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229-1290화 (1,196/1,205)

1229화

사라가 개입해 준 덕분에 감정공유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던 나는, 힘없이 터덜터덜 구미호 마을로 돌아갔다.

아니. 딱히 감정공유 때문에 지친 건 아니다.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당시에는 진짜 부끄러워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그것도 다 끝나고 나면 그냥 꽁냥거린 추억으로 남으니까.

다만 그렇게 강도 높은 스킨십을 하고 나니, 괜히 더 줄리안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져서 말이야.

아까 실비아나 레이랑 꽁냥거린 것처럼, 줄리안하고도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하아…."

설마 내가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사실 생각해 보면 줄리안도 남자인 줄 알았을 때부터 내가 미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모도 빼어나고, 성격도 중2병이 조금 심해서 그렇지 올곧고 나쁘지 않은 녀석인데.

그런 여자를 우리 애들의 허락하에 내 여자로 만들 기회가 온 건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왠지 내키지 않는 나였다.

"하아…."

텔레포트를 타고 구미호 마을로 이동한 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고민이 떠나지 않아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뭘 재수 없게 한숨 푹푹 내쉬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 여기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목을 거칠게 끌어안았다.

"으악!? 누구…애, 앨리시아!?"

"그래. 누님이다. 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그러냐?"

"네가 여기에 어떻게…플리투스에 있는 거 아니었어!?"

"텔레포트 타고 온 거야. 자기도 방금 타고 왔으면서 호들갑 떨기는."

텔레포트…아, 그러고 보니. 아라크네 간부진이 플리투스로 이동할 때,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갔었지.

그리고 그 마법진은 회수하지 않고 얘들이 분해해서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니, 다시 조립해서 설치만 하면 여기로 건너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에서는 전쟁신 세계의 마나를 여신님 세계의 마나로 변환하는 장치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위험성을 무릅쓰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다는 얘기는….

"설마 뭔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그 반대야."

그렇게 대답한 건, 앨리시아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린 등 뒤로 고개를 돌려보니, 미리엘이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텔레포트 마법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수도에 가서, 어느 정도 신뢰를 얻을 수 있었어. 이렇게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할 개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말하는 미리엘의 뒤로, 다른 아라크네 간부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루티아와 지니, 그리고 릴리와 힐다까지. 유이하게 쌍둥이 마법사 둘만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텔레포트 마법진을 지키고 있는 거겠지.

"다 잘 되어가고 있으니까 성자님은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고, 미리엘은 뒤따라온 다른 간부들에게 가볍게 눈짓했다.

그러자 다들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특히 루티아 누님이 뭔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미리엘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다 같이 우르르 여기엔 왜 온 거야? 잘 됐다고 해도, 아직 플리투스를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잖아?"

"아아. 슬슬 여유가 생겼으니 클랜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간부 전원이 저쪽에 가 있는 것보다는, 인원을 나누는 게 여차할 때 클랜의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쌍둥이 마법사 둘만 남겨놓고 다 돌아왔잖아.

그렇게 잠깐 의문으로 생각했지만.

"하핫. 나와 앨리시아는 중간보고를 위해 잠시 건너온 것뿐이야. 대마법사님께 성자님이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내 의문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미리엘이 내 마음을 읽고는 먼저 대답해 줬다.

그렇군. 그럼 아까 루티아 누님의 그 표정은…아니. 안 그래도 줄리안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데 괜한 생각하지 말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 여기에서 곧바로 보고해도 될까? 아니면 우선 재회의 기쁨이라도 나눌까? 성자님이 여기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앨리시아가 얼마나…으읍! 으읍!"

"야! 미리엘! 그 얘기는 됐잖아!"

미리엘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기도 전에, 앨리시아가 미리엘의 입을…아니. 그냥 코까지 포함해서 얼굴 아래 절반을 손으로 틀어막아 버렸다.

굉장해. 저 미리엘이 당황한 표정으로 탭 치고 있어. 쟤도 순수 힘은 앨리시아한테 안 되는구나.

"보고부터 들을게."

미리엘이 하려던 얘기가 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런 얘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들을 기회가 있겠지. 나는 우선 보고부터 듣기로 했다.

"그렇군. 각지의 제후들이 모이는 동안…."

미리엘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이랬다.

수도에 도착한 미리엘은, 그곳에 있는 귀족들에게 리리안 플리투스의 후손으로 인정받는 것에 성공했다고 한다.

다만 플리투스는 왕 같은 존재가 없고, 각지 제후들의 연맹 형식의 세력이다.

리리안 플리투스의 뜻을 이어받는 이들이 모인 세력인만큼, 자신들의 왕이 될 수 있는 건 플리투스의 용사뿐이라는 게 이유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연맹세력인만큼 수도도 왕이 다스리는 세력의 수도와는 의미가 달라서, 그냥 제후들의 투표로 선정된 대표가 다스리는 땅을 임의로 수도 취급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수도에 있는 귀족들에게 인정받았다고 해봤자, 고작 하나의 제후에게 인정받았을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미리엘이 리리안 플리투스의 후손으로서 진짜 플리투스의 주인이 되려면, 당연히 연맹 내의 모든 제후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각 제후에게 소집 요청을 보낸 상황이라고 한다.

미리엘이 간부들을 모조리 이끌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제후들이 요청을 받고 모이기까지 아직 며칠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래서, 인정받을 자신은 있어?"

"하핫. 글쎄.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응? 생각보다 자신이 없네?"

용사가 쓰는 강기를 따라 하겠다면서 마강검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직업까지 만들어내 전직한 녀석이 말이야.

조금 더 자신을 가지는 게 어때? 수도에 있는 귀족들도 잘 속여 넘겼잖아?

"하핫. 그럴 수도 없어. 마강검사의 숙련도가 쌓일수록, 내 검기가 용사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느껴지니까. 수도에 있던 귀족들은 그다지 마나에 민감한 것 같지 않아서 속일 수 있었지만, 만약 마나에 민감한 이가 나타난다면, 나처럼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게 조교 당한 이후로 무에 대한 집착은 버렸다고 말했던 미리엘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의 성취가 부정당하는 건 씁쓸한 모양이었다.

평소와 달리 씁쓸한 미소를 짓는 미리엘의 표정에, 나는….

"그러니까 성자님. 날 위로해주겠어? 성자님의 것으로 두려움도 씁쓸함도 지워 버리고, 오로지 쾌감만…."

"넌 이럴 때까지 그런 얘기냐!? 살짝 동정했는데! 도와주려고 했는데!"

"하핫. 이것도 전부 성자님의 조교 덕분이지."

덕분이라고 하지 마! 조교라는 말도 하지 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앨리시아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식겁해서 앨리시아의 눈치를 살폈지만, 의외로 앨리시아는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뭘 봐."

"아, 아니…."

뭐, 심경이 복잡하기는 한지, 말투가 퉁명스럽기는 했지만.

"하지만 성자님이 동정해주다니. 조금 부끄럽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하지만 미리엘은 그런 앨리시아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예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얼굴까지 붉히면서, 미리엘은 내게 묘한 눈길을 보냈다.

"이제 동정 안 하거든!? 그런 감정 깡그리 사라졌거든!? 누구씨 덕분에!"

"응? 그럼 도움을 주겠다는 말도 없던 말이 되는 건가? 흠. 그건 곤란한데. 나로서는 성자님의 도움이라면 뭐든지 받고 싶어. 뭐든지."

"그렇게 뭐든지라고 강조해 봤자 네가 생각하는 그런 도움 아니거든?"

"응? 섹스로 불안감을 지워주는 도움이 아니라고?"

"대놓고 말하지 마, 이것아! 넌 무슨 여자가 부끄러움도 없냐!?"

"하핫. 내가 이러는 건 성자님뿐이야."

그러니까 내 앞에서도 하지 말라고!

제, 젠장. 이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게 분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 녀석이 이렇게 될 때까지 조교한 건 나니까.

"미리엘. 너 이 녀석이랑 있다고 해서 너무 들뜬 거 아니야?"

"그렇군. 앨리시아가 화나면 곤란하니, 이제 농담은 그만할까."

앨리시아의 지적에 살짝 부끄러워졌는지, 미리엘은 얼굴을 살포시 붉히면서 표정을 진지하게 바꿨다.

"진지하게 얘기해서, 성자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부탁할게. 혹시 그거야? 전에 성자님이 발가스 장군 앞에서 보여줬던 용사의 힘과 비슷한…."

"아니. 그건 나밖에 못 쓰는 거야."

이 녀석, 말로는 섹스에 관한 얘기나 하고 있었으면서, 속으로는 사도 의태를 의식하고 있었던 건가.

하여간 아무리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녀석이라니까.

"그런가. 그거 아쉽군. 그 기운은 정말로 용사의 기운과 비슷했는데 말이야."

그야 진짜 용사의 힘이니까 그렇지.

"그러면 성자님이 말한 도움이라는 건?"

"아아. 그게 실은 말이지."

잠깐. 아주 잠깐 이유를 알 수 없는 망설임이 가슴을 뒤흔드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실은 여기 7계층에는 대대로 용사 일족에게 전해 내려왔다는 용사의 전용 전투 직업이 있거든. 배틀마스터라고 하는데 말이야."

용사는 안 되더라도, 용사의 전용직업이라고 불렸던 전설의 직업을 미리엘이 얻는다면, 조금이라도 더 용사랑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안 그래도 조금 전에 비슷한 이유로 줄리안을 바프라에게 보내고 돌아왔으니,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나한테 이…둘을 같이 훈련시키라고?"

장소는 다시 바뀌어서 바프라의 창관 지하.

미리엘은 성에 잠입할 수 있는 스킬이 없는 만큼, 나는 사라를 여기로 데려와서 미리엘과 대면시켰다.

사라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차가운 도시여자 그 자체였지만, 나는 사라의 심정이 표정과 같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미리엘을 이 여자라고 부르려다가 멈춘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뭐니뭐니해도 미리엘은….

"잘 부탁할게. 언니."

그래. 미리엘도 이제 사라가 자기 이복 언니라는 걸 눈치챘으니까 말이야.

전에 미리엘이 언니라고 부르고 플리투스로 가버린 뒤로 얼굴 마주할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둘이,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된 거다.

이 분위기를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아마 여기에서 뭘 먹으면 그대로 체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괜히 나까지 불편한 기분이었다.

"읏…당신…아니."

"편하게 미리엘이라고 불러도 돼. 아니.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의식하게 하는 것 같군. 그냥 편한 대로 불러. 언니라고 불러놓고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무안하지만, 사실은 나도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으니까. 이복자매라고 해도 서로 존재도 모르고 지냈으니, 이제 와서 자매의 연 같은 건 서로 느껴지지 않잖아?"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미리엘만큼은 평소처럼 시원스러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새삼 느끼는 건데, 미리엘 얘는 참 말도 안 되게 어른스럽네. 나이로 따지면 내 여자 중에서 제일 어린 사라보다도 동생인데 말이야.

"…후우. 그러네요. 그럼 미리엘이라고 부르죠."

아무튼 그런 미리엘의 분위기에 사라도 겨우 어색한 감정을 벗어던질 수 있었는지, 평소처럼 도도한 말투로 그렇게 대답했다.

"응. 그렇게 해줘."

어 뭐야? 진짜 이걸로 끝이야?

아니. 극적인 자매 상봉의 기쁨을 나눈다든가 그런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삭막하지 않냐?

"그래서, 미리엘도 배틀마스터가 되고 싶다는 건가요?"

"도, 라는 건 나 말고도 누가 더 있는 건가?"

"나다! 이, 이, 이, 사기꾼아!"

그리고 그런 미리엘의 말을 듣고, 사라를 따라와서 구석에 있던 줄리안이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아아. 줄리안인가. 하핫. 그때는 속여서 미안하게 됐어."

"미안하다는 말로 끝날 것 같아! 이 사기꾼!"

왠지 사라랑 미리엘 자매보다 이 둘의 만남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용서해 줘. 줄리안이 여기에 있다는 건, 결국 줄리안도 성자님에게 협력하게 됐다는 거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결과론이잖아! 용서 못 해! 너만 믿고 있었는데! 성자의 손에 타락한 사악한 용사한테서 버티려고 안간…."

"사악한 용사라는 게, 설마 절 말하는 건 아니겠죠?"

"아! 아, 아닙니다, 사부!"

"사부라, 그거 좋군. 앞으로 나도 그렇게 부르는 게 좋을까? 사부."

"승낙하기도 전에 먼저 부르지 마요! 절대 싫어요! 그리고 줄리안씨도! 사부라고 부르지 말랬죠!?"

…개판이군. 사라랑 줄리안 둘만 붙여놓는 것도 불안했는데, 미리엘까지 가세하니까 더 개판이야.

진짜 이 셋을 같이 놔둬도 괜찮은 걸까?

이대로 셋이 같이 두면 사라의 정신 위생에 지대한 악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용사인 사라가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을 둘이나 데려와서 갑자기 성에서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이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줄리안 하나였다면 그나마 변명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둘부터는 좀 눈치 보이잖아?

아무튼 그런 이유로 대책을 논의해 본 결과, 훈련은 창관의 지하에서 받는 것으로 정해졌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지키고 여신의 마나가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창관의 지하는 특히 공을 들여서 튼튼하게 지었고, 넓이도 충분해서 훈련장으로 쓰기에 무척이나 적합했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사라도 창관이 설립될 때부터 내 곁에서 운영을 도왔으니, 잘 운영되고 있는지 둘러보고 오겠다는 이유를 들어서 매일 드나들어도 의심받지 않는 장소이기도 했고.

"하앗! 핫! 하압!"

그래서 사라의 정신 건강도 챙기면서 둘을 훈련시킬 수 있는 적절한 장소가 정해진 것은 좋았지만….

"야. 너도 가서 연습 좀 하지 그러냐? 줄리안이 저기에서 피나게 노력하는 거 보고 뭐 느끼는 거 없냐?"

오늘도 사라가 돌아가자마자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미리엘의 모습에, 나는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핫. 난 할 땐 하고 쉴 땐 쉬는 주의거든. 뭐든 재주 좋게 해결하는 성자님이라면 알겠지만, 이런 건 시간만 들인다고 능사가 아니야. 사람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쉴 때 제대로 쉬어주지 않으면 점점 효율이 떨어져서 결국 시간만 쓸데없이 허비하는 결과가 되어 버려."

하지만 내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엘은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변론을 늘어놨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쉰다는 애가 지금 뭐 하는 거냐?"

"응?"

아니. 뭘 눈 동그랗게 뜨고 모르는 척하는 거야.

"쉰다는 애가 내 물건에 손은 왜 가져다 대는 거냐고, 이것아!"

그렇게 외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바지가 흘러내려 가는 느낌에 나는 당황해서 다시 주저앉았다.

그사이에 벌써 벨트를 풀었다고!? 암살자 직업하고는 연도 없는 녀석이 이런 건 또 왜 이렇게 은밀하게 잘해!? 나보다 더 소질 있는 거 아니야!?

"성자님이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로군. 내게 세상에서 이렇게 쉬는 법도 있다는 걸 알려준 건 다름 아닌 성자님이잖아? 난 성자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쉬려고 하는 것뿐이야. 성자님이 알려준 방식대로,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성자님에게 봉사…으읍!"

이게 진짜 남들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아니. 물론 남이라고 해봤자 줄리안밖에 없고, 줄리안은 여자가 남자한테 복종하는 게 당연한 곳에서 살다 왔으니 그런 발언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겠….

"우읏…."

무지막지하게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잖아. 저럴 거면 그냥 대놓고 보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로 보고 있잖아.

쟤는 그래도 배틀마스터가 되고 싶다는 의욕이 넘쳐흐르는 애니, 연습에 집중하느라 주변 상황에 신경 쓸 여력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역시 신경 쓰이는 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하아…."

진짜 미리엘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입이 틀어 막혔는데도 불구하고 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가슴으로 내 팔을 짓누르는 모습에, 나는 머리가 아파져 왔다.

얘 원래 이 정도였나? 원래부터 나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고, 일부러 상식 밖 상황을 만들어서 즐기는 것 같은 장난을 많이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에는 남의 눈 정도는 신경 썼었잖아?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들이대게 된 거지?

"할짝."

"으학!?"

그렇게 잠깐 미리엘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한 채 생각에 잠겨 있자니, 갑자기 그 입을 틀어막은 손에서 미끄덩한 감촉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서 손을 떼니, 미리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가락을 하나 입으로 물고는 부드럽게 혀를 돌리며 유혹하는 것 같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성자님. 그다지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성자님은 그저 가만히 내 봉사를 즐기기만 하면 돼.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마치 자신의 입 기술을 뽐내는 것 같이 혀와 입술을 움직여서 내 손가락을 빨며 말하는 모습에, 하반신에 본능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그럴 마음이 없어도 몸이 반응해 버리는 게, 남자라는 생물의 슬픈 운명이라는 거지.

미리엘은 그런 내 하반신을 눈동자만 내려서 힐끔 확인하더니, 더욱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 바지 안으로….

"…이럴 기운이 있으면 가서 연습이라도 좀 더 하는 게 어떠냐? 너도 일단 강해지는 게 꿈이었잖아?"

"그리고 그 꿈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성자님이 몸으로 직접 알려주신 덕분에 깨닫게 됐지."

제, 젠장. 분명 내가 하는 말이 정론일 텐데, 과거에 한 짓이 있다 보니 반박을 못 하겠어.

"그렇게 배틀마스터에 관심 없냐?"

그럴 거면 아예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서 휴가 좀 즐기다가 플리투스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냐?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하핫. 그렇지는 않아. 성자님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도 배틀마스터가 되고 싶어."

어디까지나 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되고 싶은 것뿐, 용사니 힘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 없다는 건가.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그렇게까지 힘을 추구하고 용사라는 힘을 탐하던 애가 이렇게까지 된 걸 보니, 내가 한 짓이지만 조교가 얼마나 제대로 됐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그러냐."

"그래. 그러니까 안심해. 제대로 배틀마스터가 되어 보일 테니까. 하지만 성자님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고 한다면…쪽."

입에 물고 있던 내 손가락을 마지막으로 쪽하고 빨아준 다음, 미리엘은 내 바지 아래에 집어넣었던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더 연습하고 올게. 난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성자님한테 밉보이기는 싫으니까."

그렇게 말한 후, 미리엘은 줄리안이 연습하고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언니와 마찬가지로 모델같이 멋들어진 걸음걸이로 뒤태를 뽐내면서.

"줄리안. 같이 대련하면서 연습하지 않겠어?"

"어!? 그,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줄리안에게 말을 거는 미리엘과, 이쪽을 힐끔힐끔 엿보다가 화들짝 놀라서 받아주는 줄리안.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 머리가 복잡해졌다.

미리엘이라. 생각해 보면…아니. 아니야. 이딴 생각은 그만두자. 지금은 잠깐 저 녀석 때문에 하반신에 피가 몰려서,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 것뿐일 거야.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서 머릿속에 잠깐 들었던 생각을 떨쳐낸 다음, 나는 둘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라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미리엘의 유혹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은 별다른 사건 없이 훈련이 이어졌다.

하지만 훈련 4일째, 드디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사라가 성에서 창관으로 출퇴근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구미호 마을의 집에서 창관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 덕분에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니, 굳이 지하에서 잠자며 머무르는 것보다는 그냥 여기에 와서 편하게 자는 게 좋잖아?

나와 미리엘, 줄리안은 매일 밤 구미호 마을로 돌아왔고, 그건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날이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날은 우리 셋 말고 집에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원래는 디아나든 레이아든 마틸다든 누구 한 명은 내려와서 나와 같이 밤을 보냈고, 오늘도 레이아가 나와 밤을 보내려고 내려왔었다.

하지만 갑자기 위로 올라간 구미호들과 신전 사이에서 뭔가 중재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레이아가 급하게 위로 올라가게 됐고.

"흐아흥!? 흐읏!?"

오늘은 그 누구의 참관도 없이, 나는 줄리안을 재우기 위해 힘쓰는 처지가 됐다.

솔직히 말해서 내 여자로 만드니 마니 하는 때에 줄리안과 이렇게 단둘이 있는 건 엄청 어색했지만, 어찌 보면 이건 기회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우리 애들의 눈이 있으면 오롯이 얘한테만 집중하기 힘드니까 말이야.

"용사가 되고 싶어서 오늘도 맹훈련하고 온 녀석치고는, 내는 소리가 너무 여자 같은 거 아니냐?"

그래서 나는 줄리안의 애널에 느긋하게 피스톤질하면서, 이 녀석에 대한 감정을 쌓아나가 보기로 했다.

"하응…지, 지금은…흐읏! 그런 말으응…!"

이렇게 보면 확실히 매력적인 녀석이다. 가슴은 없지만, 전체적인 몸의 실루엣은 확실히 여성스럽고, 건강하게 단련된 몸은 그 매력을 한층 더 이끌어냈다.

쾌감에 흐물흐물 녹아내린 얼굴도 백이면 백 모든 사람에게 미인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남자처럼 짧게 쳤던 머리카락도 이제는 숏컷 수준으로 길어져서, 미모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었다.

"하긴. 지금은 그런 것보다 기분 좋아지는 게 우선이지. 미안해.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기분 좋은 소리를 내질러."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짝 넘겨주며 다정하게 말하자, 줄리안은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덜덜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자 애널에 더욱 힘이 꽉 들어가서.

"오, 지금 꺼 기분 좋게. 나 기분 좋게 해주려고 일부러 해준 거야?"

겉으로 보이는 미모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상태도 엄청 좋다.

물론 앞쪽으로는 아직 제대로 해본 적 없지만, 뒤쪽의 상태만으로도 앞쪽에 기대를 하게 될 만큼 훌륭했다. 뭐, 전에 귀두만 살짝 넣어봤을 때도, 명기라는 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그, 그런 거어…."

"아니야?"

"아, 아니지마응…서, 성자가…하읏…성자도 기분 조으며하읏!"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성격도 나름 귀엽고 매력적이다.

진짜 어딜 어떻게 봐도 매력적인 여자인데.

"기특한 말을 해주네. 아양 떠는 거야?"

"하아앙!? 흐응!?"

왜 이렇게 공허한 걸까.

빨리 얘를 매력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조급하게 생각할수록, 괜히 더 감정이 식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미, 미안! 미안해 성자아! 나아!"

"그래. 나도 쌀 테니까 기분 좋게 느껴."

"응, 응, 응, 으으으응!"

허리를 활처럼 휘면서 오늘도 애널 섹스로 있는 힘껏 절정을 맛본 다음, 줄리안은 그대로 새근새근 잠들고 말았다.

남장이 잘 어울린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평소에는 중성적인 매력이 강한 녀석이지만, 이렇게 잠든 얼굴은 그냥 마냥 귀엽기만 한 여자였다.

"진짜 이렇게 예쁜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옛날에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 사람과 이성으로 사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면, 그 사람과 키스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잠꼬대하는 건지 오물오물 움직이는 그 입술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나는 그대로 줄리안의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성자님보다 먼저 잠들어 버리다니. 줄리안도 아직 많이 부족하군."

"으악! 씨, 깜작이야!"

화들짝 얼굴을 떼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언제 들어와 있었는지 미리엘이 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자님의 이곳은 아직도 이렇게 힘을 잃지 않고 늠름한데 말이야."

내가 깜짝 놀라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엘은 천천히 내게 다가와서는 내 허리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뒤로 당겨서 줄리안의 애널에서 내 물건을 부드럽게 꺼낸 다음, 조교당할 당시에 나한테 철저하게 주입받은 손놀림으로 내 물건을 기분 좋게 위아래로 쓰다듬어줬다.

"너, 여기엔 무슨 일이야?"

"셋밖에 없는 집안에 그렇게 신음이 울려 퍼지니 궁금해져서 와봤어. 설마 나 몰래 줄리안하고만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이야. 성자님도 사람이 짓궂군."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상처받았다는 걸 어필하듯, 미리엘은 이빨을 세워서 내 물건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이 깨물었던 부분을 혀로 할짝할짝 핥으면서, 미리엘은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날 올려다봤다.

"나라면 저렇게 혼자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일 없이, 성자님이 만족할 때까지 받아줄 수 있어. 어때? 시험해 보지 않겠어?"

말투만 놓고 보면 마치 방문판매를 와서는 물건을 체험해 보기를 제안하는 것 같은 말투였지만, 그 체험할 물건이 자기 자신의 몸이라면 저런 말투도 이렇게까지 야하게 느껴지는구나.

새삼 미리엘의 창의성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말해서 줄리안 때문에 어설프게 한 번 싸고 말아서 아직 욕구불만인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리엘이랑 하룻밤을 자는 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 문득 며칠 전에도 했던 그 생각이 다시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네가 그렇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말이야."

"하핫. 그렇겠군. 성자님에게는 항상 당하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훈련도 열심히 하면서 체력도 더 붙었으니, 시험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제법 잘 받아쳤다고 생각했지만, 미리엘은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품 가치를 더욱 어필하듯, 미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날 정면으로 끌어안고는 그 건강한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려 내 다리에 감았다.

"그 체력이랑 이런 쪽 체력은 관계없을 것 같은데."

"정말이야? 아니. 물론 성자님이 하는 말이니 정말이겠지만, 나 같은 범인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이군. 내게 그 진실을 몸소 깨달을 기회를 주지 않겠어?"

진짜 말주변은 엄청 좋아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펠리시아하고는 또 다른 의미로 말을 참 잘한단 말이야.

뭐, 그러니까 플리투스 장악 계획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지만.

"자."

"흐이윽!?"

내 가슴팍에 부드럽게 짓눌려 있던 부드러운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고 중앙에 있는 유두를 아플 정도로 강하게 꼬집자, 미리엘은 그것만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게 쉽게 느끼는 것만으로 체력이 소모되니까, 기초체력을 아무리 늘려봤자 의미가 없는 거야. 알겠냐?"

"하앗…화, 확실히…성자님의 손에 느끼지 않는 건…나에게는 무리지."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얼굴이 내 다리 사이로 오게 됐지만, 미리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는 듯 내 고환 아래쪽에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미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뭐, 내 말에 수긍했다고 해서,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지만.

오냐. 알았다.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좋아. 이 기회에 철저하게 깨닫게 해주지. 내 정력을 버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 벗어."

아까부터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던 생각 때문에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던 나는, 미리엘의 끈질긴 모습에 결국 이렇게 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저, 정말로?"

하지만 갑자기 내 태도가 돌변하자 놀랐는지, 이번에는 미리엘이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뭐, 그렇게 놀랄 것 없어. 며칠 전에도 잠깐 생각했던 거지만, 지금 줄리안의 위치랑 제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여자가 바로 미리엘 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내 여자가 아니면서도 앞으로의 계획에 필요하다는 변명 하에 심심하면 성행위를 하는 기묘한 관계.

줄리안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내 여자로 만들어야 하지만,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슷한 위치인 미리엘은 과연 어떨까? 미리엘 상대로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똑같이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얘는 줄리안과 달리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어필해오는데?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잠깐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는 얘기다.

감정이 안 생기면 안 생기는 대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고, 감정이 생기면…미리엘과의 관계는 더 조심할 필요가 생기지만 줄리안과의 관계는 해결법을 찾게 되는 거니까.

물론 관계도 없는 미리엘을 대상으로 이런 걸 시험해 본다는 게 너무 쓰레기 같기도 했고, 감정이 생기면 그건 그거대로 복잡해지니까 고민했던 거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이제 감정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며칠만 더 있으면 줄리안은 배틀마스터가 된다. 그전까지 뭐든 해봐야 한다. 우리에게 여신의 통찰력을 무시한다는 선택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니까.

"뭐? 정말로? 설마 내 명령에 그런 식으로 반문할 줄이야. 요즘 좀 안 해줬다고 너무 풀어진 거 아니야?"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완벽하게 마친 다음, 나는 줄리안의 애널 안에 싼 이후로도 전혀 죽지 않고 있었던 내 물건을 잡고 위아래로 강하게 휘둘렀다.

"하윽…그, 그렇군."

고작 남성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크기의 물건이 휘둘러져서 안면을 때린 거다. 게다가 발기 시에 자동으로 발동되는 아이언 페니스까지 더해져서.

제법 아팠을 텐데도, 미리엘은 오히려 황홀한 미소까지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분명 이 일련의 흐름에 당황했을 텐데도, 서두르는 일 없이 최대한 자신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천천히 옷을 벗어가는 미리엘.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그 나신에는….

"응?"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온몸이 상처로 도배되어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전투에서 입은 것 같은 상처 같은 것이 엿보였다.

"아아. 미안해. 성자님에게 보이기에는 조금 흉하지? 릴리는 성기사니까 회복 마법에 한계가 있어서. 일단 포션을 잔뜩 준비해 두기는 했지만, 그것도…."

"아니. 괜찮아. 내가 고치면 그만이지."

아까 그렇게 얼굴을 물건으로 맞고 옷을 벗을 때도 당황하지 않던 애가 황급히 변명하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서, 나는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보다 상냥하게 말하고 말았다.

젠장. 이 녀석은 좋아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시간이라는 걸 너무 의식해서 그런가?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감정이 요동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그래…성자님이 그렇게 해준다면 나도 뎌할…하핫. 말까지 꼬이다니. 성자님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그리고 그런 평소와 조금 다른 내 반응에 미리엘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점점 더 분위기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니. 하마터면 부끄러운 말을 할 뻔했군. 미안해. 잊어줘."

"뭐? 야. 그건 아니잖아. 괜히 사람 궁금하게."

"하핫. 미안하지만, 말하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것 같아. 그러니까 잊어줘. 그 대신이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부끄러운지 새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엘은 다시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내 물건을 올려다봤다.

"나도 잊을 수 있게 도와줄게."

그리고 그렇게 말한 다음, 두 손은 자신의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채, 입만을 움직여서 내 물건을 할짝할짝 핥기 시작했다.

"할짝. 쪽. 어때?"

솔직히 말해서, 야하고 기분 좋았다.

이 녀석, 아까부터 묘하게 남심을 뒤흔드는 몸짓을 많이 한단 말이야. 원래 이런 애는 아니지 않았나? 어떻게 내가 조교로 알려주지도 않은 것까지 해내는 거지?

"하핫. 우리 클랜에는 이런 방면으로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

내 생각이 얼굴로 티가 났는지, 미리엘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조언이라. 루티아 누님의 얼굴이 괜히 떠오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뭐, 확실히 기술이 늘기는 했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미리엘. 우리 사이에 이런 건 너무 알콩달콩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난 지금 애널 섹스 한 번에 뻗어 버린 줄리안 때문에 욕구불만 상태라고.

"내 취향은 이쪽이야."

"으읍!?"

그 머리에 손을 얹어서 단단히 붙잡고, 나는 미리엘의 오뚝한 코가 내 다리 사이에 파묻힐 정도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조교 하면서 알려줬잖아? 벌써 까먹었어?"

"흐읍!? 크흡!? 응읍!? 흐읍!?"

그리고 몇 차례 거칠게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게 한 다음 고개를 놓아주자, 숨이 막힌 채 내게 사용되던 미리엘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빼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푸하압…하아…하아…미, 미안해. 성자님께 성은을 받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어."

…이건 설마 평소에도 자주 좀 해달라는 어필인가?

이런 상황에서조차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이 녀석은 진짜…뭐, 좋아. 어차피 나도 진짜 제대로 조교를 다시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냐. 그럼 이제 기억났냐?"

"아아. 제대로 기억났어. 그러면 성자님의 취향대로, 이렇게…."

미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지 두 개를 각각 입 좌우에 걸어서 자신의 입을 크게 벌렸다.

목젖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린 채 혀를 날름날름 움직이는 그 모습은, 자신의 입을 성욕처리 도구로 사용해달라고 말하는 듯해서 엄청나게야 했지만….

"필요 없어."

"응? 그래?"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솔직히 당황 좀 해보라고 한 말인데, 별로 당황하지도 않네. 재미없는 녀석.

"그래. 네 그 상처부터 없애는 게 우선이니까. 삽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적셨으니, 이제 대."

"그, 그런가…상처를…."

아, 이건 또 살짝 부끄러워하는구나.

하여간 기준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

"하지만 삽입할 수 있게 적시는 게 목적이었다면, 괜한 시간을 들였군. 내 이곳은 성자님의 물건을 언제든 받을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 이렇게."

미리엘은 잠든 줄리안의 옆에 나란히 엎드리더니, 엉덩이를 위로 한껏 치켜들고 손가락을 V자로 만들어서 자신의 음부를 벌렸다.

끈적한 애액이 벌려진 음부 틈에서 주륵하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내 물건을 갈구하며 군침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조금 전에 부끄러워했던 애가 이런 모습은 또 아무렇지 않게 보인다니, 진짜 기준을 모르겠어.

"어때? 성자님이 해주신 조교의 흔적이."

이런 자세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은 확실히 나한테 조교 받았을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지만, 갑자기 이런 어필이라니.

"너 혹시 아까 내 조교를 잊었다고 했던 거, 살짝 마음에 담아두고 있냐?"

"하핫. 성자님은 뭐든 꿰뚫어 보는군. 부끄러울 따름이야."

말투만 보면 시원스럽게 받아넘기는 것 같았지만, 살랑살랑 흔들리던 엉덩이가 우뚝 멈춘 걸 보니 진짜로 정곡이었던 모양이다.

"별로 그런 거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어. 나도…."

나는 미리엘의 탄력 있는 엉덩이 위에 두 손을 얹고, 그 손가락이 벌리고 있는 틈새로 귀두 끝을 맞댔다.

"조교가 풀렸을 거라는 걱정 따위 안 하니까."

"응흐읏!"

그리고 물건을 부드럽게 밀어 넣어서 가장 안쪽을 부드럽게 콕 찌른 다음, 다시 물건을 살짝 빼고 얕게 앞뒤로 흔들었다.

"이런 걸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흣…화, 확실히잇…아, 아응…이거헌…잊을 수 없지히…."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하려고 하고 있는 미리엘이었지만, 내 자극적이지 않은 허리놀림이 오히려 애가 타서 더 견디기 힘든지, 고개를 숙이고 음부를 꾸욱 조이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왜 그래? 내가 만족할 때까지 받아준다면서? 설마 벌써부터 못 견디겠어?"

"하흐읏…미, 미안해 성자니힘…한 번만…."

"응?"

"우, 우선 한 번만 느끼면…아흣…다음부터는…."

지금은 너무 애가 타니까, 우선 한 번만 느끼면 다음부터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는 건가.

뭐, 진짜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는 둘째 치더라도.

"결국 느끼고 싶다는 얘기 아니야. 나보다도 먼저."

"하응…미, 미안해애…."

그래도 삽입 전까지는 나름 내 말을 재치 있게 받아치면서 대등하게 대화 나누던 애가, 삽입만으로 갑자기 이렇게 약해지니까 나도 조금 마음이 편치 않네.

하는 수 없지.

"뭐, 좋아. 그럼 우선 한 번."

"응!? 그건…아읏! 하흣!"

나는 조금씩 움직이던 허리를 완전히 멈추고, 대신 두 손으로 꽉 잡고 있던 미리엘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강하게 내려쳤다.

살짝 손자국이 남을 정도의 세기였지만, 어차피 그런 건 힐링 섹스 덕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미리엘의 몸에 가해졌던 고통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몸에 남는 건 오로지 고통으로 느낀 쾌감과, 맞은 자리가 치유되면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느낌뿐일 거다.

"왜? 불만이야? 기분 좋잖아?"

"기분…응! 흐으으읏!"

결국 미리엘은 내 물건을 삽입만 한 채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저 엉덩이를 맞는 것만으로 절정에 달해 버리고 말았다.

"흐아읏…흐읏…."

얼굴을 침대에 파묻은 채 엉덩이를 바들바들 떠는 그 모습은 미리엘이 얼마나 느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음부는 내 물건을 더 원한다는 듯 계속해서 꾸욱꾸욱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절정을 느꼈다고는 하지만, 나랑 하는 섹스의 쾌감을 알고 있는 애가 저런 절정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야. 괜찮냐? 이제 한 번 느꼈으니까 버틸 수 있는 거 맞지?"

그 엉덩이를 일부러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봤지만, 미리엘은 그것조차도 기분 좋은 듯 음부는 물론 그 위에 보이는 엉덩이 구멍까지 꾸욱 조이며 반응했다.

"하앗…개, 갠차나…."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믿어도 돼?"

내 조롱 섞인 물음에도, 미리엘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후우…물론이야. 나도 오랜만에 찾아온 성자님과의 시간을…허무하게 날릴 생각은 없어."

숨까지 고르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했더니.

야. 이 타이밍에 갑자기 그런 어필은 치사하지 않냐?

아니. 내 목적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미리엘의 의지를 똑똑히 본 나는, 스팽킹을 그만두고 다시 미리엘의 엉덩이를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아흣…."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지 미리엘의 몸이 잔뜩 긴장된 게 느껴졌다. 그래도 거부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직 절정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지금 움직이면 상당히 곤란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본인이 받아줄 생각이라면, 사양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이건 미리엘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 엉덩이를 바짝 끌어당겨서 물건을 끝까지 삽입한 다음, 허리를 짧고 강하게 움직여서 일부러 건드리지 않고 있던 포르치오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응! 크흣! 큿! 흐읏! 하으응!"

미리엘은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모양이었지만, 결국 입을 서서히 벌리면서 요염한 신음을 내질렀다.

"너도 귀여운 소리 낼 줄 아네?"

"흐으응…서, 성쟈니메게는…하응. 이길 수…."

뭐, 그걸 가지고 놀려봤자, 미리엘은 이렇게 농담 반 진담 반인 말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쳐 버리지만. 언제나 그랬듯 말이야.

"게다가 그 녹아내린 표정. 평소에는 시원스런 포커페이스를 절대 무너뜨리지 않는 녀석이 피스톤질 몇 번에 이렇게 되다니. 너도 참 좋은 여자란 말이야. 이렇게나 남자의 정복욕을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는 여자는 드물어."

"흐윽!?"

하지만 오늘의 나는 평소와 같은 수준의 대화만 주고받고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평소보다 한발 더 나아간 칭찬을 해주자, 미리엘도 이런 말은 예상 밖이었는지 황급히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음부를 꾸욱 조였다.

"응흣!?"

하지만 미리엘이 시선을 피한다고 해서 그대로 가만히 놔둘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는 미리엘의 몸을 옆으로 돌리고 길게 쭉 뻗은 다리 한쪽을 위로 들어서 내 어깨에 걸치게 했다.

미리엘은 그런 자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고개를 돌려서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었지만, 나는 턱을 붙잡아서 강제로 이쪽을 바라보게 했다.

"기껏 칭찬해 줬더니 피하기야?"

"으하흣…아아…."

겨우 이쪽을 바라보게 된 미리엘은, 쾌감에 녹아내린 얼굴이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미리엘의 얼굴을 흡족하게 쳐다보면서, 다시 허리를 짧고 강하게 쳐서 포르치오를 집중 공략했다.

"너도 이런 거 좋아하잖아? 싫어할 리가 없지. 이 몸이 직접 좋아하게 만들어줬으니까."

"하응! 하앙! 아앙!"

"그러니까 너도, 참지, 말라, 고!"

"하으으으응!"

그리고 마무리로 허리를 길게 내뺐다가 강하게 안쪽을 때리자, 미리엘은 그대로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절정에 달하고 말았다.

"후우. 그러니까 참기는 왜 참아. 괜히 힘쓰게 하기는. 이제야 다 나았네."

아까의 절정으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미리엘의 상처가 이번 절정으로 드디어 다 회복되는 걸 보고, 나는 잠시 허리를 멈추고 미리엘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나아…? 아…흐읏…상처…."

미리엘은 지나친 쾌감에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내가 원래 상처가 있던 부위를 어루만져주자 그제야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그럼…아까…."

"응?"

"아, 아무것도…아니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미리엘은 살짝 쓸쓸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고 했다.

뭐, 여전히 나한테 턱이 잡혀 있어서 실제로 돌리지는 못했지만.

"너 말이야. 사람이 칭찬해주면 좀 귀 기울여 듣는 게 어떠냐?"

"아…?"

"표정이 좀 돌아온 걸 보니, 더 기다려줄 필요는 없는 모양이지?"

"아흥!?"

미리엘의 멍한 표정을 보고, 나는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을 긍정해주기 위해, 다시 허리를 움직여서 미리엘을 쾌감에 녹아내린 표정으로 만들어 줬다.

사실 내 물건을 꾸욱꾸욱 조이는 안쪽 감촉으로 아직 절정의 여운이 끝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 그 얼굴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해. 야, 미리엘."

"으, 응…?"

"조금 더 내 정복욕을 만족시켜 봐. 벌써 너만 두 번이나 느꼈으니까, 너도 날 위해 뭔가 해줘야 하지 않겠어?"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미리엘에게 씨익 웃어주면서, 나는 태연하게 요구했다.

이걸로 얘도 확실히 알았겠지. 아까 해준 칭찬이, 힐링 섹스 발동을 위해 일부러 얘가 좋아할 말을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라는 것을.

"아…아흣…!"

그 증거로, 미리엘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평소에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단순히 쾌감에 녹아내린 표정이 아닌, 마음속 깊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이런 표정을 보이면, 나도….

"뭐해? 설마 이런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 아니…."

내가 보채자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미리엘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움직이기 상당히 불편한 자세인데도, 미리엘은 상당히 능숙하게 허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운동 능력이 좋으면 이런 식으로도 발현되는구나.

"하앙…흐읏…!"

자신의 얇은 허리를 강조하는 것 같은 허리 움직임은 안쪽에서도 내 물건을 다방면으로 고루 마사지해주는, 외견과 실용성을 모두 잡은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자신이 느끼는 곳까지 사정없이 휘젓는 바람에 계속해서 약한 절정을 느끼는 미리엘의 음부가 주는 감촉은 황홀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지?"

그래도 아직 살짝 부족했다.

기분 좋지만, 내가 요구한 정복감하고는 그다지 상관없는 움직임이잖아.

"미안해. 성…하읏!"

그러자 미리엘은 신음을 흘리면서 살짝 내 눈치를 살피더니.

"구, 구원…님의 것이 너무 기분 좋아서…하응…이, 이 이상은…."

그렇게 갑자기 호칭까지 바꾸며 애교를 부려줬다.

뭐, 성자님에서 갑자기 구원이라고 말을 놓는 건 부끄러웠는지, 결국 어색하게 님을 덧붙이고 말았지만.

"그렇게 좋아?"

"하읏…그래. 구원…님은 시원스러운 포커페이스라고 말했지만, 아응! 나, 난 언제나…구원 님 앞에만 서면…흐응! 항상…."

"그 시원스러운 표정 뒤에는, 언제나 이거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하응! 앗, 앗, 앗, 아응! 그, 그래애…언제나, 언제나아…."

미리엘의 허리 놀림에 맞춰서 나도 가볍게 허리를 흔들어주자, 미리엘은 일순 눈까지 뒤집으면서 쾌감에 흐느꼈다.

"그래?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거 생각만 나게 해주지."

"아, 안 돼! 지금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걸친 미리엘의 다리를 꽉 끌어안자, 미리엘이 당황하면서 날 밀어내려고 했지만.

"응흐으읏!? 앗! 하응! 아, 아응! 흐읏!"

손이 내 몸에 닿기도 전에,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내 쪽으로 뻗었던 미리엘의 손이 황급히 자기 쪽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신음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정말로…정복욕을 만족시켜 보라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해낼 줄이야. 이것도 내 조교 덕분인가?

나는 그 손목 두 개를 겹쳐서 한 손에 붙잡고, 그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옆으로 치웠다.

"서, 성자님! 지금은, 아응! 정말로…!"

날 만족시키기 위한 연기인지 진짜 부끄러워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미리엘은 격하게 반항했지만, 그래 봤자 계속 버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흥! 흐읏! 으응!"

이렇게 내가 한 번 찌를 때마다 약한 연속 절정을 계속 느끼고 있는 몸에, 내 손을 거스를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어렵지 않게 그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울 수 있었고, 그 밑에서 드러난 얼굴은….

"하으읏…!"

이제 녹아내렸다는 말로도 부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미리엘’이 입가에 흐르는 타액까지 흘리면서, 그걸 닦을 생각도 못 하면서 쾌감에 흐느끼고 있다니.

조교 할 때 이미 수도 없이 본 모습이지만, 그 이후에도 미리엘이 일상생활에서 태연하게 행동하는 걸 봤기 때문일까? 볼 때마다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넌…."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 턱을 타고 내려가는 타액에 혀를 가져다 댔다.

"흐읏!?"

그리고 미리엘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혀를 핥아 올렸다.

그렇게 올라간 내 혀가 미리엘의 입술에 닿기 바로 직전.

"아, 아, 아, 으흐으응!"

"윽…크윽…."

결국 미리엘은 참을 수 없었는지 분수까지 뿜으며 절정에 달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기습 공격에, 안 그래도 폭발 직전이었던 내 물건 역시도 미리엘의 안에서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120% 만족되는 것 같은 황홀한 쾌감.

얘랑 한 섹스 중에서도, 오늘 한 이 섹스가 가장 기분 좋은 섹스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될 정도의 쾌감이 지나가고 난 다음,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미리엘을 내려다봤다.

"흐읏…하읏…."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미리엘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직 쾌감에 반응해서 몸을 움찔움찔 떨리고 있긴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이상 하는 건 무리겠지.

"내가 만족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더니."

나는 아까 핥은 미리엘의 턱부터 입술까지 엄지로 쓱 훑어준 다음, 말랑말랑한 뺨을 콕콕 찌르며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기도 했다.

만약 내 혀가 이 말랑말랑한 입술에 닿기 전에 미리엘이 기절하지 않았다면….

"위험했어."

시험만 해본다고 한 주제에, 진짜 진심이 될 뻔했어.

난 지금까지 내가 그냥 떡정에만 약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니었어. 여자가 보이는 호의에도 엄청 약한 거였구나.

둘 중 하나만 있으면 그나마 버틸만하지만, 둘을 동시에 느끼니까 진짜 위험하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애들도 그랬지. 이 세계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풋풋했을 때 만난 몇 명만 제외하면, 대부분 우리 애들이 먼저 나한테 호의를 나타냈잖아.

그러던 와중 어쩌다가 섹스하는 관계가 됐고, 섹스하면서 여자가 나한테 호의까지 보이니 결국 나도 자연스럽게…내가 왜 내 여자를 좋아하게 됐는지 분석이나 하는 꼴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런 거겠지.

얘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내 여자의 동생까지 탐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자제해왔던 미리엘한테까지 한순간이지만 흔들릴 뻔했으니까.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용사다아…."

나는 살짝 시선을 돌려서 줄리안을 쳐다봤다.

바로 옆에서 미리엘이랑 내가 그렇게 격렬하게 하고 있었는데도 잠꼬대까지 하면서 자다니. 진짜 이 녀석도 둔한 건지 담이 큰 건지.

나는 미리엘의 음부에서 삽입을 푼 다음, 다시 줄리안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그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서, 입술을 그 입술에…역시 아직은 그럴 마음이 안 드는군.

하지만 아마 이 녀석이 배틀마스터가 되고 나면, 그때는….

나는 줄리안에게서도 떨어진 다음,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원래 이렇게 여자랑 잘 때는 삽입한 채로 자서 밤새 힐링 섹스를 발동시키는 게 습관 아닌 습관 같은 거라 잠을 잘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지.

애초에 힐링 섹스를 발동시킬 수 없는 줄리안은 논외고, 미리엘은…이 이상 하면 진짜 위험할 것 같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내일 아침도 걱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절한 미리엘이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그런 미리엘에게 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까지 복잡해져서 잠들 수 없는 요인이 더 늘어나 버렸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섹스로 한차례 땀을 흘렸기 때문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난 어느샌가 잠들어 있었다.

"…미리엘?"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솔직히 말해서 이대로 자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분명 미리엘이 뭔가 하고 있을 거라고 각오했었지만, 의외로 미리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몸을 일으켜서 나한테 등을 돌리고 침대에 살짝 엉덩이에 걸친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뻔했지만.

"응? 성자님. 일어났어? 역시 성자님이야. 지난밤에 그렇게 격렬하게 하고도 끄떡없군."

…아니. 혹시 내가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 같은 범인 사고로는 이 녀석이 뭘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건가? 왜 이렇게 반응이 태연해?

"그러는 너야말로. 기절까지 했으면서 잘도 이렇게 일찍 일어났네."

"하핫. 면목 없군. 성자님이 주는 쾌감을 버텨보겠다는 건 역시 오만한 생각이었어. 하지만 성자님."

"안 할 거다. 너 나랑 하고 나서 사라의 훈련 따라갈 수 있냐?"

"그건 그렇군. 언니는 겉보기만큼이나 엄격하니까."

겉보기만큼이나 라니…사라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잖아?

뭐, 확실히 평소에도 차가운 도시 미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내가 없을 때는 더 냉랭해진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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