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44화 (1,111/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144화

    이미지 플레이라는 변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라의 그런 의도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먹혀들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때 그 말이 진심으로 사라가 원해서 한 말이라는 건, 사라의 표정이나 말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저기에 있는 레이 역시도, 사라의 그런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애 앞에서 이렇게 허세를 부려봤자…아야!

    "사라야. 아파."

    갑작스레 혀에서 느껴진 통증. 사라가 가볍게 깨문 그 감촉에, 나는 사라의 입술에서 입술을 뗐다.

    설마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한 건지 알고 캐물은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속마음을 읽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용사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 무서웠다.

    "꽁냥꽁냥하는 시간이라면서?"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내게 가볍게 눈을 흘기고 나서 시선을 내리까는 사라. 그 시선을 나도 똑같이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사라의 한 손에 딱 들어오는 가슴을 옷 위로 조물조물 만지고 있는 내 손이 있었다.

    앗, 그때 생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미안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황급히 사과했지만, 사라는 계속해서 날 곱게 흘겨봤다.

    "이상한 생각 했지?"

    "이, 이상한 생각이라니!"

    "커졌거든. 변태야."

    또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거기에는 사라의 탐스러운 엉덩이 사이에 비벼지고 있는 내 물건이 있었다.

    그때도 사라를 뒤로 돌게 한 다음 일단 엉덩이골에 끼워놓고 비비면서 시작했었지.

    그때의 감촉을 다시 되새겨보니 바지 위로 비비고 있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또 이상한 생각하지?"

    "사라야. 너랑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과연 이상한 생각일까? 우리 사이에? 정말로?"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해 보기로 했다.

    "저, 정색하지 마 이 변태야! 꽁냥꽁냥하고 싶다면서!? 나 아직 씻지도 않았거든!?"

    물론 우리 용사님한테는 통하지 않았지만.

    아니.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통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먼저 이러고 있자고 말을 꺼낸 건 나니까 자중하기로 했다.

    지금도 레이 앞에서 허세 부리는 사라의 모습 때문에 잠깐 생각이 딴 길로 샌 것뿐, 이러고 있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하여간 우리 사라도 키스 엄청 좋아한다니까."

    "누구보고 우리 사라…그, 그런 표정 짓지 마 이 바보 오빠야!"

    "우리 사라…맞지?"

    사라야. 아무리 레이 앞에서 쿨한 척하느라 그런 거라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어. 부정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오빠 진짜로 충격받는다? 엉엉 운다?

    그런 무언의 협박까지 담아서 사라를 쳐다보자, 사라의 표정이 점점 빨갛게 변해갔다.

    "마, 맞으니까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진짜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 죽겠어…."

    "휴우. 깜짝 놀랐잖아. 역시 우리 사라야. 우리 사라는 가끔 이렇게 틱틱대서 오빠 간을 떨어트려 놓는다니까. 그게 우리 사라의 매력이지만 말이야. 진짜 우리 사라는 어쩜 이렇게 톡톡 쏘는 매력이 있을까. 예뻐 죽겠어 우리 사라."

    "이, 이게 진짜…."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면서 일부러 우리 사라를 연호하자, 사라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라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달아오른 이유가 정말 분노 때문만은 아닐 거다.

    뭐, 그래도 이 정도 허세는 봐주도록 할까.

    "뭐, 그럼 사라랑 꽁냥대는 건 이쯤하고."

    다음은 누구랑 할까.

    그런 눈으로 레이와 실비아를 번갈아 바라보자, 둘이 동시에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앞서 사라랑 하는 걸 본 만큼, 자기도 걸리면 비슷한 꼴을 당할 거라고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레이도 그랬지만, 특히 실비아는 걸리면 죽는다는 표정으로 굳어져 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우리 기사님은 죽을 각오를 너무 쉽게 다지는 것 같아. 하는 수 없지.

    나는 실비아에게서 눈을 떼고, 옆에서 굳어져 있는 레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실비아가 휴우하고 긴장을 푼 바로 그 순간.

    "그럼 실비아."

    "저, 저 말입니까아아!?"

    레이를 바라보면서 실비아를 지명하자, 실비아가 그 자리에서 말 그대로 펄쩍 뛰어오르며 놀랐다.

    "진짜 못 됐어…."

    사라야. 오빠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못된 짓을 한 건 맞지만.

    "응. 너. 자, 그럼 우리 사라 씨. 자리 좀 비켜주실까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여주고 사라의 엉덩이 옆쪽을 톡톡 때리자, 사라가 또다시 곱게 눈을 흘겼다. 그래도 순순히 비켜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 다리 사이를 톡톡 치자, 실비아가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시, 실례하게씁니다아!"

    실비아야. 벌써부터 발음이 새면 어떡하니.

    그런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실비아를 내 품안에 안는 순간 아무래도 좋아졌다.

    "하아아…."

    이거지. 이게 바로 실비아 테라피지.

    아니. 물론 사라를 끌어안고 있을 때의 그 기분도 엄청나게 좋았지만, 이 특유의 치유되는 느낌은 실비아가 아니면 받을 수 없거든.

    "진짜 바보 같은 표정…." 이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옆쪽에서 들려왔지만, 사라 쟤는 이 느낌을 못 느껴봤으니 하는 소리다.

    "실비아."

    "네, 네헵!"

    "이 며칠 외로웠지?"

    내가 위에 올라가 있던 시간은 물론, 어제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그리 신경 써주지 못했으니까. 티는 안 냈지만 분명 외로웠을 거다. 게다가 7계층에서는 매일같이 붙어 다녔던 만큼 더더욱 그렇게 느꼈겠지.

    "아, 아닙…!"

    "외롭지 않았다고?"

    "그, 그것이 아니라! 그, 그게…! 우으으…."

    이번에도 역시나 티 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실비아였지만, 내가 귓가에 다시 속삭이자 바로 고개를 움츠리고 바들바들 떨었다.

    너무 몰아붙였나. 얘는 사라처럼 계속해서 몰아붙이면 진짜로 위험해지니까 말이야.

    "그러면 지금은 어때?"

    "해, 행복합니다아!"

    "그렇게나?"

    "네, 네헵!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좋습니다아아!"

    아니. 죽으면 내가 곤란하거든.

    "그럼 계속 이러고 있을까?"

    "네, 네헤에! 어, 어머니…실비아는 먼저…."

    아니. 그러니까 진짜 죽으려고 하면 안 된다니까.

    "후우. 만족했다."

    "흐야아…하으아…하아…."

    그렇게 한참 동안 실비아 테라피를 즐긴 후 놔주자, 실비아는 몸에 힘이 다 풀린 채 바들바들 침대 위로 기어가서 그대로 축 늘어졌다.

    그래도 요즘 매일매일 같이 지내면서 내성이 많이 붙은 줄 알았는데, 역시나 실비아는 실비아였다.

    게다가 사라랑 달리 야한 짓은 일절 안 했는데도, 엉덩이를 움찔움찔 떨면서 야한 목소리를 흘리기까지.

    "실비아. 자려면 씻고 자야죠."

    그런 실비아를 보고 있을 수 없었는지, 사라가 그 몸을 일으켜서는 같이 방에 딸린 욕실로 데려갔다.

    아니. 단순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계속 보고 있으면 자기도 이상한 기분이 들까 봐 그러는 걸지도. 사라의 성벽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뭐, 아마 제일 큰 이유라면 역시 레이와 날 둘만 있게 해주기 위함이겠지만. 하여간 우리 용사님은 눈치도 엄청 빠르다니까.

    "여, 역시 나도…?"

    상식도 눈치도 부족한 레이지만, 이 상황에서 자기 미래를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눈치 없는 건 아니었다.

    "응."

    고개를 끄덕이며 다리 사이를 툭툭 쳤지만, 레이는 선뜻 내게로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실비아의 반응이 많이 강렬하기는 했지만, 우리 사이가 이제 와서 뺄 사이도 아니잖아? 너도 이제 할 거 다 하고 알 거 다 알면서.

    "딱히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괜찮아."

    "꺅!"

    나는 레이의 손을 잡아끌어서, 아까 사라나 실비아가 그랬던 것처럼 내 다리 사이에 앉혔다.

    "이것 봐. 막상 이러고 있어 보니 별거 없지?"

    "으, 응…."

    엄청 별거 있어 보이는 표정이네. 게다가 허벅지 안쪽을 비비는 것처럼 다리를 꼬물꼬물 움직이기까지.

    아마 모르고 그러는 거겠지만 말이야, 네 외모에 그런 행동 하면 유혹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거든? 남자라면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좀 자중해라.

    진짜 이렇게 생긴 애가 어떻게 이런 쪽 상식이 없을 수 있지? 생긴 건 섹시한 다크 엘프 그 자체인데. 가슴도 이렇게….

    "아흥!? 너, 너…하, 할 거야…?"

    아니거든 이것아!? 뭐야 너? 하고 싶은 거야!?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진짜 유혹하는 거 아니지!?

    "별거 없다면서 심장은 엄청 뛰네."

    콩닥콩닥 뛰는 레이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그 긴 귀에 숨을 불어넣듯 중얼거려주자, 레이가 "우으으응…."하고 부끄러워하는 건지 느껴서 신음하는 건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일단 조금 긴장 풀고 진정해 봐. 그냥 좋아하는 사람끼리 끌어안고 있는 거잖아? 앞으로 이런 일 엄청 많을 텐데 매번 이렇게 긴장하려고?"

    "조, 좋아하는…."

    "아니야? 아, 너 설마 아직도 의심하는 거 아니지?"

    "그, 그런…여기서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야. 그 사라도…."

    마지막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지만, 레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던 나는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가. 그때 그렇게 사라가 무너지는 걸 보고도 왜 사라의 허세가 통하는지 의아했는데, 레이 얘는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이러고 있으면 무너져내리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 와중에 그나마 반항이라도 할 수 있는 사라가 대단한 거야.’ 라고 말이다.

    대체 얘는 날 얼마나…그러고 보니 나한테 지골로니 뭐니 이상한 호칭까지 붙였었지.

    "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나. 그러면 그동안은."

    레이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나는 감정 공유를 발동했다.

    "어때?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지?"

    "…너도 두근두근하잖아."

    "그래. 하지만 이건 긴장해서 그런 게 아니야. 행복해서 그러는 거지. 모르겠어?"

    "…으읏. 조, 조금은…알 것 같아."

    정말로 감정 공유의 효과를 보는 건지, 손안에서 느껴지는 레이의 심장 박동이 조금 차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충분해. 너도 긴장보다는 행복을 더 느낄 수 있게 되자고."

    "응…."

    이번에는 레이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나서, 나는 그 왼쪽 가슴에서 손을 뗐다.

    실은 조금 더 만지고 있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지. 그대로 만지고 있으면 나도 점차 이성을 잃을 게 뻔했고.

    "그래서 레이. 오늘 어땠어?"

    "으, 응? 오늘?"

    "아니.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