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92화 (1,159/1,205)
  • 1191화

    하지만 여기에 오래 있으면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우선 1초라도 빨리 미리엘의 얼굴을 안 보는 게 좋겠어. 일단 자고 일어나면 이 감정도 말끔하게 사라져 있겠지.

    나는 도망가는 도둑놈처럼 황급히 옷을 챙겨입고, 중2병과 함께 미리엘의 방을 뒤로했다.

    당장에라도 떠날 것처럼 얘기했던 나였고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결국 나와 중2병은 이 전초기지에 며칠 더 머무르는 신세가 됐다.

    세이지가 모두의 앞에서 순종적으로 자기가 아는 정보를 털어놓는 것을 보면서 그 정보 중에 진짜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없는지 확인하는 건, 내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대로 세이지가 알고 있는 정보는 중2병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중2병보다도 아는 게 더 없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중2병은 내 성자 스킬에 당한 시점에서 이미 비스와 연락을 못 하게 됐다고 하니, 바로 며칠 전까지 비스와 연락을 주고받은 세이지가 조금이라도 최신 정보를 더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의심을 안 한 건 아니다. 자신의 음부까지 활짝 벌리면서 나한테 빌었던 여자라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세이지가 일부러 정보를 골라가며 말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

    하지만 세이지가 정보를 말했을 때 직접 본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런 의심은 할 수가 없었다.

    다수의 압박. 특히나 세이지에게 깜빡 속아서 비밀 호위까지 맡겼던 린 어쩌고의 거센 압박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말이야.

    세이지 녀석, 그 장군한테 위축된 나머지 나중에는 허벅지까지 움찔움찔 떨 정도였다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 수 있다. 그거, 본능적으로 벌어지려는 다리를 억지로 닫으려고 힘주는 모습이었어.

    그러면서 내 눈치를 엄청나게 살폈으니, 아마 그때 내가 같은 방에 없었다면 진짜로 다리 벌리고 그 장군한테 매달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될 거라고 압박을 준 건 나였지만, 진짜로 다른 남자가 조금만 위압적으로 굴어도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니, 세뇌 교육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별다른 소득도 없이 여기에 며칠 더 머무르며 시간만 허비했다는 얘기다.

    그동안 머무르면서 건진 소득을 굳이 찾자면.

    "음쭈웁. 응흡. 츄릅."

    그나마 이 녀석한테 감정이 없다는 걸 재확인했다는 점이겠지.

    오늘도 내 물건에 열심히 봉사하는 미리엘을 내려다보면서도 아무런 감정 동요도 생기지 않는 걸 보고,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때는 이 녀석을 안는 감촉이 사라랑 너무 비슷해서 그냥 좀 착각을 한 거야.

    "싼다."

    "츄르르릅."

    내 말에 맞춰서 더욱 강하게 흡입하는 미리엘의 입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액을 토해냈다.

    미리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정액을 입으로 받아내서, 목을 꿀꺽꿀꺽 울리며 전부 삼켰다.

    "이제 깨끗하게 해."

    "응읍."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리엘의 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강한 남성성은 성기의 크기에서 나오고, 성기가 큰 강한 남자는 성욕도 마찬가지로 강하다. 그런 강한 남자가, 바로 곁에 자신의 여자가 있는데도 성욕 처리를 하루라도 거르는 건 이상하다.

    라는 논리를 미리엘이 들고나왔거든.

    아니. 지금까지 내가 세이지 앞에서 보여준 태도를 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결국 이렇게 보여주기식으로 매일매일 미리엘에게 성욕 처리를 시켜왔다는 얘기다.

    뭐,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지만.

    "너희도 오늘 출발한다고 했지?"

    "쪽. 맞아. 츄릅."

    "세이지는 계속해서 너한테 맡기게 될 텐데, 어때? 잘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응. 쮸웁. 맡겨둬."

    이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녀석도 린 어쩌고 앞에서 세이지가 오들오들 떠는 걸 같이 봤으니, 지금 세이지의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이 녀석이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면 묘하게 믿음직스럽단 말이지.

    "그래. 믿지. 그리고…."

    "응?"

    "슬슬 그만 그 입 떼는 게 어때? 더 깨끗하게 할 것도 없잖아."

    "…성자님은 가끔 보면 여심을 너무 몰라주는군."

    아니. 네 지금 행위가 나타내는 건 여심보다는 단순한 성욕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원래는 성행위에 그렇게 담백했던 애를 내가 이렇게 만든 거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슬슬 가자.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그래. 보여주기식으로 성욕 처리를 시켰다고 했지만, 지금 이곳에는 나와 미리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게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제대로 세이지가 있는 앞에서 미리엘의 신호를 받고 같이 여기로 온 거니까.

    각자 다른 타이밍에 화장실을 핑계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중2병과 세이지는 나와 미리엘이 이런 목적으로 둘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거다.

    뭐, 눈치 못 챘어도 나중에 강제로 눈치채게 할 거지만.

    "그것도 그렇군. 쪽. 쪽."

    아쉽다는 듯 마지막으로 내 물건 전체에 키스 세례를 퍼부은 다음, 미리엘은 품에서 부드러운 손수건을 꺼내 내 물건에 묻은 자신의 타액을 정성스럽게 닦아내 줬다.

    "그럼 가자."

    그리고 나서 내 바지를 끌어 올리고 벨트를 채우는 것 역시도, 내 앞에 무릎 꿇은 미리엘이 직접 해줬다.

    모든 뒤처리를 끝낸 다음, 나는 미리엘과 같이 모두가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오, 오셨습니까."

    따로 나갔던 둘이 동시에 돌아온 거다. 그것도 화장실에 간 것치고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이렇게 되면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가 뭘 하고 왔는지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겠지.

    "……."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 둘을 향해 뜨거운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시선을 하나만 꼽자면, 저기에 있는 발가스 장군의 이글이글 불타는…아니. 역시 앨리시아의 저 야성미 넘치는 시선인가.

    아무리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일단 앨리시아한테는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기는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역시나 질투가 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내가 눈짓으로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뜻을 보냈지만, 앨리시아의 눈에서는 좀처럼 힘이 빠질 생각을 안 했다.

    "미리엘 님. 출발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미리엘 님만 준비되시면 언제든 출발 가능합니다."

    나와 앨리시아가 그렇게 아이컨택트를 하고 있는 사이에, 이쪽으로 이글이글 거리는 시선을 보내던 다른 한 사람, 발가스 장군이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미리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한테 그렇게 이글거리는 시선을 보낸 주제에 이제 와서 나만 철저하게 외면하려고 하다니.

    진심으로 충고 하나 하자면, 더 추해 보이기만 하니까 그만두는 게 좋아. 아니. 난 딱히 무시당해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런가. 그럼 성자님. 나도 준비를 하러 가야 할 것 같아."

    이것 봐. 어차피 댁이 날 무시해도 미리엘은 날 신경 쓸 테니까, 괜히 댁만 더 비참해지거든.

    "그래. 다녀…아니. 그냥 준비 끝나자마자 바로 출발해도 괜찮아. 나도 이제 슬슬 가볼 생각이니까."

    "그런가. 알겠어. 그럼 나중에 또 봐."

    "그래."

    아까까지 둘이서 그런 짓을 했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담백한 인사를 나눈 다음, 미리엘은 다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나도 미리엘에게 말한 대로 중2병과…여길 떠나기 전에.

    "잠깐 좀 보자."

    나는 앨리시아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올 때 주변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하고도 아직 부족해서 다른 여자까지 데려가는 건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거 아니거든?

    뭐, 오해라면서 변명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아무 말 안 할 거지만.

    "앨리시아, 미안!"

    나는 앨리시아와 단둘이 되자마자 곧장 두 손을 모아서 사과했다.

    안 그래도 앨리시아는 내 여자가 되고 나서도 나와 있을 기회가 없었는데, 거기에 더해서 미리엘과 계속 붙어 있는 모습을 보이며 신경을 긁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제대로 보상해주자. 라고 혼자 속으로 변명하면서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중에 보상하는 건 보상하는 거고, 일단 지금은 급한 대로 사과부터 해야겠어.

    조금 치사한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왜냐하면….

    "칫."

    내가 이렇게 먼저 사과를 해버리면, 앨리시아 성격에 폭발도 못 하고 넘어가 줄 거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잘못한 건 알고 있냐, 새끼야."

    "당연하지. 진짜 미안해. 계획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널 두고…."

    "착각하지 마. 난 그런 속 좁은 여자가 아니야."

    "으,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네가 속 좁은 여자가 아니라는 건 그야 내가 제일 잘 알지. 오히려 너무 터프해서 살짝 걱정될 정도로 털털하잖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도라는 게 있지. 이번에는 아무리 너라도 화난다는 거, 나도 충분히 이해해. 내가 널 두고 계속 미리엘이랑 붙어 있어서 화난 거잖아?

    "아니야, 새끼야. 아니.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화내는 건 아니야."

    그런 것이라니.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렇게 쿨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나도 누님들한테 얘기는 다 들었어. 필요하면 아무 여자나 붙잡고 섹스해도 신경 안 쓰기로 했다면서? 그렇다면 나도 그걸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막내로 들어온 주제에 누님들의 결정에 거스를 정도로 파렴치한 년으로 보여, 내가?"

    아니. 자기 남자가 딴 여자랑 놀면 기분 나쁜 게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딱히 파렴치한 건 아니지 않냐?

    진짜 얘는 가끔 보면 털털하다는 말로도 부족한…그래. 완전히 상남자다.

    직접 말해주면 "누구보고 남자라는 거야, 새끼야!" 라면서 화내겠지만.

    "그러면? 왜 화난 거야?"

    "그걸 몰라서 물어, 새끼야!? 네가 필요하다면서 붙잡고 섹스해대는 그 아무 여자가 우리 미리엘이니까 화난 거잖아!"

    아, 그런 거였어?

    질투가 아닌 동료애 때문에 화를 내다니, 앨리시아 답다고 해야 할지.

    "그래, 새끼야! 너 어쩔 셈이야!"

    "아니. 어쩔 셈이고 자시고, 미리엘은 사라의…아니. 그게 말이지."

    "나도 아니까 숨길 필요 없어. 사라 누님이 미리엘의 이복 언니인 거지?"

    역시 알고 있었던 건가.

    뭐, 전에 미리엘이 대놓고 언니라고 부른 적도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사실 그동안 미리엘이랑 붙어 있으면서 확인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확인할 기분이 안 생겨서 말이야.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 없을 지뢰를 괜히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인거야. 미리엘도 네 여자로 받아줄 각오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적당히 해."

    야. 그렇게 말하면 넌 내가 미리엘을 받아줘도 괜찮은 것처럼 들리잖아.

    "별로 상관없는데? 누님들도 날 인정해 줬는데, 뒤늦게 합류한 내가 그런 걸 막는 것도 웃긴 일이잖아."

    아니. 그대는 우리 애들이 널 인정해 줬다는 느낌보다는, 네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쳐서 무릎까지 꿇고 비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뭐,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냐.

    "거기에 막내 탈출도 가능하고, 어차피 여기에서 한 명 더 늘어봤자 티도 안 나잖아."

    티, 티도 안 난다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런 게 아니라면, 적당히 해. 그 세이지라는 여자한테 보여줄 목적이면 굳이 미리엘이 아니어도 그냥 날 육변기 취급하면 되잖아? 내, 내가 다 받아줄게! …용사가 아니니까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유, 육변기라니. 넌 또 그런 말을 대체 어디서…아니. 미안하지만 효과가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해.

    아마 그게 가능했으면 나도 너한테 부탁했을 거야. 사실 처음 너희랑 합류했을 때는, 나도 드디어 너랑 같이 지낼 기회가 생기게 됐다고 기대했을 정도니까 말이야.

    내 여자가 되고 나서도 같이 지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너랑 드디어 애인다운 짓을 조금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세이지 일이 그렇게 되지만 않았으면, 진짜 너하고만 붙어 있었을 거야.

    "가, 갑자기 낯부끄러운 소리 할래, 새끼야!?"

    네가 아까 한 말이 훨씬 더 낯부끄러운 말이라는 생각은 안 드냐?

    "칫. 아무튼 우리 미리엘의 마음을 흔드는 짓은 적당히 해. 그 녀석, 보기와는 다르게 애정 결핍인 부분이 있으니까. 적당히 안 하면 진짜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알았어. 명심할게."

    앞으로 미리엘하고는 절대 섹스를 안 하겠다는 장담은, 솔직히 말해서 못 하겠지만. 그래도 나 따위보다 미리엘과 훨씬 오래 알고 지낸 앨리시아가 해준 충고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

    나는 앨리시아의 충고를 가슴속 깊이 새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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