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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207화 (1,174/1,205)
  • 1206화

    젠장. 이제 슬슬 마나가 부족해서 용사의 힘을 쓸 수도 없는데.

    물론 용사의 힘 없이도 이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성자 스킬로 이길 수는 있지만, 그래선 모처럼 정상 궤도로 돌려놓은 계획이 다시 엉망이 된다.

    "아니다! 네 목적은…카이젤이겠지?"

    "호오…."

    아까도 잠깐 생각했던 거지만, 이 녀석, 보기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타입이잖아?

    뭐, 강자와의 싸움에 피가 들끓는다고 말하기도 했고, 카이젤이 파견했던 비수를 잡아가기까지 하는 거니까 힌트는 충분히 던져준 셈이지만.

    "하지만, 너 같은 무명이 날 이긴 것 정도로는 수장 선발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수장 선발 의식 이외의 날에는 카이젤과 싸울 수 없다. 만약 여기에 온 것처럼 멋대로 카이젤을 찾아가서 공격하면, 넌 비스 전체를 적으로…서, 설마! 상관없다고 말하는 거냐!?"

    아니. 이 고릴라인간이 사람 말도 안 듣고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그래. 안 말린다. 다 네 멋대로 생각해라.

    "네놈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슬슬 오해를 풀기도 귀찮아져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고릴라인간이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해왔다.

    "기, 기다려! 우리 블래스터 가문이 발판이 되어주겠다!"

    "…자세히 얘기해 봐라."

    처음부터 알고 찾아온 게 아니라 로빈을 향해 날아가는 전서구를 쫓다 보니 오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블래스터의 가주는 수장 선발 의식에 고정적으로 초대되는 멤버 중 하나라는 설명은 아까 중2병에게 들었다.

    그런 블래스터 가문에서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건….

    "내 힘으로 수장 선발 의식에 꽂아주겠다! 원한다면 다른 강자와의 싸움도 주선해주겠다!"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이익이 대체 뭐지?"

    "나는…내 눈으로 보고 싶다. 지상 최강의 인간이, 비스의 이름 아래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두는 장면을!"

    보기보다 머리를 잘 쓰는가 싶었더니, 결국은 그런 생각으로 귀결되는 건가. 진짜 여기 놈들은 하나같이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는 모양이군.

    하지만 나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운 제안이 없었다.

    결국 내 목적도 수장 선발 의식에 참여해서 카이젤을 쓰러뜨리고 내가 비스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야.

    뭐, 그래 아까부터 잡고 있던 컨셉이 있으니, 지금은 덥석 물기보다 조금 더 뜸을 들여 볼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전쟁 따위에 관심 없다. 카이젤을 이긴다고 해도 그뿐이다. 수장자리는 맡지도 않을 거고, 하물며 전쟁 따위에 나서서 잔챙이들을 학살하고 다닐 생각은…."

    "하지만 그 전쟁에 네가 원하는 강자가 나온다면?"

    그래. 예상대로 그 얘기를 꺼내는군. 역시 생긴 것치고는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야.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고릴라인간에게 한번 씨익 웃어주면서, 나는 흥미가 생겼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세히 얘기해 봐라."

    "아까 말했지만, 얼마 전 플리투스와 바프라의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네가 말한 대로, 갑자기 등장한 압도적인 강자에 의해서 끝났다고 하더군.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강자의 정체는 바로…."

    "용사인가."

    더더욱 재미있어졌다는 듯이, 나는 한쪽 입꼬리를 위로 잔뜩 당기며 웃었다.

    나도 가면 갈수록 표정 연기가 늘어나는 것 같단 말이야. 만약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배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우리 애들을 두고 돌아갈 생각도 없지만.

    "그래! 그리고 플리투스와 바프라의 전쟁이 멈춘 지금, 다음에 용사가 나타날 곳은 분명 우리 비스와의 전선이다!"

    "재미있군. 실로 재미있어."

    재미고 자시고, 난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말이야.

    내가 따로 연락하지 않는 이상, 용사가 비스와의 전선에 모습을 드러낼 일 없다는 것까지 전부.

    하지만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한 끝에,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스 따윈 아무래도 좋지만, 다른 용사와 싸울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좋아. 그렇다면 네놈은 지금부터 내 수족 1호다. 불만 없겠지?"

    "없습니다!"

    바로 태세 전환해서 존댓말까지 하다니. 이렇게까지 강자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니, 확실히 편하기는 하네.

    그래 봤자 결국에는 내 손으로 전부 부숴 버릴 거지만.

    "그러면 곧장 저희 가문의 힘으로 나일 님을 수장 선발 의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추천…."

    "필요 없다."

    "네, 네?"

    확실히 추천받아서 가면 편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가서 카이젤을 이기고 비스의 수장이 되어봤자, 진심으로 날 따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원하는 건 비스 전체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각지의 유력자들을 직접 내 발밑에 무릎 꿀릴 필요가 있었다. 이 고릴라가 내 힘을 맛보고 나서 이렇게 태세를 전환한 것처럼.

    "아까 원한다면 강자와의 싸움을 주선해 준다고 했었지?"

    "네! 제 인맥으로 부를 수 있는…."

    "네놈의 인맥은 필요 없다. 강자의 정보는 저 여자한테 들어라."

    "네? 저 여자…말입니까?"

    로빈을 향해 턱짓하면서 말하자, 고릴라인간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는 머리 좀 돌아간다 싶더니만, 이런 건 또 못 알아듣네. 머리가 돌아가 봤자 결국 싸움과 관련됐을 때만 돌아간다는 건가.

    "저 여자는 본래 카이젤이 본인의 자리에 위협되는 인물을 감시할 목적으로 파견한 여자다. 강자에 대한 정보라면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겠지."

    나도 그래서 데려가려고 했던 거니까 말이야.

    블래스터 가문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로빈의 정보를 바탕으로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할 생각으로.

    "아침까지 정보를 추슬러서, 도전장을 보내라. 블래스터 가문의 도전장이라면 웬만한 놈들은 쉽게 무시할 수 없겠지."

    사실 로빈을 얻더라도, 우리끼리 하려면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블래스터 가문을 쳐부수고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더라도, 그전까지 완전히 무명이었던 내 도전을 쉽게 받아줄 곳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걸 또 일일이 도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꾸밀 생각을 하면, 진짜 한숨밖에 안 나왔었는데.

    그게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것만으로도, 블래스터 가문은 충분히 이용 가치가 있었다.

    "그 도전장이, 내가 걷는 패도의 첫걸음이 될 거다."

    우선은 각지의 유력자들을 전부 발밑에 꿀린다.

    그렇게 수장 선발 의식에 날 초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듦과 동시에, 유력자들을 내 수족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패도의 첫걸음이라는 표현만큼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표현은 없겠지.

    "여기는 집안까지 살풍경하네."

    안내받아 온 방을 둘러보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안 돼요, 구…나일 씨. 손님으로 대접해주시는 분께 그런 불평을 하시면."

    뭐, 그야 그렇지만 말이야. 병영 같은 방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하긴, 그러고 보니 아까 싸웠던 고릴라의 방도 이런 느낌이었지. 스스로 바닥을 마구 부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겉보기만 철의 요새 같은 게 아니라, 내부도 요새처럼 꾸몄다는 건가. 대체 머리에 얼마나 전쟁 생각밖에 없으면 집을 이렇게 꾸며두는 건지.

    이래서는 차라리 오기 전에 미리 잡아놨던 여관이 시설은 더 좋게 느껴질 정도잖아.

    그렇다고 해서 진짜 여관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실례기도 하고, 이제 날 따르겠다는 놈들이랑 괜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도 없으니까.

    "아무튼 전부 잘됐네. 로빈의 그런 모습을 봤을 때는 어쩌면 좋을지 막막했는데."

    "정말로요. 언제나 이렇게 임기응변으로 헤쳐나가신 건가요?"

    "그거야 뭐어…."

    임기응변하니까 생각난 건데, 나 아까 우리 천사님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여줬었지.

    지금 모습을 봐서는 천사님도 딱히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끄러웠다.

    그나마 마지막에는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서 어느 정도 상쇄하기는 했다고 생각하지만…아니. 그것도 딱히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니, 사정을 다 아는 천사님 눈에는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냥 센 척하는 귀여운 모습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아까 내가 보여준 힘. 용사의 힘은, 당연한 얘기지만 나 자신의 힘이 아니다. 진짜 용사인 사라의 힘을 잠깐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그 비밀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것도 사도 임명의 힘이다.

    전에 사도 임명 레벨을 10까지 올리니까 종족창의 열람권이 개방됐잖아?

    사실 그게 말이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나중에 알고 보니 레벨을 올릴 때마다 한 가지씩 기능이 개방된 모양이라서 말이야.

    기능이라고 해봤자 레벨 10까지 개방된 기능은 전부 내 연인들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각종 스테이터스 창들의 열람권뿐이었던 것 같지만.

    하지만 그 이후. 레이에게 사도 임명을 함으로써 사도 임명의 레벨이 11이 되자, 드디어 스테이터스 창 열람권이 아닌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사도 의태. 간단히 말해서 다른 사도의 능력을 내 몸으로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는, 아까 보여준 모습으로 충분히 설명됐겠지.

    여신이 그렇게 사도 임명 레벨 업을 권장했던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설마 사도 임명에 이런 사기 스킬을 숨겨놨을 줄이야.

    물론 사도 의태도 만능은 아니다.

    일단 마나 소모가 무척이나 극심하다. 아까 잠깐 사라의 힘을 사용한 것만으로, 남들의 배는 되는 내 마나가 벌써 바닥을 드러냈을 정도로.

    그뿐만이 아니다. 능력 자체도 우리 애들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다.

    신체 능력이 우리 애들과 똑같이 변하더라도, 결국 그 능력을 컨트롤하는 건 나니까 말이야.

    그나마 사라의 힘 같은 경우는 같은 물리 딜러의 감으로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었지만, 디아나의 힘 같은 경우는 사도 의태로 불러와도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안 잡힐 정도였다.

    심지어 디아나는 자기 스킬창에 있지도 않은 마법을 마구 만들고 써대니까 말이야.

    게이머 능력으로 스킬창에 있는 스킬을 편하게 쓸 수 있는 나한테는 카운터도 이런 카운터가 없었다.

    진짜 용사와는 다른 의미로 사기 능력이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의태 최고의 단점은 바로 이거였다.

    스킬 레벨 업이 불가능하다. 사도 임명과 마찬가지로 스킬 포인트를 배당해서 레벨을 올릴 수 없는 것은 물론, 스킬을 사용해도 스킬 경험치가 올라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 극심한 마나 효율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아마 사도 임명의 부속 스킬인 만큼 사도 임명의 레벨을 올리면 사도 의태의 레벨도 같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도 임명을 쓸 대상도 없고 더 쓸 생각도 없는 나한테는 의미 없는 얘기였다.

    "그런가요…."

    아무튼 얘기는 돌아와서, 천사님은 매번 위태위태하게 임기응변으로 헤쳐나갔다는 내 방식에 상당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다.

    하지만 중2병의 눈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앞으로 자신이 곁에서 잘 보좌해주면 된다는 생각인지, 천사님은 입안에 맴돌던 말을 집어삼키고 대신 방긋 미소를 지어주셨다.

    "그럼 오늘은 이말 쉴까요? 구원 씨도 힘을 많이 쓰셨으니…피곤하시죠?"

    천사님. 제 하반신 쪽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고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건, 그런 의미로 생각해도 되겠지요?

    같이 다니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매일 밤을 천사님과 함께했지만, 질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천사님의 사랑이 느껴져서 더 좋아지기만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난 천사님의 그 눈짓만으로도 바로 물건이 벌떡 설 정도로 흥분했지만.

    "응. 그럼 우선…줄리안."

    그전에 우선은 평소처럼 중2병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천사님에게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눈짓을 보낸 후, 나는 중2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 나, 나 불렀어!?"

    줄리안이 자기냐고 되묻는 수준에서는 살짝 발전했지만, 여전히 어리바리한 중2병이었다.

    얘는 또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니 있는 거야?

    "그래. 로빈 때문에 그래?"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 동료다.

    전 동료가 남자들의 손에 잡혀서 그런 모습이 된 걸 목격했으니, 어느 정도 충격은 있겠지.

    "어? 으, 으응…."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얼굴을 붉히면서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로빈 보다는 날 더 신경 쓰는 것 같이 보였다.

    혹시 자기도 만약 나랑 하게 되면 로빈처럼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뭔가…저 눈빛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동경?

    아, 혹시 내가 용사의 힘을 썼기 때문인가? 이 녀석은 내가 어떻게 그런 힘을 썼는지 모를 테니까 말이야.

    뭐, 그런 거라면 그냥 넘어가 줘도 되겠지. 굳이 설명해 줄 얘기도 아니니까.

    "그런가. 그러면 그런 생각이 안 들도록 오늘도 푹 쉬게 해주지. 준비해."

    "응…."

    내 말에 한차례 움찔하고 몸을 떨더니, 중2병은 천천히 바지와 속옷을 벗고는 침대 옆 테이블에 차곡차곡 개어 놨다.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 잠시 나와 레이아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더니, 결국 결심했다는 듯 자신의 두 손을 허벅지 안쪽에 대고는 양옆으로 벌렸다.

    역시 손과 발을 무기로 쓰는 만큼 몸이 유연한 걸까?

    중2병은 다리를 쫙 펼친 상태에서도 어렵지 않게 두 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려 완전히 일자로 만들었다.

    "자, 자아!"

    그리고 그렇게 다리를 벌린 자세를 유지하면서, 중2병은 언제든 오라는 듯 그렇게 외쳤다.

    비장하게 외치고는 있지만, 그 눈에 미약하게나마 기대감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과연 내 착각일까?

    다리가 벌려짐에 따라 덩달아 살짝 벌려진 그 음부도, 그 기대감을 나타내듯 움찔움찔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라면 곧장 그 음부를 어루만지며 정신을 못 차리게 해줬겠지만.

    "오늘은 위쪽도 벗는 게 어때?"

    "으, 응!?"

    "이 주변은 날도 후덥지근하니까 말이야. 땀 흘리면 기분 나쁘잖아?"

    "그, 그런 문제…인가?"

    아니. 나한테 되물어도 말이지.

    하지만 내가 언제나 말하는 것처럼, 이 녀석은 바보도 아니고 상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바보 같은 말을 했다는 얘기는, 내가 동의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이겠지.

    "그래. 그런 문제야."

    "그, 그럼…어쩔 수 없네. 응. 어쩔 수 없어."

    말만은 어쩔 수 없이 넘어가 준다는 것처럼 하면서도, 중2병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희희낙락하게 보일 정도로 선뜻 상의를 벗었다.

    진짜 이런 모습만 보면, 지난번의 세이지처럼 언제 자기 스스로 음부를 벌리고 제발 넣어달라고 매달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상의까지 벗어서, 중2병은 완전히 알몸이 됐다.

    참고로 이 녀석은 브래지어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직도 자기는 남자가 될 거라는 꿈을 가지고 있고, 사실 브래지어를 해야 할 만큼 가슴이 있지도 않으니까.

    뭐, 비슷한 크기인 우리 실비아는 그래도 여자로서 자존심이 있다는 듯 꿋꿋하게 하고 있기는 하지…아, 아니. 지금은 실비아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그래도 딱 하나만 말하자면, 실비아야. 난 납작하면 납작한 대로 그걸 감싸고 있는 속옷도 귀엽고 좋다고 생각해.

    "이, 이제 됐어?"

    "훗. 지금 설마 보채는 거야?"

    그 사이에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서 다리를 활짝 벌린 자세가 된 중2병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나 역시도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안 하면 자게 해주지 않으니까!"

    "흐음. 정말인지 의심스럽군."

    옷을 다 벗고 침대 위에 올라가서 중2병의 몸 위를 덮듯이 올라타며 말하자, 중2병은 시선을 피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네 몸, 최근에는 엄청 잘 느끼게 됐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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