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47화 (1,114/1,205)
  • 1147화

    바프라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그런 척을 하는 거였으니까.

    진짜로 자신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바프라는 하루가 다르게 신경질적이 되어 있었다.

    뭐, 바프라가 신경질을 부려봤자.

    "뭐? 누가 죽어? 설마 나?"

    내 선에서 전부 막혔지만.

    어차피 은사모의 존재는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었고, 용사의 힘도 아예 화끈하게 보여준 거다.

    이제는 딱히 숨어다닐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활동하게 됐다.

    심지어 이렇게 귀족들이 모인 회의에 아무렇지 않게 참석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내 모습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지, 요즘 바프라는 여유라는 게 없어진 모습이었다.

    "네…가 아니다."

    "하긴.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이래 봬도 내가 또 사람 신경 살살 긁는 건 제법 잘하거든.

    으드득.

    그런다고 이미 용사의 힘을 눈앞에서 맛본 놈이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오히려 문제는 바프라보다 다른 쪽에 있었다.

    아니. 원래는 케이로스를 중심으로 권력을 양도받을 계획이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내가 전면에 나서서 날 중심으로 권력이 옮겨지는 모습을 보니, 귀족들 사이에서 은근히 불만이 쌓여가는 모양이더라고.

    "크흠. 크흐음."

    지금도 내가 이렇게 바프라를 대놓고 무시하니 자기들끼리 모여서 불편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대는 무리가 보였다.

    뭐, 단순히 자기들한테까지 권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놈들만 있는 건 아니고, 개중에는 진짜로 바프라가 무시당하는 게 불편한 무리도 있겠지. 아무리 저런 놈이라도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는 신하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거기까지는 나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느 정도 감안하면서 계속 행동할 수밖에.

    아무튼 그렇게 뭔가 삐걱삐걱대는 것 같으면서도 계획했던 대로 바프라는 힘을 잃고 대신 내가 권력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나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바프라."

    "…뭐지?"

    "너 너무 높은데 앉아 있는 거 아니냐? 슬슬 올려다보기 목 아프다."

    언제나처럼 내가 바프라를 모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놓고 왕좌에서 내려오라고 말한 거다.

    "내, 내게…왕좌를 내려오라고 말하는 건가…?"

    지금까지 나름 잘 참아온 바프라도 이정도 모욕은 참을 수 없었는지, 입술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눈에 핏발을 세웠다.

    물론 그래 봤자 내 눈에는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왜? 못 하겠어?"

    슬슬 귀찮으니까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자, 의자 손잡이를 잡은 바프라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하얗게 변하는 게 보였다.

    "정 못 하겠으면."

    시선을 바프라에게서 떼지 않고 계속해서 살기를 보내며, 나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도와줄…커헉."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엄청난 격통이 느껴졌다.

    "더는 주군을 모욕하지 마라!"

    이질적인 감각에 아래로 시선을 내려보니, 거기에는 눈에 익은 검신이 내 배를 뚫고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아무리 용사라도 방심하면 평범하게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바프라는 직접 왕좌에서 내려와 뚜벅뚜벅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드러난 그 허리춤에는, 언제나 차고 있던 그 검이 보이지 않았다.

    "저, 전에…쿨럭."

    "그래. 네놈이 손을 베었을 때 확신했지. 아무리 용사라도, 결국에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고."

    "이, 이건 너무…허무…."

    "네놈에게는 잘 어울리는 결말이지."

    그렇게 말하고서, 바프라는 내 목을 손으로 직접 움켜쥐고 손에 힘을 줬다.

    우드득.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내 몸은 축 늘어졌고, 놈은 그런 내 몸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닥에 던져 버렸다.

    "바, 바프라 님 만세!"

    모여 있는 신하 중 누군가가 그런 말을 외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최근 바프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용사 구원. 며칠 전에 벌인 소동에 무너진 건물은 아직도 수복이 다 되지 않아, 지금도 알현실의 천장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무적일 것만 같던 용사가 허무하게 뒤에서 칼침을 맞고 쓰러지자, 모여 있던 신하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절망하는 자와, 환호하는 자.

    아니.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무덤덤한 반응의 소수파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알현실의 광경을, 나는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체이탈…하고는 조금 다른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만이 몸을 빠져나와 자신의 시체를 내려다보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이런 기분일지도 모른다.

    "크흑. 저 모습을 보면 우리 애들이 대체 얼마나 슬퍼할지. 내가 죽은 모습보다, 그 사실이 날 더 슬프게 하는군."

    "응읏…허, 허튼소리 그만하고. 후우. 준비하게."

    "응? 준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데서 싸기까지 하는 건…조이지 마."

    "아, 안 조였네! 누가 뭘 조였다는 겐가!"

    "알면서."

    "우으으읏…!"

    이런 자세만 아니었다면 회심의 토닥토닥 공격이라도 날렸을 텐데. 마치 그렇게 말하고 싶다는 것처럼, 디아나는 고개만 돌려서 날 바라보며 주먹을 바들바들 떨었다.

    뭐, 이 상황에 그런 달아오른 얼굴로 그렇게 바들바들 떨어봤자, 내 눈에는 괜히 더 야릇하게만 보일 뿐이었지만.

    뭐 아무튼.

    "준비라고 해도 말이지. 일단 기억부터 하는 게 먼저잖아."

    "기억이라면 이 몸이 다 해놨네."

    "오오. 역시 대마법사님. 기억력도 엄청 좋으…후우."

    "귀, 귓가에 이상한 소리 내지 말게!"

    아니. 네가 갑자기 조여서 그런 거잖아. 너야말로 갑자기 조이지 마.

    사람들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우으으…이런 장소에 이 몸은 대체 무슨 짓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야.

    우리는 지금 섹스…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힐링 섹스를 위해 삽입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어디 다친 건 아니다. 그냥 대규모의 환영 마법과 환각 마법을 동시에 펼치고 유지하기에는, 디아나의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 디아나는 지금 이 거대한 알현실 전체를 대상으로 대규모의 환각 마법을 사용 중이었다.

    지금 저기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내 시체도, 코끝을 아릿하게 자극하는 진한 혈향도, 날 뒤에서 찌른 놈이나 바프라가 내 목을 비틀면서 느꼈을 손맛도 전부 디아나의 환각 마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거기에 지금 우리처럼 알현실 외부에서 이곳을 엿보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환영 마법까지 덮어씌웠으니, 역시나 우리 대마법사님이라고 할까.

    하필이면 250레벨 한계를 넘어 전성기의 스탯을 되찾은 시기와 7계층을 본격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한 시기가 묘하게 맞물려서 가끔 조언해주는 것 말고는 활약할 장면이 크게 없었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마법을 보게 되니 왜 디아나가 지고의 대마법사님이라고 불리며 경외 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뭐, 전성기의 스탯을 찾았다고는 해도 아직 레벨이나 직업 레벨은 전성기에 한참 못 미치고, 특히나 마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내 힐링 섹스의 보조를 받지 않으면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펼치는 건 어렵다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디아나의 활약에 힘입어, 지금 아래에는 진심으로 내 뜻에 동참했던 무리가 그렇지 않은 무리가 극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로 이게 되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결국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네. 끊임없이 뒤흔들면 언젠가는 흔들리게 마련이지."

    "지금 디아나처럼?"

    "……."

    자, 장난이잖아.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그리고 가능하면 너무 그렇게 꾸욱꾸욱 조이지도 말아줄래? 이러다가 나 진짜로 쌀 것 같아.

    "아무튼 빨리 내려갈 준비나 하게."

    "넵. 하지만 준비라고 해도 말이야. 알았어 할게. 후우…윽."

    나는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 내 배와 등 쪽, 알현실에 보이는 내 환영이 찔린 부위와 정확히 같은 부위를 가볍게 찔렀다.

    물론 힐링 섹스에 의해서 바로 치유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프단 말이지.

    "어때? 피 칠은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으, 음."

    "그럼 이대로 뺀다?"

    분장을 마치고 디아나에게 확인까지 받은 후, 나는 아쉽지만 디아나와의 막간 해피 타임을 끝내기로 했다.

    "응흣…처, 천천히 빼게. 정신이 흐트러지면…."

    "마법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거지. 알았어. 조심할게."

    조심한다고 해도, 자극을 아예 안 주고 뺄 수는 없겠지만.

    "응…흐읏…하으읏…."

    내가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허리를 뒤로 빼자, 찔꺼억하는 소리와 함께 디아나의 끈적한 애액에 뒤덮인 내 물건이 서서히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소리에 흥분한 건지, 아니면 내 물건이 뽑혀나오며 안쪽을 긁는 자극에 흥분한 건지, 디아나는 엉덩이를 요염하게 뒤틀면서 안쪽을 더욱 조이…크윽. 젠장. 이러다가 진짜로 이성 잃고 흔들겠네. 뭔가 다른 생각을 하자. 그래. 디아나랑 알콩달콩한 얘기라도 하면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뭔가 아쉽네."

    "우으으읏…."

    아, 아차. 이 주제는 역효과인가.

    디아나도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아쉬워할 게 뻔하잖아! 오늘로 벌써 며칠 동안 이어진 노출 플레이가 끝나는 건데, 우리 노출증 변태 대마법사님이 아쉬워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하필 내가 이런 말을 꺼내다니!

    "무, 무슨 생각하는 지 얼굴에 다 보이…, 빨리 빼기나 하게!"

    "죄송합니다."

    여신이 내 머릿속에 도청 장치…아니. 성자라는 이름의 발정 장치를 심어놓은 바람에 그만. 이것도 전부 여신이 너무 야해서 그런 거야.

    "응후읏…하읏…하아앗…."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