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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150화 (1,117/1,205)

1150화

마틸다 역시도 갑작스러운 내 요청에 대응하느라 이 며칠간 정신이 없었을 거다.

아무리 추기경님이고 자기가 직접 가르친 부대라고 해도, 성기사 부대를 대거 던전에 파견하는 일은 간단한 절차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덕분에 우리 둘 다 서로 엄청나게 바빠서,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하는데도 정작 얼굴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계속 이런 지하에 있을 필요 없으니까. 그냥 며칠에 한 번씩 들러서 상태만 점검하고 가도 돼. 여기에 있는 성기사들도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알아서 잘할 사람들이고, 마틸다도 마틸다대로 위쪽 신전에서도 할 일 많잖아?"

"하으으……걱정해주시는 건가요오?"

"당연하지."

"하후으……후훗. 괜찮아요. 오늘은 개관일이라고 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내 말 몇 마디에 완전히 핑크빛 모드로 변할 것 같으면서도, 마틸다는 어떻게든 자신을 억누르는 것에 성공했다.

역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알아서 자제를 잘한단 말이지. 뭐, 두 팔은 여전히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듯 내 몸을 꽉 껴안고 있었지만.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마틸다는 성실하지만, 가끔 너무 성실하니까 말이야. 또 내가 부탁한 일이라는 이유로 책임감을 가지고 이런 지하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을까 봐 걱정했지.

"네. 그리고 이곳에 있는 것도 당신 생각만큼 심심하지 않아요. 이곳에서도 디아나씨와 말 상대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건 단순히 텔레포트 장치뿐이 아니었다. 언젠가 신전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화상 통화 마법 장치까지 같이 설치되어 있었다. 연결된 곳은 당연히 구미호 마을에 있는 집이다.

전에는 들고 다니면서 설치하기 좋게 만드느라 휴대성에 중점을 뒀지만, 이제 이곳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화하기 편하게 디아나가 저런 장비까지 달아 놨다.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이 며칠간 제일 힘들게 일한 건 나도 마틸다도 아닌 디아나일지도 몰라. 심지어 디아나는 지금도 저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 디아나 말인데, 혹시 뭔가 연락 없었어?"

머리 한구석에서 디아나에 대한 감사 인사를 새삼 건네며, 나는 여기에 온 목적을 마틸다에게 물어봤다.

뭔가라고 했지만, 내가 알고 싶은 연락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미리엘의 연락 말이다.

미리엘이 저쪽으로 건너가고 벌써 꽤 많은 날이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미리엘은 디아나의 통신용 반지로 단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때문에 여전히 바프라와 플리투스의 국경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레이와 나의 러브 스토리에 사람들이 감동해서 두 나라의 갈등이 서서히 사그라지는 건데, 갑자기 전쟁을 딱 멈춰 버리면 이상하잖아?" 라는 변명으로 어떻게든 무마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슬슬 바프라도 레이 바프라의 체제로 재정비되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니, 슬슬 저쪽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정말로 위험했다.

"네. 아직 없네요. 슬슬 걱정……."

"마틸다양……음! 자네도 있었는가! 드디어 연락이 왔네!"

마틸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도중, 갑자기 통신 마법 장치가 작동되며 디아나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왔나. 하여간 미리엘 걔도 사람 불안하게 하는데 재주가 있다니까. 꼭 임무 성공 후가 아니더라도, 연락 정도는 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연락이 없으니까 살짝 불안했잖아. 그나마 살짝 불안한 정도로 그친 것도 사도 임명 창을 통해서 앨리시아가 아직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미리엘한테는 해주고 싶은 불평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뭐, 디아나의 표정을 보니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말이지.

"어떻게 됐대?"

"음. 국경지대 총사령관의 지지를 얻는 것에 성공했다고 하네."

진짜냐. 아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잖아? 딸랑 옛 주군을 상징하는 검 하나만 들고 가서는 총사령관의 지지를 얻다니.

그것도 그냥 "난 널 믿는다."수준의 지지가 아닐 거잖아? 그런 임무를 맡고 간 애가 지지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그러면 국경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도?"

"음. 신호를 보내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하네."

이렇게 총사령관이 자기 말을 듣게 됐다는 뜻이거든.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쟁조차도 마음대로 멈출 정도로.

진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이 세계에서 용사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은 어마어마하구나. 아니. 플리투스이기 때문에 더 그런 건가?

아무튼 그렇게 얘기가 됐다면, 더 지체할 이유도 없었다. 이쪽도 슬슬 얼버무리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좋아! 그러면 당장…!"

"이것저것 또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

사라야.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니?

아니. 그야 이쪽이랑 저쪽이랑 말을 맞추고 일을 진행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겠지만 말이야.

"사라 넌 비서면 내 의욕을 북돋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북돋기는커녕 기껏 생긴 의욕까지 꺾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비서라는 게 그런 것까지 하는 직업이었어?"

"당연하지! 얘가 뭘 모르네!"

내가 원래 세계에서 만난 비서는 말이지, 사장님 책상 밑에서…물론, 내가 비서를 만난 일이 있었던 건 성인용 게임 안에서밖에 없었지만.

아, 아무튼! 중요한 건 내 편견이 아니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바넷사는 그렇게 안 하는 것 같았는데?"

어쩐지 비서 일할 때 묘하게 더 깐깐한 것 같더라니, 바넷사를 따라 하는 거였어!? 걘 비서가 아니라 집사잖아! 그야 디아나한테 하는 걸 보면 비서 역할도 겸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걜 따라 해서 어쩌자는 거야! 걔는…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전에 하렘 플레이에서….

"당시인."

엄청난 반격을 생각해내고 시도하려는 찰나, 내 바로 앞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끼어들어 왔다.

"응…? 으읍…."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순간, 내 입술 위를 부드러운 무언가가 덮었다.

"아음…흐응…쪽."

그리고는 혀까지 사용한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추기경님의 행복한 눈웃음에, 내 물건은 반사적으로 팽창해서 그 복부에 비벼졌다.

"응후훗. 조금 의욕이 돌아오셨나요?"

"이번에는 또 너무 돌아와서 문제야."

내 그 말에, 마틸다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하복부 쪽을 내려다봤다.

핑크빛이 된 눈으로 그쪽을 그렇게 내려다보니, 왠지 우리 추기경님이 더 야하게 느껴졌다. 이건 혹시 기대해 봐도….

"으응…역시 제대로 할 일부터 하고 나서요."

젠자아앙! 뭔가 고민하는 눈치여서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아무리 핑크빛 모드가 됐어도, 일의 우선순위는 확실하게 정해놓고 움직이는 추기경님이었다.

"…잘됐네. 의욕 생겨서."

삐지지 마. 애초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아니. 사라도 아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겠지만. 원래 쟤 성격이면 내 눈앞에서 무슨 짓이냐고 힘으로 우리 둘을 떼어놔서 이상하지 않을 텐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오늘 일정은 이곳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일 예정이었던 내 하루가 또다시 바쁘게 흘러가게 됐다.

수염 성성 난 아저씨들이랑 얘기하면서 국경지대의 전선에서 군대를 어떻게 물릴지 결정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등, 바쁘기만 하고 재미는 없는 하루였다.

그나마 재미있는 장면이 딱 하나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내 눈으로 보는 건 한계가 있어서 말이지.

"피곤해 죽겠드아아아!"

아무튼 그런 이유로, 벌써 시간은 한밤중.

호화로운 침대에 드러누워서 그렇게 외치니, 옆에서 사라가 또 태클을 걸었다.

"바보. 그런 걸로 안 죽어."

훗. 사라야. 네 딴에는 적절한 태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때를 잘못 골랐어.

"실비아. 그렇다네. 조그만 더 힘내."

왜냐하면 난 피로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실비아테라피를 즐기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사라 네가 지금 한 말은, 내가 언제나 실비아한테 해주는 말이라고!

"느, 느헤에…."

"구, 구원한테 한 말이거든!?"

내가 보란 듯이 실비아를 들이밀자, 사라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라의 눈으로 보기에도, 실비아는 진짜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죽을 것 같은 모양이다.

"누구한테 한 말인지는 상고나 없어! 중요한 건 그 말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진리라는 사실이지! 사람은 이런 걸로 죽지 않아!"

"실비아 좀 그만 괴롭혀 바보야!"

괴롭힌다니! 난 언제나 실비아를 사랑하고 아껴준다고! 단 한 번도 괴롭힌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

"실비아. 괴로워?"

"시, 실비아는 행보캅니다아…."

"실비아도 고집 그만 부려요! 그러다가 진짜 죽어요!"

아니. 사라야. 이건 고집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하는 거야.

자기 몸을 불사르는 불나방 같은 정열적인…아니. 불나방이라는 비유는 안 좋은 의미로 쓰던 거였나?

"…이 사람들 이미지가 내 안에서 점점 망가지는 것 같아."

그렇게 셋이서 시답잖은 장난을 치고 있자니, 멀리서 어이없다는 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여왕님. 왔어?"

"구원이 그렇게 부르니까 왠지 야하게 들려."

어째서!? 여왕을 여왕이라고 부른 것뿐인데! 사라 너 요즘 나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야!? 이제 시간도 밤인데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아, 혹시 오늘은 당하는 플레이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아, 아니거든! 변태야!"

사람 마음 함부로 읽지 마라. 그리고 딱 보니 맞는 것 같은데 뭐가 아니야.

뭐, 아무튼 그 얘기는 이따가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실컷 하기로 하고.

"늦게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여왕님."

"…네가 그렇게 부르는 거, 싫어."

"그래? 그러면 자기야?"

"으읏…."

야. 나도 이런 호칭으로 사람 부르는 게 나한테 안 어울린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소름 끼친다는 반응은 너무하지 않냐?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이, 이번에는 싫어한 게 아니라…!"

아, 싫어하는 반응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싫어하는 게 아니면서 저렇게 닭살 돋는다는 반응을 보이려면…그런가.

"그럼?"

그 속마음을 눈치챈 나는, 곧장 얼굴을 들이밀면서 레이를 추궁했다.

"모, 몰라도 돼…."

물론 레이는 바로 얼굴을 피하면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곱게 넘어가 줄 내가 아니었다.

"알아야겠는데. 네 애인으로서."

"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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