. 얘들 좀 부탁해."

    "어, 응……. 언니들! 앨리시아를 따라와 주세요!"

    "언니라고……앨리시아를? 야. 구원."

    "그럼 난 이만!"

    저걸 듣자마자 귀신같이 내가 시킨 줄 아네.

    안 그래도 미리엘 때문에 곤란한데 저거까지 태클 걸리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우리 애들을 놔두고 미리엘의 방으로 향했다.

    어차피 위치는 알고 있으니,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리엘 님! 저조차도 입실을 허가하지 않으시는 건 어째서입니까!"

    다만, 미리엘의 문 앞에는 웬 대머리 아저씨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저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장군이었는데. 분명 ㅂ으로 시작하는……바, 발랑 까진? 발가벗겨진? 분명 그 비슷한 이름이었는데……에잇. 머리 보니까 그 생각밖에 안 나네. 모르겠다. 땀내 나는 아저씨 이름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잠깐 실례."

    "누구냐!? 너……당신은……."

    와. 이 아저씨, 당신이라고 하면서 표정 구겨지는 것 좀 봐. 나한테 존칭 좀 써주는 게 그렇게 싫어? 전에는 그래도 겉으로 티는 잘 안 내더니, 이젠 완전 노골적이네.

    "미리엘. 나다. 들어간다."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미리엘 님은 지금……!"

    "그래. 들어와."

    "미리엘니이임!"

    으악. 깜짝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를 이렇게 질러대?

    "밖에 경비병. 발가스 장군이 들어오려고 하면 막아."

    "미리엘니히히이임!"

    ……이 아저씨, 지금 우는 거야? 덩치 산만 한 아저씨가 저렇게 눈물 주룩주룩 흘리니까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네.

    "발가스 장군. 이해해 줘."

    미리엘도 이런 거 보면 엄청 매정하다니까.

    아니. 저런 아저씨가 저렇게 열성적으로 들이대는데 기겁 안 하고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정하다고 해야 하나?

    "그럼 난 이만……."

    인사도 없이 들어가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괜히 도발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겠지?

    "여어. 성자님. 오랜만이야. 어서 와."

    아무튼 방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엘은 듣던 것과 달리 의외로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지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의자에 앉은 채로 날 맞이해 줬다는 점이었다. 평소 같으면 곧장 다가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일단 물건에 키스부터 하려고 했을 텐데.

    "오냐. 사고 쳤다면서?"

    "하핫. 벌써 얘기 들었어? 이거 부끄럽군."

    "난 분명 평소대로 지내면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그랬지. 미안해 성자님. 성자님이 곧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도 준비를 안 하는 건 실례일 것 같아서."

    준비라니……그럼 설마 자위라는 게, 내가 와서 박아주기 전에 미리 적셔놓으려고 한 거였어? 곧 간다고 했으니까 진짜 금방 올 줄 알고?

    "너 바보지?"

    "하핫.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군. 하지만 성자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나는 기꺼이……."

    "헛소리 그만하고."

    "응흐크흐읏!?"

    내가 다가가서 유두를 강하게 비틀자, 미리엘은 곧장 책상에 얼굴을 박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역시나. 아무리 멀쩡한척해도 이미 이 녀석이 이틀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듣고 온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런 얘기 안 듣고 왔어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미리엘은 지금 발정 중이라는 냄새를 온몸으로 풀풀 풍겼으니까.

    "고개 들어."

    "흐하앗……하앙……응큿……응흣! 하아……하아……."

    내 명령을 듣고 미리엘은 어떻게든 몸에 힘을 줘서 고개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이틀 동안 발정한 채 방치되다가 겨우 절정을 맛본 몸은 쉽게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다.

    이마를 책상에 쿵쿵 박으면서도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보려는 미리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내가 온다고 해도, 우리 애들이랑 같이 올 거란 건 알고 있었잖아?"

    우리 애들이랑 같이 와서 굳이 너랑 섹스를 해줄 리가 없잖아?

    대체 왜 이런 준비를 하고 기다린 거야?

    그런 너무도 당연한 내 의문에, 미리엘은 가끔씩 섹시한 콧소리만 흘리며 침묵으로 대답했다.

    "……너 설마 일부러 그랬냐?"

    그냥 기다렸으면 우리 애들 눈치 보느라 내가 섹스 안 해줄 테니까?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 발정한 채로 기다린 거야? 이러면 마신의 영향 때문에 내가 섹스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성자님. 응크흐읏!? 하으응읏……서, 성쟈하……니힘……!"

    겨우 미리엘의 진의를 눈치챈 나는 사정없이 성자의 손길을 사용해 미리엘의 목덜미와 등을 대충 어루만졌다.

    "하, 흐하읏……."

    "일어서."

    그 얼굴이 맞닿은 책상 위에 타액의 웅덩이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흐읏……."

    한 번의 절정만으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됐는데, 성자의 손길로 극심한 연속 절정을 맛본 몸으로 제대로 설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미리엘은 어떻게든 내 명령을 들어보겠다는 듯,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고 바닥을 기면서도 몸을 움직였다.

    "하아……됐다. 10분 줄 테니까 그사이에 회복해."

    미리엘 레벨에 저런다고 어디 다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면서 여기저기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썩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나는 대충 미리엘의 몸을 안아 들어서 침대 위에 내려놓은 다음, 나 자신은 방 한구석에 있는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하앗……서, 성자님……."

    미리엘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은 채고 기다리기를 정확히 10분. 미리엘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침대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섰다.

    "잘못했어?"

    "……그래. 폐를 끼쳤어."

    "반성은?"

    "……."

    아니. 야. 거기에서 침묵하면 어떡해? 뭐야? 잘못은 했지만 반성은 안 한다는 거야? 너 그렇게까지…….

    "그렇게 나랑 하고 싶어?"

    "하고 싶다고 말하면……성자님은 해주는 건가?"

    마신의 영향을 받은 몸을 벗기지도 않고 성자의 손길만으로 풀어 버린 것 때문에 상처받았는지, 미리엘은 드물게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아……너 하는 거 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엘을 조종하기 위해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조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내 여자가 아니라고 딱 잘라 선을 그은 브레디나 아리엘은 아무 감정 없이 안을 수 있었다.

    내 여자들을 안을 때는 여전히 감정이 한없이 커져가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미리엘은? 내 여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미 마음이 조금 움직여 버린 미리엘을 안을 때는 어떨까? 과연 미리엘도 아무런 감정 없이 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끝에 나온 대답이었다.

    "저, 정말이야!?"

    기대조차 안 한 대답이었다는 듯, 미리엘은 거의 내게 매달리면서 되물었다.

    정말이니까 좀 떨어져 이것아. 몸에서야한 냄새 풀풀 풍기면서 달라붙지 말고. 괜히 나까지 마신한테 영향받겠네.

    "그래.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그전에 마법진부터 확인해야겠어. 몸은 진정됐지? 옷 갈아입고 준비해. 그 꼴로는 밖에 나가지도 못할 거 아니야?"

    "하핫. 그렇군. 이런 모습, 성자님이 아니면 부끄러워서 도저히 보여줄 수 없어."

    "말은 잘해요."

    예전에 나랑 처음 만났을 때,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 훌렁훌렁 벗었던 거 내가 기억 못 할 것 같냐? 그땐 딱히 나한테 감정도 없었잖아? 그랬던 녀석이 이제 와서 부끄럽기는.

    장담하는데 이 녀석은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는 알몸이든 뭐든 보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성격이다.

    "성자님이 나와의 추억을 그렇게 소중히 간직해 줬다니……하핫. 감격이야."

    "소중히 간직했다고 한 적 없거든? 입 움직일 시간 있으면 빨리 갈아입기나 해."

    이 자식, 아무리 그래도 진짜 회복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혹시 아까 보여준 상처받은 표정이나 비참한 몸짓도 전부 연기였던 건 아니겠지?

    "일단 물어보는 건데."

    "또 뭐?"

    "만약 내가 지금 시킨대로 안 하면? 혹시 성자님한테 혼나는 건가?"

    "그런 표정으로 기대하는데 내가 혼내줄 것 같냐?"

    그러고 보니, 원래는 어떤 식으로든 혼 좀 내줄 생각이었는데. 아까 너무 비참하게 바닥을 기어댈 때가 혼내주기 제일 좋은 타이밍이었지만, 그땐 또 너무 불쌍했단 말이지.

    젠장. 진짜 여러모로 상대하기 귀찮은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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