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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203화 (1,170/1,205)
  • 1202화

    이렇게 떨어져 있는 편이 전서구의 행방을 지켜보기에도 쉬웠으니까.

    뭐, 그래 봤자 내 눈에는 전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상당히 어두운데, 제대로 보이냐?"

    "물론! 어둠을 꿰뚫고 목표물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능력도 없어서야, 진정한 용사라고 할 수 없지!"

    아니. 그러니까 넌 용사도 뭣도 아니잖아.

    그리고 너, 나한테 마인이란 걸 들켰다고 이젠 아예 대놓고 용사인 척한다?

    용사가 되지 못한 마인이 용사를 꿈꾸는 건 본능이라는 건가. 아니. 뭐, 미리엘하고 얘는 용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상당히 다른 듯 보였지만.

    아무튼 뭐, 보인다니 됐지. 그럼 일단은 지켜보고 있어야겠군.

    비스의 수장, 카이젤의 인상은 낮에 중2병의 얘기를 듣고 조금 달라졌지만, 어찌 됐든 놈이 자신의 안녕을 제일 우선시 하는 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에는 마인의 피를 두려워해서 브레디인지 하는 중2병의 친구를 잡아두고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굳이 계획을 수정할 필요까지는 없을 거라는 판단하에, 나는 이렇게 중2병을 시켜 전서구를 날리게 한 거다.

    이 편지를 보낸다면, 분명 카이젤은 뭔가 반응을 보일 거야.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아마 우선 각지의 비수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비수에게 날리는 전서구의 안내를 받아서, 비수가 있는 곳을 편하게 특정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후훗. 왠지 이러고 있으니 두근두근하네요. 아이들이 비밀기지를 만들고 장난치며 노는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으, 응. 그러게."

    "구원 씨?"

    왜 그러시나요? 라면서 천사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셨지만, 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슴 없는 천사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어색해서요. 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만약 그랬다가 천사님이 슬픈 표정이라도 지으시면, 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아무튼 천사님의 말대로 비밀 기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기분을 살짝 맞보면서, 우리는 중2병이 전서구를 발견하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늦기는 했지만, 적 진영에 잠입했던 비수가 잡혔다는 건 상당히 중대한 사안이다.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대응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물러빠지지는 않았겠지.

    "왔다! 왔어!"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했다.

    슬슬 졸리기 시작했을 즈음에, 드디어 중2병이 내 허벅지를 탁탁 두드리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저기…윽!?"

    자기가 만져놓고 뭘 그렇게 놀라냐. 오히려 갑자기 거길 만져진 내가 더 놀라고 싶다.

    "일단 손부터 떼지?"

    "어, 어!? 으, 으응…."

    너무 놀라서 자기가 계속 손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건지,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중2병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그래서, 전서구는 어디야?"

    "저기랑 저기. 그리고 저기."

    총 세 마리라. 두 마리는 각각 영내에 있는 비수에게 보내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겠지.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세이지한테 보내는 건가.

    이미 편지에 언제 잡힐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썼으니, 중2병에게 다시 답신을 보내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말이야.

    그럴 거면 아예 세이지한테 보내서 경고를 해주는 게 낫겠지. 놈들은 아직 세이지가 사로잡힌 줄 모르고 있을 테니까.

    "전부 잡을 수 있겠어?"

    "응. 간단해. 부르는 방법이 따로 있어. 하지만 가까이 가야 해."

    "잡은 다음에 다시 보낼 수도 있어?"

    "응. 목적지를 몰라도 알아서 날아가니까."

    원래 전서구는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해서 쓰는 거라고 들었는데, 뭐 이런 세계에서 일일이 따져봤자 의미 없는 얘기인가.

    된다면야 나야 편하고 좋지.

    "좋아. 그러면 이동하자. 레이아."

    "네. 언제든 괜찮아요!"

    평소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포즈를 하는 천사님은, 그 두 팔 사이에서 묵직하게 흔들리는 커다란 가슴이 없어도 여전히 천사님이었다.

    "역시 하나는 비스행이었군."

    그렇게 세 마리의 전서구를 다 잡아서 편지를 확인해본 결과, 역시나 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고 있었다.

    하나는 세이지를 향한 경고를 담은 편지였고, 나머지 둘은 영내에 있는 비수 둘을 향한 귀환 명령을 담은 편지였다.

    "그러면 우선 둘 중 하나를 찾아가야 하는데…둘 중 추천하는 사람은 있어?"

    "응? 시, 실은 다른 비수들과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아서…난…비스마르크의 후계자인 블레디의 후광을 업고 비수가 된 사람 취급이니까."

    조금 씁쓸하게 내 눈치를 보면서 말하는 중2병의 모습은, 저도 모르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랬군. 그래서 세이지의 반응이 그랬던 거군. 아무리 얘가 중2병 환자라고 할지라도, 같은 비수 동료를 대하는 것치고는 말투가 너무 적대적이다 싶었는데. 실력도 없는 주제에 자기랑 같은 위치에 있는 중2병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건가.

    실은 중2병이 훨씬 더 강한데 말이야.

    "그래? 그럼 아무나 고르지 뭐. 로빈이라. 우선은 이 여자로 하자."

    "로빈은 여자가 아니라 무성별…."

    "곧 여자가 될 거야."

    뭐, 할 수만 있다면 세이지처럼 섹스 없이 굴복시키는 게 제일이지만 말이야.

    내 말을 듣자마자 턱을 덜덜 떨면서 다리를 오므리는 중2병의 모습을 일부러 무시하면서, 나는 로빈에게 향하는 전서구를 보내게 시켰다.

    여기까지는 우선 예상대로 잘 흘러갔으니, 이다음도 예상대로 잘 흘러가면 좋겠는데.

    그렇게 기대했지만, 역시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아니. 전서구의 안내를 받아서 로빈이라는 여자에게 도착하는 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성격은 조금 독특하지만 그래도 현지인인 중2병의 안내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중2병은 도망자 신세가 아니라는 점이 무척이나 컸다.

    바프라에서는 신과 유리, 그리고 레이까지 도망자 셋을 달고 숨어다녔으니까 말이야. 그때와 비교하면 마음 편하게 힐링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수준의 편한 여정이었다.

    문제는 여로가 아닌, 도착한 다음의 일이었다.

    "또 편지인가. 이번에는 어떤…응? 뭐야 이거? 이 여자보고 돌아오라는데?"

    내가 사로잡아서 이용할 예정이었던 로빈이라는 이름의 비수는, 이미 다른 남자에게 굴복당해서 여자가 된 뒤였던 거다.

    전서구를 뒤쫓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딘가의 세기말이 떠오르게 하는 황량한 평야에 세워진 요새 도시였다.

    중2병의 말에 따르면, 강자가 많은 비스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무술을 자랑하는 블래스터 가문이 다스리는 땅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 비수를 파견했다는 얘기는, 역시 내 예상대로 수장의 자리를 위협하는 이들을 미리 견제할 목적인 거겠지.

    예상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 가는 것 같아서, 이런 황폐한 곳에서 모래 먼지나 들이키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우선 여관부터 찾자."

    전체적인 분위기는 세기말 같은 도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법 지대라는 건 아니었다. 관문도 중2병이 가지고 있는 신분증으로 아무 문제 없이 통과됐고 말이다.

    그러니 숙박시설도 조금 돌아다녀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겠지. 아무도 여행 안 올 것 같은 이런 황량한 곳이라도 상인들은 오갈 테니까 말이야.

    "어!? 버, 벌써!?"

    내가 앞장서서 가자, 중2병이 화들짝 놀라며 졸졸 따라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저렇게 놀라는 건지. 뭐, 저러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방부터 잡고 움직이는 게 여러모로 편하잖아?"

    "그,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다리를 잔뜩 오므렸으면서, 이제 와서 알고 있었던 척해 봐야 설득력 없다, 이것아.

    설마 벌써부터 젖은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동안 학습된 게 있다지만, 조금 참아라. 방을 잡을 때 이상한 오해를 사면 귀찮아지니까.

    "남자 셋인가…. 미안하지만, 방이 부족하군. 셋이서 같이 머무를 수 있는 큰 방이라면 아직 하나 남아 있는데."

    "흠. 그런가."

    남자끼리 여행이라면 각자 따로 방을 쓰는 게 기본이라는 듯이 말하는 여관 주인의 말에, 나는 손으로 턱을 괴고 잠깐 고민하는 척을 했다.

    어차피 방이 남았다고 해도 다른 변명을 둘러대며 다인실을 잡을 생각이었으니, 사실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지만 말이야.

    이렇게 시간을 끌어서 인상을 남겨둬야, 여차할 때 이 주인장을 증인으로 쓸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행상인 무리가 오는 날이니, 다른 여관을 찾아가도 상황은 비슷할 거야."

    "하는 수 없지. 그럼 큰 방으로 하나 줘. 너희도 괜찮지?"

    "네."

    "응…."

    그러니까 중2병. 얼굴 붉히면서 여성스러운 반응 보이지 말라고.

    "헤헷.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주인장은 그런 중2병의 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두 손을 모으고 굽실거리며, 주인장은 함박웃음과 함께 돈을 받아들었다.

    "자, 그럼."

    그렇게 일단 방을 잡고 올라오기는 했지만, 딱히 짐을 풀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짐은 전부 내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니까 말이야.

    즉, 지금부터 진짜 행동 개시라는 거지.

    나는 기어를 변환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숨을 정돈했다.

    "준비해."

    "으, 으응…."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중2병은 또 이상한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안짱다리로 서서 허벅지 사이를 비비듯이 움직인 중2병은, 힐끔 내 눈치를 보더니 결심했다는 듯 천천히 바지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이미 애액으로 살짝 젖은 속옷도 천천히 내리더니…항상 느끼는 거지만, 남자 속옷이 저렇게 젖어 있는 건 볼 때마다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하네.

    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게 여성의 그곳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나마 묘한 기분 정도로 끝나는 거지만.

    아무튼 그렇게 바지와 속옷을 벗어 던진 중2병은, 침대 위로 가서 똑바로 눕더니 자신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가져다 대고 두 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아직 그 누구도 침입하지 않은 핑크빛의 예쁜 속살이 살짝 벌어지며 애액으로 촉촉하게 젖은 안쪽을 드러내는 모습은, 아무리 상대가 중2병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남심을 자극할 만한 광경이었지만.

    "너 뭐하냐?"

    "으, 응?"

    게다가 여관에 오기 전에도 한 번 착각을 정정해 줬는데도 또 저러다니. 진짜 머리에 그 생각밖에 없나.

    아니. 뭐, 내 잘못도 어느 정도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안전을 위해서였다지만, 조금 과했는지도 몰라.

    "아니. 비둘기 준비하라고. 여기에 뭐 하러 왔는지 잊었어?"

    "앗!? 흣!? 헹!?"

    이상한 소리와 함께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난 중2병은, 팬티도 입지 않고 창가로 달려가서는….

    "줄리안 씨. 안 돼요. 밖에서 보이겠어요."

    창문을 활짝 열기 전에, 다행히도 우리 천사님이 먼저 말려줬다.

    역시 틈만 나면 빈민가의 고아원으로 애들을 보러 다니시는 만큼, 이런 돌발 상황에 강하신 천사님이었다.

    "아, 고, 고마워…."

    "후훗. 천만에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신 우리 천사님의 가슴을 의식하는 건지, 중2병은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아니. 저건 가슴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뭐, 좋아.

    "아직 로빈에게 가게 하지는 않았지?"

    "응. 대기하고 있게 했어. 이제 보낼까?"

    겨우 진정하고 다시 하의를 걸친 중2병과 함께, 나는 다시금 계획을 확인했다.

    "아니. 만약을 대비해서 행동하는 건 밤이 된 이후로 하자."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투명해질 수 있는 중2병은 상관없겠지만, 나는 밤이 움직이기 편하니까 말이야.

    뭐, 어차피 로빈은 이 도시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꾸미고 블래스터 가문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 일은 거의 없다고 보지만.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기 그 블래스터 가문 집 맞지?"

    밤이 되어 전서구를 날린 우리는, 그 뒤를 쫓아가던 중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전서구가 향한 곳은, 누가 봐도 이 도시의 영주가 살고 있을 법한 커다란 건물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귀족이 사는 화려한 저택이나 성이라는 느낌보다는, 어딘가 요새의 최종 방어선을 연상시키는 건물이었지만.

    "아, 아마도…?"

    "즉, 로빈은 블래스터 가문의 집안에 직접 잠입해 있다는 얘기야?"

    무슨 그렇게 무모한 짓을…아니. 생각해 보니까 세이지도 플리투스의 군대에 직접 잠입해서 정보를 빼내고 있었지.

    혹시 비수라는 놈들은 다들 그런 모험을 즐기는 게 취미인 변태들만 모여 있는 건가?

    그럴듯해. 실제로 이 녀석도 중2병이라는 중증을 앓고 있으니까.

    "왜,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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