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71화 (1,138/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171화

    "아으으…당시인…."

    잠꼬대로도 내 이름을 부르며 행복해하는 마틸다.

    나는 마틸다가 잠에서 깨지 않게 그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며 생각했다.

    역시 말이야. 이 핑크빛 모드는 마틸다의 원래 성격이라고 봐야겠지? 저주랑 하나도 상관없는.

    솔직히 말하자면, 왠지 모르게 그럴 것 같기는 했다.

    일단 저주가 서서히 풀려갈 즈음에도 마틸다의 핑크빛 모드는 진정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때부터 이미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해준 것이 바로 디에른 가문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디에른 가문보다는 디아나의 힘이 더 컸지만.

    아니. 마틸다의 이 저주는 디에른 가문의 선조들이 만든 기술이라고 했잖아?

    물론 인제 와서는 실전된 전설의 저주 취급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디에른 가문이 지금도 쓰고 있는 술법 자체는 그 저주와 맥을 같이하는 것들이었다.

    같은 계열의 술법들과, 전설의 저주에 대해 기록된 디에른 가문의 오래된 사료들. 결정적으로 마틸다의 몸 안에 남아 있었던 저주의 흔적까지.

    이렇게 관련된 자료들이 쌓여 있으니, 제아무리 잊혀진 전설의 저주라고 할지라도 우리 대마법사님이 복원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괜히 디아나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만들고 그를 다른 이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한 지고의 대마법사라는 이름으로 칭송받는 게 아니라는 거지.

    우리가 바프라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이에도, 요리스 아저씨까지 데리고 희희낙락하며 디에른 가문의 술법을 열심히 연구한 디아나는 결국 그 저주까지도 복원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렇게 저주를 복원하는 것에 성공한 디아나는.

    "이상하구먼. 확실히 이 저주는 걸린 여성이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쉽게 하고, 그 여성에게서 사랑받은 이를 성불구자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저주이네만…."

    "그런데?"

    "으음…. 마틸다 양이 가끔가다 보여주는 그런 모습까지 유도하는 효과는 없네. 복원이 불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비슷하지만 다른 형식의 저주인가? 마틸다 양에게 걸린 저주가 하나가 아닐 가능성도 있구먼. 아니. 하지만 이것만으로 저주의 효과는 충분할 터. 굳이 그런 행동을 유도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라고, 진지한 학자의 얼굴이 되어서는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일단 디아나도 자기가 말한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조금 더 디에른 가문의 술법을 연구를 해보겠다고 했고, 나도 그러라고 얘기는 했지만, 이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역시 디아나가 복원한 저주는 완벽했던 모양이다.

    즉, 마틸다는 저주에 걸리기 전까지 이성을 사랑해 본 경험이 없어서 몰랐을 뿐, 원래 한 번 사랑에 빠지면 핑크빛 하트를 뿅뿅 뿜어대며 상대방한테 푹 빠지는 성격이라는 얘기다.

    그런 마틸다의 성격이 원래 눈에 보이는 이성은 다 사랑하게 하는 저주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결과적으로 아무 남자한테나 핑크빛 하트를 뿜어대던 그 마틸다가 완성되었다는 거지.

    …이거 말이야. 혹시 마틸다가 괜히 자기가 희생한다고 남이 걸린 저주를 자기 몸에 옮기는 바람에 피해가 확대된 건…아, 아니! 아니야! 그런 생각하지 말자!

    만약 마틸다가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이 저주를 만날 일도 없었을 테고, 섹스로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거잖아? 그러면 저주는 지금도 풀리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었을 거야.

    즉, 마틸다의 그 희생정신이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원해내는 계기가 됐다는 거지!

    …하지만 마틸다가 굳이 그런 걸 자랑하는 성격도 아니니, 마틸다의 성격이 원래 이렇다는 건 나 혼자만 알고 있기로 하자.

    "당시이인…?"

    그렇게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어느샌가 잠에서 깬 마틸다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달달한 시선을 보내왔다.

    역시 핑크 마틸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혈당치가 올라가는 기분이야.

    "으,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아니. 딱히 무슨 생각을 한 건 아니야. 그냥 자는 모습이 예뻐서 멍하니 보고 있었어."

    "아아…아침부터 그러시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내 가슴에 쪽하고 키스를 하더니, 그대로 쪽쪽 거리며 목을 타고 올라와서는 입술로 내 아랫입술을 깨무는 마틸다였다.

    "아침이니까 이러지. 시작이 행복해야 하루가 행복한 거 아니겠어?"

    "네에…그것도 그렇네요."

    "그렇지?"

    말하는 도중에도 우리의 입술은 계속 닿을락 말락 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입을 움직일 때마다 입술끼리 살짝살짝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황홀했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으응! 힘이 들어갔네요."

    "이것도 아침이니까."

    "도움, 필요한가요?"

    "도와줄 거야?"

    "물론이에요. 당신이 원한다면…아응!"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엉덩이를 움직이는 마틸다였지만, 하필 그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실례합니다. 구원 님. 일어나셨습니까?"

    "으, 응!? 왜!?"

    본격적으로 다시 섹스하려던 그 순간에 노크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나와 마틸다는 딱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나쁜 짓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아라크네 클랜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급한 일이라고 하기에 이렇게 왔습니다만…기다리게 하겠습니까?"

    게다가 내 대답 소리만 듣고도 바넷사는 방 안의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아침에 한 번 더는 매번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다 안다는 듯이 말하면 살짝 부끄럽군.

    "어? 어어…."

    "아니요. 곧 간다고 전해주시겠어요?"

    그래도 마틸다와의 이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던 나지만, 나보다 마틸다의 대답이 조금 더 빨랐다.

    시선을 돌려보니, 거기에는 이미 핑크핑크 한 기운이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 된 추기경님의 모습이 있었다.

    "마틸다?"

    "알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바넷사가 멀어져가는 것을 느낀 후, 나는 마틸다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이름을 불렀다.

    뭐,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기는 했지만.

    "당신, 절 우선해주는 건 고마워요. 하지만 그래도 할 일으응흣! 아, 안 돼요오…."

    진지한 얼굴로 타이르는 추기경님의 아래에서 가볍게 허리를 한 번 찔러 넣자, 진지했던 추기경님의 표정과 말투가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렸다.

    "정말로?"

    "아아읏…하, 하지 마안…."

    그러고 보니, 진지한 마틸다를 이렇게 강제적으로 핑크 모드로 바꾸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어떻게든 이성을 잡고 진지하게 말하려고 하지만 눈에서 불쑥불쑥 핑크빛 하트가 뿜어져 나오는 걸 참지 못하는 마틸다를 보면서, 나는 괜히 하반신에 힘만 더 들어가게 됐다.

    "금방 끝낼 테니까. 응? 부탁해. 아까는 도와준다고 했잖아."

    "저, 정말로…금방 끝내실 거죠?"

    "응!"

    어차피 벌써부터 슬슬 폭발할 조짐이 보이고 있으니까, 길게 끌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황홀한 라인을 그리는 마틸다의 골반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오, 오래 기다렸지요?"

    물론, 한 번 불붙은 우리가 진짜 한 번으로 끝날 리도 없어서, 결국 엄청 오래 걸렸다.

    앞으로는 차가운 바넷사의 시선을 맞으며, 뒤로는 부끄러워하며 내 등 뒤로 얼굴을 감추는 마틸다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아라크네 클랜에서 온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접객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의외로 아는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식! 겨우 모습을 드러냈겠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내 멱살을 잡을 기세로 덤벼든 여자는 바로….

    "칸나?"

    그래. 아라크네 클랜원 중에는 간부진들 다음으로 익숙한 얼굴인 그 3인방이었다.

    뭐야. 기다리고 있던 게 얘들이었나. 다행이다.

    옛날에 친할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는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니 죄책감이 덜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안미안. 생각보다 준비에 시간이 걸려서…."

    "지금 그딴 게 문제인 줄 알아!?"

    어, 어? 너무 오래 기다려서 화난 거 아니었어? 그럼 왜?

    혹시 얘 왜 이러는지 알아? 라는 시선을 바넷사에게 보내봤지만, 바넷사도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티 나지 않게 슬쩍 고개를 저었다.

    "진정해. 칸나."

    "이게 진정할 일이야!? 넌 화도 안 나!? 이 녀석은…이 녀석은…!"

    뒤에서 3인방 중 한 명인 세레나가 말려봤지만, 칸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분노를 더욱 불태우며 야수 같은 시선을 내게 보내고는, 내 멱살을 진짜로 틀어잡고 앞뒤로 거세게 흔드는 칸나.

    아무리 그래도 영문도 모른 채 이렇게 멱살을 틀어 잡히니 나도 살짝 기분이 상할 것 같았지만.

    "우리가 대체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거의 오열하듯이 외치며 바닥에 주저앉는 칸나의 모습에, 화낼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괴롭힌다니…대체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누구 설명해 줄 사람 없어?"

    "미안해요. 실은…."

    "겨우…겨우 그 귀신 교관한테 벗어나서 행복한 던전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또 우리가 제발로 교관한테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것도 이번에는 7계층이라고!?"

    뒤에서 3인방의 마지막 멤버. 에이미가 설명하기도 전에, 칸나의 오열을 듣고 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우…그래. 그러고 보니까 4계층에 다니는 애들 위주로 멤버를 편성한다고 했었지. 아니. 그보다.

    "너희 아직도 4계층에 있었냐?"

    거기 진입한 지 한참 지나지 않았어?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너희가! 너희를 따라잡으려는 그 교관이 이상한 거야! 보통은 이게 정상이란 말이야!"

    그, 그러냐…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맞는 것 같네. 응. 왠지 미안.

    "너 말이야…이제 교관이랑 정식으로 사귀는 거잖아!? 자기 여자 관리 정도는 똑바로 하란 말이야! 괜히 우리한테 불똥 안 튀게!"

    아니. 딱히 앨리시아의 주장으로 이번 계획에 4계층 멤버들이 동원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그보다 너 아무리 앨리시아가 듣고 있는 게 아니라지만 그렇게 함부로 막말해도 괜찮냐? 일단 존경하는 클랜 간부님이잖아?

    "으으…이제 틀렸어. 또 지옥의 특훈이 시작될 거야…. 하룻밤 만에 레벨을 4나 올리고 오라니…그런 거 무리에요…."

    …이걸 야한 얘기로 받아들여야 해, 아니면 무서운 얘기로 받아들여야 해?

    반응하기 미묘한 얘기를 중얼거리는 칸나의 어깨를 토닥거려주면서, 나는 일단 진정부터 시키기로 했다.

    "진정해. 어차피 너희는 가봤자 앨리시아랑 만날 일도 없으니까. 얘기 자세히 못 들었어?"

    "…저, 정말이야!?"

    이 녀석, 그렇게 앨리시아가 무서웠냐. 갑자기 분위기 반전해서 눈을 빛내기는.

    그렇게 울다가 웃으면…뭐 됐어.

    "그래. 그러니까 진정해. 진짜 클랜에서 설명도 안 해줬어?"

    세나라고 했던가? 보기에는 똑 부러지는 이미지였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건가?

    "아니요. 아침에 돌아와서 얘기를 들었는데, 간부진이 있다는 7계층에 가야 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칸나가 뛰쳐나가서…그랬더니 세나 씨가 마침 저희가 구원 씨와 가장 친하니까 잘 됐다고. 이왕 쫓아갈 거면 겸사겸사 모두 모였다는 얘기도 같이 전해달라고 하셔서…."

    "…에, 에헷."

    웃지 마. 이것아. 결국 전부 네 잘못이잖아.

    앨리시아를 그렇게 무서워하는 주제에, 따지고 보면 이 녀석이 제일 앨리시아랑 닮았다니까.

    "그렇군. 그럼 너희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멤버였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괜찮은 거야? 칸나나 세레나는 그렇다 쳐도, 에이미는 성직자잖아? 혹시 파…전직했어?"

    "아, 안 했어요! 추기경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추기경님! 아니에요! 전 독실해요!"

    아니. 예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성직자의 규율을 깨려고 한 게 새삼 생각나서. 혹시나 했지.

    "진정하세요. 저도 딱히 의심하지 않았어요."

    "가, 감사합니다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