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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166화 (1,133/1,205)

1166화

그렇게 말하면서도, 펠리시아는 풀어진 입꼬리를 다잡지 못했다.

얘가 표정 관리도 제대로 안 될 정도면, 속으로는 진짜 엄청 기분 좋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성욕이 없어지지도 않았을 거야."

명색이 서큐버스인데 성욕이 없어지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아마 그런 느낌 아닐까. 무술 경지랑 비슷한 거다. 처음에는 그저 파괴적으로 힘을 휘두르며 강해지던 놈도, 수준이 올라갈수록 점점 살기가 갈무리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펠리시아의 경우 성욕이 그렇게 되는 거다.

갈무리된 성욕이라니. 내가 말해 놓고도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싶었지만.

"아하하. 그거 괜찮네."

다행히도 펠리시아는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하음. 응흐읏……응……."

그리고 곧장 시험이라도 해보겠다는 건지, 펠리시아는 손을 자기 다리 사이로 가져가더니 야릇한 소리를 냈다.

야. 그러면 괜히 나까지 이상한 기분이 들잖아.

아니. 펠리시아가 빨아댄 덕분에 원래부터 발기는 하고 있었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좋을까? 그래.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을 때 레이의 감정 공유에 영향을 받아서 흥분해 버리는 것 같은 느낌.

펠리시아가 흥분한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왠지 그런 느낌으로 같이 흥분하게 됐다.

"아핫. 정말인가 보네."

정말이라니……. 이 녀석 설마.

"응. 자기 말대로 힘이 갈무리된 것 같아."

물론 나도 그렇게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건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아니. 생각해 보니까 이 녀석은 처음부터 서큐버스의 힘을 어느 정도 쓸 줄 알았지. 날 매혹 상태로 만든 적도 있었으니까. 그 이후로 한 번도 내 앞에서 멋대로 힘을 쓴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어.

"아하하. 미안해 자기. 대신 여기는 내가 책임지고 달래줄게."

너 말이야. 말은 책임감 느끼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지? 시험해본다고 잠깐 만졌다가 진짜로 흥분했지?

"자기도 참. 그럴 리 없잖아. 내 성욕은 갈무리됐는걸.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

내가 대충 한 말 갖고 끝까지 우려먹지 마라. 너 아까부터 시선이 내 물건에 계속 고정되어 있는 건 아냐?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든 말든 네가 조절하기 싫으면 그만인 얘기잖아.

"자기……자기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 할짝."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진지하지 않은 말투로 그렇게 말한 후, 펠리시아는 곧장 내 물건을 고환부터 귀두까지 길게 핥았다.

제, 젠장. 이 녀석……진짜 섹시하기는 엄청 섹시하다니까. 이제는 얘가 서큐버스의 힘을 쓴 건지, 아니면 그냥 이 녀석이 섹시해서 흥분되는 건지도 모르겠어.

"야. 아무리 그래도 이제부터 일상생활이 확 바뀔 일이 일어났는데, 진짜 당장 드는 생각이 섹스할 생각밖에 없어?"

그래도 일단 오기를 부려서 그렇게 말해봤지만.

"어머. 그건 아니야 자기. 섹스할 생각도 드는 거야. 일단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도 제대로 하고 있는걸. 이걸로 어머니를 압박하면 다시 왕위쟁탈전에서 우위를 점하겠네. 라든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생각까지 하고 있어서, 할 말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야 다른 왕족들도 전부 서큐버스의 체질에 휘둘리고 있을 테니까, 유일하게 거기에서 벗어난 펠리시아는 엄청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지만.

잘도 이러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네.

본격적으로 펠라를 시작하는 펠리시아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맛봤다.

"소녀. 이래 보여도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다루는 것이 특기이옵니다."

혀로 물건 핥으면서 조신한 말투 쓰지 마 이것아.

"아하핫. 흥분돼? 꺄아악!"

대답하는 대신, 나는 다시 펠리시아를 덮쳤다.

펠리시아의 유혹에 넘어가서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 나는, 그 후 달달한 시간까지 추가로 더 보내고 나서 성을 뒤로했다.

하지만 곧장 저택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왕 밖에 나왔으니 할 일부터 미리 다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저택에 들어가면 또 우리 애들이랑 노닥거리느라 밖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테니까.

"그렇군요."

그래서 나는 지금, 아라크네의 클랜 하우스에 와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전에 미리엘이 말한 클랜장 대리. 이름은 분명…세나라고 했던가?

똑 부러져 보이는 인상의 미인이었지만, 이런 사람도 밤이 되면 레벨 업을 위해 남자의 정기를 죽을 때까지 빨아먹는….

젠장.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라크네 클랜 사람들하고는 같이 행동할 일이 많았던 덕분에, 처음에 있었던 편견도 이제는 거의 다 사라졌었는데. 미리엘 그 녀석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바람에 괜히 더 의식되잖아.

비단 눈앞에 있는 이 사람만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난 지금 그런 여자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소굴에 들어와 있는 거란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몸이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까지 서큐버스랑 놀다 온 놈이, 그것도 그 서큐버스를 기어코 탈진까지 시킨 성자라는 놈이 웬 엄살이냐고 하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마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군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미리엘의 쪽지를 꼼꼼히 읽은 세나는, 머릿속에서 일정을 계산하는 건지 살짝 먼 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뭐, 그야 그렇겠지. 미리엘은 4계층 수색대 위주라고 말했으니까. 개중에는 분명 지금 이 시간에도 4계층을 탐험 중인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까지 전부 불러 모으려면, 아마 빨라도 일주일은….

"2, 3일 정도 소요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

이게 거대 클랜의 힘인가.

나도 이제 이런 것에 일일이 감탄할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건 놀라운 거였다.

그 인원을 전부 소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2, 3일이라니. 4계층은 어디든 왕복 3일 안에 다녀올 자신이 있다는 얘기잖아?

그야 4계층은 전부 물로 되어 있는 곳이니 어느 곳이든 일직선 경로로 갈 수 있고, 물의 마법의 힘을 빌리면 이동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늦나요?"

"아니요. 저도 그때쯤 다시 출발하려고 했으니 딱 좋네요. 그렇게 준비해주세요."

왠지 생각한 걸 그대로 입 밖에 내면 없어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준비가 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은 텔루나님의 저택으로 보내면 괜찮을까요?"

"네. 부탁합니다."

그 이후로도 몇 가지 더 세세한 일정 토론을 하고 나서, 나는 아라크네 클랜을 뒤로했다.

앞으로 2, 3일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더 쉬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처음 7계층에 모험을 떠나고 나서 바프라 장악까지, 그동안 쉴 틈도 없이 쭉 달려왔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다른 사람들은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테니, 딱 그 정도만 쉬고 내려가는 게 제일 적당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앞으로 2, 3일은 제대로 된 변명거리도 생겼으니, 푹 쉬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향한 곳은, 당연히 저택이었다.

…뭐? 문제 있어? 나 구원, 여기보다 밖에 놀 곳도 많았던 원래 세계에서도 취미는 집에 틀어박혀서 게임하기였던 몸이라고. 쉰다고 하면 집에 틀어박히는 게 당연하잖아?

거기에 우리 집에는.

"어머, 구원 씨.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환한 미소로 날 반겨주시는 천사님까지 계시는데. 밖에 돌아다닐 이유가 전혀 없잖아?

뭐, 실은 천사님이 맞이해주실 줄은 전혀 몰랐지만.

"다녀왔어. 레이아는 빨리 돌아왔네? 헬레나 씨를 도와주러 신전에 간다고 안 했어?"

성에서 있었던 시간이 길었고 도중에 아라크네 클랜까지 들렀다 보니 벌써 하늘이 저녁노을로 빨갛게 물드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레이아가 돌아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그랬는데요. 오랜만에 구원 씨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으시더니, 먼저 돌아가라고 말해주셔서…."

그런 거였나. 그 사람도 쓰레온과는 다르게 참 눈치 빠르고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진짜 쓰레온한테는 아까운 여자야.

"그런가. 헬레나 씨한테는 조금 미안하게 됐네."

"정말로요…."

아무튼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아는 부끄러운지 귀를 옆으로 접었다.

평소 레이아의 성격이라면 그런 말을 들어도 그냥 괜찮다고 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먼저 돌아왔다는 건, 레이아도 오랜만에 날 보게 되어서 그만큼 기뻤다는 거겠지.

사라나 실비아, 레이는 물론 디아나나 마틸다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바프라에 내려오며 가끔 얼굴을 마주치고 얘기도 나눴는데, 레이아는 나랑 직접 얼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까.

뭐, 그렇게 따지면 바넷사나 레이첼 누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 둘과 달리 레이아는 원래 던전에 같이 다니며 나랑 붙어 있는 시간이 길었으니까. 그만큼 나랑 떨어져 있는 시간이 괜히 더 길게 느껴졌던 게 틀림없다.

"그래도 모처럼 배려해 줬으니, 감사합니다 헬레나 씨."

"어딜 보고 얘기하시는 건가요? 후훗."

내가 신전이 있는 방향을 향해 두 손을 모으자, 레이아가 재미있다는 듯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아름다우시다. 볼 때마다 항상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새삼 더 그렇게 느껴졌다.

"아니.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헬레나 씨한테 잠깐 감사를."

"즐거운 시간이라니…."

"그렇잖아? 이렇게 오랜만에 레이아랑 단둘이 있게 됐으니까."

실비아는 언제 올지 모를 바프라나 플리투스쪽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구미호 마을로 갔고, 마틸다도 창관의 상황을 보기 위해 같이 내려갔다. 레이첼 누님은 오늘도 당연히 길드에 출근.

저택에 남아 있을 사람이 더 있다면 바넷사밖에 없지만, 이렇게 내가 돌아왔는데도 얼굴조차 안 내비친다는 건 그런 의미겠지.

내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하렘 플레이로 레이아가 자기 시간을 희생한 만큼, 이번엔 모두가 합심해서 레이아에게 나와 둘이서 있을 시간은 만들어 준 것처럼 느껴졌다.

"구원 씨. 시선이 엉큼하세요."

내가 그 가는 허리를 슬쩍 끌어안자, 레이아는 살포시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손을 가슴 위에 사뿐히 얹었다.

아니. 거기에 시선을 준 적은…혹시 나도 모르게 줬나?

천사님의 가슴은 항상 너무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셔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갈 때가 있다 보니, 나도 아니라고 확신하기 힘들었다.

"미안. 그 가슴에 안길 생각을 하니까."

"안기시는 건가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 위에 얹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원을 그리는 천사님이었다.

이게 남자를 유혹할 생각 하나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라는 게, 우리 천사님의 무서운 점이다.

괜히 구미호보고 요물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 우리 천사님은 요물이라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성스러우시지만.

"그래. 이걸."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인벤토리에서 꽃다발을 하나 꺼내 천사님의 가슴에 안겼다.

"어머, 이게 웬 꽃인가요?"

천사님의 입에서 웬 꽃이냐는 말이 나오다니…뭐, 나도 내 이미지에 안 어울린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쪽에서 가져온 꽃이야. 이쪽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라고 하길래 기념으로."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꽃이네요. 고마워요 구원 씨."

천사님도 어느 정도 꽃에 대한 식견이 있으신 모양이다.

가슴에 든 꽃다발에 코를 가져가서는 쫑긋쫑긋 콧방울을 귀엽게 움직이며 향기를 맡은 다음, 천사님은 이보다 더 환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내게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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