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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227화 (1,194/1,205)
  • 1226화

    디아나는 장난스럽게 없는 가슴을 쭉 펴며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진짜로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내가 이 녀석을 이성으로 느끼지 않은 건 앞서 말했던 이유뿐만 아니라, 우리 애들한테 미안하다는 이유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

    "응. 고마워."

    "후흥. 고마우면…"우응…."…햐윽!?"

    장난스럽게 내 말을 받아주려고 했던 디아나였지만, 옆에서 들린 줄리안의 잠꼬대에 곧바로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응? 고마운 보답으로 기분 좋게 해달라고?"

    "이, 이 몸은 그런…햐응! 우, 움직이지 말게에!"

    그렇게 디아나와의 대화를 통해 한층 마음이 편해진 나는, 예상대로 점심 즈음이 되어서야 눈을 뜬 줄리안과 단둘이 대면했다.

    "줄리안."

    "으, 으응…?"

    이 녀석도 아마 어젯밤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술에 취했을 때의 일도 기억하던 녀석인데, 그냥 흥분만 했던 어제 일을 기억 못 할 이유가 없으니까.

    "으읏!?"

    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바닥만 내려다보는 줄리안의 얼굴을 잡아서 정면으로 향하게 한 다음,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내가 두 번이나 봐준 건 알지?"

    "읏…! 으, 응. 고마…."

    "그러니까 다음에는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에 맨정신으로 말해."

    "어, 어어…?"

    설마 내가 이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줄리안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굳어져 버렸다.

    "왜? 뭐 문제 있어?"

    "아, 아니. 하지만 그러면 마치…."

    "이제 와서 아닌 척 해봐야 소용없어. 넌 반드시 내 여자가 될 거야. 그게 언제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

    이제 놀라서 말도 안 나온다는 듯 줄리안은 입만 뻐끔뻐끔 움직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맨정신으로 말해. 술에 취했을 때를, 성욕에 눈이 멀었을 때를 틈타 내 여자로 만드는 건 자존심 상하니까. 네 의지로 제대로 결심한 다음 내 여자가 되겠다고 매달려."

    정처 없이 흔들리는 줄리안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나는 그렇게 선언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여신의 통찰력이 예견한 미래가 정확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는 몰라도, 이 녀석을 내 여자로 만들어야 해결되는 문제라면, 이렇게 내 여자가 되는 걸 지금 이상으로 계속 의식하느라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게 만들면 그만큼 유예 기간이 늘어나겠지.

    그리고 이 녀석이 내 여자가 될 결심을 할 동안, 나도 이 녀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나, 난…."

    "말했을 텐데?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라고.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어. 그래 봤자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을 테지만, 그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서 하는 말은 받아들이지 않겠어. 제대로 너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한 다음, 그다음에 나한테 매달려."

    "…내가 납득…저기, 성자."

    줄리안은 내가 한 말을 혼자서 중얼중얼 한참을 되뇌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날 똑바로 바라봤다.

    "응?"

    "하나 부탁해도 돼?"

    "부탁이라니?"

    "나, 배틀마스터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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