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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174화 (1,141/1,205)
  • 1174화

    그러면서 등장한 건 바로 노답 콤비 중 일각 그렉이었다.

    오랜만에 날 봐서 그런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저 호랑이 얼굴로 미소를 띠어봤자 먹이를 앞두고 좋아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는 점이…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가 여기 왜 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대화는 바프라의 인간들한테 들려줄 만한 내용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레이의 처소까지 와서 시중을 다 물리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대체 문 앞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녀석을 들인 거야!? 여기, 이렇게 보안이 허술한 곳이었어?

    "저기…제, 제가 잡아 왔습니다아."

    내가 말문이 막혀 하고 있자, 실비아가 죄지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잡아왔다니?"

    "하핫. 실은 성자님이 만들었다는 창관의 소문을 듣고 저희도 그 위대함을 체험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마침 지나가던 실비아 님께 딱 걸려 버려서 말이지요."

    "바프라 포교를 위해 만든 시설을 당신들이 즐기면 어쩌자는 겁니까…?"

    "하하핫. 반성의 의미로 이렇게 경비도 열심히 서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대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이 왜 이 녀석을 들였나 했더니, 이 녀석이 경비병이었군.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전혀 몰랐어.

    그리고 아마 이 자리에 없는 듀크는 여전히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거겠지. 아까 그렉이 창관에 갔다고 했을 때 ‘저희도’라는 표현을 썼으니까.

    확실히. 다른 녀석들보다는 사정을 알고 있는 이 녀석들이 문 앞 경비를 서는 게 여러모로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경비라는 놈이 왜 방까지 들어오는 건데?"

    "아, 실은 케이로스 경이 급한 용무로 레이님을 찾고 계십니다.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으셔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하지만 설마 성자님이 와계실 줄이야! 그리고 그 얘기! 저희의 차례가 다시 왔다는 것이군요!"

    지금 뭔가 흘려들으면 안 되는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이로스라니까 좀 기다리게 해도 되겠지.

    그런 것보다는.

    "너희 차례라니?"

    "성자님을 그런 무뢰배와 단둘이 보내는 게 걱정되지만, 형수님들이 직접 따라가실 상황은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다시 뭉칠 때이지요! 레온님이 빠지시게 되는 건 무척이나 아쉽지만, 그래도 다 같이 이곳까지 함께 온 경험을 살려서, 비스에서도…!"

    "잠깐. 잠깐. 자암깐 기다려."

    형수님들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네 형이 됐냐?

    그리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나랑 쓰레온까지 껴서 너희랑 같이 4총사인 것처럼 말하는 건 그만둬. 누가 진짜로 오해하면 어떡할 거야?

    "알았어. 항복. 항복이야. 확실히 너희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럼 이건 어때?"

    이 이상 원래 계획을 밀어붙이면, 진짜로 이 자식들이랑 다시 붙어 다닐 분위기가 되겠어. 그런 끔찍한 경험,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마음을 바로 태도를 고치고, 우리 애들한테 타협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성자님? 그러면 저희는…?"

    "물론 너희는 너희대로 할 일이 있어!"

    나랑 볼 일 없는 곳에서 말이지!

    "좋아. 그럼 그걸로 다들 괜찮은 거지?"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제시한 타협안이 단번에 수리되는 일은 없었다.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조정에 조정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겨우 모두가 만족할 만한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혹시 상처 하나라도 나면 용서 안 할 거야."

    그리고 그 타협안을 통해서, 나는 일단 중2병과 단둘이 행동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플리투스에 숨어 있는 비스의 숨겨진 검을 찾을 때까지만 이라는 조건이 붙은 허락이었지만 말이다.

    "아무렴요. 제 몸은 여러분의 것이라는 사실,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흥. 정말인가 몰라. 바보."

    사라는 마지막까지 토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사라도 수정된 계획에 동의한다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사라는 화나면 진짜로 무서우니까 말이야.

    "우으으…밤에 몰래 감정 공유로 확인할 거니까 조심해!"

    그리고 레이 역시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케이로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는 와중에도 끝까지 그런 말을 남기고 갔다.

    아니. 중2병이랑 같이 간다니까. 쟤는 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그야 중2병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가끔은 그 입에…아니. 그보다 저 녀석, 역시 감정 공유 마음대로 켤 수 있는 거 아니야!? 끄는 건 전혀 못 하는 주제에!

    "실비아."

    "네? 네헤!"

    "혹시 쟤가 밤에 허튼짓하는 것 같으면 꿀밤 한 대 때려줘."

    "그, 그거언…."

    여기에서도 왕가의 호위기사 노릇을 하느라 레이의 뒤를 쫓아가는 실비아를 향해 그렇게 말하자, 웬일인지 실비아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응? 왜?"

    "바, 밤에도 같이 있으라는 명령입니까아…?"

    아. 이제 같이 안 자니? 하긴 내가 없는데 쟤들끼리만 굳이 같이 잘 이유가 없나.

    "그래! 그리고 이 호…네가 명령하면 진짜로 때릴지도 모른단 말이야!"

    아직도 이렇게나 사이가 나쁘니까 말이야.

    레이야. 오해가 다 풀렸는데도 아직 실비아보고 호모라고 부르니까 실비아가 그러는 게 아닐까?

    "실비아. 굳이 잘 때까지 붙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같이 있을 때 허튼짓하면 가차 없이 꿀밤 날려."

    "네헷!"

    우와. 무지막지하게 밝은 표정. 나 실비아가 이렇게까지 신이 난 거 처음 보는 걸지도 몰라.

    "나 이제 여왕인데…!"

    반대로 레이는 원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거지. 그러니까 진짜 감정 공유 함부로 켜지 마라. 혼난다.

    "자, 그럼."

    "갈 거야?"

    정반대의 모습으로 방을 나간 레이와 실비아의 모습이 사라진 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라가 아까의 그 새초롬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쓸쓸한 눈빛과 함께 날 올려다봤다.

    "그런 눈빛 보내지 마. 발이 안 떨어지잖아."

    "흥. 빠아아안."

    이게 하지 마라니까 더 하네. 진짜 자기가 입으로 효과음 넣는 게 귀여워서 봐준다.

    나는 계속해서 쓸쓸한 눈빛을 보내는 사라의 뺨을 가볍게 꼬집고 흔들어 줬다.

    "너야말로 급하게 한다고 사고 치지 말고."

    "내가 구원인 줄 알아."

    "원래 나 같은 놈보다 너같이 평소에 사고 안 치는 애가 한번 사고 치면 거하게 치는 법이야. 진짜 조심해. 너야말로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나 눈 돌아가서 전쟁신이 부활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다 쓸고 다닐 거야."

    "바보."

    아니. 농담한 거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겨우 우리 애들을 전부 설득시킨 나는, 중2병이 기다리고 있을 창관의 지하로 다시 돌아갔다.

    "당시인! 오셨어요? 쪽."

    어라? 중2병의 눈앞이라 자제하는 거 아니었어?

    오자마자 내 목에 안겨들어서 키스부터 하는 마틸다를 마주 안아주자, 마틸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역시 오래 걸리셨네요. 줄리안 씨는 데려가지 않기를 잘하셨죠?"

    역시나 다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었던 건가.

    뭐,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의견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말이야.

    "그러게. 그런데 그 줄리안은 사고 안 치고…쟤 왜 저래?"

    그사이에 바로 사고 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는 거겠지. 줄리안은 방 한쪽 벽 앞, 창관 내부 화면이 보이는 장치의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장치의 화면에는 여전히 창관 내부의 복도들을 비추고 있어서, 거기에는 여자들의 손에 이끌려 헤실헤실 웃으며 따라가는 바보 같은 남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까 봤던 모습과 딱히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중2병은 심하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불러도 반응조차 하지 않다니. 대체 저 화면에서 뭘 본 거야?

    같이 있었던 마틸다라면 알고 있을 테니 그쪽을 쳐다봤지만, 마틸다는 묘한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대체 뭐지?

    "야."

    "흐이익!?"

    가까이 다가가서 그 어깨를 살짝 짚자, 중2병은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꼿꼿하게 펴고 굳어졌다.

    "벼! 벼, 별로! 아무것도!"

    아니.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나마 이 녀석이 본 장면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라면, 계속해서 내 하반신 쪽을 향해 내려가는 그 시선인데.

    설마하니 복도에서부터 섹스하려고 달려든 놈이라도 있었던 건가?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분명 성기사가 출동해서 후회하게 해줬을 텐데?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내 물건에 무슨 문제 있냐?"

    "그, 그런…꿀꺽."

    …얘 봐라? 얘 지금 내 물건 생각하고 군침 삼킨 거야?

    "아, 아니야! 나는…!"

    대체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우리 추기경님이 이 녀석을 굴복시키는 것에 협력해 줬다는 사실 말이다.

    그냥 내가 이 녀석한테 하는 짓을 눈감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주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

    뭐, 마틸다는 그냥 교화 활동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협력해 준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냐. 그럼 가자."

    마틸다가 협력해 줬다는 건 알았으니, 여기에서 더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중2병은 뭔가 기대가 빗나갔다는 표정으로 놀라고 있었지만, 애초에 저 녀석의 기대에 부응해 줄 생각은 하나도 없으니 상관없다.

    "마틸다도 같이 어때? 출발하기 전에 구미호 마을에서 저녁이나 먹을 생각인데."

    "물론 같이할게요!"

    더 볼 것 없다는 듯이 장치의 화면을 끄는 마틸다와 부둥켜안은 채, 나는 중2병과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구미호 마을로 넘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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