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29화 (1,096/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129화

    "키야! 그래서 그래서?"

    하지만 내 냉정한 감상과 다르게, 주변에 모여 있는 사내놈들은 탄성까지 내지르며 로리콤의 말에 몰두하고 있었다.

    대체 방금 그 말의 어디에 "키야!"라고 반응할 만한 포인트가 있었지? 내가 이상한 거야? 나 혼자 눈치 없이 분위기 못 맞춰주는 거야? 아니지? 그냥 쟤들 대낮부터 취해서 저러는 거지?

    짧은 순간에 온갖 상념이 교차하게 되는 모습이었지만, 이것조차도 아직 최악은 아니었다.

    정말로 최악인 건, 지금부터 내가 저 무리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괜히 이목을 끌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니까.

    젠장. 저 로리콤 녀석. 아무리 내가 약자 태세를 쓰고 있다지만, 성자님이 왔는데도 눈치를 못 채다니. 차라리 저놈 대신 호랑이 머리였으면 날 알아보기라도 했을 텐데.

    "놈들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주춤하더군. 하지만 그래 봤자 어린아이에게 손을 대려고 한 본성이 어딜 가지는 않았어.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미소가 놈들의 입가에 떠오른 순간, 나는 직감했지. 또 내 창에 쓸데없는 피를 묻히게 될 거라고. 잠시만 뒤를 돌아주고 있어 주겠니? 금방 끝날 거야. 나는 떨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고는, 이 아이를 이렇게까지 겁에 질리게 한 놈들을 향해……."

    "키야아아아아! 멋있다!"

    "……."

    주문한 맥주잔을 손에 들고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본 나였지만, 그 순간 술집에 묘한 정적이 흐르게 됐다.

    어, 어라? 이 타이밍이 아니었어? 젠장! 어쩔 수 없잖아! 어느 타이밍에 감탄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야! 댁들은 대체 왜 저딴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거야!?

    너무 무안해서 필사적으로 자기변호를 하고 있자니, 옆에 있던 형씨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래! 멋있다!"

    "크하하하! 형씨. 얘기에 너무 집중한 것 아니오?"

    "그래! 감탄은 얘기가 끝나고 나서 합시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시작으로 다들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져서 다행이기는 한데 말이야, 난 진짜 이 사람들을 모르겠어. 저 로리콤은 잘도 이런 사람들이랑 동화되어 있네.

    그렇게 생각하며 힐끔 듀크를 보자, 저쪽도 드디어 내 존재를 깨달았다는 듯 눈짓으로 인사해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멋있다는 데 형씨가 그걸 왜 막아!? 그런 얘기라면 얼마든지 해도 돼! 내 얘기 따위 얼마든지 끊어!"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역시 남자 모험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는데!?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계속해 봐!"

    "맥주 한잔 더 시키고 합시다 좀. 그래서 말이지……."

    아니! 그렇다고 그걸 또 계속하냐!? 나 너랑 중요한 얘기 하러 온 거야! 눈치 못 챈 거 아니지!? 결국 듀크의 영웅담. 아니. 헌팅썰이 마무리된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이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 일에는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보니."

    듀크가 그렉과 함께 머무르고 있다는 여관방에 그림자 이동으로 몰래 들어온 나는, 곧장 고개를 숙이는 듀크의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아니. 심술부리는 게 아니라, 이 녀석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즐긴 것 같단 말이지.

    "뭐, 됐어. 그보다 중요한……아니. 그전에."

    한 시간 동안이나 썰을 들으면서 새삼 느낀 거지만, 이 녀석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정의 변태다. 그걸 깨닫고 나니 이런 놈이랑 길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마음은 없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빨리 본론만 얘기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런 얘기 함부로 하고 다녀도 되냐?"

    "네?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야. 네가 지금까지 한 얘기가 하나 말고 더 있냐?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아까 그 얘기, 위에서 여자 꼬시던 썰이잖아."

    성별도 모호하게 말하고 나이도 실제보다 더 어리게 말하는 등 살짝 각색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의 변태의 본모습을 아는 나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네? 아닙니다. 정말로 남자아이였습니다."

    "……뭐?"

    "성자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시면 안 됩니다. 구해지는 것은 언제나 여자라고 누가 정했단 말입니다. 저는 남녀의 차별 없이,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얼굴 들이밀지 마. 새끼야! 뭘 자랑이라고 떠들어! 결국 자기 파티에 데리고 다닌 건 마찬가지면서!"

    "억울합니다. 전 그저 흐뭇하게 지켜만 봤을 뿐입니다."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내가 이 녀석을 너무 얕봤어!

    "그리고 이곳에서의 행동을 더 조심하자는 말씀을 하고 싶으시다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에 진지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는 듀크였지만, 이미 듀크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나로서는 이마저도 같잖은 말을 위한 사전준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데?"

    "구원 님의 그 레벨 속이기 스킬 덕분에 확실히 평소보다 주목도는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 님의 얼굴이 극적으로 변하는 건 아닙니다. 곰곰이 보면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수준입니다. 조금 더 확실하게 이목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무리 떠들어봐야 팔찌 안 찬다."

    "하지만……!"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놈의 의도를 깨닫고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해주자, 이 정의 변태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자기 허벅지까지 탁탁 때렸다.

    "아무튼 잡담은 이제 그만 됐어!"

    중요한 얘기를 전달하러 왔는데 이 자식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계속 얘기가 딴 길로 새잖아!

    젠장. 이럴 거면 진짜 그 호랑이 머리가 차라리 나았는…….

    "아아~그 빛나는 검은 하늘을 가르고~."

    넌 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아니. 그보다!

    "야이 고양이 새끼야! 너 정상적인 노래도 부를 줄 알았잖아!?"

    "우오오! 성자님! 오셨습니까!"

    뒤늦게 여관으로 돌아온 그렉에게, 나는 참다 참다 못해 폭발하고 말았다.

    그동안 그 지옥 같은 노래를 버프라면서 참고 들었던 내 노력은 대체 뭐였던 거야!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겨우 다 같이 모여 제대로 된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우리는, 각자 그동안 있었던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렉과 듀크는 효율적인 소문 전파를 위해 각자 다른 구역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점심에만 잠깐 만나 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뭐, 소문 전파라고 해도 아직 성 쪽에서 소식이 들려오지 않은 만큼 살짝 떠보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었고, 사람들과의 친목 도모에 더 힘쓰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즉,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둘의 활동을 대충 전해 들은 다음, 나는 둘에게 간략하게 이쪽에서 있었던 일과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동시에, 성에서 이런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다니라는 지령을 내렸다.

    요리스의 계산이 정확하다면 며칠 이내로 사람들이 여신의 마나에 영향받기 시작할 거다. 그전에 소문을 퍼트려라. 바프라는 이미 여신의 손에 넘어갔고, 성의 지하에서는 매일같이 난교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몬스터 대군의 침공도, 성의 지하에서 느껴지는 요사로운 기운에 지하 수로의 몬스터들이 자극받아서 벌어진 일이다.

    바프라가 쭉 모습을 보이지 않던 것도 섹스에 빠져서 그랬던 거고, 최근 모습을 드러낸 것도 본인의 실수로 일어난 몬스터 대군의 침공을 무마하기 위해서다.

    안 그래도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바프라의 신경을 박박 긁고 있을 텐데, 거짓과 진실이 교묘하게 섞인 이 소문이 퍼져 봐라. 분명 바프라는 필요 이상의 격한 반응을 보일 거다.

    귀족 측에 심어둔 케이로스와 요리스가 다른 귀족들을 구슬리기에 충분할 만큼 격한 반응을.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위험한 임무라는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아마 소문이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찾아내려고 혈안이 될 거야. 우리도 최대한 빠르게 행동할 거지만, 너희도 최대한 추적당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행동해."

    "오오! 구원 님이 저희를 이렇게까지 걱정해주시다니! 이 그렉, 그 위대한 마음 씀씀이를 노래로 만들어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겠……."

    "성에서 대충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기는 하다니까, 지금부터 바로 움직여. 그럼 난 간다."

    이미 헛소리라면 저기에 있는 정의 변태한테 충분히 들었으니까, 너까지 가세하려고 하지 마라. 이 덩치 크고 줄무늬 있는 고양아. 고양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렉이 또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나는 황급히 자리를 뜨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서 우리 애들 얼굴이나 보고 싶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내려왔으니 케이로스 아저씨한테도 대략적인 상황은 설명해 줘야겠지.

    "우오오오! 난 살아 있다! 살아 있다고! 이것이 바로 콘돔! 이것이 바로 섹스! 합쳐서 콘! 돔! 섹! 스!"

    아니. 아저씨. 대낮부터 대체 뭐 하는……진짜 우리 애들 얼굴이 너무 그립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왜 다 벗은 아저씨가 대낮부터 힘쓰는 모습을 봐야 하는 거냐고!?

    이미 변태 듀오와 대화하면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내 정신은, 아저씨의 섹스신으로 완전히 가루가 되고 말았다.

    "크흐윽! 얘들아아아!"

    케이로스에게도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주고 나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 애들이 있는 방을 향해 달려갔다.

    차라리 계속 7계층에 있었으면 내성이라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하렘 플레이를 한 직후에 이런 지옥을 보여주다니.

    하늘은 왜 이 구원을 낳고 듀크, 그렉, 케이로스, 요리스 기타 등등 다른 고추 달린 새끼들 전원을 또 낳았는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내게도 한 줄기 빛은 있었다.

    우리 애들의 품에 안겨서 안정을 취하면, 이 바스러진 멘탈도 조금은 회복될 거야.

    "야! 구원! 너 진짜……!"

    하지만 우리 애들이 머물고 있는 방의 문을 활짝 여니, 날 맞이해 준 건 사라의 앙칼진 목소리였다.

    셋 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있고, 특히 실비아와 레이는 서로 반대편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걸 보니, 대충 그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짐작이 갔다.

    하렘 플레이까지 경험했으니까 그 정도 얘기는 그냥 넘어가 줄 줄 알았는데, 역시 그렇게 쉽게 넘어가 주면 사라가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사라야. 화낼 날을 잘못 골랐어.

    평소라면 또 장난치다가 당하거나 사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거나 하겠지만, 지금의 난 그럴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사라야아아!"

    "이 변……꺄응!? 무,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내가 갑자기 가슴에 달라붙자 밀쳐내지도 못하고, 사라는 엉겁결에 내 머리를 감싸 안아주고 말았다.

    "나, 나 너무 힘들었어!"

    "왜 그래? 그냥 얘기만 하고 온 거 아니었어? 말 돌리려고 엄살 부리는 거면……."

    "엄살 아니야!"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감정 공유를 발동하고 레이까지 끌어안자, 구석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내게 안기게 된 레이도 화들짝 놀라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으윽……이 느낌은……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렘 플레이 이후로 나랑 말도 잘 안 하던 애가 이런 반응이라니. 그 변태들 때문에 내 마음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지옥을……보고 왔어. 그러니까 잠깐만 이대로 있어줘……."

    내 목소리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 사라도 레이도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양쪽에서 가만히 날 끌어안아 줬다.

    "저, 저도 돕겠습니다아!"

    그리고 마무리로 실비아까지 내 등에 찰싹 붙어서 바들바들 기분 좋은 진동을 전해 준 덕분에, 내 정신은 급격하게 제컨디션을 되찾아갔다.

    "이러고 있으니까 괜히 그때 생각나네."

    그렇게 중얼거리자, 날 껴안고 있던 레이의 몸이 움찔하고 떨리는 게 느껴졌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반신 쪽이 움찔하고 떨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 그때라니?"

    은근슬쩍 허벅지까지 비벼놓고 모르는척하기는. 애초에 지금 너랑 나는 감정이 연결된 상태라고.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알면서 왜 그래?"

    "모, 몰라!"

    "에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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